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사람들’은 예술경영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미 있는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예술경영학회, 문화다움,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8인의 예술경영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 예술 현장의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여섯 번째 <예술경영 사람들>에서 만난 사람은 한국의 예술 축제를 대표하는 두 명의 여전사다. 바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오성화 대표와 ‘변방연극제’의 전 예술감독인 임인자 대표가 그 주인공인데, 두 축제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두 사람과의 인터뷰에서도 각자의 색깔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1998년 ‘독립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래 홍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분야의 실험적 시도들을 소개해 온 축제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하면 자연스럽게 홍대를 떠올렸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놀랍게도, 2015년부터 이 축제의 둥지는 상암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이전되었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프린지에 13년간 몸담아 온 오성화 대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한 ‘변방연극제’의 임인자 전 예술감독 역시 2010년 공연계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어 이후 5년간 쉼 없이 달려왔던 사람으로, 이제 ‘변방연극제’(이하 변방)를 떠나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간 끊임없이 도발적이고 주목받는 시도를 해 온 그녀의 새로운 행보가 궁금했다.


대중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변방연극제’를 알고자 할 때 두 축제의 어떠한 면에 중심을 두고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 부탁한다.
오성화 : 이 대담의 제목을 짓는다고 했을 때 ‘프린지’를 소개하는 함축적인 말로 “‘주체’로서의 프린지”라는 어구를 보냈다. ‘주체’라는 키워드는 ‘프린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98년 ‘프린지’가 ‘독립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할 당시에는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이에 프린지는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처럼 지금의 ‘프린지’나 예술가들 역시 “예술가가 아니라 인간을 먼저 내세워, 인간으로서 주체가 되는 것이 ‘프린지’의 정신이다”라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다시 말해 ‘프린지’가 말하는 키워드는 바로 ‘주체’인 것이다.
임인자 : ‘변방연극제’의 ‘변방’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오랫동안 이어 왔다. “‘문화’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을 해나가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가 문화예술경영을 통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방’은 이 생각이 바탕이 된 것으로,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은 작품 안의 미학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최전방에 서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변방연극제, 프린지 모두 ‘주변’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각 행사가 가진 ‘주변부’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어떤 의미를 담으려 했는지, 또 주변과 중심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성화 : 주변과 중심은 상대적이다. 개인차와 그 개인이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주변과 중심은 언제나 뒤바뀔 수 있다. 그럴 수 있어야 건강한 것이다. 한국에는 주변에 에너지가 더 많고 변수를 더 많이 포용해 준다. 그렇기에 진정성, 본질 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있을 수밖에 없고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 또한 주변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린지’ 무대에 오르는 공연들은 선정 과정이 따로 없고 자유 참가 방식이다. 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하고자 하는 것을 진정성 있게 하면 어떤 작품이든 대중과 만날 기회를 보장한다. 또한 권력 자본, 동료의 시선, 평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게 한다. 결국 ‘프린지’는 표현이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축제이고 여기서 자유는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뜻한다.
‘프린지’ 안에는 약속이 있다. 첫째,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 둘째, 예술가가 축제를 통해 발견하고 얻은 성과물을 사유화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 달라, 마지막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동료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동료의 고통과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말라, 이렇게 세 가지 원칙이다.


연희프로젝트 소용대 풍물야인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5

▲ 연희프로젝트 소용대 풍물야인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5

임인자 : 연극 공부를 할 때 서구의 연극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오는 과정에서 연극계의 주류가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민과 질문보다는 그것의 적용에 초점을 맞추어왔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러한 관습에 거부감이 생겼다. ‘변방’은 연극의 무대적 관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연극을 만드는 방식, 연극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무대에 재현되는 방식은 어떻게 고정화되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고민과 질문이 주변이 해야 하는 질문들이고 연극이 동시대를 바라보고 대면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중심’과 ‘최전방으로서의 변방’은 이쪽과 저쪽이라는 식의 이분법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변방’은 억압된 곳을 주목한다.
전에는 중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 질서와 권력의 구조가 중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게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고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일종의 자기방어인데 중심을 인정하면 나 자신이 스스로 무너질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심과 주변이 언제든 접목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못된 권력이 자신을 중심화하기 위해서 수단화하는 것들에 대해 재질문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요즘 예술 분야 공적 지원 관련 이슈가 뜨겁다. 예술과 공적 지원의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임인자 : ‘변방’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지키는 순수창작지원금을 받고 진행했었다. 하지만 최근 사회가 변화하면서 공적 지원 기관이 예술에 개입하는 모습, 예컨대 특정한 이슈는 공적 지원 자금을 통해 이야기될 수 없다는 논란에 주목하게 되어 2015년에는 공적 지원을 받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성소수자에 관련된 연극을 만들었다. 이 연극에는 성소수자들이 직접 참여하였는데 기획자로서 이들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고 그들의 정치적, 미학적 주장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원금을 통해 독려하는 것보다 훨씬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공적 지원 자금을 끊고 크라우드 펀딩을 했던 것이다.


