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김지명cut 약 력//·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 석사/·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 박사 수료/·現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개발원 예술극장사업팀 프로덕션 기술감독 및 기술 TF팀장//무대감독//·극단 희즈(구 표현과 상상)/·판소리 만들기 자/·뮤지컬 <델라구아다>, <맘마미아>, <프로듀서스>, <댄싱 섀도우>, <번지점프를하다>, <엘리자벳>, <스프링 어웨이크닝>, <넥스트 투 노멀>, <웨딩싱어> 외 다수//기술감독//·2002~2008 MODAFE/·2004~2009, 2012 ~ 현재 국제아동청소년 연극제/·2009~2013 페스티벌 봄//제작감독//·음악그룹 비빙/·안은미컴퍼니

무대감독이라는 일은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시작할 경우 아주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남들 앞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람들을 살피고, 그 사이를 조율하며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그 생동하는 유기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무대감독의 역할이다. 김지명은 아주 일찌감치 이것이 자신에게 딱 맞는 옷임을 알아채고, 오랜 세월 무대감독이란 이름으로 공연예술계 전반을 횡단했다. 소극장 연극에서부터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그리고 경계를 넘나드는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에 이르기까지 숱한 무대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처음 무대감독을 시작했을 때 만났던 작품은 로버트 윌슨의 <바다의 여인>이었고 이제 머지않아 그가 일하는 극장에서 거장의 또 다른 작품이 공연된다. 여기 이 17년 차 베테랑 무대감독이 그게 너무 설레어 잠을 설쳤다고, 해사하게 웃고 있다. 무대감독이란 그런 일이다.

대학에선 문학을 전공하고, 애초엔 글을 쓰고 싶으셨다고 들었어요. 공연에 관심을 갖고 무대감독 일을 하시기까지 어떤 전환들을 거쳐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희곡에 관심이 많아서 극작을 하고 싶었어요. 마침 학과에 연극 동아리가 있어서 들어갔는데 거기선 원어 연극을 했기 때문에 극작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연극 만드는 작업 자체를 즐기게 됐죠. 그때 제일 처음으로 맡았던 역할이 무대감독이었는데, 물론 뭘 알고 한 건 아니었어요. 어찌 되었든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연극을 더 공부해 보고 싶어져서 대학원에 진학했죠. 그제야 무대감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배웠는데, 그때 바로 알았어요. 이게 내 일이라는 것을.


무대감독의 제1 임무는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에요.
말하자면 교통정리를 하는 거죠.
그러니 자기 성향을 잘 알아서 과연 그것이 스스로에게 맞는 일인지 파악해야만 하는 거예요.



무대감독이 하는 일이 특별히 매력적이었던 건가요, 혹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가요? 무대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거죠?
무대감독의 제1 임무는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에요. 말하자면 교통정리를 하는 거죠. 그러니 자기 성향을 잘 알아서 과연 그것이 스스로에게 맞는 일인지 파악해야만 하는 거예요.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그것을 누구한테 전달할 것인지 확인하고, 구체적인 구현을 위해 방향을 설정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저한테는 너무 딱이었죠. 그래서 당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극단을 만들어서 제가 상임 무대감독을 하겠다고 나섰어요. 직함은 상임 무대감독이었지만 실제로는 A부터 Z까지 온갖 일들을 다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정말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 같아요. 당시가 저에게는 일명 ‘대학로 시기’인 건데, 표현과 상상이라는 우리 극단이 혜화동 1번지 2기 동인으로 활동할 때였죠.

말하자면 작업은 소극장 연극에서부터 시작하신 건데, 이후 각종 해외 공연들을 비롯해 큰 규모의 뮤지컬 프로덕션에 많이 참여하셨잖아요.
2000년, 로버트 윌슨의 <바다의 여인>이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올라가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해외 공연이 들어오는 경우가 흔치 않았고, 더구나 로버트 윌슨처럼 연극에 갖가지 기술을 동원하는 공연은 정말 없었죠. 그때 그 프로덕션에서 기술 통역자를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통역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었는데, 로버트 윌슨이라고 하니 그냥 무턱대고 한다고 나섰죠. 그 이후 서울연극제를 담당했던 무대감독 회사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전문가들이 연극 현장까지 제대로 아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일은 정말 많았어요. 한 가지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지금 일하는 아시아예술극장에 곧 로버트 윌슨이 공연하러 오거든요. 그 테크니컬 라이더를 받았던 날 밤, 내 생애 이런 날이 오다니 하면서 잠을 못 이뤘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사이 『백스테이지』라는 기술 스태프 전문 매체를 만드셨어요.
네, 사실 그 무대감독 회사를 꽤 오래 다녔는데, 이 일이 계속하다 보면 흥미가 좀 떨어지게 마련이라서요. 작품과 사람은 바뀌어도 하는 일이 늘 똑같으니 도전 의식 같은 게 안 생기죠. 그때 돌파구가 되었던 것이 그 잡지를 만들었던 일이에요. 지금도 뮤지컬 초벌 번역 같은 건 계속하고 있는데, 워낙에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내게 된 것 같아요. 기술 스태프 분야에 이런 책이 한 권쯤 필요하단 생각도 있었고요. 계간지로 4년 정도 발행했는데, 결국 제가 회사를 떠나면서 책은 폐간되었죠.


