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격려하면서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내 안에 품고 있던 많은 질문을 끄집어 내고, 또 다른 이들과 함께 질문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누구이고, 삶의 여정에서 어디쯤에 있으며, 왜 그걸 하는 지는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적인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은 멋진 일이다.
참석자 l 즈보니미르 도브로비치(Zvonimir Dobrovic) [크로아티아]_ 퀴어 자그렙(Queer Zagreb), 퍼포레이션 페스티벌 디렉터 사모 셀리모빅(Samo Selimovic) [슬로베니아]_ 벙커(Bunker)의 국제 프로그램 책임자 사회 l 정명주_독립기획자

지난 10월 진행된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은 동유럽 특집으로 마련되어 동유럽 지역의 공연예술의 현황과 이슈를 살펴보고 국내 전문가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weekly@예술경영]에서는 지금까지 미지의 지역이었던 동유럽의 발칸반도 공연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전문가와 작은 자리를 마련하였다.

사회자 흔히 통칭하여 ‘발칸 반도’라고들 하는데 사실 발칸 반도의 각 나라마다 특성이 많이 다르다.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가 봤는데, 관객들이 상당히 다르더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발칸반도 국가들의 공연예술계의 경향들, 각 국가에서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지는 지에 대해 논의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모 셀리모빅(이하 사모) 나는 슬로베니아에서 주로 컨템포러리 공연예술에 관여하는 NGO(민간기구)인 벙커(Bunker)에서 일하고 있다. 현대 공연예술작품들을 선보이는 극장은 지역의 현대예술 동향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공간이다. 우리 단체에서는 대략 1년에 150여 회 공연을 개최하는데, 모든 공연이 현대 공연예술작품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연계된 커뮤니티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운영하는 극장은 정부기관 조직이 아니므로 제도권의 극장이 아니며, 우리가 극장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극장을 경영만 하는 셈이다. 극장을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 5년마다 선정위원회에서 심사를 하게 되는데 이미 실행한 프로그램의 성과와 앞으로 시행할 프로그램들의 비전을 보고 다음 5년간 극장을 운영할 것인지의 여부를 공개입찰 방식으로 정하게 된다.

사회자 그럼 경영팀인 셈인가.

사모 그렇다. 그렇지만 언급했다시피 슬로베니아와 발칸 국가들에는 공연장이 없는 단체와 기관들이 많다. 우리는 그러한 단체들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가 운영하는 극장의 제작 공연들은 콘텐츠 면에서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즉, 어떤 작품이 우리 극장에서 공연할 범주에 속하는 않는다고 판단될 때는 그 공연은 올리지 않는다. 여기서 공연하길 희망하는 콘텐츠가 우리 카테고리에 해당한다면 공연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슬로베니아와 발칸반도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정부단체나 비제도권을 위한 서비스에 속하다 보니 제도권과 비교해보면 그리 바람직한 위치에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슬로베니아의 경우가 다른 발칸반도국보다는 다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바니아에서는 실질적으로 공연계에 제도권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자 그렇다면 민간단체만 존재 하는 것인가?

사모 그렇다.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슬로베니아는 이러한 비정부 단체들에 대한 지원이 좀 더 많은 편이다. 물론 여타 발칸반도국과 비교할 때의 이야기이고, 서유럽(Western countries)과 비교하면 오히려 부족한 편이겠지만. 슬로베니아의 공연예술의 일반적인 현황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러한 비제도권적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레퍼토리 극장들과 제작 현황 역시 이러한 예술적 상황과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지원금이 제도권의 예술 쪽으로 흘러가고, 모두가 공적 자금 지원을 받는다. 대다수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슬로베니아도 여전히 예술계가 공적 지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여타 발칸반도국과 비교할 때 비정부 단체들에 대한 지원이 좀 더 많은 편이다. 하지만 대다수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슬로베니아도 여전히 예술계가 공적 지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_사모 셀리모빅

사회자 그렇다면 그런 제도권의 극장에서는 어떠한 작품들을 주로 하는지?

사모 공연장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은 오페라가 공연된다. 슬로베니아 인구는 20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국립오페라단이 2개, 국립극장도 2개나 있다 더욱이 류브리아나나 마린포트와 같이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에는 기본적으로 시립극장이 하나씩 있다. 모든 국립극장이나 기관들에서 고전 연극이나 오페라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다. 작지만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시도를 하기는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작품들은 민간부문(independent sector)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자 이야기를 전환해서, 크로아티아 사정은 어떤지 듣고 싶다. 리에카(Rijeka) 스몰신 시어터 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는데 기자회견 당시 관객들과 대화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완벽하게 이해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에는 현대연극이 매우 발전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페스티벌을 비롯해, 크로아티아의 현대 예술 경향은 어떠한가?

