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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배가 좋아서,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Ⅲ]최윤성·백은정_와이크래프트보츠 대표최윤성, 백은정 부부는 조각을 공부한 후, 각각 목선 제조 기술 그리고 아트 앤 테크놀러지를 배운 후, 최윤성의 고향인 속초에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목선 제조 회사를 차렸다. 문화예술의 기획 매개가 대부분 무형의 서비스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상황에서, 지역 그리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지역의 작은 역사와 추억에 대한 콘텐츠를 담으려는 고민을 들어 본다.
미국 메인 주에서 3년간 배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남편이 다니던 직업훈련학교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배 만드는 수업을 진행했다. 1년씩 단기 코스로 나무배 제작 과정, 복합 소재 제작 과정, 그리고 디자인 과정을 공부했다. 매일 수업을 마친 남편은 학교에서 배운 제작 기술을 그대로 복습하며 아내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내도 배 만드는 일에 빠져들었다. 배를 만들면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해 봤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조소과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아내인 백은정 대표는 어렸을 때 수영 선수로 활동했다. 8살 때 한국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선수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수영 선수로의 진로보다 평소 좋아하던 미술 쪽으로 전향했다. 남편인 최윤성 대표는 속초에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나무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운영한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자랐다. 하지만 부모님은 가업을 잇는 건 반대하셨다. 배 만드는 일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 대표는 기술이 아니라 손재주로 할 수 있는 조각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속초에 정착하기 전,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저희는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했어요. 저는(백은정) 어렸을 때 수영 선수였다가 예고를 다니고 미술 대학에 진학했죠. 3D 애니메이션 회사도 다녔고, 시카고에서 아트앤테크놀로지로 석사를 했어요. 저는(최윤성)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나무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속초에서 하셨지만, 배 만드는 일이 힘들다고 하셔서 기술이 아니라 손재주로 할 수 있는 조각을 선택했고 6년 동안 밴드를 하기도 했죠.
배 만드는 걸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신 건가요?네. 원래 영등포에 작업실이 있었거든요. 근처에 있던 폐목재를 가지고 어렸을 때 봤던 목선 제작 과정을 흉내 내서 작은 나무배를 만들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진짜 탈 수 있는 배를 만들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큰 결심을 하고 더 늦기 전에 탈 수 있는 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미국으로 떠났어요, 혹시 메인 주라고 들어 보셨나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실 텐데,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고성 같은 곳이에요. 미국 북동쪽 끝, 캐나다 국경에 인접해 있는 주예요. 백인이 대부분이고 흑인이나 동양인은 거의 없죠. 평균 연령이 60대(?)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젊은 사람들은 배를 만들거나 미술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아요. 그곳에 배 만드는 직업훈련학교가 있어서 3년 동안 코스별로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어요.
좋아하는 배로 사업을 시작하다칠성조선소는 최윤성 대표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60여 년을 운영해 오신 곳이다. 안타깝게도 목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조선소가 1996~1997년 이후로 거의 없어진 상황이다. 최 대표가 열아홉 살까지 자란 집이 조선소 안에 있었던 터라, 배를 만드는 풍경은 그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유학을 떠났던 것은 가업을 잇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나무배 만드는 방법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였다.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2013년 여름에 귀국한 두 사람은 수상 레저용 목선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속초에서 ‘와이크래프트보츠’ 회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사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이렇다 할 배 시장이 없고, 사람들의 삶에 여유가 없어요. 배는 일종의 문화이고 여가인 건데, 배 문화를 온전히 즐길 만한 사람들이 없는 상태라는 거죠. 하지만 저희는 배가 좋으니까 만들고 싶고,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카누와 카약을 떠올렸어요. 당시에는 카누, 카약 붐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저가형 중국산 배와 고가형 유럽산 배로 양분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카누와 카약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의욕적으로 2014년 2월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열게 된 거죠.
문화예술이 대부분 서비스업인 데 비해 제조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처음에는 저희가 미술적 감각도 있고, 목선 기술도 꼼꼼히 배웠던 터라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장 자체가 적은 것도 있지만, 아직 작은 업체이다 보니 주문 제작보다는 미리 제작을 해서 보여 줘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개인이 취미로 주문 제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상 레저 체험장에서 오는 문의도 있지만 기대한 만큼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까지 터지면서 수상 레저를 기피하게 되고, 경기가 좋지 않아 큰 기업도 폐업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카누·카약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어요. 최근에 서프보드를 제작하고 그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어요.
속초는 문화예술 지원 기반이 많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업 성과 중심이라 이제까지는 대부분 자비로 해결하고 있다. 제조업이라는 특성도 있지만,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젊은 작가나 기획 매개자들이 부족해서 생각에만 그치는 경우도 많다. 칠성조선소처럼 오래된 공간, 지역의 작은 역사가 있는 장소에 대한 행정적 혹은 지역 공동체의 공감이 아직 부족하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활동과 더불어 공간의 자립과 경쟁력을 갖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목선 제조 이외에 다른 사업을 하시나요?2014년 3월 중소기업진흥공단 지원사업으로 카누·카약에 관한 국가 과제가 생겨서 연구 개발에 2년간 참여했어요. 작년 6월에야 끝났죠. 이게 저희가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카누·카약 전문 제조업체로 잡는 계기가 되었는데, 앞서 말한 대로 시장 저변이 확대되기 전에 여러 사건으로 수상 레저 자체가 침체돼서 빛이 바랜 게 안타까웠어요. 2016년 11월에는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스페이스인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 와이크래프트보츠 : SCARFING > 전시를 했어요. 제안이 들어와서 했는데, 배의 도면과 골조, 부속품 등을 포함해 완성된 배 그리고 칠성조선소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을 전시했었죠. 저희는 제조 기술뿐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다양하게 시도해 보려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칠성조선소와 관련한 복합문화공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나 아버지는 이 칠성조선소 공간 자체에 애착이 참 많아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뒤로 여기서 무얼 하면 좋을까 여러 가지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이 공간에서 미술, 음악 작업을 하거나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 좋겠어요. 일단 나무배가 중심이 되면 좋겠고요. 거창한 박물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선 제조와 수선을 했던 조선소의 크고 작은 역사를 공유하고 싶어요. 현재 속초에서 현역으로 배 만드는 기술을 가지신 분이 3명밖에 안 남았어요. 그래서 관련 기술자 분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모으고 있어요.
두 사람은 조선소에 아카이빙도 소개하고, 문화 상품도 만들고, 연계 워크숍 프로그램이나 공방, 배 테마의 어린이 장난감, 놀이터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런저런 그림들이 아마 올가을쯤에는 좀 더 구체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짜로 큰 목선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제작 과정을 보여 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하겠다는 큰 꿈도 있다. 그런 그들의 꿈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기를 바란다.
예비 청년 예술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는 게 무척 쑥스러워요. 나무배 제작 과정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은데, 배를 만드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하려고 하는 일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최윤성 프로필
학력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 The Landing Boatbuilding & Design School, Maine, U.S.A.
주요 경력
- < Closing Studio > 전시, 영등포 문래동 (2007)
- 페스티벌 봄 <물 좀 주소> 공연기획 (2008)
- 레저선박브랜드 와이크래프트보츠 런칭 (2014)
- 現 ㈜ YCRAFTBOATS Managing Director
백은정 프로필
학력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 M.F.A in Art and Technology
주요 경력
- 3D Animation Modeler in Sieum Design (2004~2006)
- Open Studio in Chicago (2009)
- 구슬모아당구장 < Scarfing > 전시 (2016)
- 現 ㈜ YCRAFTBOATS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