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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서 1로, 인큐베이팅을 위한 인큐베이팅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Ⅲ]이지연_서촌공간 서로 대표무용 전공자가 문화공간을 열었다. ‘서촌공간 서로’의 이지연 대표는 역사와 예술이 흐르는 서촌에서 너와 내가 만나 함께 공존하는 공간을 꿈꾼다. 아티스트와 관객, 지역 사람들이 예술을 매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생각과 비전이 곳곳에 담겨 있다. 볕이 잘 드는 봄날, 조용하고 평화로운 서촌마을에서 무(0)에서 유(1)로, 문화를 인큐베이팅 하는 사람을 만났다.
“지연아, 예술경영에 대해 논문 쓰는데 잠깐만 도와줘.” 선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이 대표는 그 전화가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잠깐 도와준다고 했던 일인데, 하다 보니 ‘예술경영이 뭘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고 이 분야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현재 서촌공간 서로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무용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연기획사에서 일해 보는 것은 어떠냐는 추천을 받았을 때 저는 설레었지만, 부모님은 반대했어요. 당시 예술경영은 생소한 분야였고 무용을 그만두는 것이 아깝기도 했으니까요. 무용기획사에 입사하고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항상 분주했습니다. 오늘은 서울의 극장에 있다가 내일은 지방의 페스티벌, 축제, 공연장으로 장소를 바꿔 가면서 일을 했어요. 하지만 동경하던 무용계의 거장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로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죠. 무용만 알고 살았는데, 일을 하면서 무용 이외의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국을 다니면서 다양한 공연장을 체험한 것이, 지금 ‘서촌공간 서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4년 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업무를 잠시 쉬려고 했으나, 일 잘하는 사람들과 누구나 함께하고 싶은 법이니 업무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처음에는 프로젝트의 기획만 맡았으나 점차 규모가 커져서 프로젝트 매니저(PM)가 되어서 해외투어 프로젝트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 해외 투어 공연을 진행하면서 어떤 점을 배우게 되었나요? 2개의 무용 프로젝트, 1개의 국악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어요. 2006~2007년 그 당시에는 해외투어가 생소할 때였어요. 저도 해외 경험이 별로 없고 나이도 어렸고요. 아티스트들을 데리고 해외에 나가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기죠. 현장 진행, 아티스트 관리까지 모든 것이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어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답을 찾아야 하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나서는 걸 싫어하던 제 성격이 바뀌었을 정도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현장의 경험이 축적될수록, 프로젝트를 하면 할수록 내면에서 ‘나다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창업은 새롭지만 위험해서, 내딛기 위한 징검다리로 정부에서 사무 공간을 지원받아 1년간 예비 창업자로서 준비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 친구와 함께 공연과 홍보 업무를 총망라하는 ‘이원아트컴퍼니’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4년이 지나 회사가 자리 잡아 가던 즈음 큰 기회가 찾아왔다. 문화 공간을 위탁 운영해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문화공간이라?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콘텐츠 제작부터 홍보, 공간 운영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일이라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언 땅을 파서 터를 잡고 다음 해 4월 개관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쏟아부었다. 사실 서촌공간 서로는 문화공간이지만 문화를 향유하기에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이곳에 문화공간을 낸다고 했을 때, 도심에 위치하고 교통편이 편리한 공연장을 두고 굳이 이곳까지 오겠는가를 반문했다고 한다. 단점을 극복하는 자신만의 장점이 필요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서로의 공간은 서촌이라는 마을처럼 아담하고, 공연과 함께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어요. 마을이 공간을 품고 있죠. 무대는 여러 가지 형태로 구성을 시도할 수 있는 블랙박스형 소극장이라 공연마다 분위기가 달라져요. 클래식 공연장 하면 객석과 연주자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서로의 공간은 그렇지 않아요. 공연자가 흘리는 땀방울이 보일 정도로 가깝죠. 서로를 바라보고 호응하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개관하면서 클래식 상설 공연을 열었어요. 곡 설명이 있고 아티스트와 교감하는 작은 클래식 공연인데, 처음에는 소수의 분들이 오셔서 보셨지만 지금은 티켓 오픈을 하면 바로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있어요. 이제는 알아서 오시는 분들, 한 번 보시고 감동하셨던 분들도 있죠. 매번 수원에서 오시는 분은 퇴근하고 뛰어서 와도 항상 늦으니 한 시간만 시작 시간을 늦춰 달라고 부탁하실 정도예요. 공연마다 특색이 있고 사랑하는 팬이 생기고 있습니다.