즈보니미르 도브로비치(이하 즈보니미르) 발칸반도 전체가 관객개발이 잘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현대연극과 무용계에 동향을 주시하면서 연계해 온 역사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크로아티아 관객들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발칸의 관객들은 세계 연극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향들을 꾸준히 접해왔다. 또 전통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연극이 매우 존중 받고 있는 예술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도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영화도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연극이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예의 없는 관객을 만날 때도 있다. 공연 도중에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나 공연을 정말 잘 따라오는, 매우 헌신적인 관객들도 있다. 상당한 지식을 갖춘 관객들이다. 그런 면에서 크로아티아의 현대연극은 양호한 상태에 있다. 단, 시스템이 어렵다 보니 상황이 어렵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공립극장,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에 지원 등이 집중되어 있는 현상을 말한다.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지원이나 공간이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 서서히 바뀌고 있는 중이지만 주정부나 문화부의 사고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재원을 찾아내야만 기회가 열린다. 크로아티아의 문화부 장관이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보면서 창의성을 발휘할 공연장이 따로 필요하겠다고 보아주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공연들은 문화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고,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흔히 통칭하여 ‘발칸 반도’라고들 하는데 사실 발칸 반도의 각 나라마다 특성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가 봤는데, 관객들의 특징이 상당히 다른 것을 느꼈다. _정명주

사회자 크로아티아의 페스티벌 사정은 어떠한가?

즈보니미르 크로아티아의 대형 페스티벌들은 전통이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유럽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비뇽 축제나 대형 영화제들과 거의 동시에 생겨났다. 난국을 극복하고 국가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당시 유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크로아티아의 첫 번째 페스티벌인 ‘두브로브니크 여름 페스티벌’은 아마 아비뇽 페스티벌보다 2년 정도 늦게 시작했을 것 같다. 리에카와 가까운 풀라에도 아주 오래된 유명한 영화제가 있다. 50~70년대에 생겨난 이러한 축제들은 시대상을 반영한 현상으로, 특히 유럽의 맥락과 강한 연관이 있는 예술가들을 소개했다. 나중에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되고 크로아티아가 독립국가가 되면서, 이런 축제들은 정부로 인하여 점점 제도화되었고, 국가정체성과 민족적인 사안들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국제적인 협업관계가 깨어지고 점점 민족주의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 되어갔다. 문화가 그런 목적으로 이용된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회자 일종의 포스트 커뮤니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나?

즈보니미르 그렇다. 그런 축제들은 아직도 제대로 회복이 되지 못했다. 꽤 강한 전통을 지니고 있고 다른 국제 페스티벌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데도 뭘 하는 지 들어본 적도 없고 사람들도 잘 모른다.

사회자 슬로베니아는 어떤가?

사모 기본적으로 대체로 유사한 상황이라고 본다. 방금 얘기한 내용을 전반적인 상황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을 것이다. 60~70년대가 예술계로 볼 때 연극계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형태의 예술에 대한 상당한 투자가 있었고, 글로벌 상황과 나라의 입지가 맞물려 최선의 조건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페스티벌의 경우 참신함을 다소 잃어가고 있다고 얘기했었는데, 슬로베니아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일부 공연장에서 각종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보스트니코포 스레차니에(Borstnik gathering)와 같은 연극제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세계적인 행사는 아니라도 지역행사로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자 이전에 발칸 국가들은 동유럽이나 중앙유럽 보다는 서유럽과 직접 협력 관계를 이루며 작업해왔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현재는 발칸국가들간의 협업이나 공동제작은 어떠한가?

즈보니미르 지금은 힘을 회복하는 단계이다. 사실 2년 전부터야 겨우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시작되었고, 우리 단체와 같은 소규모 민간단체들이 주도해서 하는 수준이다. 우리는 소규모 민간조직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발칸과의 교류를 열어가기 시작한 민간부문 문화단체로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현재는 발칸국가들간의 협업이나 공동제작이 힘을 회복하는 단계이다. 2년 전부터 겨우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시작되었고, 우리 단체와 같은 소규모 민간단체들이 주도해서 하고 있다. _즈보니미르 도브로비치

사모 90년대는 발칸반도 사람들에게 20세기 최악의 시기였다. 일반적 콘텐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콘텐츠에 있어서 말이다. 예를 들면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이후에는, 국제적인 협업을 논할 경우 발칸 지역을 벗어나 멀리 서유럽과 논의를 했다. 대부분의 발칸지역 국가들이 그런 식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서유럽과 그들의 예술을 통해 내부의 전문적인 발전을 꾀했고 발칸 국가들 사이의 협업은 없었는데 이는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즈보니미르 크로아티아에는 문화부가 신설되었는데 문화부가 생기기 전에는 발칸에 있는 예술가들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발칸’이란 용어조차 사용을 꺼릴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변하고 있다.

