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유영봉cut 약 력//·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공간연출디자인 전공4년 중퇴/·現 공유성북원탁회의 공동위원장/·서울문화재단 공연장상주단체육성사업 지원3년차(2013~현재)///연 출//·2011  <도시괴담>, <외계인출몰구역>/·2012  <기이한 마을버스여행>, <두할-할망할망>/·2013  <야간기습대회>, <모델닷컴>, <북정마을사람들>, <정크타임즈>, <기이한마을여행-오정자!>/·2014  <수퍼히어로>/·2015  <칠순잔치>, <협곡의 가장자리>//수 상//·2003  아시테지 무대미술상 수상/·2006  전국연극제 무대미술상 수상/·2010  100페스티벌 무대미술상 수상/·2013  서울스토리텔러 대상 수상/·2014  레드어워드 대상 수상

극단 서울괴담의 연출가 유영봉은 내가 아는 연출 중에 가장 큰 스케일의 작업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사가 극장을 넘어 현장을 넘어 광장을 넘어 도시를 넘어 세계까지 다다르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종착지가 놀랍게도 ‘마을’로 다다르는 것을 본다. 세계를 고민한 끝에 그는 마을로 왔다. 그는 극장에서 공연을 하다가 극장 바깥으로 나갔고, 극장 바깥에서 공연을 하다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마을 안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아예 마을 사람들의 일상사를 공연처럼 다뤄 낸다. 마을 어르신의 <칠순잔치>에 ‘축하하기 위한 사람들’과 ‘관람하기 위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는다. 이런 상상력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연극을 처음 접한 순간과,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는 일본에서 공간연출디자인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아서 졸업을 1년 남겨 놓고 중간에 공부를 포기해야 했죠. 당시에 저는 혼자서 건축,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개인전을 하려고 했으나 관객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 돈을 들여 갤러리를 빌려서 하루에 5~6명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 무모하다 생각했고, 그런 방식으로 작업해야 하는 환경을 납득할 수 없었어요. 무엇보다도 혼자서 작업을 지속한다는 것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연극하는 선배를 만났고, 그를 통해 극단 여행자에서 무대미술을 시작했어요. 전시에서와는 다르게 공연의 무대미술은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이 생겨서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여전히 무대미술 작업 전문가로서 스스로의 자질에 확신이 없었고, 얼마 못 가 작업 조건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죠. 꿈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극장이 점점 힘겨운 일터나 노동의 현장으로 변질된다고 느꼈고, 그때부터 극장보다는 거리나 대안공간에서의 작업을 선호하게 됐어요.


당시에 저는 혼자서 건축,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개인전을 하려고 했으나 관객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 돈을 들여 갤러리를 빌려서 하루에 5~6명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 무모하다 생각했고, 그런 방식으로 작업해야 하는 환경을 납득할 수 없었어요. 무엇보다도 혼자서 작업을 지속한다는 것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특별한 작업의 전환 계기가 있었나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는데, 마침 극단 비주얼씨어터 꽃을 통해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접했어요. 이후에는 파리 자끄 르콕 국제연극학교 출신 유진우 교수의 아카데미 팜씨어터에서 1년 6개월 동안 전문적인 연기 훈련과 전반적인 연극 형식에 대해 경험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때부터 팜씨어터 동기들과 서울괴담을 창단해서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연극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단 이름이 서울괴담인데, 작업의 방향성을 담고 있는 거죠? 어떤 의미인가요?
도시에 대한 제 관심이 이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서울’이 저에게 괴물 같은 존재였거든요. 저는 이곳이 인간이나 자연에 불친절한 공간이면서, 너무나도 폭력적인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떤 기이한 현상도 용납되는 장소였고, 어떤 기이한 존재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초현실적인 공간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괴담을 퍼뜨리고 그것의 실체에 대해 관객과 함께 확인하고 그 고민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북정블루스>(2014)

▲ <북정블루스>(2014)


연출님은 무대 디자이너인 동시에 연출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첫 작업과 연출가로서의 첫 작업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작품과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무대미술가로서의 첫 작업은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이었어요. 당시 극단 여행자는 신생 극단이었고 구성원들의 열정이 뜨거웠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배우, 스태프 구분 없이 같이 만들고 고민하는 작업 과정이 이상적으로 느껴졌죠. 그 작품을 통해서 예술이란,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행위라는 것과, 연극은 참 쉬운 것, 누구나 접근하기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연출가로서의 첫 작업은 서울괴담의 창단 작품인 <도시괴담>입니다. 실제 쓰레기 집하장에서 공연했고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만들었어요. 배우들이 앙케트를 통해 인물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오면 그것을 연극적인 방법으로 구성해 냈죠. 말하자면, 배우, 스태프 모두 작가가 되어야 가능한 작업이었어요. ‘삶’보다 ‘생존’을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과, 삶에 발을 딛지 못하고 도시를 부유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도 초현실적으로 풀어내려고 애쓴 작품입니다. 관객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공연을 봤지만, 배우들은 쓰레기 악취를 감당해야 했기에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어요. 공연자들 모두가 이것을 당연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쓰레기 집하장에서의 공연을 <정크타임즈>라는 신작 시리즈로 3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만들어 올렸어요.