‘서촌공간 서로’에는 공간과 철학은 물론 세세한 공연 하나까지 ‘이지연스러움’이 담겨 있다. 공연을 올리기 전에 오랜 시간을 숙고한다. 인디밴드의 공연을 올리기까지 3개월 동안 그들의 음악을 무한 반복하며 들었다. “내가 들어 봐서 좋아야 관객도 좋고, 이해하는 만큼 아티스트와 대화할 수 있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서촌공간 서로에서 클래식 샹들리에, 인디가수 시리즈, 전통음악 공연, 낭독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무대에 오릅니다. 그중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도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한 기획 중 2015년 <서로, 낭독공연>을 시작으로 2016년 <서로 낭독회>로 이어진 시리즈는 ‘서로’가 추구하는 ‘인큐베이팅을 위한 인큐베이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공연이에요. 작가 중심의 좋은 희곡 작품을 발굴하여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발표하는 실험의 장이 되고자 하는데,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러한 작품들이 일회성 공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 개발되어 정규 공연으로 올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문화공간으로 예술경영을 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두었나요? 저는 이 공간을 ‘인큐베이팅을 위한 인큐베이팅’ 공간이라고 정의했어요. 0에서 1을 만드는 거죠. 여기서 공연이 잘 됐다면 소문이 나서 더 큰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지겠죠. 인큐베이팅이라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허황되다, 실제로 그게 되냐는 반문을 갖지만 ‘서로’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씩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공연을 올린다면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힘들더라도 5년 정도 길게 보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용수로의 삶이 삶과 예술경영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무용을 하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하니 듣는 귀가 생기죠. 클래식, 인디밴드, 국악까지 다양한 음악 등 공연을 올리는 데 좋습니다. 또 무용은 관객과 끝없이 호흡해야 하는 장르인데, 공연을 만들 때도 관객의 입장이 되어서 ‘객석에서는 무대가 어떻게 보일까’, ‘관객은 어떻게 느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무대의 아티스트와 관객이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힘은 무용을 하면서 길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지연 대표는 지금은 공간으로 예술경영을 하고 있지만 무용은 예술경영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예술과 인간, 그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던 힘은 콘텐츠의 모든 곳에 녹아 있다. 관객과 예술가의 간격을 좁혀 가며, 일상에 잊었던 감성과 영감을 채워 가며, 서촌이란 마을에서 문화를 바꾸는 씨앗이 움트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무대 경험을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문화예술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것들, 그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경험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일에 임하는 본인의 자세와 마인드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세요. 1. 예술 전공자이기에 가능한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시각을 넓히세요. 2. 국악뿐만 아니라 클래식, 연극 등 공연예술 전반에 풍부한 경험을 쌓으세요. 3. 무대 공연, 페스티벌, 지방 축제 등의 문화예술 행사를 두루 경험하세요. 4. 예술 현장은 ‘상상한 것’을 ‘실현하는 데’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현실적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끊임없이 훈련하세요.
이지연 프로필
주요 경력
- 前 공연기획 MCT(2002~2005)
- 前 공연문화기획 온스테이지(2006~2007)
- 前 월드뮤직[ DA’AK] 기획실장(2007~2010)
- 前 스타 사회적기업가 발굴 프로젝트 전문멘토(2015)
- 前 전통예술기획자 양성 심화과정 홍보마케팅 강사(2016)
- 現 E-won Art Factory 대표
- 現 서촌공간 서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