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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행정교육 네트워크(ENCATC; European Network of Cultural Administration Training Centers)는 지난해 10월, 학술지 [문화예술 경영과 정책](Journal of Cultural Management and Policy) 창간호를 발간했다. 북미와 아시아의 몇 개 대학을 제외하고는 124개 회원 기관 대부분이 유럽에 위치한 만큼, 창간호에는 경제위기 이후 유럽 각국의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의 변화에 관한 보고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초래한 문화예술계의 위협 요인과 기회 요인을 분석한 연구 보고서인 「경제위기와 유럽 문화정책 및 운영 모델에 미치는 영향」(The Financial Crisis and its Impact on the Current Models of Governance and Management of Cutural Sector in Europe)이 게재되어 있다. 이 보고서를 공동으로 집필한 바르셀로나대학의 루이스 보넷 교수(Lluís Bonet, University of Barcelona, Spain)와 페라라대학의 파비오 도나토 교수(Fabio Donato, University of Ferrara, Italy)는 경제위기가 문화예술계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정책과 예술경영 모델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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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의 체질개선
루이스 교수와 파비오 교수는 2008년부터 진행 중인 경기침체가 유럽의 문화예술계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간과하지 않는다. 유럽의 모든 국가가 복지부문 예산을 축소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이 대폭 삭감됐다. 문화예술계는 이를 충당하기 위해 개인기부와 기업 스폰서십을 개발하고자 했으나, 당장 급하지 않은 지출을 줄여야 하는 민간영역 역시 문화예술을 지원하기는 쉽지 않았다. 문화예술 기관은 박스오피스를 비롯한 자체 수입을 늘리기 위해 티켓파워가 보장되는 유명 예술가, 또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래밍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흥미롭고 창의적인 예술적 실험을 줄이고, 젊은 예술가들이 성장할 기회를 박탈했다. 보고서는 지금처럼 엘리트 중심의 선택과 집중, 상업적이고 시장지향적인 문화예술의 양극 성장을 방치할 경우, 주류사회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보급하는 젊은 문화예술계 종사자, 주변부 문화는 도태되어 장기적으로 문화예술은 지금의 규모마저 유지하지 못하고, 공멸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는 지금의 위기가 문화예술계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혁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문화예술은 유럽 국가 내 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했으며, 장애와 약점만 극복한다면, 앞으로도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2011년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ission) 보고서를 기준으로 삼아 두 학자는 시장경제체제 안에서 문화와 예술은 태생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에 대해 거시와 미시 차원의 통합적인 체질 개선이 성공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수정하는 정책과 경영 모델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과 각 국가가 함께 노력한다면, 위기도 극복하고 문화예술계 체질 개선도 성공하리라는 입장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
보고서는 우선 유럽연합이 국경을 넘어서 공동의 가치, 과제, 전략을 공유하며, 권역의 여러 국가를 통섭하는 정책 모델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각 나라의 대표자들이 유럽의회 구성원이다 보니, 종종 유럽 전체의 이익보다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어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또, 국가별 경제 발전과 환경의 차이도 단일 정책을 모든 회원국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공동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공공의 위험인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이미 내부에서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자국 중심적, 행정편의적이라고 비판받아온 유럽연합의 정책결정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개편되고 있고, 개별 회원국가도 유럽연합이 설정한 공동의 정책목표에 맞춰 자국의 현행법과 예산을 조정하는 등의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문화예술계만의 폐쇄적이고 자기참조적인(self-referential) 비전, 타 분야와의 소통 능력이나 결과에 대한 평가 능력 부족, 비효율적이고 근시안적인 경영과 거버넌스 모델을 꼽는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안을 정책제도의 거시적인 차원과 현장 중심의 미시적인 차원으로 구분해서 제안한다. 문화정책 차원에서는 효율적이면서도 참여적인 의사결정 과정으로의 변화, 정책과 기관의 명확한 우선과제 설정과 장기적인 발전전략 수립을 요구한다. 현장 차원에서 문화예술 기관과 종사자에게도 효율적이고도 통섭적인 의사결정 방식이 동일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수반해야 할 노력으로는 다른 분야와의 협력 가속화, 새로운 경영 모델 개발을 위한 혁신과 테크놀로지 도입을 주문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의 생산과 배급이 가속화될 경우, 새로운 문화예술 시장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리라 예상한다. 다양한 분야 간 협업과 국제 협력은 새로운 매니지먼트 모델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두 학자는 보고서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방법을 제안할 수는 없다고 상아탑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면서도 경제위기가 초래한 문화예술계의 부정적인 변화와 긍정적인 기회를 정리하고, 보고서에서 제안한 방법들이 예술경영 및 문화정책 학자와 현장 전문가 간의 더 활발한 토론과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원문 보기 「경제위기와 유럽 문화정책 및 운영 모델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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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민경은 독립기획자로 <단편소설 극장전> <트래블링 홈타운> (Travelling Hometown, 가제), 극단 청년단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현대소설, 이주예술가, 도시와 인간, 아시아 동시대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워릭대학교/암스테르담대학 공연예술 석사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예술경영지원센터,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일했다. weeminmi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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