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윤민철cut 약 력//·상명대학교 연극학과/·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멀티미디어과/·상명대 공연영상미술과 외래교수/·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음향학과 외래교수/·前 (주) 동숭아트센터 음향디자이너/·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음향감독/·現 미디어아트그룹 InteractionLab 대표/·現 미디어아트스튜디오 Toast 이사//주요 작품//·2010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2011  <키친>/·2012  <라보엠>, <손님>, <그을린 사랑>, <궁리>/·2013  <위키드>, <알리바이 연대기>/·2014  <히스토리 보이즈>, <배수의 고도>/·2015  <M버터플라이>//수 상//·2014 서울연극인대상 음향, 영상부문 수상

음향과 영상 분야에서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엔지니어고, 창작자이면서 또한 매개자인 사람이 있다. 공연 현장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고, 오랜 시간 다양한 창작자들과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에 이젠 공연에 영상이 필요하다 싶으면 자연스레 윤민철,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실로 수많은 공연들이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영역의 예측 불가능한 조우를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자신은 음향·영상 전문가이지만, 여전히 공연을 만드는 작업자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는 그의 독특한 이력은 자극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온 지난 시간들로 증명된다. 미래의 막막함은 오히려 현재를 바꿔 나갈 동력이 되어 주었고, 그는 언제나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미래란 곧 현재 진행형이고,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

하나의 공연이 올라가기까지, 실상 매우 다양한 역할들로 활동하고 계신데, 본인을 뭐라고 소개하고 싶으신지 먼저 묻고 싶어요.
보통은 영상 디자이너라고 해요. 음악, 음향, 영상을 다 같이 하면서 디자인도 하고 기술도 담당해서 좀 애매하긴 하죠. 해외의 경우에 단순히 AUDIO, VIDEO 이렇게 타이틀을 쓰던데 일단은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 편한 방식으로 불리는 게 좋겠더라고요. 기본적으로는 작품마다 하는 일에 따라 역할의 이름을 다르게 쓰고 있어요.

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하신 걸 보면 처음부터 영상 쪽을 생각하셨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영상까지 오게 된 건 좀 먼 길을 돌아서인데(웃음), 어릴 땐 배우가 하고 싶은 줄 알았어요. 지금 와 다시 생각해 보면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하시니 연극영화과에 지원해 놓고 그 길로 집을 나와 버렸죠. 그때 숙식 제공되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같이 일하던 형들이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줬어요. 사실 그러니 제가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쉽게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돈 떨어지면 휴학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때라 학교엔 별로 관심이 없었죠. 처음에는 나이트클럽에서 DJ 보조를 1년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음향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 이후 군대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음향 렌털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독특한 경로를 통해서긴 해도 음향에 관심이 생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째서 렌털 회사였죠?
그땐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예 길을 몰랐어요. 나이는 스물여섯인데 딱히 할 줄 아는 일도 없었고, 학과는 연극학을 위주로 가르치는 신생 학과여서 실기나 현장을 익힐 기회가 전혀 없었거든요. 다행히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던 때라 음향 쪽에 엄청난 일들이 밀려들었고, 돈 벌면서 기계를 경험하기엔 안성맞춤이었죠. 이후에 정말 운이 좋게도 동숭아트센터 음향감독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땐 정말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별다른 스펙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숭아트센터 내부적으로는 <연극열전> 등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점차 전문적인 일손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결국 극장 음향감독으로 입사한 저에게 그 극장에서 올라가는 여러 작품들의 음향을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거죠.


해외 팀 음향감독한테 메일을 보내서 자료도 공유해 달라고 했고, 대학원 입학 전에 학과 커리큘럼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적인 것들은 다 익히고 들어갔어요. 굉장히 절실하게 매달렸죠. 평생 엔지니어로만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당시 만났던 인연들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거군요. 시기를 잘 만나기도 했겠지만,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데 자극이 될 만한 일들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영상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어떤 계기로 인해서였나요?
사실 동숭아트센터 일을 그만두고 구민회관이라든지 국공립 단체가 운영하는 공간의 음향감독 자리에 여러 번 지원했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제가 음향 디자인을 했던 경력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극장을 충실히 지키기보다는 외부 작업을 할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에요. 마침 200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외국 팀 음향 담당자를 찾아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도와줬던 첫 번째 팀의 음향감독이 노트북 컴퓨터 두 대를 가지고 와서는 스피커 8개를 설치해 달라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공연에 쓰일 소리를 재생했어요. 그때 컴퓨터로 만든 음악이란 걸 처음 접했죠. 해외의 신기술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미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전공 학과가 개설되어 있더라고요. 다만 공연 쪽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래서 그 길로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게 됐고, 그때 배운 것들에 영상을 접목시키기 시작한 거예요.


