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 정보를 공유하고 심층적 사고로 접근하는 반성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중차대한 일이지만 이러한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리서치랩과 같은 기관이 부족하다.

지난 8월 19일부터 28일까지 광주에서 ‘2012 아시아 문화 주간’ 행사가 열렸다. 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완공에 앞서 세계 문화예술인간의 문화적 소통과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행사이다. 이 행사의 일환으로 아시아 11개국을 대표하는 창작공간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창작 경향을 공유하고, 각 창작공간들이 추구해온 지역을 위한 공공 예술활동을 소개하는 자리로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 세미나’가 마련되었다.

아시아 미술의 역사적 추이

이번 세미나의 공동의 관심은 역시 아시아 지역에서의 예술의 공공성이 점차적으로 증대되고 중시된다는 이해와 더불어 이 시점에 어떠한 프로젝트를 행해야 하며 또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역 커뮤니티와 지역 공공프로젝트의 발전에 관한 논의’는 예술분야 특히 시각예술이 사회적 의미의 층위를 형성하는 특수성 때문에 야기되는 근본문제와 관련이 깊다. 주지와 같이 서구나 선진국 사회에서 작가라는 존재는 시간의 추이와 함께 발전한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집적되어가는 작가의 역사와 더불어, 후원할만한 작가를 선별하고 지향하는 미술관 이사회의 정책과 프로젝트의 집결∙실행이야말로 작가창작과 함께 중차대한 예술성장의 동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시아의 경우 일본을 제외하고 작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한다는 미술관의 역할과는 무관하게 시장이 개입되어 작가를 양산하고 해체하곤 했다. 이러한 부적절한 현상에 발맞추어 작가들은 정치적 연대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작가들의 지역 클루스터가 도처에 생성되었고 이는 당연히 커뮤니티의 성격을 띌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미술관의 역할부재와 예술의 상업적 오용의 어지러운 상황으로부터 작가들은 대중과 연대해서 사회, 역사, 정치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프로젝트를 여러 형태로 전개시킨 것이 아시아 미술이 서구 미술과 차별되는 20세기 하반기와 21세기 전반기의 역사적 추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로운 시장거래’ - 사회학과 예술의 만남

이번 세미나의 발제자들은 아시아 각국의 미술을 이끄는 주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발제하고 고민하는 주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르완그루파(Ruangrupa)’라는 미술가집단의 디렉터 레자 아피시나(Reza Afisina)의 도시에 대한 인식이다. 레자는 대중을 하층부를 차지하는 다수의 기반으로 바라보지 않을뿐더러 예술을 대상화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대중 다수가 공존하는 도시 자체를 예술적 매체로 바라보고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도시의 사회문제들, 즉 정치, 경제, 문화의 제반 문제점을 예술의 과제로 인식하며 예술화시키는 작업을 했으며 그 주체가 예술가와 함께 교육된 대중일반이었다. 그의 전략은 예술이 ‘모더니티’라는 특수인격체로 고급화되어 신화화되면 될수록 대중으로부터 고립되며 국가수준의 사회활동과 담론구성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아주 긴급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그의 대표적 프로젝트는 사회학과 예술의 만남이었다. 일례로 ‘외로운 시장거래(Lonely Market Transaction)’에서 그는 도시 내에서 중고품이 이동하는 경로를 지도로 만들었다. 어떠한 사회학자도 다루지 않는 중고품의 이동경로를 지도화함으로써 도시소외계층의 생활반경을 형상화해내는 동시에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의 사회에 대한 방법론과 미학적 효과를 동시에 끌어내면서 대중과 도시가 예술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뱅크아트’ - 예술로 도시를 숨쉬게 하다

또 한 사람 이케다 오사무(Ikeda Osamu)의 각고의 노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케다 오사무는 ‘뱅크아트 1929(BankArt1929)’ 디렉터로, 뱅크아트는 요코하마라는 도시의 신생 심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코하마는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쿠로부네, 黑船)’의 출몰과 함께 역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858년 개항하였고 1923년 관동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후 재건되었다가 다시 2차 세계대전의 두 차례 공습으로 파괴되었다. 한마디로 요코하마는 파괴와 재건이라는 운명을 지녔다. 문제는 전쟁의 공습 이후로 세계무역항이라는 이점(利點)-초기 근대 유산의 확보, 금융의 허브, 세계최대의 해군기지 등-덕분에 번영을 구가했는데 2002년부터 차츰 성장동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뱅크아트는 예술로써 도시를 살리려는 프로젝트를 창안했다.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시티(Creative City)’ 프로젝트가 2004년부터 시행된 것이다. 옛 거리를 복원하는데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비어있는 공공 건물을 공적 사업을 행하는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도쿄대학교의 영상, 미디어, 애니메이션 학부를 이곳에 옮기는 한편 요코하마 컨벤션 센터와 레드 브릭 웨어하우스를 재건해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기점으로 활용하였다. 비어있던 공공장소는 작가들의 레지던시 공간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시민들에게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맥주를 마시는 펍과 다양한 문화적 공간, 휴게 공간이 설립되면서 시민들은 ‘도시와 함께 일합시다’라는 구호를 스스로 기꺼운 마음으로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예술과 시민 대중들의 연대의 파장효과는 연간 수익이 8억 엔이라는 결과로 증명된다고 한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기획이 가능했던 것은 이케다의 외로운 고민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문화적 이질감과 계층적 반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시아만의 길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기치로 내세우는 광주, 혹은 한국의 현실은 위에서 바라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요코하마의 중간지대 정도로 인식할 수 있다. 자카르타의 진취적 진보지식계층이 대중을 선도해서 사회학을 통한 새로운 발상의 예술을 선도하는 모델과, 일본 요코하마의 예술과 행정이 기묘한 협력을 구가해서 늙어가는 도시를 젊음의 활력과 풍부한 번영의 장소로 리뉴얼시키는 모델 사이에 우리는 방황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유명한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일찍이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라는 책에서 밝혔듯 국경 없는 경제적 경쟁구조와 다국적 국민들의 이동현상은 공통된 감수성의 소통을 부재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다국간의 문화적 이질감과 계층적 반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시아만의 길을 예술의 공공적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고, 또 그것으로 극복해야만 할 시점에 이르지 않았나 하고 많은 디렉터들이 의견을 함께 했다.

이러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주제와 정보를 공유하고 심층적 사고로 접근하는 반성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물론 중차대한 일이지만 이러한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리서치랩과 같은 기관이 국내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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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필자소개
이진명은 1974년에 태어나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갤러리 아트사이드와 2011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일했으며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동아시아의 제문제의 연원에 대해 19세기 동학이나 태평천국운동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인간이 어째서 아트라는 영역에 골몰해왔는지, 그리고 한국 예술의 향방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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