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 예술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자 현실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예술가들이 자각해야 할 지점은 ‘커넥팅(connecting)'이며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공연에 유입되더라도 몸의 예술이라는 공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공연이라 함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몸으로 창조하는 예술이다. 과거의 공연, 특히 무용에 대한 규정은 그랬었다. 그런데 ‘융복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오늘날의 공연을 보면 이 규정은 딱히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로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 공연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무의미해 보이고, 기술에 압도당한 몸은 그 존재감이 미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7일(수), 대학로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2년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국제학술세미나 ‘융복합 예술, 뇌를 흔들다: 공연,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디지털기술로 경계를 넘고 있는 공연예술의 현재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자리였다.

오늘날 한국에서 펼쳐지는 융복합 예술의 핵이 무용이듯 이날 세미나의 주요 대상은 무용이었다. 발제자들은 유럽 현대무용에서의 융복합 경향을 설명해 주었고, 필자를 비롯해서 토론자로 참여했던 일본의 무용평론가 타카오 노리코시(Takao Norikoshi)와 후쿠오카 댄스프린지 페스티벌 디렉터 요시코 스웨인(Yoshiko Swain)은 한국과 일본의 융복합 무용공연의 현황에 대해 간략히 논평하였다.

융복합 공연은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비빔밥’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섰던 유럽의 무용평론가 토마스 한(Thomas Hahn)은 1970년대 이후 유럽에서 ‘혁신적’으로 등장했던 일련의 현대무용들에 대해 짚어보며, ‘새로움’을 천착하는 현대무용들이 직면한 오늘날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살리아 사누(Salia Sanou)라는 안무가는 줄타기 선수와 작업을 했다고 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the)는 간간히 미술관에서 인터랙티브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샹탈라 쉬발링가파(Sahntalal Shivalingappa)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안무가는 현대무용과 인도무용을 결합한 작품을 추구하며, 현재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와 함께 를 창작해서 춤, 퍼포먼스, 강의를 융합한 공연을 펼친다고 했다. 또 셰르카위는 일본 만화를 소재로 를 안무했다고 한다. 무용이 없는 무용, 즉 농당스(non-danse)를 추구하는 마기 마랭(Maguy Marin)은 “왜 무용으로 규정된 움직임들만 무용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라고 주장하며, 내놓는 작품마다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경계를 넓히고 영토를 확장해 가는 무용들로 보이지만, 토마스 한은 현대무용의 표현수단이 약화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융합적 경향을 낙관적인 관점에서는 총체예술의 ‘논리적 진화’라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도미니크 롤랑 엥겔레뱅아트센터 대표, 프랑크 뱅뉴메리크(Bains Numerique) 디지털아트축제 디렉터
도미니크 롤랑 엥겔레뱅아트센터 대표, 프랑크 뱅뉴메리크(Bains Numerique) 디지털아트축제 디렉터

▲ 도미니크 롤랑
엥겔레뱅아트센터 대표,
프랑크 뱅뉴메리크(Bains Numerique)
디지털아트축제 디렉터

토마스 한이 유럽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무용가들의 융복합 작업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면, 프랑스 북서부 도시 엥겡레뱅(Enghien les Bains)의 아트센터 디렉터 도미니크 롤랑(Dominique Roland)은 디지털 창작을 전문으로 하는 공적 문화기관인 아트센터(Centre des Arts, 이하 CDA)의 활동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2007년에 설립된 CDA는 예술가, 과학자, 연구자, 전문가들이 새로운 실천을 논의하고 융복합 프로젝트를 추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창작레지던시를 통해 무용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프로젝트 공연을 지원하는데, 이 지원의 범위에는 숙박과 재정은 물론이고 연습 공간, 기술과 장비, 행정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라이브 퍼포먼스, 콘서트, DJ 공연, 영화 콘서트, 도시공간에서의 인스톨레이션 등을 아우르는 복합장르 페스티벌인 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Bains Numeriques)를 연례적으로 열고 있다. 또한, 융복합을 추구하는 시각예술, 씨네콘서트, 무용 작품 등에 투자하고 제작 및 배급까지 책임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융복합 공연에 관심을 둔 세계 각국의 기관, 기업, 학교, 과학자, 예술가들이 네트워킹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플랫폼인 디지털 아트 네트워크(RAN)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롤랑은 발표 말미에 CDA의 지원으로 제작된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무용작품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가 보여준 영상으로 인해 융복합 예술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토로할 정도로 그 수준이 매우 높았는데, 무용가들이 디지털기술을 체득하고 직접 운용했거나 과학자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의지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융복합 공연을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로 ‘비빔밥’처럼 버무린 것, 혹은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는 공연 등으로 표현했다. 오늘날의 융복합 공연을 묘사하는 방식은 각자 달랐지만, 이들의 단서조항은 동일했다. 이들은 미디어든 테크놀로지든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공연에 유입되더라도,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몸의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기술을 작동하는 것도 인간의 몸이며, 예술정신을 구현하는 것도 몸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번 세미나는 제아무리 뇌를 뒤흔드는 융복합 예술일지라도 몸의 예술이라는 공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융복합 예술, 다원화된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방식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청중들의 질문과 여기에 대한 발제자들의 답은 디지털기술로 공연을 창조하는 과정과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자리였다. 몇몇 청중들은 디지털기술이 공연예술에 도입된 배경을 궁금해 했고, 예술전공생들은 융복합 공연에서 테크니션과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토마스 한은 융복합 예술의 등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종교적 전쟁과 경제적 불황을 겪은 후의 현상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융복합 예술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으로, 또 현실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미니크 롤랑은 융복합 공연에서 예술가들이 자각해야 할 지점은 ‘커넥팅(connecting)'이라고 말했다.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다른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의 설명은 『커넥팅(Making is Connecting)』의 저자 데이비드 건틀링(David Gauntlett)이 주장한 미디어 환경에서의 ‘창조하고-연결하고-소통’하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롤랑은 협업을 진행한 과정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최상의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답이 함의하는 것도 결국 공연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즉 공연이라 함은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공감할 수 있는, 생생한 몸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해리 필자소개
최해리는 창무예술원 기획실장, 무용월간지 [몸] 편집장, 아르코예술정보관 객원연구원을 역임했으며, 다년간 여러 대학에서 무용이론 및 예술경영 관련 과목을 강의해왔다. 현재 이화여대 공연예술대학원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춤문화자료원의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댄스웹진 [춤누리]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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