연출님은 연극 작업을 넘어, 성북동 북정마을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여러 작업들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마을에서의 작업은 극단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던 활동입니다. 서울괴담이 ‘거리’에서 현대 도시의 병폐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작업을 했다면 ‘마을’에서는 현대 도시가 잃어버린 희망에 관해 얘기했어요. 도시인들에게 고향이라는 존재를 선물해 주고 싶었거든요. 북정마을에 처음 갔을 때, 저는 고향 같은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낙후된 마을이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기보다 근 미래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요. 마을 사람들은 이웃이 있고, 관계가 있고, 우애와 환대가 있는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마을에는 항상 다툼이 있죠. 하지만 누가 굶어 죽거나 고독사를 당하는 일도 없거니와, 동물과 식물들마저 사람의 역사와 더불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공연을 한다고 하면 온 동네가 소문으로 떠들썩하고 ‘연극’이라는 것이 가장 연극적일 수 있는 온갖 상황들과 맞닥뜨렸습니다. 공연 자체가 ‘사건’이었기 때문에 서울괴담은 더 깊숙이 마을에 스며들었고요.


마을에서의 작업은 극단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던 활동입니다. 서울괴담이 ‘거리’에서 현대 도시의 병폐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작업을 했다면 ‘마을’에서는 현대 도시가 잃어버린 희망에 관해 얘기했어요. 도시인들에게 고향이라는 존재를 선물해 주고 싶었거든요.



북정마을 주민들과는 어떠한 작업들을 함께해 오셨나요? 이들과의 작업에서 보람이나 감동을 느꼈던 순간이 있으셨는지?
저는 빈집이 공동체 붕괴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폐가를 고쳐 서울괴담의 스튜디오 ‘괴담각’을 세웠을 때, 우리들이 고대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주민들이 이 공간을 미술관으로 만들자고 제안했거든요. 그래서 그 이름을 북정미술관으로 바꾸고 마을 사람들의 <옛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그 외, <기이한 마을버스여행>, <기이한 마을여행-오 정자>, <북정마을 사람들>, <북정 블루스>, <칠순잔치> 등을 주민들과 함께 창작하고 공연했습니다. 실은 서울괴담이 처음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은 재개발 찬성과 반대 둘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고 있었고, 외부인들이 주관한 마을 축제를 전후로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상처를 안고 있었어요. 우리는 마을에 들어와서 많은 공부를 했고, 이곳의 일상적인 일들, 이를테면 승진, 득남, 결혼, 생일, 초상 등 통과의례를 공유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죠. 마을은 서울괴담을 지키고 끌어안았습니다.


극단은 식구이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과중한 스케줄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관계에 소홀해져서 동료를 잃는 수도 생기죠. 생계가 해결되지 않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해서, 혹은 자신의 표현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극단 서울괴담을 만드신 후에 작업이나 운영 면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극단은 식구이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과중한 스케줄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관계에 소홀해져서 동료를 잃는 수도 생기죠. 생계가 해결되지 않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해서, 혹은 자신의 표현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10명 안팎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극단이라 한 명 한 명의 컨디션이나 동료가 떠난 빈자리가 극단 운영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지금은 쌍둥이를 출산한 이후 극단을 쉬고 있는 배우에게 특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육아와 연극 활동을 병행할 수 없는 극단 시스템이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공동육아가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 밖에 다른 문제들은, 같이 식사를 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칠순잔치>(2015)

▲ <칠순잔치>(2015)

<두할-할망할망>(2013)

▲ <두할-할망할망>(2013)


지금 이 시대는 예술을 담는 매체가 너무나 많고 다양합니다. 영화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웹툰도 있고, 유튜브도 있고 팟캐스트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연극이 연극으로서 존재한다면 어떠한 가치 때문일까요?
연극이 특별한 것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관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일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공동체 안에서 공동의 가치를 목격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자(생산자)와 듣는 자(소비자)의 일방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생성됩니다.

마지막으로 연극을 시작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연극은 소통에 대한 연구이고 실험입니다. 소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검증하는 과정이죠. 그래서 좋은 창작자가 되려면 먼저 좋은 관객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오세혁 필자소개
오세혁은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 중이다. 웹진 『연극in』 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걸판을 모든 예술 장르의 자체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자립 가능한 전방위 창작집단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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