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이경성cut 약 력//·중앙대학교 연극학과 학사/·영국 센트럴 스피치 & 드라마 스쿨 석사/·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지원 작가/·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 2기 선정//연 출//·2008  <The Dream of Sancho>/·2009  <움직이는 전시회>/·2010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1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 <24시-밤의 제전>/·2013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연극의 연습-인물편> <틈>/·2014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13;&#10;<25시-나의 시대에 고함>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2015  <SHORT Films> <대학로 쩜>//수 상//·2009 춘천마임축제 도깨비 어워드/·2010 제47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2014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

VaQi(바키)는 ‘Veritas, art, Question, imagination’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이름이다. 연출가 이경성은 2007년 이태원의 한 옥탑방에서 극단 VaQi를 시작했다. 올해로 벌써 9년째가 되어 간다. 극장의 블랙박스뿐만 아니라, 길거리, 미술관, 가정집을 무대로 삼으면서, 다양한 예술 실험을 작품 안으로 들여오고 있다. 연극 형식이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만 담기지 않는 것처럼, 내용도 일상적인 공간, 바로 실제 우리 사회 속에서 가져오는 것들이다. 기존의 텍스트에 의존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 과정은 길고 더디다. 그리고 리서치, 토론, 발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경성은 이를 기획하고, 구성하고, 연출한다. 그에게 연극은 세상 구석구석을 굴러다니면서 길을 내는 것이다.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까지 지도를 그려온 과정을 따라가 보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셨지요? 연극 만드는 것을 평생 업으로 여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언제쯤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연극영화학과에 지원할 때는 영화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화 전공을 하면, 배우들과 수업을 같이 안 듣더라고요. 그래서 배우와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연극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학교 다니면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어요. 구체적으로 연극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02년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2주 동안 아비뇽에 머물렀는데, 마을 전체에 축제와 삶이 뒤섞여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그 장소에서 연극을 보고 와인 한잔 하면서 방금 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연극을 통해서 삶을 엮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구나, 이 일이 진지하게 업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겠다 생각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요.


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그 장소에서 연극을 보고 와인 한잔 하면서 방금 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연극을 통해서 삶을 엮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구나, 이 일이 진지하게 업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겠다 생각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요.



연출가의 길을 가는 데 학교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희곡을 많이 읽고, 동료들과 연극 만드는 작업을 함께하는 등 꽉 찬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죠. 이 과정에서 연극적인 기술이나 프로덕션을 꾸려 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고, 앞으로 작업할 배우들도 빨리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쉬운 부분은 연출 전공자로서, 기술적인 측면과 인문학적인 맥락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점이 녹록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연출가들 중,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하신 분들도 있죠.


졸업 후에 영국 유학을 다녀오셨잖아요. 그곳에서의 교육은 어떻게 달랐나요? 유학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영국 유학 중에는 퍼포먼스 스터디를 공부했어요.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의 선생님은 학생을 평가하는 게 아니고, 계속 고민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 주는 존재였어요. 더불어 저는 이론과 실제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때 구체적인 실천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영국에서는 두 분야가 만나서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느냐에 집중했어요. 예술을 바라볼 때 필요한 태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꼭 유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예술가에게는 유학 자체보다도 다른 맥락의 문화권에서 살아 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첫 연출을 했던 작업으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나갔다고 들었어요. 어떤 방식으로 기회를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만든 작품은 『돈키호테』를 각색한 <산초의 꿈(The Dream of Sancho)>인데요. 2008년 졸업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문학성이 강한 드라마에 의존하지 않고, 미술과 연극이 섞인 형식에 대해 관심이 있었거든요. 폐건물에 프로젝션을 쏘고 배우의 움직임을 많이 넣어, 시각적으로 강렬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 무렵이 모두가 졸업을 할 때여서, 우리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졸업 공연하고 나서 변방연극제, 이어서 춘천마임축제에 나가게 되었죠. 하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연결 고리들이 생겨났어요. 그러고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우선 사진 자료만 들고 무작정 영국으로 갔어요. 사실 이 축제에는 야외 공연이 없거든요. 공연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요. 저희가 갔을 때, “야외 공연을 가지고 온 한국의 용감한 극단”이라고 신문에도 나고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0)

▲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0)


