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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형재와 홍은주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든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10여 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갖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셈이다. 그동안 그들은 각자 이런저런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면서 독립을 위한 나름의 비법을 익혔고, 그들이 작업한 다양한 결과물은 각계각층에서 회자되었다. 또한 이들은 회사 근무와는 별개로, 직업적인 디자이너로서 독자적인 프로젝트도 지속해 왔다. 작가로서 출발점이 되었던 (이하 <안양>) 이래, 연구와 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여러 기획전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2009년 발간했던 비정기 간행물 『가짜잡지』는 디자이너의 고정된 역할에 의문을 던지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디자인이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다중적 시점으로 읽힐 수 있도록 고심해 왔다. 틀에 박힌 디자인과 틀에 박힌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지양했던 그들의 첫걸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두 분 모두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그 전공을 살려 현장에 입문하였습니다. 그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김형재(이하 김): 디자인과 학생들은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공 내에서도 어떤 분야에 취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디자인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어서 편집 디자인을 선택하든 광고를 선택하든 중간에 바꾸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프로젝트는 디자이너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대해 조사·연구한 후 그것을 재구성해 최종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춘 디자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죠.
2006년 작업 <안양>을 두 분이 협업하게 된 계기이자, 두 분이 나름대로 규정하고 있던 디자이너의 기준을 바꿔 놓은 프로젝트라 말하셨는데,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셨나요? 김: 박해천, 최성민 선생님께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셨어요. 그때 저는 첫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홍은주 씨는 아직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죠. 이 프로젝트는 디자이너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대해 조사·연구한 후 그것을 재구성해 최종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춘 디자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죠. 이후에도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리서치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홍은주(이하 홍): 당시 저자로서의 디자이너, 작가로서의 디자이너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 말이 멋있어 보였음에도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 개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된 거예요.
2009년 두 분이 협업하면서 비정기 간행물 『가짜잡지(Gazzazapzi)』를 발행했습니다. 두 분이 직접 기획부터 편집까지 도맡았던 이 잡지는 ‘아티스트 북’에 가까운 형식인데요. 이 잡지가 어떤 의미를 생산했는지 궁금합니다. 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정체불명의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디자인인가? 잡지를 만드는 편집인가? 컬렉티브인가? 공동체를 만든 것인가? 미술 활동인가? 독립 문화인가? 여러 가지 의미를 붙일 수 있겠지만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우리의 교란책이었다고 할까요? 무정형의 맥락을 생산하는 작업이 흥미로웠습니다. |
▲ 김형재 |
주로 책이나 전시 관련 출판물 위주로 작업하면서도 웹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웹 디자인과 출판 디자인의 프로세스는 많이 다를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김: 대학에서 인쇄나 그에 관련한 여러 툴을 다루는 법, 사진, 영상 등에 대해 배웠죠. 그런데 커리큘럼에 웹 디자인은 없었어요.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배운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하나 익혀야 했죠. 인쇄물 중심으로 일하다가 웹 디자인은 취미로 한 것인데 일이 하나둘씩 늘어난 거예요. 홍: 웹 프로그래밍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니 처음 진입하면서 어려운 것이 있었죠. 하지만 출판 디자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웹 디자인을 할 때도 기존의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우리가 봤을 때 좋거나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했어요.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네 페이지 이런 식으로 작업이 늘었던 것 같아요.