미디어극 <한산: 들풀영웅전>(2015) 리허설 中

▲ 미디어극 <한산: 들풀영웅전>(2015) 리허설 中


말하자면, 현장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더 공부할 필요성을 느낀 거네요.
그렇죠. 그때 만났던 해외 팀 음향감독한테 메일을 보내서 자료도 공유해 달라고 했고, 대학원 입학 전에 학과 커리큘럼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적인 것들은 다 익히고 들어갔어요. 굉장히 절실하게 매달렸죠. 평생 엔지니어로만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물론 학부 때 성적이 너무 엉망이어서 대학원 갈 때 고생을 무지하게 하긴 했지만(웃음). 어찌 됐든 이미 공연 쪽에서 일을 하다 공부를 시작한 셈이라, 새롭게 배우는 것들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들이 계속 쏟아졌어요. 그때부터 음향과 영상 작업을 병행했지만 실상 그때만 해도 공연 쪽에 영상을 쓰는 경우가 정말 드물었거든요. 당시 주변 선배들은 공연이란 장르적 특성 때문에 영상을 끌어들이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현실이 마치 미래인 것처럼 얘기했었죠. 하지만 저한테는 미래가 곧 현실이었어요.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영상 하면서 음향 하고, 음악 하는 사람이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더 파워>(2015) 셋업 中

▲ <더 파워>(2015) 셋업 中


지금은 그래도 영상을 사용하는 공연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지만, 그 활용 방식에는 여전히 어떤 한계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작업하면서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저는 연출가들이 어떤 그림을 원해서 나한테 영상을 맡기는지 스스로 잘 안다고 자부해요. 당연히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작품이고, 웬만하면 영상은 안 쓰면 좋죠. 영상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저는 공연을 하는 사람이고요. 실은 하드웨어가 계속 발전해 가니까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기는데, 기본적으로는 유연성을 갖는 게 정말 중요해요. 되도록 많은 것들을 만들어 가고, 연출들이 그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선택할 수 있게 하죠.


저는 연출가들이 어떤 그림을 원해서 나한테 영상을 맡기는지 스스로 잘 안다고 자부해요. 당연히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작품이고, 웬만하면 영상은 안 쓰면 좋죠. 영상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저는 공연을 하는 사람이고요.



때로 ‘영상기술감독’으로 이름을 올리시던데 이 경우는 어떤 일을 하는 거죠?
‘영상기술감독’이라는 게 요새 들어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역할이에요. 말하자면 영상 디자이너와 연출가 사이에서 둘의 입장을 조율해 주는 거죠. 사실 둘의 언어가 달라서 통역이 필요하거든요(웃음). 이걸 무대에서 구현하면 이렇게 보일 거야, 혹은 이 사람이 지금 요구하는 건 이런 거야, 이렇게 최적의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거죠. 물론 처음에는 왜 이런 역할이 필요한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그 중요성을 인식시킨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일이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거니 힘들 때가 많아요. 이를테면 재정상 불가능한 것을 구현해 달라고 고집을 부리거나 공연의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영상만을 내세우는 경우들? 그러니 기술감독은 양쪽 모두에게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을 가장 큰 의무로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공연을 위한 영상 장비 테스트 中

▲ 공연을 위한 영상 장비 테스트 中


물론 처음에는 왜 이런 역할이 필요한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그 중요성을 인식시킨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일이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거니 힘들 때가 많아요.



기술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 영역은 앞으로의 비전이 꽤나 긍정적일 것 같은데 어떤가요? 공연의 영상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자세나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함께 얘기해 주세요.
실제로 수요가 엄청날 거고, 점점 더 전문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당연히 새로운 기술을 남보다 더 빨리, 더 깊이 알아 가는 일을 즐겨야 하겠죠.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따라잡을 수 없게 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연을 좋아해야지요! 실은 영상 작업자들도 출신지라고 해야 하나, 그 출발선이 다양하거든요. 가끔 연출가한테 구체적인 오더를 요구하는 영상 디자이너들이 있어요. 그들 입장에서는 일의 효율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대본 읽기를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하지 않는 작업자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첫 수업에서 항상 그렇게 얘기해요. 단지 여기서 사용하는 기술이 재미있는 거라면 결코 오래 할 수 없을 거라고요. 이 일의 미래가 밝다면, 그건 우리가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김슬기 필자소개
김슬기는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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