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사람들’은 예술경영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미 있는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예술경영학회, 문화다움,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8인의 예술경영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 예술 현장의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2015년 마무리 시점에 접어든 12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인재진 감독과의 만남은 유쾌한 진지함으로 시작되었다. ‘예술경영인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문화기획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객석에 초대해 토크쇼 형태로 진행된 자리는 2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말 그대로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시간이었다.

인재진 감독과의 인연은 예술축제 감독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평가하는 평가자의 관계로 시작되어 10년에 이른다. 10년의 만남을 통해 나름의 동지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거니와 인재진 감독 특유의 느리고 어눌한 듯 보이는 말투에 이미 매료되어 있던 나였다.

첫 인사를 부탁하자 자기 자랑으로 말문을 연다. “제가 얼마 전에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어요. 엊그제 홍콩에서 상을 받았거든요. Mnet의 ‘MAMA’라는 데서 주는 상이랍니다” 자신을 한껏 낮추고 마치 우연처럼, 남의 일인 것처럼 자신이 받은 상이라는 사실마저 객관화해내는 그에게 청중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2일 <2015 MAMA(Mnet Asian Music Awards,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전문 부문 시상식이 진행됐고 여기에서 2004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기획하며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는 인재진 감독이 베스트 공연상을 받은 것이었다. 대중문화의 중심인 아이돌의 축제로만 알았던 마마(MAMA)에서의 인재진 감독 수상은 지난 12년의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위상을 증명하는 자리라 그 의미가 더 컸으리라 짐작해 본다.

2004년 시작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12년의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축제, 아시아 최대의 재즈축제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2년의 축제 역사, 비교적 짧은 축제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인재진 감독의 예술경영인으로서의 궤적을 들여다보자.

공연업계의 마이너스 손_희귀음반 제작자 인재진

시작만 하면 마이너스로 기록되는 기획자.(실제로 그의 1,000여 번의 공연기획 중 수익을 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 한다.) 커다란 자부심으로 제작한 음반은 마니아층을 만들어 내지만 흥행에는 무참히 실패해 붙여진 별명, ‘희귀음반 제작자’ 인재진 감독을 수식하는 이 두 별칭은 그의 30대 기획자 시절의 활동을 대변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골라서 걸어온 그의 행보는 성공보다는 실패의 시간들로 이어졌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과 같은 성공한 무대는 그의 표현대로 ‘위대한 실패’가 가져온 결실이다. 어찌 보면 경험을 통해 일구어온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해온 준비된 기획자란 느낌이다. 30대의 실패 경험과 준비로 일구어낸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성공도 그는 인연과 우연이라는 단어를 쓰며 자신을 한껏 낮춘 채 풀어낸다.


▲ 2015 MAMA 전문부분 베스트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를 수상한 인재진 감독


세계 재즈 지도에 한국을 새기다_인연과 우연이 만들어 낸 기록

인재진 감독이 준비해온 발표 제목이다. 매번 실패만 하던 그에게 재즈축제의 영감을 준 것은 핀란드에서 열리는 포리재즈축제였다. 실패만 거듭된 기획의 현장에서 지쳐갈 때쯤 우연히 만나 지금의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해준 유리키 캉가스 감독이나 우연히 맡게 된 강의에서 누구보다 열성적인 가평군의 공무원을 만난 일, 이 모두가 그에게는 우연과 인연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누구도 이를 그저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험 그리고 실패와 새로운 도전이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그의 태도와 만나 인연이 되고 이것이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시작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만든 계기가 있었죠. 인구 8만 명의 작은 해안 도시 포리에서 열리는 재즈페스티벌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1966년에 시작된 축제인데 대단합니다. 핀란드 전체 인구가 520만 명 정도인데 연평균 15만 명이 이 페스티벌을 보러 옵니다. 지난 40년 동안 모든 국민이 다녀간 셈이죠. 대통령까지요. 이 포리재즈축제를 만든 사람이 바로 유리키 캉카스 감독인데, 그분을 2000년 시드니에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포리를 가게 됐습니다. 항공, 숙박, 개인 경비까지 지원받았는데 가서 보니 포리는 완전 다른 세상인 거예요. 더구나 제게는 무대 뒤 대기실뿐만 아니라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ALL Access Pass’가 주어졌습니다. 거기에서 전 세계 재즈 아티스트들을 다 만날 수 있었죠. 관객 4만 명이 열광하는 그 무대를 보면서 한국에서 꼭 저런 페스티벌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 꿈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비포(before) 자라섬 & 애프터(after) 자라섬으로 나뉜다는 그의 예술경영 인생은 자라섬을 만난 기점으로 과거의 ‘찌글찌글’ 인생에서 자라섬을 만난 이후의 ‘반짝반짝’ 인생으로 바뀌었단다. “유명한 점술가가 이야기하는데 저는 앞으로 64년간 대운이 들었답니다. 하하”

