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이대형 cut 약 력//·1993  안양고등학교/·2000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학사/·2010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큐레이터학 석사//기 획//·2009  코리안 아이: 문 제너레이션, 런던필립스 드 퓨리 & 사치 갤러리/·2009~2010  코리안 아이/·2010~2013  코리아 투머로우전/·2010  기억의 콜라주, 베이징 소카아트센터/·2011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미술감독/현대카드 & 뉴욕현대미술 (MoMA)/큐레이토리얼 익스체인지 프로그램/·2012  WOMAD CODE(Woman Nomad Code), 홍콩 루이비통 에스파스창원조각비엔날레, 창원시 Solid Illusion: Korean Media Artsits, 베이징 중국세계트레이드센터/·2013  The Future of Museum, 미노 유타카박사 공동 기획, 21세기 가나자와재단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국제관 대구 아트 포럼: 정체성·미래·상상력, 대구예술발전소/·2013~2023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2014~2025  테이트모던&현대자동차 협력 프로젝트,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홀//기 타//·《파이낸셜》 뉴스 칼럼니스트/·2012 파워 리더 선정, 《포브스 코리아》/·역서: 사라 손튼 저, 『걸작의 뒷모습』

테이트모던(Tate Modern), LA카운티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블룸버그통신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이 정치한 각 점들을 잇는 글로벌 예술 네트워크의 중심에 한 기업이 있다. 한국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그 주역이다. 기업들이 다양한 문화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의 행보는 보폭과 목표 지점이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아트디렉터 이대형이 있다. 프랑스 문화원이 2014년 선정한 ‘올해의 세계 10대 글로벌 큐레이터’에 선정되기도 했던 글로벌 큐레이터 이대형은 현대자동차가 현대미술 후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영입한 인재다. 큐레이터학을 전공하고, 개인 기획사를 통해 전시 기획을 해 오던 그가 이제는 한 기업을 통해 세계 현대미술 플랫폼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큰 흐름의 동인자(動因者),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마케팅사업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차장)를 만나 보았다.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세계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 구축을 통해 세계 미술 생태계의 균형 형성과 동시에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먼저 미술관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영국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미국의 LA카운티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과 협약을 체결했죠. 그런데 이런 세계적 미술관들과 협약을 통해 근원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브랜드 마케팅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미술, 문화생태계 역사, 철학적 배경의 수직·수평적 좌표를 만들어 얼마나 깊이 있고, 폭넓게 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백남준, 서도호, 이불이 글로벌 스타가 된 과정에 한국보다는 외국 예술지원 시스템의 역할이 더 컸어요. 우리도 그런 지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에는 30~40대의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은 있으나 50대 이후 지원 시스템이 없어요.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지원 정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문화, 예술은 새로운 지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점이 있어야 더 많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 작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예술을 통한 기업 브랜드마케팅이 활발해진 만큼 예술기획자들의 대기업 입사에 많은 관심들이 집중되고 있는데 어떻게 현대자동차에서 일하시게 됐나요?
처음 외국계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입사 인터뷰 제안을 받았어요. 어느 기업인지 얘기를 안 해 줘서 그게 현대자동차인지 몰랐죠. 이후 인터뷰 때에도 면접관과 흔한 입사면접 질문이 아니라 사회,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토론을 했어요. 그리고 계약서를 쓸 때에서야 그 기업이 현대자동차그룹이란 걸 알게 됐죠.

그 헌팅회사에서는 어떻게 큐레이터님을 알고 있었을까요?
한국의 모 신문사의 추천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유망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해 왔던 노력을 인정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기업의 비전과 개인의 그것이 충돌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실 처음부터 현대자동차에서 무엇이 ‘핫’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찾았어요. 많은 글로벌 기업, 특히 자동차 회사들도 예술마케팅을 많이 하고 있는데 독일 BMW사는 “자동차는 움직인다”는 개념을 근간으로 키네틱, 퍼포먼스에 관한 모든 것을 다 합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쉽게 읽히진 않지만 큰 생태계를 보고 빠져 있는 부분을 채우려 하고 있어요. 그게 제가 계속 고민해 오던 부분과 맞아떨어지는 지점이었죠. 한국 미술을 수출하는 것,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 말이에요.


