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재’라는 이름에는 여러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000간 공동대표, 창신마을넷 공동대표, 현대차 정몽구재단 ‘온드림 랩’ 운영 위원,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 이사 등이다. 이 모든 직책은 창신동 000간을 운영하면서 수행하게 되었는데, ‘공공공간’이라고 읽는 이곳은 사회적 기업으로, ‘공감, 공유, 공생을 위한 디자인 기획사’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해 온 공동대표 신윤예를 비롯해 총 8명의 직원이 꾸려 가고 있는 이 기업은 동대문 의류상가에 납품을 하는 1,000여 개의 영세 봉제 공장이 모여 있는 창신동에 둥지를 틀고 다양한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창신동에서 하루 22톤가량 쏟아져 나오는 자투리 천을 이용하거나 원재료의 버려지는 부분을 0~5%로 대폭 줄인 제품을 디자인하는 패션 브랜드 ‘제로 웨이스트’, 여러 지자체와 협력해 000간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멘토링 사업 등을 현재 진행 중이다. 000간 대표 홍성재를 만나 그가 꿈꾸는 ‘대안적인 생산’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 들어 보았다.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현재 000간의 공동대표로 있는 신윤예 씨와 작가 그룹 ‘Collective 2’로도 활동했습니다. 창작에서 다른 영역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힌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가’라는 모델이 이미 너무 확고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수예술 전공자들은 졸업하면 전시를 전제로 작업을 하고, 대안공간이나 갤러리, 미술관, 비엔날레 등으로 나아가도록 교육받거든요. 작가는 사회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작 미술 교육에서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보다도 더 틀에 짜인 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스테레오 타입화된 ‘작가’가 되기보다 어떤 작가가 내 삶에 어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일상적 삶과 작가로서의 삶이 일치해야 행복한 삶이고 더욱 시너지 효과도 난다고 봅니다. 새로운 표현 기법을 찾기 위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작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고민하려고 했어요.
작가는 사회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작 미술 교육에서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보다도 더 틀에 짜인 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스테레오 타입화된 ‘작가’가 되기보다 어떤 작가가 내 삶에 어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일상적 삶과 작가로서의 삶이 일치해야 행복한 삶이고 더욱 시너지 효과도 난다고 봅니다.
이후 2011년 000간(법인명 공공공간)을 창업하셨습니다. 일반적인 미술 공간이 아닌 사회적 기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 ‘노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친구가 저와 신윤예 씨에게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을 처음 소개해 주었어요. 그들이 지원금을 사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웠죠. 많은 작가들이 신청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의 경우 기금을 모두 사용하고 나서 또다시 공모에 지원해 경쟁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구조이지만, 사회적 기업은 기금으로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서면 점점 자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특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돈을 벌어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그와 연결된 또 다른 문제로 영역을 확장해 갈 수 있다는 데 매료됐습니다.
활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셨는데, 사회적 기업의 사회 환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저는 지역의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면서 만들어진 자본이 그 지역과 주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지역 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창신동의 경우, 이곳의 영세 봉제 공장들은 보통 한두 군데 업체와 관계를 맺고 일감을 받기 때문에 일거리를 다양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습니다.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일 만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제작비를 공정하게 제공하고 수익을 분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다른 지역에서 요청이 오면 창신동에서 실험했던 모델을 새롭게 시도해 보는 방식으로 사회 환원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 봉제 공장 간판 제작 <거리의 이름들> 프로젝트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상가 배후 지역으로 그 지역만의 특성이 매우 강한 곳입니다. 이 지역에 문화예술 공간을 만든다고 했을 때 지역 사회와의 마찰은 없었나요? 000간의 모체인 ‘러닝투런’의 초창기 멤버는 사회적 기업으로 저희를 인도해 줬던 친구 2명과 신윤예 씨까지 포함해 총 4명이었어요. 처음에는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창신동이라는 지역에 관심을 갖고 예술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점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간을 마련한 건 창신동을 알게 된 지 1년 반 뒤였죠. 그때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턱대고 공간부터 먼저 만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칭찬을 많이 받았던 사업 중 하나가, 평상을 리모델링했던 사례입니다. 그러니까 평상을 새로 만들어 없던 니즈를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니즈를 찾아낸 거죠. 저희 경우에는 지역민과 충분히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한 후에 공간을 설립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000간의 직원 대부분은 디자인 전공자입니다. 관리, 회계, 마케팅 등 여러 업무를 어떻게 분담하고 계신가요? 현재 함께하고 있는 직원 8명은 공동대표 2명을 포함해 순수예술 전공자, 의상디자인 전공자, 제품디자인 전공자, 그래픽디자인 전공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저는 대표로서 경영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2014년부터는 카이스트 SE MBA(사회적 기업 전공)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동대표 신윤예 씨는 제품 관련 업무를, 저는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어요. 하지만 배송, 예산, 정산 등의 업무는 모든 직원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구성원들이 대표가 내린 결정을 납득할 수 있거든요. 또한 000간에 입사한 분들은 대체로 추후 이와 유사한 자기만의 공간을 운영하길 꿈꾸기 때문에, 입사한 지 1년 정도 지나면 기획 회의에 함께 참여하도록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의 지분을 나눠 갖고, 프로젝트 초반에 예산을 함께 책정하는 등 공간 운영 방식을 공유하고 있죠.