자라섬을 만나 개인의 운명도 바뀌었지만 자라섬(가평)은 인재진 감독과 재즈축제를 만나게 되며 비포 재즈축제와 애프터 재즈축제로 구분될지도 모른다. 재즈 사과를 재배하고 재즈 막걸리와 와인을 마실 수 있으며 읍내에는 재즈 커피숍과 재즈 호텔이 들어선다. 이미 축제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가평의 오늘날 모습이다. 무엇보다 가평 군민들의 마음 변화가 눈에 띈다. 인재진 감독은 “모든 군민이 재즈 마니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단호히 이야기한다. 지역 주민이 축제에 참여하는 방식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자원봉사자로의 참여, 식당 운송 등 생업과 연계한 참여, 아마추어 연주자로서의 참여, 관객으로의 참여 그리고 심적(마음으로의) 참여가 그것이란다. 이중에 심적 참여가 중요한데 방식은 두 가지란다. 축제를 통해 자부심이 생기는 긍정적 참여와 축제를 반대하는 부정적 참여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심적 참여 중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은 후자인 부정적 참여를 어떻게 긍정의 참여로 이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옆집 할머니가 손주에게 주고 싶다며 부탁한 초대권은 그에게 가평의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는지도 모른다. 축제와 지역이라는 화두에서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되는 현 세태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하다.


2015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전경 ⓒ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2015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전경 ⓒ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 2015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전경 ⓒ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심한 듯 세심한, 준비된 리더십

무심한 듯 느리게 내뱉는 충청도 사투리 속에 배어 나오는 세심함과 단호함은 그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람은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아요. 작은 풀뿌리에 걸려 넘어진다죠.”처럼 작은 것도 배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나, “누구를 만나도 면전에서 싫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상대에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하고 결과적으로는 적이 아닌 동지가 됩니다. 물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고수합니다.”와 같은 소통의 방법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술경영인 인재진 감독에게서 배우려 한다면 그것은 뛰어난 경영 능력이나 마케팅 감각이 아닌 리더십일 것이다. 자라섬재즈센터 직원들의 사훈이 ‘꾹 참자. 안 되면 말고’란다. 이 말은 아마도 소극적 태도를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소통하되 강요하지 않고 안 되는 것에 메이기보다는 되는 것을 찾아 실천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자신을 낮추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리더십, 이것이 인재진 감독이 구사하는 리더십의 실체인 듯싶다.

끝으로 최근 대한민국 공연예술축제가 침체기를 걷고 있다고 보여 지는 데에 관한 조언을 부탁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축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테일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공연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좋은 작품을 준비했으니 알아서 즐기라는 오만한(?) 기획자의 태도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2016년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더불어 그의 이야기는 예술축제를 준비하는 기획자들에게 울림이 크다. 앞으로 9년, 20년의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기획을 끝으로 후배, 동료들이 찾고 싶은 공간을 준비해 살고 싶다는 인재진 감독. 글을 정리하며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난다. 축제장 곳곳을 누비는 외국 연주자들은 인재진 감독을 JJ라 부르는데, 그러한 JJ가 자라섬 재즈의 약자이기도 한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 참고링크
[현장+人] 인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공무원은 외계인이 아니다


권순석 필자소개
권순석은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이자 (사)한국문화의집 협회 상임이사, 생활문화센터 컨설턴트이다. 전 춘천마임축제 운영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역문화재단 문화기관 단체를 대상으로 연구, 교육,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축제 기획 평가 컨설팅과 문화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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