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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이스탄불, 요하네스버스, 런던, 뭄바이, 뉴욕, 파리, 상파울로. 과연 무엇이 이 도시들을 세계적 문화도시로 만들었을까? 최근 런던 시는 ‘세계도시문화컨퍼런스(World Cities Culture Summit)에 맞춰 도시별 문화정책을 분석하는 ‘세계도시문화보고서(World Cities Culture Report 2012)’를 발표했다. 이는 ‘런던, 문화보고서 (London: A Cultural Audit 2008)’의 후속편으로, 문화에 대한 수요 및 공급을 평가하는 지표들을 비롯하여 세계도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는데 주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 발췌하여 소개한다. 보고서는 3년 주기로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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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시문화의 특징
이번 보고서에는 이전의 ‘런던, 문화보고서 (London: A Cultural Audit 2008)’에 7개의 도시를 추가하여 베를린, 이스탄불, 요하네스버그, 런던, 뭄바이, 뉴욕, 파리, 상파울로, 상하이, 싱가폴, 시드니, 그리고 도쿄가 포함되었다. 이들 도시의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인구규모를 근거로 한 세계경제 구조에서의 입지와 국제적 문화의제를 담보해 낼 수 있는 리더쉽이 그 기준들이다. 리더쉽은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만큼 경제적 위치가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선정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문화예술을 도시경제 성장의 드라이버로 해석하는 견해가 지배적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고서 전반에 걸쳐, 문화가 경제력 증강에 중대한 영향을 주거나 혹은 창의산업이 급속성장하는 경제분야로 자리잡고 있음을 열두개 도시들의 공통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구성면에서는 세계도시문화의 특징, 60개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 분석결과, 아홉 도시에 대한 문화지형 스케치 등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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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초등학교 건물을
레지던스 및 전시장으로 재활용한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별관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 -
약 100년 전의 옛 건물에
마이클 리친(Michael Lee Chin)이
약30만 달러를 기부해
2007년 재탄생한 캐나다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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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세계도시문화의 특징을 역동성(Dynamism), 규모(Scale), 다양성(Diversity)이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스스로 변모해 가면서, 다른 성질의 문화주체들 혹은 산업군들 간에 협력체계를 만들어 가며 도시 자생성을 추구하는 역동성,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과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한 규모를 갖춘 문화시장 및 국경을 초월하는 국제마케팅 인프라, 주류문화 뿐만 아니라 풍부한 비주류 문화영역을 포함하는 그리고 여러 계층의 관객과 시장을 섭렵하는 다양성이 세계도시 문화의 공통적 특징들이다.
이런 세가지 특징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문화정책을 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상 주요 현안은, 계획되고 설계되지 않았지만 주요한 문화적 풍경을 이루고 색다른 도시 경험을 제공하는 클럽, 레코드샵, 카페, 소규모 공연무대 등과 같은 비공식적 문화요소들에 대한 구조적 지원 및 이러한 지원이 교육, 교통, 법률, 이주 및 주택 등과 같은 비문화 분야의 정책과 상호연계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보고서에 선정된 도시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문화정책을 독립적 부문으로 두기 보다는 사회, 경제, 정치관계 전반에 걸쳐 문화적 측면이 고려될 수 있는 체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공통적으로 당면한 정책적 도전과제로는, 전통과 현대화 사이의 적정한 균형지점을 찾는 것,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고유의 지역성을 유지하고 특색을 부각시키는 것, 문화인프라의 확충 및 문화예술 향유기회의 증대이다. 이러한 도전과제들에 응수하기 위해 세계도시들은 두 가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첫번째 방안으로서, 문화의 역할을 도시개발의 동력으로 강조하고 있다. 낡은 건물들을 문화시설지로 리모델링하거나 쇠락해가는 지역을 재생하는 등의 물리적 개발만이 아닌, 와해된 공동체를 회복하거나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는 등의 정서적 재건을 함께 의미한다. 두번째 방안으로는 공공영역과 사적영역 간의 파트너쉽 추구이다. 혼합형 문화경제모델로, 시가 소유하는 건물에서 사기업이 박물관을 운영한다던가 공공기금이 사적으로 운영되는 극장이나 공연을 지원하는 방식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
▲베를린 뮤지엄아일랜드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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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평가지표들이 말해주는 것은
보고서의 60개에 달하는 방대한 문화 평가지표들은 문화유산, 문예, 공연예술, 영화와 게임, 문화예술 관련 인적자원, 문화적 활력과 다양성이라는 여섯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풍부한 문화유산은 단연코 세계도시의 주요한 문화자원이다. 여기서 정의내리는 문화유산은 유적지뿐 아니라 박물관과 갤러리, 공원 등을 포함하는데, 열두 도시 내에는 베를린의 뮤지엄아일랜드와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열아홉개나 존재한다.
인터넷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문예창작에 대한 열의는 세계도시에서 아직 한창이다. 크고 작은 도서관들이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싱가폴의 경우 한화로 약 약 4천 5백억의 예산을 들여 2005년 국립도서관을 완공했다. 숫자로 볼 때, 파리가 가장 공공 도서관이 많고, 그 외 많은 도시들이 200개 이상의 공공도서관을 갖고 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도서관은 유용한 시설이 된다. 그런 면에서 뉴욕과 도쿄 시민들은 1인당 연평균 여덟권의 책을 빌려가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공공도서관뿐 아니라 서점도 문예의 중요한 거점이 된다. 상하이는 3천개가 넘는 서점으로 이 부문을 압도한다. 그밖에 뉴욕, 런던, 상파울로, 요하네스버그가 천개 내외의 서점을 도시 내 보유하고 있다.