사회자 발칸에는 공통적인 특징, 유사한 특징들이 많이 있는데, 그럼 반대로 독자적인 현상들은 무엇인가? 다른 발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슬로베니아를 두드러지게 하는 점들은 무엇인가?

사모 우선 예술가들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 슬로베니아는 과거 발칸의 어떤 국가보다도 예술에 관한 한 구조적으로 많은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로아티아의 문화부는 예술부분을 지원하려고 하지만, 슬로베니아 정부는 이제 그렇지 않다. 사실 슬로베니아는 문화부를 1년 전에 없애버렸다. 민간 부문에서 매우 심하게 반대를 했었지만 우리에게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즈보니미르 크로아티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발칸의 여타 국가에 비하면 월등히 좋은 입장이다. 특히 재정적으로 그렇다, 아직 다들 불만이 많긴 하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과 자신들의 틀을 바꾸려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데 충분한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크로아티아에서 나타난 움직임들이 바로 오늘 날 결실을 맺었다고 본다. 크로아티아에는 정치, 사회, 예술적으로 주변에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동시대적인 사안에 반응하면서 공감대를 잘 만들어 낸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관객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관객개발은 수적으로 많이 저조한 실정이다. 흔히 현대 무용 같은 경우는 실험적인 성격 때문에 관객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실험적인 작품을 보러 올 사람이 수백 명도 안 되는 실정이다. 그래도 크로아티아의 경우는 사정이 좀 나아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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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기존의 텍스트 기반 예술을 말고 컨템퍼러리 예술에 대해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제작비용을 마련하고 운영하는가?

사모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시스템 상으로 정부 지원에 의존한다. 여러 수입원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공공자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큰 몫을 차지하는데, 각 도시마다 자체 제작비 예산을 가지고 있다 민간 부문의 경우, 기관화 되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속이 더 어렵다. 그래서 많은 무용수들이 안무가인 동시에 자기들이 만든 소규모 NGO 단체의 장을 맡고 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치려면 지원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 제작을 위해서 스스로 조직을 만드는 일이 예술가들에게는 일상적이다. 그런데 이는 파편화를 야기한다. 과거 15-20년간에 걸쳐 엄청난 양의 작품이 제작되었지만 다들 작은 작품-솔로 공연이라던가-이다. 대략 8,000유로화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 공연들인데 아마 계속하기 어려운 공연들이다. 기본적인 비용도 충당하기 어려우니 초연을 하고 나서 이름이 좀 알려져도 재공연이 불가능 하다. 그런 공연이 정말 많았다. 그러니까 보다 장기적으로 자금조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측에서도 그런 방향을 원했고 그래서 1년 지원, 3년 지원 이렇게 나누어서 지원했었는데 재정위기가 닥치면서 자금 지원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 이러한 공공부문의 자금 공급원으로 부족하여서 주로 외국기관으로부터 펀드를 얻는 다른 방법들이 있지만 발칸반도 국가 전체를 볼 때 이것이 예산 지원의 일부분을 대변하는 상황이다.

사회자 예를 들면 축제를 하는데 공공자금이나 주정부의 자금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 자체 수익으로는 어느 정도가 마련되는지도 궁금하다. 그 비율도 말해줄 수 있는지?

즈보니미르 우리 경우는 다양한 지원처를 확보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조직이 문화만을 다루는 곳은 아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우리가 추진하는 예술 프로젝트는 문화, 교육, 정치와 미디어와 같은 여러 부문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처가 여러 군데가 된다. 그것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저희가 페스티벌만 고집했다면 실패했을 것 같다. 축제예산을 두어 군데의 지원처에 의존해서 시작하면, 나중에 지원이 끊기거나 줄어들면서 중단할 수 밖에 없는 사태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공연예술 관련 도서출판사업도 하면서 안정성을 찾고 있다. 공공지원으로 전체 예산의 25-30%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대형 국제프로젝트나, 해외에서 제작하는 사업을 통해 현지에서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많지 않지만 티켓판매와 서적 수입도 대체로 10%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예술가들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 적어도 창작조건 면에서 작업을 끝낼 수 있고 선보이는 기회를 갖는 것이지. 우리가 노력하는 건 국제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진 사회자 컨템포러리 작품들 중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뭔가 상기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가?

