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와 축구, 운동을 좋아하면서 그림도 잘 그리던 재주 많던 여고생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한다. 자신이 만든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공연, 이벤트, 무대연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해야 하는 프로모션 전문가로 들어선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대통령 취임식, 건군 60주년 기념식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지금은 2018년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전공은 예술을 이해하는 해석의 출발점이다

짧게 자른 머리, 약간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강단 있는 표정, 하얀 재킷 위에 2018년 평창올림픽의 배지가 반짝인다. 흡사 당장 방송 부스로 들어가서 스포츠 캐스터로 활약해도 될 만한 인상이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김찬휘 팀장은 세계인의 축제가 될 평창올림픽에서 성화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를 들고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한국인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곳곳을 뛰어 소개할 거리를 찾아내고, 지자체의 담당자들을 설득해서 축제의 장으로 이끌어야 하므로 매일매일이 미팅의 연속이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은데 꼼꼼함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배웠다.

UP: 학창 시절 운동부에 있다 갑자기 미술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는데,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찬휘: 고등학교 때 밤을 새워서 정밀 소묘 숙제를 해 갔어요. 학원을 다닌 적도 없고, 미술을 배워 본 적도 없었는데 곧잘 했던지 선생님께서 언니가 해 준 게 아니냐, 부모님을 만나 봐야겠다며 칭찬을 하셨어요. 칭찬을 처음 들어 봤어요. 미술을 한다면 순수 회화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디자인 분야가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죠.

UP: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김찬휘: 프로모션을 두고 종합예술이라 할 만큼 이미지를 실현하는 능력이 관건이에요. 콘셉트를 잡고 무대 제작, 현수막, 포스터, 영상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통일되게 시각화해 내는 것이 중요한데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니 잘 할 수 있었죠. 더욱이 프로모션을 하면 큰 것은 잘 챙기지만 작은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일의 승패는 보통 디테일에서 나죠.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미세하게 자르고 단편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던 점도 장점으로 발휘되는 것 같아요.

김찬휘 팀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곳은 폰트를 만드는 회사였다. 패키지 디자인도 병행했으므로 딱 전공에 맞는 일이었으나, “피가 너무 끓었어요”라는 말처럼 몸을 움직일 만한 일이 필요했다. 무대디자인은 디자인 능력을 발휘해 무대를 만들고 사람들을 세우는 활동적인 분야이고, 시각디자인과 컴퓨터를 결합해 기술적으로 변형이 가능하기에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무대디자인 공부를 하고자 떠났다가 3개월 만에 사고가 나서 돌아오게 된다. 자신감을 잃은 상태로 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찾은 직장이 프로모션 기획사였다.

UP: 왜 프로모션 기획자를 꿈꿨나요? 어떤 분야인지도 모를 때부터요 김찬휘: 저도 왜 그랬는지 요즘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대학 시절에 명함을 하나씩 만들어 줬는데 거기에다 프로모션 기획자라고 적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뜻도 잘 몰랐으면서 그냥 멋지게 보였나 봐요. 막연히 이 분야에서 일할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무대나 판을 만들어서, 그 위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대통령 취임식을 성공적으로 해내다

김찬휘 팀장이 10년간 일한 ‘연하나로 기획’은 국내 굴지의 프로모션 회사이다. 관행적으로 대기업이 진행하던 대통령 취임식을 2013년에 중견 기업이 처음으로 치러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김 팀장은 이 회사에서 전략 부장 및 프로모션 부장을 역임하며, 17대 대통령 취임식과 삼성전자의 신입사원 하계 수련대회, 건국 60주년 기념행사 등의 대형 공공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

