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사람들’은 예술경영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미 있는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예술경영학회, 문화다움,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8인의 예술경영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 예술 현장의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나 이론가라면, 한 번쯤 아라리오와 그곳의 경영자인 김창일 회장의 예술적 관점이나 미적 노선, 비전 등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글로벌한 동선, 김 회장의 ‘아방한’ 현대미술품 컬렉션, 청년작가들에 특정된 레지던시, 그리고 최근의 미술관 개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 장에서 그간 아라리오와 김 회장의 행보는 주목할 만한 것임이 분명하다. 김창일 회장을 강연자로 초청했을 때, 예술경영학회의 입장은 바로 그런 주목할 만한 예술경영인으로서의 그였다. 하지만 이 강연의 대담자거나 질의자로 나섰을 때,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현대미술의 특화된 컬렉터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한 그의 미학적 관점과 예술론, 그리고 그를 그토록 적극적이게 하는, 즉 안으로부터 촉구하는 어떤 ‘내적 필연성’ 그 일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강연은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탈바꿈된 구 공간사옥에 마련된 아담한 계단식 공간(소극장)에서 진행되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2013년 공간사의 사옥을 경매로 구입해, 김 회장 자신이 35년 동안 수집한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그 개관 과정이 아라리오 측으로서는 평탄치만은 않았을 듯하다. 김수근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간사옥을 건축박물관으로 전환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기도 하고, 김수근문화재단이 나서 공간사옥 보존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상업 갤러리의 운영 주체가 미술관을 운영할 때 야기될 수 있는 개연적인 상황들, 즉 갤러리의 영리성이 미술관의 공공성을 침습하는 것과 관련된 경계와 의구심이 일각에서 제기되지 않았을 리 없다. 이런저런 외부의 시선을 불식시키는 길은 아라리오 뮤지엄과 김 회장의 향후 행보와 무관할 수 없을 터이다. 더 긴밀하게 뮤지엄의 공공적 성격을 자각하고, 그에 부응하는 의미와 실천들을 생성해 냄으로써 한국미술과 사회의 공공적 기반을 견고히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그 길일 것이다. 김창일 회장도 직원들에게 늘 그 점을 당부하고 있다고 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 아라리오 뮤지엄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 아라리오 뮤지엄


앞서 말했듯,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전문화된 컬렉터로서의 그였기에, 문답의 방향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영향을 받았거나 평소 마음에 두는 어떤 철학적 입장에 대해 물었는데, 사상이 미적 취향을 구성하는 토양이 되고 컬렉션의 틀을 형성하는 부표가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은 이러한 중요한 확인을 위해 필요한 질문이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김 회장은 자신에게 선물로 주어진, 늘 감사해 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과 아내와 예술이 그것이라 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나는 그것들을 ‘존재 너머’, ‘일상의 삶’, ‘존재 내적 세계’로 번역해 들었다.

예술이 어떤 면에서 김 회장의 삶을 그토록 풍요롭게 하는가에 관련해서는 하나의 의미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예술이 그에게 ‘자신’을 확인하는 어떤 정체적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창작 작업을 할 때 외부의 간섭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편안함, 즉 비로소 자기 자신에 안착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내 삶의 모습이 나의 그림 자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의 연장일 것이다. 컬렉터로서 그의 소신, 원칙과 선택의 기준에 대해 물었을 때, 이 점은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현대미술과 현대미술품의 질(質)을 선별하는 그만의 고유한 접근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촉’, 그러니까 ‘무엇이 정말 좋은 작품인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직관을 따르는 것이 그것이라 했다. 자신의 선별과 선택을 정당화하는 유력한 근거는 오로지 자신으로부터 오는 내적 지침일 뿐이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촉이 학습된 이론으로부터가 아니라 현장과 경험으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론화하는 것은 이론가의 일이지 컬렉터의 일은 아니다”는 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특히 최종적인 구매는 전적으로 그 지침에 따라, “정말 좋은 작품”으로 가름되는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이 자신의 컬렉션 원칙이라고 했다. 확신이 드는 것을 구매하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가격도 오른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했다. 아라리오 미술관에 구매를 담당하는 별도의 팀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촉, 내적 지침을 따르는 현대미술 컬렉션의 노하우를 언급하면서, 두 개의 ‘꿀팁’을 서비스로 제공했다. 하나는 ‘절대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사지 말 것!’, 나머지 하나는 ‘좋은 작품은 항상 찾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 좌. Kohei Nawa < Manifold> 2013
우. Damien Hirst < Charity> 2002 (사진제공: 아라리오 뮤지엄)


김 회장의 ‘yBas’ 컬렉션이 화제에서 누락될 수 없다. 그는 yBas의 발굴자이자 컬렉터이고 후원자이기도 한 찰스 사치와 비교되곤 하지 않던가. 사치에 대한 그의 평가는 흥미로웠다. 그에게 사치는 yBas 작가들을 발굴해 2000년대 영국 미술과 글로벌 미술을 부흥시킨 장본인인 동시에 컬렉션을 마구 팔아 영국과 글로벌 미술계를 혼란스럽게 휘저어 놓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다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yBas 작품들의 가격이 폭락한 것과 그로 인해 그 작가들의 작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 역시 상업적인 요인들로 인해 특히 현대미술품의 가치가 과장되거나 포장될 수 있으며, 일반인들은 그런 가치에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포장된 의미와 가치의 거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렇기에 더욱 옥석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라면, 나로서는 구조적인 이해를 부분적으로라도 포함시킬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김창일 회장이 말하는 촉을 지나치게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현대미술(품)의 가치가 국내 정치·사회적 상황, 글로벌 자본의 흐름, 미디어와 마케팅 등, 다양한 힘의 교차와 결집의 맥락 안에서 결정되어진다는 것, yBas의 경우라면 찰스 사치의 발굴과 지속적 후원, 제이 조플링의 딜러십, 테이트 갤러리 같은 관료 시스템의 긴밀한 협력의 결과물이라는 측면을 감안할 것 등이겠다. 어떻든 내적 자질로서의 촉을 통해서건 구조적 해석의 도움을 통해서건, 우리의 미적 감식안이 더 섬세해지고 엄격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김창일 회장은 강연과 질의응답 내내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의 신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좋은 작품은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넘어, 인간을 선(善)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그의 어조에선 미적 의미와 화폐적 가치 사이의 어떤 긴밀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예술경영인의 당당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심상용 필자소개
심상용은 1961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85, 198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회화와 서양화를 전공했다. 1989년 도불해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와 D.E.A.를,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1994)를 취득했다. 『예술, 상처를 말하다』, 『시장미술의 탄생』, 『속도의 예술』, 『천재는 죽었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현재 광고 없는 전문지 《계간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의 발행과 편집에 관여하고 있다. 1998년 이후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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