숙자이야기_평택기지촌할머니 @서울변방연극제 2013 사진_최성욱

▲ 숙자이야기_평택기지촌할머니 ⓒ서울변방연극제 2013(사진_최성욱)

예술 분야 전체로 논의를 확대할 때 공적 지원이라는 지원 형태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임인자 : 예술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사회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는 다른 것이다.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역할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술은 사회의 장식이 아니다. 예술은 사회의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질문하는 장이 필요하고 이 장은 공적, 사적 지원을 통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공적 지원과 사적 지원이 이분법으로 나뉘어 논의되면 안 된다고 본다. 예술은 경제학적인 측면으로 볼 때 생산의 방식에서 자본주의 사회 내의 유약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지원 형식이나 지원금으로 예술의 정신을 흔들면 안 된다. 건강한 지원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그것이 공적 지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오성화 : 기본적으로 예술에 지원되는 공적 자금, 간섭하지 않는 지원금 제도는 계속 많아져야 하고 예술계는 이를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길들여지는 창작자이다. 예술가는 수많은 경쟁 시스템에 놓여 있다. 극장 베이스 지원금, 작품 제작비 지원 등 말이다. 그중 재단에서 예술가를 호명하는 방식의 지원금이 있는데 예술가들은 이 호명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호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예술 작업의 근간을 흔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계에 필요한 공적 자금이 무엇이고 어떤 성격이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이 근간은 우리 사회 안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인가를 근거로 나올 것이다.
공적 자금은 잘 설계되고 필요한 만큼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경쟁시스템으로 만들어 둔 공적 지원금을 예술가들이 당당하게 거부하거나 재설계하고 또한 동료를 죽이지 않고 받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프리마베라 삼바 뮤직 페스타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5

▲ 프리마베라 삼바 뮤직 페스타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5

(오성화 대표에게) ‘프린지’에서는 대표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과 형식의 작품이 오를 때도 있을 것이다. 문화기획자로서 중립적 위치, 객관성을 지켜야 하는 ‘프린지’의 특성상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조율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었는가? 또한 여성문화기획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줬으면 한다.
오성화 : 한국 문화판에 여성 대장이 별로 없다. 여성이기 때문에 ‘쿼터제’라는 제도 덕에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많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조율자의 위치가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간의 많은 갈등을 통해, ‘일은 나 혼자 진행했을 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라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포용성이 생겼는데, 조율자의 위치에 있을 때 이를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여성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사무실에서는 남성적인 유형으로 (웃음), 직설적으로 혼내거나 잘못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필요한 질문을 적나라하게 던지기도 한다. 사실 여성 남성의 구분보다는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임인자 전 예술감독에게) 예전 인터뷰에서 예술가들과의 작업을 위해서는 예술 언어, 경영 언어 등의 다중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예술가들과 작업을 할 때 멀티플한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임인자 : ‘변방’에서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장소들을 다니면서 많은 공공 기관과 사적 영역에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때 ‘이것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설득하는 과정에 기획자가 나서야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중언어를 말한 것이다. 즉, 타 영역의 언어를 구사하는 방식에 적응하는 것이 아닌, 그 언어와의 저항 관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언어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식을 찾기 위해 나온 것이 ‘다중언어’이다.


한종선그림전 @서울변방연극제 2015 사진_박민석

▲ 한종선그림전 ⓒ서울변방연극제 2015(사진_박민석)

변방이나 주변부는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예술 구조이다. 두 사람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행복한가? (웃음)
오성화 : 짜릿하다. 무언가를 기획할 때 처음에는 모든 게 흐릿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구체화되고 현장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을 때 말이다. 또한 서로를 존중하면서 합의를 통해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결과물은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 또한 ‘프린지’를 하면서 형식적인 협동조합이 아니라 내부적 협동조합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고 이것을 일상과 연결해서 살아가고 있다.
임인자 : 연극 자체가 너무 좋다. 늘 고정된 생각으로부터 달리 생각할 수 있게 해 주고 달리 감각할 수 있게 해 주며 예술감독으로서 좋은 예술가를 만나서 그들의 작품을 관객들과 나누기 위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행복하다.
문화예술은 생활양식이면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예술가들의 창작 방식이다. 또한 무대에 올라온 질문들을 보면서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가 기획자의 고민이고 그 시간은 정말 값지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담기에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그러다 보니 최근의 이슈들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weekly@예술경영》에 임인자 전 예술감독을 인터뷰한 글이 있어 이곳에 링크를 덧붙인다. <예술은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또한, 오성화 대표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인포그래픽이 있어 이것도 소개한다. ≪스트리트H≫에 소개된 오성화 대표 인포그래픽



강윤주 필자소개
강윤주는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월간지 《샘이깊은물》 기자, KBS, SBS 방송작가를 거쳐 독일로 유학을 떠나 예술사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뒤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생활을 하다가 문화예술경영학과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생활예술 및 문화예술교육, 창조적 장소만들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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