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박경린cut 약 력//·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학, 의류직물학/·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전 시//·2013  <2의 공화국> 아르코미술관 기획 공모전 당선작/·2013  <필담창화일만리(筆談唱和一萬里)> 동경국제도서전 주빈국관 기념전시/·2014  <백만 개의 층을 가진 정원> 남이섬 프로젝트/·2014  <두 개의 수도, 하나의 마음> 인천아시안게임 기념전시/·2015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 서울시립미술관/·2014~2015  <텅 빈 충만: 한국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 해외 순회전//수 상//·2010  『아트인컬쳐』 ‘New Vision 미술평론상’ 파이널리스트 3인

큐레이터 박경린의 작업에는 딱 잘라 규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박경린의 손을 거치면 미술 바깥의 수많은 이야기가 다양하고 생산적인 전시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피스마이너스원PEACEMINUSONE: 무대를 넘어서>(2015)는 대중 아티스트인 지-드래곤(이하 GD)을 주제로, 국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전시로 풀어낸 뜨거운 작업이었고, 남이섬에서 열린 <백만 개의 층을 가진 정원>(2014)은 야외 전시의 틀을 벗어나 공간의 실험을 꾀하고자 하는 기획이었다. 또한 ‘더 바인더스’라는 팀으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한 <2의 공화국>(2013)은 현대미술과 시각예술 전반의 2인 체제 협업을 내밀한 방식으로 접근해 주목받았다. 이처럼 그의 전시 기획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다원적이다. 대중문화, 과학, 언어, 건축, 디자인, 출판 등 드넓은 분야를 전시와 만나게 하면서도 단순한 만남을 넘어, 새로운 관계 맺기로 발현되는 또 하나의 세계를 포착해 그것을 다시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린과의 대화를 통해, 미술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순간을 체험해 보자.

큐레이터로, 또 비평가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넓고 얕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에,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사실 또 다른 꿈은 소설가였어요. 그래서인지 미술사와 글쓰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대학에 진학해서는 법대, 공과대 수업까지 거의 모든 학부의 수업을 다 들어 봤어요. 그만큼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읽고요. 미술은 미술 바깥의 영역들이 모두 녹아 있는 유일한 분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제가 하는 일이 미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웃음).생각해 보면 저는 자연스럽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대학교 4학년 때 디자이너나 MD로 인턴, 아르바이트도 해 봤지만, 저에게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러다가 ‘헤이리 예술마을’ 기획팀에서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그곳에서 1년 정도 근무했어요. 문화 기획, 전시 쪽으로 계속 일을 맡다 보니 이론 공부가 필요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2010년, 『아트인컬처』라는 잡지 비평 공모에 ‘소피 칼(Sophie Calle)’이라는 프랑스 작가를 주제로 쓴 석사 논문과 다른 글들을 모아서 제출했는데 감사하게도 파이널리스트 3인에 선정되면서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립 큐레이터는 계획하고 행동하는 액터이고, 모더레이터이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프로덕션을 꾸리는 매개자이자
스토리텔러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프로듀서에 가깝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아무래도 혼자 여러 역할을 맡아 일을 꾸려 나가다 보니,
결과가 항상 좋아야 한다는 책임을 많이 느껴요.



최근 여러 대안 혹은 신진 전시 공간이 생겨나기도 하고, 전시의 폭이 넓어진 만큼 큐레이터의 역할이 전문화, 세분화되어 가고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독립 큐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또 일하는 데 있어 갖춰야 할 자질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큐레이터의 뜻을 번역한다고 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은 학예연구입니다. 저는 큐레이터의 본래 역할이 학자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 ‘내가 큐레이터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미술관 등의 공간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말하자면 독립 큐레이터는 계획하고 행동하는 액터이고, 모더레이터이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프로덕션을 꾸리는 매개자이자 스토리텔러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프로듀서에 가깝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아무래도 혼자 여러 역할을 맡아 일을 꾸려 나가다 보니, 결과가 항상 좋아야 한다는 책임을 많이 느껴요.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때도 정말 많아서 뻔뻔함도 좀 필요한 것 같고요(웃음). 무엇보다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고 판을 벌이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창작자들 간의 네트워킹도 프로젝트 진행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네트워크를 쌓는 데에 특별한 방법이 있기보다는, 시작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앞서 대학교 졸업 이후에 헤이리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그분들이 지금까지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거든요. 결국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내일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같아요.


