지속적인 창작이나 공동제작을 위한 기본적인 유통조차 담보되지 않는 시장과 파트너에 누군들 얼마나 오래 매력을 느끼겠는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제작과 유통이 결합된 선순환 구조 없이는 제작비 상승 또는 제작물의 질적 저하로 인한 일회성 제작의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지난 12월 21일 부산에서는 축제 및 극장 종사자, 예술가 및 예술단체 등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글로벌역량강화사업 참여자들과 부산 지역의 국제교류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공연예술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동안 서울아트마켓과 수도권을 중심으로만 전개되던 글로벌역량강화사업의 지역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첫 시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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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션박스 학술행사

예술가와 기획자들은 왜 국제교류를 하려는 걸까?

처한 입장에 따라 세부적 관심사와 정도는 다를지언정 예술의 속성과 마찬가지로 그 출발은 모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싶다. 늘 하던 것과 늘 보아 익숙해진, 그리고, 그만큼 지루해진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더 낫고 그만큼 멋진 것들을 경험하거나 배우고 싶은 욕망, 좁고 답답한 국내 공연 유통시장의 판을 넓혀 좀 더 풍족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폼 나게, 자기 또는 좋아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역 문예회관 기획자로서 늘 남(민간 기획자, 예술단체)들이 잘 만들어놓은 도시락(국내 공연물)을 떼어다 초청기획이라는 명목 하에 판매하거나, 국제공연예술축제나 해외작품 소개, 공동제작에 관심 있는 일부 극장들이 잘 차려놓은 외식재료 밥상(해외 공연물)에 숟가락 하나 얹는(공동초청이라는 명목) 방식으로 나와 지역주민의 호기심을 달래 왔다. 아직 지역 예술가의 호기심까지는 챙길 여력도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좀 더 다양한, 그리고 주체적인 국제교류의 단서들을 찾아보고자 이번 커넥션박스 행사에 참여했다.

맨 처음 공연예술 국제교류 현황에 대한 기조발제를 맡은 최준호 교수의 프랑스 공공극장 사례는 시종 부러움과 함께 이제 시작 단계인 우리 공연예술의 국제교류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실질적인 지침들을 던져주었다. 중앙정부의 공적 지원을 받는 프랑스의 140여 개 공공극장은 대부분 민간 예술가(단체)와 공동제작을 주로 하고, 연중 모든 프로그램을 대관 없이 자체 제작 및 다른 극장들과의 네트워크 안에서 배급하는 제작공연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공동제작의 파트너와 제작공연의 배급 네트워크는 국적을 초월하므로 실질적이면서도 상시적인 국제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공공극장 외에도 공연예술의 국제교류, 즉 프로그램 리서치, 정보교류, 프로그래밍 및 운영 워크숍, 프로젝트 공모, 레지던시 및 제작비, 기술 지원 등 다양한 층위의 공동제작과 공동배급의 역동적인 본거지 역할을 하는 수많은 페스티벌과 영역별, 창작경향별 네트워크(극장, 페스티벌, 연구 및 매개기관 등 관심분야 회원모임)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공연예술축제와 일부 극장들에서 연간 프로그래밍의 일부로 완성된 해외공연물을 초청하는 것에 주력하는 형편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배급 네트워크가 없어서 많은 투어공연을 소화하지도 못하고 해당 극장과 축제에서의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지극히 소모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제작극장 및 창작지원공간(레지던시)들과 함께 지원기관이나 아트마켓을 중심으로 완성된 작품의 수출입 외에도 다양한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국제공동제작(리서치, 예술가 간 협업, 레지던시 및 프로젝트 지원 등) 움직임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창작과 유통의 연계지원, 기금의 직접지원 외 창작공간, 프로모션, 네트워크 정보 등 간접지원 확대, 권역별(유럽, 노르딕, 중남미 국가연합 등) 다국적 지원체계 경향과 같은 국제교류의 최신 환경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참석자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 민족의 압축성장 저력을 공연예술 국제교류 분야에서도 발휘’하고 있는 셈인데, 속도전에 따르는 부실공사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선발주자를 매혹시킬 수 있는 창의력과 상상력 가득한 콘텐츠의 지속적인 개발만이 살 길인 것 같다.