뮤지컬 공연의 무대감독을 할 때는 그저 큰 프로덕션의 부속품처럼 일했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그 팀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죠.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기쁨이 굉장했어요.



그렇게 일에 흥미가 떨어진 시점을 잘 이겨 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업무의 성격 자체가 변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한 조직에 너무 오래 있어서일 수도 있고, 원인은 여러 가지일 테지만 변화의 계기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관계’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를 떠나고 싶어 방황할 무렵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안은미 선생님께서 이제 무용단에도 무대감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 작업이 연결, 연결되어서 공연예술이 아닌 시각이나 영상 쪽 창작자들까지 만나게 되었고 저에게는 ‘컨템퍼러리 시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뮤지컬 공연의 무대감독을 할 때는 그저 큰 프로덕션의 부속품처럼 일했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그 팀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죠.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기쁨이 굉장했어요. 그런데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여러 작업들을 병행하고 되고, 한 작품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자주 발생했죠. 무대감독 김지명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는 공연이 하루에 네댓 개씩 될 때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고, 그러다 결국 완전히 말아먹고 정신을 차렸죠. 그 이후 광주로 내려왔어요.

지금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사업팀에 제작·기술감독으로 계시는데, 이 일은 무대감독과 어떻게 다른 건가요?
제작감독이라 함은 제작과 관련한 예산을 집행하는 역할을 말해요. 기술감독은 공연에 필요한 기술을 무대 위에 실현시켜 주는 사람, 무대감독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운영하는 사람이고요. 그러니 무대감독은 극장에 들어오기 이전에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놓치는 것 없이 따라가야 해요. 리허설 기간 동안 계속해서 연습실을 지켜야 하죠. 언제 무엇이 어떻게 쓰이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비빙 <이와 사>(2013) 인도 첸나이 공연 당시

▲ 비빙 <이와 사>(2013) 인도 첸나이 공연 당시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일이네요. 연습실에서 내내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무대감독이 되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유머 감각(웃음)? 장기 공연이라도 하게 되면 모두가 굉장히 지치거든요. 그럴 때 인터컴으로 분위기를 풀어 주는 역할도 해야 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해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유가 있어야죠.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목소리로만 무대를 운영하는데 무대감독이 서두르면 다들 급해지게 마련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감독이 하는 일이라는 게 참 드러나지 않잖아요.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떤 것들이 가장 힘드셨나요?
사실 그것도 저하곤 너무 잘 맞아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워낙에 좋아하지 않거든요. 다만 매일 저녁 극장을 지켜야 하니까 감수해야 할 게 많죠. 생각해 보면 30대를 내내 극장에서만 보냈어요. <델라구아다> 같은 공연은 1년 2개월을 했는데 그사이 딱 3박 4일간 쉬었죠.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공연하는 그 두어 시간의 집중력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 모든 걸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일하게 돼요.


이자람 <억척가>(2015)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당시

▲ 이자람 <억척가>(2015)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당시


벌써 17년째 무대감독으로 일하고 계시는데 이 일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아직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더불어 얘기해 주세요.
결국 공연을 흘러가게 해 주는 게 무대감독이니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일이라 처음에는 도제식으로 누군가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서 시작해야 하고요. 저는 공연 쪽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사실 공연 현장이 그렇잖아요.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경험하고, 아쉬움을 남기면서 작품 하나를 끝내고,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세월이 정말 금세 지나가죠. 그러면서 자신의 목표나 비전을 잊고 그 순간에 함몰되기 쉽거든요. 그걸 경계해야 해요. “1년이면 배울 수 있는 일을 내내 하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저는 그 얘길 꼭 하고 싶습니다.


뮤지컬 공연의 무대감독을 할 때는 그저 큰 프로덕션의 부속품처럼 일했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그 팀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죠.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기쁨이 굉장했어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김슬기 필자소개
김슬기는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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