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단국대 석좌 교수는 1996년 당시 영화 불모지였던 부산에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인으로서의 면모 뒤에는 항상 문화정책가로서의 역할이 함께했다. 1961년 24세의 나이에 공보부(문화공보부의 전신. 1990년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되며 문화공보부 폐지)에 입사해 70~80년대 1・2차 문화예술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문화예술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을 포함한 주요 문화시설을 조성했다.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창의적인 일을 많이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2013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이하 문화융성위)의 초대 위원장에 임명받아 8대 정책과제를 수립해 문화융성 정책의 큰 틀을 만들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의 ‘문화가 있는 날’,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출범, ‘아리랑의 날’ 제정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동대문미래창조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동대문의 문화와 관광, 시장이 함께 발전하면서 문화・관광 특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선영: 30여 년의 공직 생활 이후,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거쳐 초대 예술의전당 사장, 최근의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까지 약 50년간 변화하는 문화정책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시 어떠한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 및 사업을 추진했는지 궁금하다.


김동호: 1970년대 초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기반이 약했다. 1972년 문화예술 기반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내가 주도해서 1차 문화예술진흥 5개년 계획인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했다. 이때 세워진 것이 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고,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펼치기 위해 극장의 티켓 수익료에 10%를 부가해 조성한 것이 문화예술진흥기금이다. 2차 문화예술진흥 5개년 계획은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과 동시에 추진되었다. 80년대 예술의전당, 독립기념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세워진 것도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후에는 한국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남양주종합촬영소,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었다. 현 정부에 와서는 문화융성을 4대 국정 기조로 설정하고 2013년 7월 25일에 문화융성위를 발족했다. 지난 2년 동안 추진해 온 문화융성의 기조는 문화의 두 가지 측면으로 봐야 한다. 첫 번째는 문화가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문화 창작 활동, 문화 향수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다. 다른 측면은 문화와 IT를 접목해 새로운 문화산업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최근 개설한 상암동의 문화창조융합센터, 관광공사가 이전한 자리에 세워진 문화창조벤처단지이다. 앞으로는 문화창조아카데미와 K-Culture Valley, K-Experience, K-POP Arena가 완공될 예정이다. 이렇게 4개 기관을 둔 이유는 상호 융합해서 기획, 제작, 소비까지 문화산업을 일관되게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김선영: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임명되며 4년간 많은 일을 했다. 특히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전산망을 구축하는 데에도 관여했다. 이런 측면에서 공연과 시각예술에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 미술품 거래정보 온라인 제공시스템이 있는데, 이것이 더 잘 활용되고 운영되기 위한 방안에 관한 조언을 부탁한다.


김동호: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전산망이 구축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영화를 수입 및 배급하는 측과 상영하는 극장 측의 입장이 대립하는 식으로 이해관계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극장이 수입구조라던가, 티켓 판매가 명료화되지 못한 점에서 오는 공정성의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잘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은 양측의 합의로 전산망이 구축되었고, 이후 통계가 명확하게 집계됨에 따라 합리적이고 현대화될 수 있었다. 연극을 포함한 공연 분야에서도 공연물을 제작하는 측과 상연하는 측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가능할 것이다. 독점 체제이다 보니, 불합리한 점들이 노출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티켓 판매처도 합리화시킬 필요가 있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다.

김선영: 부산국제영화제가 만들어질 당시 부산은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당시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이제는 명실공히 아시아의 중요한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공연계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개최하는 공연유통마켓 ‘서울아트마켓’이 있다. 앞으로 이 행사를 국제적으로 확대해 나아갈 계획인데 이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동호: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하는 공연물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엄선된 수준의 공연물들이 보여 지고 동시에 거래되고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질적인 수준 향상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해외의 수준 높은 공연물이 계속해서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수준 높은 예술이 서로 교환되는 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면 국제적인 마켓이 될 수 있다. 물론 해외 공연물이 오게 되면 국내 공연계에서 경계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국내 관계자들이 그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래야지 한국 공연물도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계에서 처음 스크린 쿼터제를 한다고 했을 때 한국의 감독들이 삭발식을 하며 반대했지만 점차 개방하면서 경쟁력을 키워나가게 됐고, 종국에는 매년 한국 영화 시장 점유율이 50~60퍼센트까지 차지하는 수준에 올랐다. 해외 우수한 공연물과 국내 공연물이 한 장소에서 거래될 때 한국 공연계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선영: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문화융성위의 초대 위원장을 지내며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다-문화가 있는 삶’ 8대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그 과정을 알고 싶다.


김동호: 8대 과제를 선정하기 전에 문화융성위 위원장에 임명된 후, 8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전국의 광역시도 단위로 다니면서 문화예술계 원로들과의 오찬과 간담회, 지역문화예술계와의 토론회를 했다. 동시에 서울에서 분야별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미술시장의 유통과정 현대화와 합리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필요한 항목, 공연분야의 통합전산화와 유통구조의 문제 등이 도출되었다. 영화 역시 제작-투자-배급-상영의 구조가 대기업에 의해 수직계열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해, 저예산 독립영화가 제작되더라도 상영-배급될 수 있는 유통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다수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의견 수렴을 통해 당장 해결해야 할 것으로 8대 정책과제를 선정했다. 그러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것이어서 한 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김선영: 문화도 20~30년 전에는 산업이란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예술의 산업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동호: 양쪽 측면이 있다. 예술 자체는 상상력과 창조력이 바탕이 된, 즉 순수한 것이다. 예술은 예술대로 진흥시켜야 한다.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이 동반된 초중고의 예능(藝能) 교육이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융성위는 교육부와 연계해서 인문정신 문화에 대한 진흥 시책, 예능 교육에 대한 시책을 병행해서 추진하고 있다. 예능 교육은 아직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내가 융성위에 있을 때는 초중등학교의 미술과 음악이 선택과목이었는데 거기에 연극을 추가했다. 또한 무용을 선택과목에 넣기 위해 추진해오다 무용 정교사 자격증을 주는 것으로 일부 해결했다. 이런 식으로 예능 교육과 인성개발,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더 활성화시킨 후에 여기서 발생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첨단 과학과 접목시켜서 산업화시켜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각각 독립된 것으로서 2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선영: 최근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앞으로 민-관-학 협력을 통해 동대문 지역 발전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듣고 싶다.


김동호: 아직은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동대문 일대의 문화 관광 경제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방향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침체되어 가는 대학로와 낙산에 작은 공연장, 도서관 박물관 등이 한두 개씩 생기고 있다. 그리고 서울 성곽의 문을 지나 영세한 봉제업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창신동에는 마을 방송국이나 도서관 등 몇 개의 작은 문화공간들이 있고, 특히 그곳에는 백남준 생가와 박수근 연고 가옥 등이 있다. 이러한 곳을 잘 보존하거나 정비해서 문화관광 자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와 관광을 접목시키는 프로젝트들이 여러 개 있는데 서로 제휴해서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촉진시키면 동대문 일대의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선영: 마지막으로 《weekly@예술경영》 독자들이기도 한 예술경영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동호: 예술경영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1996년 중앙대학교에 예술대학원이 설립되면서 예술경영 과목이 신설되었고 나는 그곳에 초대교수로 갔다. 당시 예술경영은 예술 기관을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좁은 의미의 예술경영을 지칭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예술경영은 굉장히 광범위해졌고 영역이 확대되었기에 예술 자체를 진흥시키는 것과 예술을 담아내는 시설에 대한 운영, 예술경영을 통해 문화 자체를 진흥시키는 부분까지를 포용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초학문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서 앞서가는 예술인, 경영인이 되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김동호

사진촬영_곽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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