아지트 커넥션박스 학술행사

▲▲아지트 전시장
▲커넥션박스 학술행사

국제교류, 명분이 아닌 다양한 지향점의 접점이어야

이어서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 글로벌역량강화사업 사례 발표에서는 핀란드, 영국, 호주 커넥션 등에 참여했던 춤전용 M극장, 안성수픽업그룹,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리서치 및 실제 협업 프로젝트 성과가 소개되었다. 실제 국제교류 현장에서 단위 참여자의 개별 접촉보다는 공신력 있는 매개기관(한국의 예술경영지원센터, 핀란드의 댄스인포, 영국의 비지팅아츠 등)의 소개를 통해 상호 단체에 대한 신뢰도와 협업 가능성이 향상되고, 지원기관의 초기 리서치 가이드뿐 아니라 교류일정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독려에 따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공적인 협업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긍정적 요소로 꼽히는 것 같다. 한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가 및 기관들의 경우 해당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지역 주민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 개발이 과제(지원 대가)처럼 주어지곤 하는데, 국제교류 프로젝트는 반드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무(명분)보다 협업을 통한 예술적 성취도(교류 통한 자극 자체) 등 다양한 지향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보다 성공적인 국제교류를 위해서는 무조건 국제교류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처음부터 예술가 스스로 국제교류를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더불어 초기 단계에서 예술가 간 교류 접점(서로의 지향이 맞는지,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도움될 확실한 장점이 있는지)을 신중히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산 지역에서도 공공 분야에서는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국제 자매도시 관계를 통한 공립예술단체의 국제교류 공연 및 장르별 대형 국제행사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지만 생산적인 네트워크가 축적되지는 않고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수도권에 비해 별다른 기금이나 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민간 부분에서 자발적인 국제교류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는데, 부산-후쿠오카 아트 네트워크의 ‘왔다갔다 페스티벌’, 기업 메세나를 통해 국제교류 레지던시와 소극장에서 발표무대를 확보한 신은주무용단, 인디밴드 퍼포먼스와 시각예술(그래피티) 레지던시로 가장 다양한 서브컬처 국제교류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인디스페이스 아지트 등이 인상적이었다. 부산문화재단 또한 다양한 장르의 우리 예술을 일본에 전파해 국제레지던시의 효시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일본 내 조선통신사 레지던시 네트워크 구축 등 지역문화재단에서 가능한 독특한 지역기반 국제교류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제 네트워크 못지않게 서로 자극과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국내 지역 네트워크 확대의 일환에서 이번 부산 커넥션박스와 같은 정보교류 워크숍 및 국제아트마켓의 지역순회 개최 등이 절실한 시점이다.

LG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디큐브아트센터, 샤롯데씨어터, 블루스퀘어, 대학로 소극장 등 일부 사설극장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공연물 또한 공적 지원을 받는 공공극장, 특히 지방에서는 문예회관을 통해 주로 소비된다. 한국문예회관연합회에 가입하여 비교적 활발하게 공연물 유통을 담당하는 문예회관의 개수만 해도 150개가 넘는(2010년 말 기준 전국문화기반시설총람에서 집계한 전국문예회관은 192개) 하드웨어 과잉의 현실에서 이들 공간을 충실하게 채울 수 있는 우수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유통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누구에 의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일단 공들여 제작된 우수 공연물들이 최대한 많은 공연장과 관객을 만나며 생명력이 연장될 수 있는 유통구조가 갖추어져야 예술단체의 생존과 지속적인 창작이 가능해지고, 이는 다시 공연장의 안정적인 콘텐츠 확보와 관객 확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국제교류 콘텐츠 또한 시작 단계에서만 가능한 ‘이국풍’에 대한 관심과 초보자에 대한 배려에 편승하는 ‘얻어타기’ 전략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지속적인 창작이나 공동제작을 위한 기본적인 유통조차 담보되지 않는 시장과 파트너에 누군들 얼마나 오래 매력을 느끼겠는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제작과 유통이 결합된 선순환 구조 없이는 제작비 상승 또는 제작물의 질적 저하로 인한 일회성 제작의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국제 교류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현실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우리나라의 대부분 공공극장들이 유럽과 같은 네트워크 프로듀싱(공동제작) 및 프리젠팅(공동배급)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국제교류에 임하는 우리 공공극장에게 시급한 것은 국내 공공극장 네트워크(한국문예회관연합회)와의 긴밀한 협의 체제를 갖춰, 국제교류 인력과 물적 기반을 갖춘 일부 공공극장의 경우 적극적으로 공동제작에 참여시키고, 그렇지 못한(국제교류를 하고 싶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다수 지역 문예회관의 경우 조기 사전설명회 및 해외공연물 초청 관련 제반 업무에 대한 지원이나 컨설팅을 통해 별다른 부담 없이 우선 공동배급에라도 뛰어들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수한 공연물의 창작 못지않게 중요한 생존기간 연장을 위해 필수적인 유통 플랫폼으로서의 아트마켓을 일 년에 한 번 열고 관심 있는 사람들만 모이게 해서는 당분간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박병훈 필자소개
박병훈은 2001년 전주소리문화전당 개관 멤버로 참여했고, 2008년부터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예술기획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예술가(단체)가 유통에 신경 쓰지 않고 수준 높은 창작에만 몰두하면 생계 및 재창작 기반이 마련될 수 있는 네트워크 조성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litosth@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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