사실 프로모션이란 분야는 멀티플레이어를 원한다. 월화수목금금금 일을 해야 할 만큼 업무 강도가 높다.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고 무대, 영상, 공연, 현장 스태프 등 다양한 팀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 강도에 비례하는 성취와 행복을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스태프들 대부분이 남자인 이곳에서 멋진 여자 선배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전 리허설 중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사전 리허설 중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UP: 프로모션 분야에서 일하며 여자라서 힘들었거나 좋았던 점이 있나요 김찬휘: 야외에서 일할 때 땡볕 아래 서 있어서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어요. 프로모션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아무래도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처음에는 깨기가 힘들었어요. 여자들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선입견이죠. 그러나 일을 하면서 여자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예를 들어서, 클라이언트와 대화할 때, 영업용 언변이 아니라 공감을 이끄는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문제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았어요. 오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UP: 자신이 빛나는 직업은 아닌데, 어떤 점이 힘든 일을 견디게 하나요 김찬휘: 맞아요. 프로모션이 예술가로서 본인이 빛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그 대신 남이 빛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니 이것도 나름 의미가 있어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힘들 때도 있고 안 하고 싶을 때가 있죠.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강해진 면이 있어요. 챙겨야 할 것은 많고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닥쳐도, 참을 ‘인’을 새긴다는 마음으로 견딥니다.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는 지표가 되니까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갈망이 있어요.

그렇게 10년을 일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평창올림픽의 선정을 앞두고 IOC 위원단이 실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영접, 평창 방문과 실사, 기자회견 등의 일정을 완벽하게 준비했다. 6개월 전부터 IOC 위원의 성향과 출신 국가 등을 치밀하게 리서치하고 준비했으니 평창올림픽의 유치에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선정되었을 때 눈물이 났어요.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다면, 꼭 거기서 일해 보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평창이 동계올림픽의 장소로 선정되고, 조직위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지원했어요.”

30년 만에 한국을 찾아온, 세계인의 축제를 위해 일하다

김찬휘 팀장은 중고등학교 시절 축구부와 농구부에서 서클 활동을 했다. 스포츠가 가진 생명력과 그 속에서 하나 되는 힘을 알고 있으므로 평창올림픽은 더 큰 기회와 의미로 다가온다. 더욱이 평창올림픽은 88올림픽 이후로 개최하는 첫 올림픽이니 다시 한번 한국인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올림픽 위원회의 여러 가지 업무 중에서 김찬휘 팀장이 맡은 일은 성화 봉송이다. 처음에는 왜 이 일이 주어졌을까 의아했지만 지금은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채화해 온 성화가 101일 동안 전국 곳곳을 달린다. 성화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존재인데, 성화가 도착할 때마다 각 지역의 우수한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진다.

‘전국을 다니면서 최적의 소재를 발굴 전국을 다니면서 최적의 소재를 발굴

UP: 성화 봉송이 의미 있는 행사가 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김찬휘: 전국에는 소실된 문화유산이 많은데 미디어 파사드를 이용해 복원해 보는 것도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귀동냥, 눈동냥하고 애정을 쏟아야 성공할 수 있으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성화봉송팀 팀장이 되고 나서 안 가 본 지자체가 없어요. 찾아가서 관계자들의 협조를 구하면 처음에는 시큰둥하다가, 그 의미를 듣고 나서 “우리가 뭘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며 눈빛이 변할 때 일하는 맛이 납니다.

UP: 올림픽, 성화는 한국,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김찬휘: 평창올림픽의 슬로건은 “하나 된 열정”입니다. 88년에 ‘손에 손잡고’를 불렀을 때 올림픽이 가진 힘은 대단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것이 성장을 위해 놓쳤던 것들에 대한 반작용을 보여 주는 지표 같아요. 우리 사회는 하나 되는 힘이 필요합니다. 성화 봉송의 캐치프레이즈는 빛나는 잠재력을 찾아 떠나는 환희의 여정으로, 어두운 곳을 찾아가 잠재력을 키우고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김찬휘 팀장이 프로모션을 선택한 이유는 ‘남을 위해서 살고 싶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기업 시상식에서 70대 노인들이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어요. 제 일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행복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으니 현장에서 저도 모르게 따라 울었어요.”

이타성은 자신이 빛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전력 질주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녀는 이벤트 프로모션을 통해, 성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불꽃의 뜨거움과 따뜻함을 전한다. 불을 인간에게 줬던 프로메테우스의 마음처럼 말이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직업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남을 위해 노력하면 언젠가 남이 나를 위해 도와주게 되어 있어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지금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찬휘 팀장 프로필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前 ㈜연하나로기획 프로모션본부 부장 (17대 대통령 취임식, 삼성신입사원하계수련대회,
건군 60주년 경축 행사, 2014 평창 IOC 실사프로그램 등)
-現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성화봉송팀장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