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이자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고 있는 이홍이는 언젠가부터 연극 현장, 특히 일본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히라타 오리자, 타다 준노스케, 오카다 도시키 등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및 연출들과 번역가, 통역가, 드라마투르그로서 활발히 협업하고 있다. 특히 2015년에는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의 화제작을 무대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불문학 전공자에서 일본 연극 전문 번역, 드라마투르그가 되기까지 그 의외의 여정에 대해 들어 보았다.
오늘 인터뷰에선 이홍이 선생님께서 공연예술계에 몸담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듣고자 해요. 특히 일본의 연극을 번역하여 소개하거나, 한일 공동 제작 작업에서 통역가 겸 드라마투르그로 많이 활동하고 있는데, 일본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원래 전공은 불문학인데, 일본에 있는 대학의 불문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어요. 사실 일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교환학생을 일본으로 간 시점부터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일본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나라보다 유럽 문화를 더 빠르게 많이 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대학생일 때 ‘태양극단’ 등이 자주 방한하여 공연했기 때문에 일본의 가부키 같은 전통예술을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거든요. 일본 전통 예능을 변형한 작품도 많았고요. 독특하게도 불문학 수업 때 일본의 전통 예술에 대해 배울 수 있었죠. 일본에 갔을 때도 처음엔 고전극 위주로 관람하다가, 불문과 교수님이 추천하신 현대 연극도 보게 되었는데, 첫 작품이 히라타 오리자의 것이었어요.
공연 보는 건 그 이전부터 좋아하셨던 건가요? 어릴 때부터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많이 보여 주셨죠. 특히 고등학교 때는 <캣츠>, <그리스>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미국 뮤지컬도 많이 봤고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처음에는 극작에 관심이 생겼어요. 다만 어디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죠. 단순히 문학을 전공하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불문과에 진학한 거고, 희곡 수업을 골라 들었어요.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아, 나는 못 쓰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죠. 학부를 졸업하고 공연예술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꽤 용기를 냈던 거였어요. 실기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 이론을 공부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대학원에 진학하신 걸 보니, 어떤 식으로든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네. 하지만 그때는 연구만 생각했지, 제작에 참여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일본에 다녀온 경험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죠.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정적인 계기는 성기웅 연출가와의 만남이에요. 연출론 수업을 듣고 있던 때였는데, 당시 대학원생 중에 일본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저뿐이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이미 현장에서 일본 연극계와 교류하고 있던 성기웅 연출을 소개해 주셨죠. 그 뒤로 2008년에 일본의 타다 준노스케라는 연출가가 한국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성기웅 연출이 내게 그 작업의 통역을 부탁했어요. 그것이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한 첫 경험이에요.
그 뒤로는 쭉 창작에 참여하고 계시잖아요. 작업을 지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여쭤 보고 싶어요. 아마도 처음 함께했던 팀과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2008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로미오와 줄리엣> 팀은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사이가 무척 좋다고 대학로에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그 팀과 재공연을 하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레 다시 참여하게 됐죠. 그 무렵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가게 됐는데, 타다 준노스케 연출가와 인연이 이어져서 그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거의 동행했고, 그의 일본 공연도 모두 관람했어요. 연출가의 양국 작업을 다 살펴본 것이 저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저를 신뢰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래도 연출 통역은 신뢰가 중요하니까요.
▲ 안드로이드 연극 <사요나라>(2012) ⓒ세이넨단
번역만큼이나 드라마투르그 작업도 많이 하시는데요. 드라마투르그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그건 제가 적극적으로 얻어 낸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번역을 참 좋아하는데, 드라마투르그라는 이름을 처음 붙여 준 것도 성기웅 연출이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의 대사를 모두 해체해서 원래 한 인물의 것이었던 대사를 다른 배우들이 모두 나눠서 했던 작품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재공연할 때, 어떻게 무대에 다시 올려야 할지 제작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다행히도 제가 그때 각각의 배우들이 어떤 대사를 말했는지 모두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이 재공연하는 데 없어선 안 될 자료가 되었죠. 그걸 보고 성기웅 연출이 이 정도 작업을 해 준 사람이라면 드라마투르그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처음 크레디트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의 대사를 모두 해체해서 원래 한 인물의 것이었던 대사를 다른 배우들이 모두 나눠서 했던 작품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재공연할 때, 어떻게 무대에 다시 올려야 할지 제작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다행히도 제가 그때 각각의 배우들이 어떤 대사를 말했는지 모두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이 재공연하는 데 없어선 안 될 자료가 되었죠.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연출의 혼잣말 하나하나를 전부 통역했죠. 보통은 필요한 부분만 걸러서 통역한다고 하는데, 제가 모든 말을 다 통역하니까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고, 배우분들께서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처음 작업을 했을 때, 실기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작업 환경이 어색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적응해 나가셨어요?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연출의 혼잣말 하나하나를 전부 통역했죠. 보통은 필요한 부분만 걸러서 통역한다고 하는데, 제가 모든 말을 다 통역하니까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고, 배우분들께서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연출 통역을 하게 되면 조명이나 음향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공부를 조금 했어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프로덕션 내에서 ‘드라마투르그’는 꽤 낯선 포지션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럴 때 어떻게 자기 역할을 규정하고, 자리를 찾아 나가셨나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PD나 기획자는 저를 조연출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면 내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어려움이 있었죠.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을 겪는데 특히 큰 프로덕션에선 통역자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통역자를 같이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스태프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외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매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어려움도 있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저 같은 성격에는 힘이 들기도 해요.
큰 프로덕션에선 통역자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통역자를 같이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스태프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외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매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어려움도 있어요.
▲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2015)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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