한 권에 15만 원정도 하는 책들을 다 구입할 수가 없는데 책은 읽고 싶어 20살에 손 걸레질 하는 일을 시작한 거죠. 고가의 책들이라 다 비닐로 포장되어 있어, 포장하기 전에 미리 읽을 책들을 빼놓고 읽고 난 후 포장을 했어요. 1년 동안 번 돈이 240만원 정도였는데 그 돈으로 책을 샀어요. 걸레질하고 무릎 꿇고 있는 일이 싫고 창피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어떻게 시각예술을 전공하게 되셨는지?
안양고등학교 미술반에서 조각을 처음 시작하고, 중학교 때는 회화를 했어요. 당시에 실기로 받는 상은 입선이었고, 글로 쓰는 것은 대상이나 특선이었죠. 그리고 미술 관련 외국 서적은 많은데, 그 안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미술 평론을 공부해 한국 작가를 소개하면서 문화를 수출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1993년에 홍익대 예술학과를 들어가자마자 학교 앞의 ‘아트인어스(ARTINUS)’라는 외국예술 서적 전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홍익대나 서울대의 도서관에 없는 책이 다 있었어요. 한 권에 15만 원 정도 하는 책들을 다 구입할 수가 없는데 책은 읽고 싶어 스무 살에 손걸레질하는 일을 시작한 거죠. 고가의 책들이라 다 비닐로 포장되어 있어, 포장하기 전에 미리 읽을 책들을 빼놓고 읽고 난 후 포장했어요. 1년 동안 번 돈이 240만 원 정도였는데 그 돈으로 책을 샀어요. 걸레질하고 무릎 꿇고 있는 일이 싫고 창피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죠.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 이불 <태양의도시>

▲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 이불 <태양의도시>


외국 서적이면 영어로 다 읽으신 건가요?
대학교 1학년 때 학사경고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모든 교과 서적을 원서로 읽었는데 문제는 남들 1권 볼 때 1페이지밖에 못 읽었기 때문이죠. 학사경고를 받고 선배들과 부모님께서 잔소리를 하셨지만, 계속했어요. 영어 공부하려고 군대도 카투사를 갔죠. 그런데 룸메이트가 책을 좋아하는데 돈이 없어 군에 자원했던 친구였어요. 밤새 찰스 디킨스 책을 읽고, 늦게 일어나곤 했죠. 그런 별종과 같이 책을 읽었어요. 문학적인 표현을 보면서 좋은 문구는 수첩에 다 적어, 퀴즈 내기도 매일같이 했어요. 제대하고 2학년으로 복학해 배운 영어를 활용할 방법을 찾았어요. 주변 대학원 선배들의 논문의 영문 초록을 작성했고, 4학년이 되어서는 유학 준비생의 학업 계획서를 써 주었죠. 또한 옥탑방에 살 때 좋은 선배가 돼 볼까 하는 생각에 자취하는 후배들에게 영어 과외를 하기도 했어요. 옥탑방에서 일주일에 3번, 밤 9-10시 사이에 ‘영어 글쓰기’, ‘단어 외우기’ 등을 가르치면서, 과외비로 먹을 것으로 받아 끼니를 해결하고요.

졸업 후에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했나요?
그렇죠. 먼저 한국의 대표적 미술관에서 팀장으로 추천돼 기회가 왔는데 그 미술관의 윗분이 모든 팀원이 다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유학을 안 다녀온 제가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일을 시작하지는 못 했어요. 이후에 유학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미술사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예술가들의 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MBA를 준비했는데 입학 상담 때 인문학 공부를 더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인문학과 미술사가 강한 컬럼비아 큐레이터학과에만 지원을 했죠. 제 학업 계획서는 기존 미국대학 제안서들의 패턴을 무시했어요. 일부러 ‘리더십’, ‘스마트’, ‘엑설런트’, ‘이해심’과 같은 좋은 형용사를 다 뺐죠. 형용사를 쓰지 않으면서 형용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글을 썼어요.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전에 아르바이트로 수없이 썼던 제안서들이 큰 도움이 된 거죠.