<2의 공화국>(2013) 전시 포스터

▲ <2의 공화국>(2013) 전시 포스터

<텅 빈 충만>(2014~2015) 전시 포스터

▲ <텅 빈 충만>(2014~2015) 전시 포스터


그간 작업해 온 전시가 ‘미술’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굉장히 폭넓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큐레이터 박경린’만의 특색과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 관심사가 다양하다 보니, 그동안 제가 맡은 전시 또한 스펙트럼이 넓었어요. 각각을 들여다보면 전시 주제에 맞춰 작품을 기획하는 제작 프로덕션을 넣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전시를 기획할 때 고려하는 가장 큰 원칙입니다. 항상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 전시를 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산이 많지 않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어도 하나의 프로덕션은 넣으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해저지형을 주제로 전시했던 적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전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했는데요. 리서치를 하다 보니 해저 지명이 강대국의 과학기술 발전 정도와 권력관계에 따라 이름 붙여진 것이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여 주기 위해,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그 분포도를 즉흥적으로 조합해 시각적으로 구성한 작품도 설치했어요, 디자이너들과 함께 해도의 여러 표식을 만들어 바닥에 붙여 관객이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연출하는 프로덕션도 기획했죠. 그리고 2013년, ‘필담창화일만리(筆談唱和一萬里)’라는 주제로 동경국제도서전 주빈국관 전시를 맡았을 때 전시의 일환으로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했어요. 프로그래밍을 설계한 다음, 과학적 원리로 창제된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을 조합해 즉석에서 한글 명함을 만들어 주는 프로덕션이었죠.


저는 좋은 전시는 이야기들이 액자 소설처럼 구성되어 쌓이는 전시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전시 안에서 각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이런 맥락에서 돌아보면 <피스마이너스원>은 스토리도 많았고, 현대미술계 내부에서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만큼 관객의 의견이 다양했고요.



최근 GD와 함께 기획한 전시 <피스마이너스원>에 큐레이터로 참여하셨는데요. 특히 전시 자체를 둘러싼 이야기나 담론이 형성되는 지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전시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규모가 큰 기획 전시에서, 작품 사이에 밀도의 차이가 생기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직업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조율하는 역할인 것 같아요. 기획자는 다 그렇겠지만, 저는 기획자이면서 작가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것이 실제로 잘 구현되기를 늘 바라요. 하지만 작품을 컨트롤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시 주체들을 잘 설득해 균형점과 공감대를 찾아 이야기를 펼쳐 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죠.
<피스마이너스원>은 모든 작품을 프로덕션으로 구성한 전시였기 때문에 결과물 자체보다도 프로세스가 훨씬 중요한 전시였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YG, YG와 GD, GD와 작가 등 전시를 둘러싼 주체가 직접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1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면서 그 과정에서 YG와 GD는 물론, 작가들과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리서치도 열심히 했어요. 창작자와 창작자가 만나는 일이다 보니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서로의 역할 설정을 조율하는 부분도 필요했고요. 저는 좋은 전시는 이야기들이 액자 소설처럼 구성되어 쌓이는 전시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전시 안에서 각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이런 맥락에서 돌아보면 <피스마이너스원>은 스토리도 많았고, 현대미술계 내부에서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만큼 관객의 의견이 다양했고요.


<피스마이너스원>(2015) 전시 포스터

▲ <피스마이너스원>(2015) 전시 포스터


앞으로 동시대 관람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으신지요. 또 변화하는 미술 환경에서 어떻게 활동할 계획이신가요.
지금은 올해 12월에 한국공예디자인문예진흥원(KCDF)에서 여는 <2015 공예트렌드페어>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중간에 작은 해외 전시들도 있고요. 개인적인 소망은 근래에 국·영문으로 된 영화, 미술, 문학, 전시, 기관 소개 등을 망라한 웹진을 오픈하는 것이에요. 다양한 전문가의 글을 모은 괜찮은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인간극장> 같은 전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저는 늘 사람이 궁금하거든요. 우리가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작가를 만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더불어 그게 제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박경린은 이런 작가, 이런 전시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색깔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일은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점이 큰 매력이에요. 앞으로는 작가를 발굴하고 그 작가를 프로모션하는 큐레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작가에 대한 글도 계속 쓰고 싶어요.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 좋은 글쓰기가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늘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요즘 많은 이들이 큐레이터나 기획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이 자리는 빛나기가 제일 힘든 자리거든요. 기획자가 빛나면 절대 좋은 전시가 될 수 없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좋은 전시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이제 첫발을 뗀 청년 예술인, 청년 큐레이터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요.
조언한다는 것이 참 쑥스럽기도 한데요. 사실 문화예술계 전체가 여전히 열악하고 힘들어요. 분명 더 나은 정책도 나오고 지원 분야도 많아지기는 했지만요.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많은 이들이 큐레이터나 기획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이 자리는 빛나기가 제일 힘든 자리거든요. 기획자가 빛나면 절대 좋은 전시가 될 수 없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좋은 전시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만약 이 일을 준비한다면 매 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분명하게 알면 자기 길이 생긴다고 믿어요. 저는 제가 잘한다기보다도, 할 수 있는 제 영역을 찾은 것 같아서 힘들어도 즐거워요. 큰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다 같이 즐거운 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유정미 필자소개
유정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콘텐츠 기획을 맡고 있다. 2011년 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인디스트로 활동하면서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2012년 인디포럼,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2012년부터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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