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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바꾸는 문화공간을 만들다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Ⅱ]김상민_복합문화공간 에무 팀장김상민 팀장은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프리랜서 무대 디자이너와 조명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졌다. 3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만들고 공연기획자, 공연감독, 운영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샐러리맨으로 북적이는 도심 한복판에서 우리다운 색깔은 무엇인가, 어떤 콘텐츠를 담을 것인가, 예술경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취업난이 심하다고 하는데 뉴욕도 마찬가지라서 학교가 공연장보다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미국은 학연과 지연이 전혀 통하지 않고 학과에서 취업을 알선해 주지도 않아서 월세살이에 비자도 끝나 가니 졸업 후에 막막했어요. 그래서 매일 무대 디자이너와 조명 디자이너 세 명에게 이력서를 보냈는데 아무에게나 막 보낸 게 아니라, 그들의 공연을 보고 나서, 왜 당신과 일하고 싶은지 정성 들여 적어 보냈어요. 그래서 마침내 토니상을 수상한, 내가 존경하는 돈예일 월레(Donyale Werle)로부터 어시스턴트로 일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함께 일을 했습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김상민 팀장은 뉴욕에서 대학을 나왔다. 브로드웨이가 있는 꿈의 도시이지만 졸업 후에 직장을 구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이력서를 받은 한국계 무대 디자이너의 소개로 어렵사리 윌슨 친(Wilson Chin)이라는 무대 디자이너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됐다. 이후 윌슨의 추천으로 토니상을 수상한 돈예일 월레(Donyale Werle)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프로는 어떻게 일하는지 배우며 역량을 넓혀 갔다. “돈예일은 환경에 대한 철학이 있는 무대 디자이너라 작은 소품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어요. 뉴욕의 물가가 비싸니 실질적으로 돈은 마이너스였지만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UP: 조명·무대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요 김상민: 중학교 때부터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을 공부했어요. 뭘 하든 미술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림으로 그린 것을 현실화해서 사람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고 사람들이 무대에서 살아 숨 쉬고, 뛰는 것을 보고 싶었어요. 어려서부터 로봇이나 레고를 조립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무대 디자인의 모형을 만들어서 감독에게 보여주고 논의하는 과정도 제 적성에 잘 맞았어요.
UP: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것들이 지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김상민: 비주얼 앤 퍼포밍 아츠 단과대학(College of Visual and Performing Arts)의 드라마 학부 안에는 연기, 뮤지컬, 스테이지 매니저, 무대디자인 등의 다양한 전공이 있었기 때문에 연극이라는 통합적 범위 안에서 조명과 무대 디자인에 대해 전문적이고 포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협업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나는 이 안의 많은 벽돌 중의 하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게 되고, 내 업무 파트가 생기면서 조명・무대 디자이너로서 권위도 가질 수 있었어요.
김상민 팀장은 중학교 2학년 때 혼자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 인구가 적은 뉴질랜드에서 무대 디자인이라는 전문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뉴욕으로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뉴욕은 공연 예술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인 만큼 연극예술 전공자로서 보고 배우며 활동 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풍부했다.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최고라고 손꼽히는 무대 디자이너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돌이켜 봐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조명은 백라이트 하나만으로도 전체의 모든 분위기를 달라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연말에는 부잣집 마당에 대형 조명 장식을 설치하는 업무까지 참여했다. 시급이 높으니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렇게 조명과 무대 분야를 넘나들면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경력을 쌓아 가던 중 한국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UP: 유학 생활, 해외 취업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상민: 아버지가 운영하던 갤러리 건물이 있었는데, 리모델링할 때 조명과 인테리어를 맡아보라고 하셨어요. 제 전공이니 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조명・무대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던 터라 뉴욕에서 이룬 것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행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국행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간의 무대와 조명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컸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완성된 후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지만, 부모님 옆에서 보고 배우며 함께 일하면서 공간 운영의 기초를 다지기로 결심했고 한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UP: 에무(emu)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김상민: 에무는 음악, 연극, 무용, 사진, 영화, 축제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공연기획자・공연감독이 되어 공연장에 예술가를 청하기도 하고 운영팀장이 되어 에무의 전반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제가 쌓았던 경험을 모두 쏟아 부어서 다방면에서 멀티플레이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상민 팀장은 사실상 에무의 총괄 책임자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모든 프로젝트들은 김상민 팀장의 생각이 담겨 있다. 2015년에는 인디레이블 러브락컴퍼니와 공동으로 기획하여 러브락 레이블 공연, 록페스티벌인 ‘탕탕탕 카니발’과 더불어 음악 관련 물품을 사고파는 음악 마켓인 ‘탕진시장’을 열었다. 영화관에서는 2015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서울상영, 2016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인 서울과 2015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출품작 상영까지 다양한 영화제가 진행되었고, 식사 후 간단히 즐길 수 있는 단편영화상영 프로젝트 ‘시네마 브레이크’도 열렸다. 현재는 프랑스대사관과 협력하여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프랑스 영화 상영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며, 한국 시네마테크협의회와 연계해 잘 알려지지 않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은 고전 영화를 개봉작들과 함께 꾸준히 상영해 갈 예정이다. 에무의 지하 1층 공연장에서는 매달 인디음악 공연인 ‘신광화문시대’와 ‘재즈앳에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음악하면 홍대, 연극하면 대학로가 대표적인 장소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것이 에무가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김상민 팀장은 에무에서는 서울 몇 개 지역으로만 한정된 문화사업(홍대, 강남, 대학로)의 형태에서 벗어나 에무만의 색깔과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UP: 선입견,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서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김상민: ‘인디 뮤지션이 홍대를 벗어나면 망한다.’, ‘연극은 대학로에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색깔이 각기 다른 음악이나 연극, 영화를 동네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영화도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독점하니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공간이 부족합니다. 예술영화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자생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에무가 환경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UP: 예술경영자로서 에무가 어떤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시나요 김상민: 예술경영은 제가 혼자 작업했던 조명・무대 디자인 분야와는 전혀 다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일입니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많은 예술가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색깔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아티스트 자신들이 즐겁다면 공간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즐겁고 신이 날 테고 ‘에무에서 하는 것은 재밌을 거야’라는 인상을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새롭고 친숙하지 않은 공연, 전시, 영화 등도 에무라는 공간에서 한다는 믿음으로 흔쾌히 호기심을 갖고 찾아와 즐기고 경험하고 느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상민 팀장은 뉴욕에서의 조명・무대 디자이너의 삶도 재밌고 떨리지만 한국에서의 예술경영자의 삶 또한 매우 흥미롭다고 말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로 질문을 바꾸면 지금의 삶을 너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뿐, 설계도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조명・무대 디자이너에서 예술경영자로 변신했지만 결국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은 같다. 하나는 연극의 무대였고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범위가 확장됐을 뿐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일)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인생)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만약 하고 싶고 즐거워하는 일이라도 끼니를 거르고 제때 자지 못하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을 받는다면 그러한 삶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청년 예술인과 예술 전공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하지만,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지 시각을 크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은 일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존재하니까요.
김상민 팀장 프로필
- 시라큐스 대학교 무대 디자인 및 기술 전공(Theatre Design and Technology)
- 現복합문화공간 에무 공연기획자, 공연감독, 운영팀장
공연
- 2009 < The Chairs > 무대 디자이너
- 2013 < Too Much, Too Much, Too Many > 어시스트 무대 디자이너
- 2014 < Tribes > 어시스트 무대 디자이너
- 2014 < Winter’s Tale > 어시스트 무대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