직접 전시 기획을 하면서, 여러 전시에 작가로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이처럼 작업 반경을 확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하는 데 있어 특별한 계기나 이유는 없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안양> 프로젝트나 『가짜잡지』 같은 첫 활동이 그런 기회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고, 최근 더 독립적으로 보여 줄 기회가 많아진 거죠. 이를테면 동료들과 함께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아름다운 책 2010>이라는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고, 공간 해밀톤에서의 라는 전시에서는 『가짜잡지』의 내용을 각색해 해적 라디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구체적 주제가 있는 전시뿐 아니라 우리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개인전에 대한 요청도 있었어요. 두렵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잘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
▲ 홍은주 |
직업적인 디자이너로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던 일이나 네트워크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홍: 디자인 회사에서의 경험이 중요했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전 직원이 5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는데 편집, 패키징, 로고 등을 만드는 그래픽 회사였죠. 작은 스튜디오이다 보니 스스로 결정하고 작업할 기회가 금세 주어졌고, 그래서 무엇이든 빠르게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조직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팅할 때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 저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5년가량 일했는데, 이곳은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때 했던 작업 중 일부가 지금의 포트폴리오까지 연결되는 경우가 있어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죠. 또 처음 박해천 선생님과 작업한 이후 그런 식의 조사·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어요. 디자인리서치 학교에 튜터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후에 제가 요청받은 프로젝트를 그런 방법으로 꾸릴 수 있었죠. 그리고 저에겐 건축가 그룹 SOA나 옵티컬레이스가 큰 영향을 끼치는 네트워크인 것 같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전 직원이 5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는데 편집, 패키징, 로고 등을 만드는 그래픽 회사였죠. 작은 스튜디오이다 보니 스스로 결정하고 작업할 기회가 금세 주어졌고, 그래서 무엇이든 빠르게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디자인 철학이라고 할까요,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시나요? 홍: 가장 중요한 것은 콘셉트에 따라 작업에서 타이포그래피가 되기도 하고 색상이 되기도 하고, 매번 다른 것 같아요. 또 생각한 것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내는 일이다 보니 제작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작된 것이 마음에 들 때, 결과물을 받은 사람이 좋아할 때 행복하죠. 짧은 순간이지만 그것을 동력 삼아 계속할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김: 저는 매번 작업할 때마다 지금까지 나온 디자인이나 우리가 이전에 했던 디자인과 겹치지 않도록 하려고 해요. 최대한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하죠. 지금은 하나의 독창적인 작업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스마트폰 하나를 가지고서도 서로 다른 곳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동시에 펼쳐 놓을 수 있고, 다른 시대의 것들도 바로 소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의 주제나 주어진 내용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기존 작업이나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작업은 하나의 개념이나 의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좌표 안에서 다른 작업들과 관계 맺기 때문에 다중적인 시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점을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 <확률가족>(2014) 클라이언트: 아르코미술관, 즐거운 나의 집 展 미디어(포스터, 책, 웹사이트…): 설치 *옵티컬레이스: 박재현과 협업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기존의 틀을 벗어났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우리가 입학할 때인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는 스타 디자이너가 많았어요. TV에도 자주 나오고 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런데 졸업할 때쯤 디자이너상이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디자인 산업 자체가 많이 위축되었고, 매체나 시장 상황이 변하는 와중에 저도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흥미가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안양> 리서치 작업, 혹은 『가짜잡지』 등 기존의 틀이나 관습적인 방법에서 벗어난 작업들은, 새롭기도 하고 잘 맞았기 때문에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이런 활동이 흥미로웠고 운 좋게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시작했던 것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면 좋을지가 더 고민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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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이브 플랫폼>(2015)클라이언트: 국립현대무용단 미디어(포스터, 책, 웹사이트…): 포스터 |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선배로서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요? 김: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세대부터 그 이전과는 교육 환경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우리는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갖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최근에는 졸업하자마자 프로젝트 활동을 해서 주목받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만의 전략을 가지고 문화적 생산 활동을 하면서 디자이너의 직능도 함께 가진 모델들이 많아졌죠. 디자인 산업이 침체되고, 그에 따라 기존의 업체들이 사라지면서 일 자체도 줄었지만, 문화적 생동력이나 생산적인 면에서는 비록 작은 규모일지언정 이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활발한 작업들이 진행되는 것 같아요. 기존에 누군가 했던 것을 바탕으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변주를 하는 것도 가능해졌고요.
여러 활동을 해 오셨지만,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 디자인사(史)와 관련된 전시 혹은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지만 아직은 현실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서 마음에만 품고 있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듯 작업해 왔다면 앞으로는 좀 더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모든 작업은 하나의 개념이나 의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좌표 안에서 다른 작업들과 관계 맺기 때문에 다중적인 시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점을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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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양희는 경성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화기획, 행정, 이론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대안공간 반디 큐레이터, 『경향 아티클』 기자로 일했다. 현재 아마도예술공간의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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