“시계는 밤 11시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독일에서 온 작가 리히터 쿤 씨는 프로젝션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화가 나 있고 영국에서 온 데이비드 작가는 천장 작업 설치 인력이 적다고, 천장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소리치고 있다. 나의 왼손은 스태프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나는 큐레이터이다. 나는 베이징, 도쿄, 베를린, 파리, 런던, 항상 길 위에 서 있고, 항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전시 오픈까지 남은 시간 동안 지쳐 있는 스태프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전시 오픈, 전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것이 첫 번째 문단이에요. 여기에서 이 사람의 ‘위기 관리’, ‘리더십’, ‘글로벌 네트워크’, ‘경험’,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연상할 수 있는 것을 썼어요.


Brilliant Ideas Episode #2 : 코넬리아파커

▲ Brilliant Ideas Episode #2 : 코넬리아파커


혼자서 예술 기획을 위한 단계들을 잘 밟아 오셨는데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셨던 분이 계신다면?
컬럼비아 대학교에 가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폴 오스터(Paul Auster) 때문이에요. 그의 소설에서는 인간의 어떤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나가지만, 그 안에서도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죠. 나를 포함한 어떤 삶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폴 오스터는 그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옥탑방 생활 때, 농구를 하면서 넝마주이 형님들이랑 친했어요. 하루는 그 넝마주이 형님이 리어카에 주운 폐지를 가득 채워 놓고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말도 안 되는 장면이었죠. 그래서 제가 다가가 “도대체 정체가 뭐요?”라고 물었어요. 알고보니 그는 평범한 집안의 미술대학 출신이고, 다만 여자 욕심, 돈 욕심도 없고, 끊임없이 책을 보면서 세상을 청소하다가 가는 것이 꿈이라는 거죠. 그것은 요즘 말하는 ‘루저(looser)’가 아닌 자신감과 소신에 차 자신의 행복함에 대한 이야기였죠. 저는 옥탑방에 사는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되게 부끄러웠어요. 그때 다짐했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 형님과 같이 자신감에 찬 눈빛을 잃지 말자고 말이에요. 세상을 바꿔 가는 리더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은 타협하기 쉬워요. 엄마, 여자친구, 친구, 사회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내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사람들 목소리가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버랩이 되는 거예요. 50~60대에 이르러 거울을 보며 면도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해요.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러져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이후에 어떻게 딛고 일어서는가가 중요해요. 젊은 청년예술인들이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후배 예술인, 기획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제가 쉽게, 고생 없이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큰 실패의 경험이 있었어요. 방송사, 신문사, 한 미술협회와 ‘블루닷아시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당시에는 미술시장이 좋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눈으로 컬렉션하지 않고, 귀로 컬렉션하던 때라 “큐레이터의 눈으로 컬렉션하세요”, “2년 뒤에 ‘핫’할 수 있는 작가를 선점하세요”라는 모토를 내걸고 큐레이터들이 더 젊고 실험적인 것들에 도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어요. 그때, 예산관리를 하던 파트너가 제 인감 도장으로 투자금을 다 인출해 가는 일이 발생한 거죠. 외국 작가들의 것만 결제를 안 해 주고 말이죠. 저는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인데 돈을 만져 보지도 못했어요. 결국 제 기획사는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2억 원 정도의 빚을 해결하는 데 1년이 걸렸어요. 이후 재기하는데 1년도 안 걸렸죠.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러져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살 충동을 느낄 만한 실패, 완전히 바닥까지 무너지는 실패, 누구의 인생에도 이런 때가 한번 온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이후에 어떻게 딛고 일어서는가가 중요해요. 젊은 청년예술인들이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황보유미 필자소개
황보유미는 국립발레단 기획홍보팀 차장을 거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전략사업실 공연유통팀 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객석』 및 월간, 일간지 등에 무용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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