제작보다는 소비에 초점을 맞춘 본 보고서에 따르면, 302개의 극장시설에 1,003개의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는 파리의 영화사랑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모든 도시의 공통점은 다양한 범주의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영화제가 도시문화의 주요 요소로 자리잡으면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파리의 경우 연간 190개의 영화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비디오게임은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활발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디오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은 도쿄가 약 천개 이상, 상하이가 600여개, 뭄바이가 300개 정도를 갖추고 있다. 아시아권을 벗어나서는 도시별 50개 미만의 수준으로 편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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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링컨센터
(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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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랑뿐 아니라 공연예술의 소비에서도 파리는 상위를 차지한다. 420개의 극장을 통해 연간 약 2천8백만명의 관객을 유치하는 뉴욕과 더불어, 파리는 353개의 연극무대를 갖추고 있고, 350여개의 라이브 음악공연장에서는 연간 3만회 이상의 공연이 이루어진다. 무용공연 분야에서는 뉴욕이 연간 약 6,300회의 공연으로 1,500회 내외를 유지하는 다른 문화도시들을 월등히 압도한다.
인적자원 및 인재양성 부문은 문화예술 교육구조를 지표로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 교육 분야에 대한 공적자원의 투자 상황을 평가한다. 보고서에 포함된 대부분의 도시들이 문화예술관련 공공 고등교육기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런 교육기관의 운영은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정부가 문화예술에 대해 어느 정도로 정책적 무게를 두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문화예술 관련 분야를 수학하고 있는 학생의 숫자는 도시의 창의적 잠재력을 담보한다. 런던과 상하이가 각각 3만 5 천, 4만 3천명으로 예술 및 디자인 전공학생의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본 보고서의 가장 큰 기여는 비슷한 유형의 보고서들이 깊게 다루지 않았던 비공식적 문화영역의 중요성을 제고하고 공식적 영역과 나란히 평가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는 유기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형성되어지는 문화예술의 풍경은 관주도 혹은 기관 주도로 계획되어 설립된 문화시설이나 사이트들만으로는 평가의 마지막 영역인 ‘활력과 다양성’을 담보해 낼 수 없다는 데 착안하고 있다. 클럽, 디스코, 댄스홀, 레스토랑, 거리축제 등이 지표로 평가되었다. 비공식적 문화영역들이 자아내는 도시의 왁자지껄함은 거주인이나 관광객의 도시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경제적인 효과에도 도움이 된다. 런던의 경우 무려 천오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도시를 활력있게 만드는 것은 비단 매력적인 장소들만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자아내는 창의적 에너지와 혁신적 시도들은 도시에 문화적 경쟁력을 더하는 주요한 자원이다. 도쿄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활발한 이주역사와 고비율의 이주인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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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시문화보고서’의 주요 성과
60개 평가지표의 분석결과 및 사례 도시들의 문화정책에서 드러나는 주안점은 역시 다양한 문화 주체간, 형식간 경계를 허물고 유기적 협력체를 구성하는 데 있다. 공식/비공식 문화영역 간의 조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파트너쉽,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주체들의 공동체, 지역성과 국제성의 균형, 전통과 현대성 간의 연속성 및 상생 등, 혁신과 실험에 무게를 두는 창의도시 정책은 이전에 만나기 힘들었던 분야와 조직들이 융복합하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들이 도출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문화의 경제적 효과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유용한 데이터들을 제공해 주는 본 보고서의 직접적 성과는 사실 다른 데 있다. 보고서의 출간은 열두 도시들의 국제적 네크워크를 통해 문화선진국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노력의 일부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시점으로 마련된, 연례 국제행사가 될 ‘세계도시문화 컨퍼런스’는, 시카고리더지(8월 20일자)가 비판하듯, 선정된 열두 도시를 중심으로 문화예술 버전의 G20을 구상하겠다는 런던의 야심을 드러낸다. 문화가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주요 동력이라면 문화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은 국제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획득하는 주요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로비와 협력관계 구축을 바탕으로 하는 본 보고서와 컨퍼런스의 가장 큰 전략적 성과는 연구 결과 자체보다 문화도시로서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장기적 플랫폼과 ‘세계도시문화’라는 글로벌 브랜드 획득으로 볼 수 있다.
관련 링크
세계문화도시보고서(World Cities Culture Report 2012) 다운로드 및 온라인 플랫폼
관련기사 원문
‘세계문화도시: 12개 이야기(World Cities Culture: a tale of 12 cities)’ (가디언, 2012.8.3)
';런던에서 온 특별한 소식: 세계도시문화보고서 (Something else from London: The World Cities Culture Report)'; (시카고리더지, 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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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최영숙은 여성, 청소년 및 사회소수자 관련 공공문화예술프로그램 큐레이터 및 작가로 참여해 왔으며, 현재는 셀프메이드시티(selfmadecities.net)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기술과 도시의 관계, 젠더소수자의 일상공간 경험을 주제로 런던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도시를 기반으로 한 대안적 문화예술 형식들을 실험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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