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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노래하도록 한편에서 피아노를 칠게요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Ⅱ]김승연_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팀장김승연 팀장은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줄곧 예술 관련 기관에서 행정・교육 담당자로 살아왔다. 독주자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기보다는, 사람들이 무대에서 노래 부를 수 있도록 한편에서 묵묵히 반주를 넣는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예술가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반주를 넣고 있다.
피아노는 어릴 적 잠시, 재능이 있다고 인정받게 한 존재였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으니 계속 해 보라는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튀지 않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 피아노를 접었다. 그런데 재수를 하던 시절, 갑자기 피아노가 다시 치고 싶었다.
몇 년간을 놓았던 피아노가 아닌가. 입시를 앞두고 몇 달 만에 열심히 쳐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까지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의자에서 먹고 잤어요. 손가락에 껍질이 벗겨졌는데 뭔가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을 줬어요.” 그렇게 결심과 실행으로 하나의 문을 통과했지만, 인생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UP: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예술경영, 기획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요 김승연: 다행히 음대를 갔어요. 근데 학교를 들어와서 보니, 저는 노력형이었는데 음악가로 성공하려면 천재성이 너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죠. 우리나라 음대는 독주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이라서 다른 걸 찾아봐도 길이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대학교 3학년 때쯤 예술경영, 음악치료 분야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됐어요.
UP: 전공을 바꾸고 새로운 분야를 익히기 위해서 어떻게 공부를 했나요 김승연: 새로운 분야이니 배우는 게 우선이었어요. 졸업 후 6개월간 일하면서 모은 돈을 털어 넣어서 대학원에 입학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에서 문화정책・행정・기획 분야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지만 부모님은 계속 피아니스트로 남아 주기를 바라시고 유학을 가라고 하셨던 터라 반대가 심했어요. 전공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생을 놓고 보니 제게 맞는 길을 찾아온 것 같아요. 최고였다기보다는 최선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대중문화예술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인턴과 부천문화재단을 거쳐 고양문화재단에 취직하게 된다. “지역 재단들이 대부분 극장 운영을 위해 설립되고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지역 재단들은 교육 사업을 하나의 주요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때였어요.” 어울림누리가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고양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람을 뽑았고, 그곳에 입사해 밑그림을 세팅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사업이 막 움트려고 할 때라, 모내기를 끝낸 오월의 농부처럼 해도 해도 일은 줄어들지 않았고 여유를 부릴 시간 없이 일했다.
UP: 신생 재단에서 어떤 문화예술교육사업들을 진행했나요 김승연: 재단에서 관객개발을 위한 교육사업보다는 공교육과 연계된 공적인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주로 했어요.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교육과정과 연계할 수 있는 연극, 미술, 미디어 장르의 교육과정을 예술가들과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고, 교사 연수도 진행하고 그랬어요. 2년 좀 넘게 근무했는데 그때가 지금 돌이켜 보면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젊었을 때라서 엄청 열심히 했죠. 그때는 그냥 무턱대고 가서 부딪쳐 해 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이후 문화예술교육사업에 관심을 가져 주던 상사를 따라 구로문화재단(구로아트밸리)으로 이직했다. 구로는 참 신기한 곳이었다. 구로공단, 미싱, 공장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지만 지금은 디지털단지가 들어서고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공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구로는 아직도 서울 외곽의 못사는 동네였다. 지역 신문에서 구로 지역의 학생들이 다리 건너편인 목동에 산다고 답을 한다는 조사가 보도되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구로였다. “왜 부끄러워할까. 구로가 있었기에 풍족한 지금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학생들은 모르겠구나.”
UP: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연극 공연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김승연: 아이들이 구로공단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고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로공단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연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뜻을 같이 하는 교육연극 단체가 있어 같이하게 되었어요. 구로공단의 산증인들을 만나 인터뷰해서, 구로공단의 이야기를 담은 교육용 연극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60명 정도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서 연기자들과 함께 상황극을 하며 1970년대로 가 보는 거죠. 그 속에서 노동의 가치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이 연극은 비난과 성찬을 함께 받았다.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왜 이런 걸 보여 주는 겁니까?”라는 비난과 “아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알게 해 주니 감사해요”라는 말이 연극이 끝나면 오갔다. 무대에 올라간 학생들 중 한 명이라도 즐거움이나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걸로 족했다.
이후 문화재단을 떠나 예술경영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제가 계속 지역 문화재단에서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중앙의 공공 기관에서 좀 더 국가 정책과 맞닿아 있는 사업을 해 보고 싶었고 교육 사업을 계속 진행하면서 인력 양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담당하는 과장 자리가 나서 지원했고, 3년 전 이직하게 되었다.
UP: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교류사업팀 팀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김승연: 저희 팀에서 담당하는 사업은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NEXT)’과 ‘우수프로그램 권역별 순회사업(트래블링 코리안 아츠)’입니다. ‘NEXT 사업’은 국제문화교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정책 사업입니다.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사업’은 2014년부터 진행한 사업으로 한국의 우수한 공연, 전시 프로그램을 해외에 소개하여 한국 문화예술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사업입니다. 전시, 공연 프로그램을 해외에 소개하고 또한, 현지 전문가들에게 한국의 공연과 전시의 다양한 현장을 보여 주는 초청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UP: 지역 재단과 중앙 부처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승연: 중앙 부처에서 업무가 처리되는 시스템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갈망이 항상 있었어요. 국가 중앙의 정책을 시행하니 정책의 방향성을 보는 힘이 커졌지만 현장과는 멀어진 게 아쉽죠. 어떤 것이든 장단이 있어요. 여기에 있다 보니 알게 됐어요. 저는 제가 준비한 판 위에서 누군가 즐거운 에너지를 분출하면, 그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낀다는 걸요.
UP: 행정・교육담당자로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있어야 할까요 김승연: 자신이 빛나는 일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 도와주고 준비를 하는 일이니 화려하지 않더라도 성실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또한 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현장에서 실현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이견을 좁혀 최적의 결과를 내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승연 팀장은 본인이 피아노과 출신이라서 특별히 업무에 도움 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천생 반주자였다. 대학 시절에도 피아노 반주자로 활동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누군가 노래하도록, 춤을 추도록 한편에서 준비하고 돕는 사람. “당신이 노래하도록 한편에서 피아노를 칠게요. 무대 위에서 당신이 즐겁다면,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걸 바라보는 제가 더 기쁩니다.”
그냥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피아노를 전공했으니 저도 피아노 실기만 생각했었죠. 그러나 실기만을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인생UP데이트 프로젝트처럼 선배의 삶을 통해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어떤 기회든 잡은 후 최선을 다한다면 같이 일했던 선배건 동료건 나중에 나를 또 찾아주고 같이 일하자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아요.
김승연 팀장 프로필 - 서울시립대학교 음악학과_피아노
-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문화정책·행정·기획 석사
- 前 부천문화재단 문화정책실 근무(인턴)
- 前 고양문화재단 교육사업팀 근무
- 前 구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근무
- 現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전략사업실 국제교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