처음 작품을 만들 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은 좀 편해진 지점이 있나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연극은 싫어’ 같은 반작용으로 시작했어요. 2011년까지는 좌충우돌하면서 이것저것 다 해 본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연극의 온도가 무엇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죠. 지금은 어느 정도 연극적인 철학을 찾았고, 이것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출가를 지지해 준 극단의 힘도 컸을 것 같습니다. 극단 안에서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는 어떤가요?
극단 작업이 없을 때, 극단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연출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조건 하기보다는, 왜 이 이야기가 필요하고 시도해 보고 싶은지 공유하는 과정이 긴 편입니다. 모두가 작품의 방향에 동의해야 구체적인 미래가 생기니까요.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르치거나, 글을 쓰거나 각자의 일을 합니다. 젊은 극단이 연극만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니까요. 또한, 저는 1년 내내 작업을 한다고 해서, 그 과정이 바로 좋은 작품으로 이어질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작업을 하는 시간만큼,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출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조건 하기보다는, 왜 이 이야기가 필요하고 시도해 보고 싶은지 공유하는 과정이 긴 편입니다. 모두가 작품의 방향에 동의해야 구체적인 미래가 생기니까요.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르치거나, 글을 쓰거나 각자의 일을 합니다. 젊은 극단이 연극만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니까요.



연극적인 철학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머물고 있는 장소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나이를 먹고 공간에 대해서 이것저것 공부하다 보니 제 방이나 비밀 장소에 왜 그토록 집착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죠. 저는 잠시 머물더라도 어떻게 머무는가가 제가 존재하는 방식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해요. 한국과 현대사,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그 안에는 수많은 단절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이 공간에 스며들어 있으니까요. 흔적을 남기고 있는 거지요. 이것이 제 작업의 중요한 재료이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연결해 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일상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이 과제인 셈이군요. 자신만의 방법론이 있나요?
2010년에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했던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를 예로 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광화문 광장이 처음 만들어질 때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잖아요. 광장이 되려면 인도와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도로에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기도 했고, 광장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강요받는 것 같은 인상도 있었죠. 그래서 그곳을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체험해 보도록 하고 싶었어요. 우리만의 지도를 만들어 그 공간에 다양한 의미들을 불어넣었어요. 6시쯤 관객들이 광장에 모이면 그 지도를 나눠 주고, 각자 원하는 대로 공간을 돌아다니도록 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자신이 정한 순서에 따라 공연을 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같은 공연을 볼 수 없었어요. 말하자면 관객이 1시간 동안 광화문 일대를 산책하며 스스로 공연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가도록 한 거예요.


<남산 도큐멘타>(2014)

▲ <남산 도큐멘타>(2014)


공연 안에서 같이 작업하는 예술가들과 관계 맺는 방식뿐만 아니라 관객의 위상까지 다시 생각하는 작업을 하시는군요.
학교 다닐 때부터 연극에는 동시대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 왔어요. 그때는 막연하게 당대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동시대성이라 생각했죠. 그 후에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라도 실험적이면 동시대적인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요. 지금은 동시대성이란 것에 반시대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충돌이지요. 반시대적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면 불편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에 대해서 관객 자신이 어떤 감각으로 반응하는지 알고, 훈련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연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 어떤 예술을 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결정할 수 있는 삶의 노선들이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지금이 연극 만들기 어려운 시대이기는 하나, 무조건 판을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연극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 막 연극계에 발을 들인 새내기 연극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저는 스스로 어떤 예술을 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결정할 수 있는 삶의 노선들이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지금이 연극 만들기 어려운 시대이기는 하나, 무조건 판을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은 젊은 창작자들이 소진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성과가 조금만 보이면 찾아 주는 곳이 많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예술가의 긴 생명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의해야 하죠. 지금 우리 시대에는 무엇을 하기보다 오히려 안 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거든요. 연대라는 이름하에 무조건 같이 있는 것 또한 때로 소모적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따로 또 같이’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도 큰 그림으로 보자면 연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고독해질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들어 자신을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전강희 필자소개
전강희는 전남대학교에서 영미희곡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으로 예술실기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공연예술 관련 글을 쓰면서, 드라마투르그, 축제 현장의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 공동창작과 다원예술에 관심이 많다. 2015년 인천아트플랫폼 6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인천에 거주하고 있다. 공저 평론집으로 『환승+극장』이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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