사모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역사를 보면, 2년마다 유럽에서 대형 스캔들이 한 건씩 크게 터졌었는데, 특정 예술 행위들이 다수 대중의 동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내용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일반 대중의 견해와 충돌을 할 때에 비로소 그런 점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연극작품이나 미술작품을 보아도 ‘인터벤션(개입/간섭)’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이 항상 있어왔다. 음악, 공연예술, 시각예술 각 부문에서 모든 예술 포럼에 정치적인 선언이 있다. 아마 이런 점은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예술가들이 초기 해결책 마련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에는NSK(neue Slowenische Kunst)라는 정치적 예술 콜렉티브가 있는데 당시 국가안전에 총체적인 위협이 되는 단체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펑크 뮤직이 그렇다. 슬로베니아에서 펑크 뮤직은 예술사에 있어서 확고한 주류로 자리잡았다.

즈보니미르 우리는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진정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속상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사람들을 못살게 하는지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에는 불평등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문제를 내놓고 말하려 한다. 우리 모두, 항상 본인의 방식으로 방어하려 들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볼드윈이 쓴 문장 중, “최고의 배우가 지닌 애국심은 그의 조국을 비판하는 것이다. 당신의 조국과 사회를 사랑하는 길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이 그저 좋다고만 한다면 그건 애국심이 아니다. 나는 그의 말을 항상 기억한다.

그리고 비판과 관련해서 내가 잘 사용하는 좋은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다른 나라에 공연을 보러 갈 때 동료들한테 우리 페스티벌에 대한 얘기를 해본다. 다들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것이 흥미롭고 어떤 것이 재미없는지 이야기해준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믿고 그 의견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지만 크로아티아에서는 페스티벌 등 행사를 준비할 때 다들 기분이 좋질 않았다. 문화부에서 누가 우리 행사를 보러 올 지 미리 예견하고 판을 다 짜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는 역할이지, 매일 예술을 대하는 전문인들이 아니니까.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 스튜디오에 직접 찾아가는 사람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는 사람들,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 동료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 사람들이 훨씬 중요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도록 허락해 줘야 한다.

사모 내가 보기에 발칸의 큰 문제는 과거를 바라보는 데 있어 비판적인 시각을 갖지 않고 서유럽을 향한 시선이 예술계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자 말하자면 일종의 서유럽중심적 사고를 얘기하는 것인가?

사모 그렇다, 슬로베니아와 보스니아는 매우 유럽적인 국가이지만, 초점은 서유럽에 맞춰져 있다. 또 다른 프랑스, 또 다른 독일이 되고 싶어 한다. 바깥 세계와 교감하는 데는 다들 자기만의 독자적인 방식이 있다고 보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서유럽에 초점을 맞추는 데 너무 치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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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일을 시작할 때 비전이 무엇이었나? 왜 시작했고,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지향하고 있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즈보니미르 처음 축제를 시작했을 때는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예술과 문화를, 공연예술을 하고 싶었다. 살면서 할 수 있는 이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알겠지만 예술 관련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문제는 본질적으로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방식에 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서로 격려하면서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내 안에 품고 있던 많은 질문을 끄집어 내고, 또 다른 이들과 함께 질문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고, 삶의 여정에서 어디쯤에 있으며, 왜 그걸 하는 지는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적인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은 멋진 일이다. 때로 내가 스펀지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작업을 하거나 리서치를 하고 있을 때, 그 에너지와 지식을 다 흡수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나는 꽤 낙관적이다. 특히 크로아티아 상황은 내일이면 더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재능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많고, 또, 예술, 연극, 무용, 공연예술을 아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정치, 경제적인 상황은 늘 어려운 문제지만, 돈이 없어서 예술가를 지원 못하는 경우를 겪은 적은 없었다. 다행히도 돈이 킹콩 같은 괴물이 된 적은 없다, 지난 10년간은. 내가 예술가와 작업하는 것은 작업을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나름의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발칸에서는 언제나 내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일은 더 나아질 테니까. (웃음)

사회자 장시간의 말씀 감사한다. 그럼,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다시 만날 땐 더 나아진 내일을 맞이하였으면 좋겠다.
참석자 소개

정명주 필자소개
정명주는 런던대학 골드스미스콜리지 예술경영 석사를 마쳤다. 제1회 베세토연극제, 세계연극제97 서울-경기, 제1회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축제경영을 한 바 있으며, 서울예술단 제작 프로듀서로 일했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면서 프리랜서로 연극 및 뮤지컬 공연기획을 하고 있고, 번역가 및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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