000간에 입사한 분들은 대체로 추후 이와 유사한 자기만의 공간을 운영하길 꿈꾸기 때문에, 입사한 지 1년 정도 지나면 기획 회의에 함께 참여하도록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의 지분을 나눠 갖고, 프로젝트 초반에 예산을 함께 책정하는 등 공간 운영 방식을 공유하고 있죠.
‘대안적인 생산을 위한 문화예술 플랫폼’이지만 기업체이다 보니 여타의 미술 공간과는 다른 난관에 맞닥뜨렸을 것 같습니다. 공간을 운영하시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정부, 기업, 소비자 사이에 통용되는 각기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일입니다. 사회적 기업이 다른 기업이나 정부와 일할 경우 자립도가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데 기업은 ‘갑’이 아니라 규모가 큰 커뮤니티이고, 공공기관도 공적인 미션을 가진 커뮤니티일 뿐입니다. 기업은 자본력과 빠른 판단력을, 공공기관은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죠. 사회적 기업은 이 두 요소와 함께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합니다. 기업은 ‘혁신’을, 정부는 ‘사회적 효과와 지역 환원’을 선호하지만, 소비자는 제품을 샀을 때 느끼는 ‘개인적인 기쁨’을 우선시하거든요. 이처럼 똑같은 콘텐츠를 최소 3개의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 능력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2년여의 활동을 살펴보면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우고 다른 지역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계십니다. 예술의 역할 중 사회적 기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예술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각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인 000간은 다른 미술 공간과 성격이 다릅니다. 000간을 찾아온 졸업반 학생들이 ‘배우러 왔다’는 낭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웃음). 그래서 학생들에게 우리는 같이 ‘사냥’하는 사이라고 말합니다. 점점 더 덩치가 큰 목표물을 사냥하기 위해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역할 분담을 하고 그 사냥감을 잡고 나면 이것을 분배하기 때문이죠. 만약에 우리가 계속 사냥감을 잡지 못하면 우리는 같이 모여 있을 이유가 없어요. 따라서 어느 정도 능력이 있어야 같이 사냥할 수 있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위치를 조정하는 협업을 통해 좋은 사냥감과 사냥터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각화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에요. 예술을 사회적 도구로 가치 있고,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버려진 자투리 천을 활용한 ‘제로 웨이스트’ 제품
000간은 앞으로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가요? 지역의 공동 제작자들에게 가장 큰 두 가지 고민거리는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과 뒤를 이을 세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고 있어요. 첫 번째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오는 12월 론칭을 목표로 국내 IT 기업과 함께 공동 주문 방식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신창시장을 대상으로 재래시장의 새로운 경영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패션 전공자가 모두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졸업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청년 제작자 양성 과정’을 시작했어요. 현재 시범적으로 서울디자인재단과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의 도움으로 ‘경영과 기획 능력을 겸비한 제작자’ 10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간의 경험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면서 000간 분점을 만들 계획도 있습니다. 다만 이 분점에서는 그 지역의 청년 사업가가 그곳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하려고요.
물리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자신이 가진 미술적 재능으로 이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술가가 자신의 고민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는 ‘해결사로서의 예술가’를 꿈꾸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돈을 버는 일과 작가로서의 작업을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자신의 공간을 꾸려 가고자 하는 젊은 미술인들이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공간을 먼저 만드는 데 몰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리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자신이 가진 미술적 재능으로 이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술가가 자신의 고민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는 ‘해결사로서의 예술가’를 꿈꾸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돈을 버는 일과 작가로서의 작업을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