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과 4학년, 예술대학교 학생이 아직 졸업도 하기 전에 창업을 했다. 창업을 함께한 직원들은 박봉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아직 넉넉하지 않지만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젊은 대표의 눈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에너지가 샘솟고, 세상도 그에 응답을 시작했다. 뭐든 욕심만 낸다면 그럴싸할 것을 만들기에 충분한 나이와 불가마같이 뜨거운 삶의 의지를 지닌 크래빌리의 차민승 대표를 만났다.

남들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다

남들은 한 번, 길어야 두 번이면 족하다는 수능을 세 번이나 보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보다 군 생활을 먼저 경험했던 차민승 대표는 “대학 가니 별것 없고 힘만 든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나도 대학만 가 봐라, 하루도 허투루 안 보내리라’며 다짐을 하고 또 했다. 3수 끝에 택한 전공은 도자공예. 그렇게 24살의 도예과 새내기는 다짐했던 것들을 진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국민대학교 조형대의 학생회장으로 출마한 것이었다. 개교 이래 국민대학교 조형대 안에서 도예과가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오기가 났다. 처음에는 순전히 도예과 기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으나, 신입생 환영회를 기획, 추진하고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진두지휘해서 마무리하고 나니 조직을 운영하는 게 재미났다. 사람을 조직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 싶으니 자신감이 몸에 붙었다. 도예과 수업을 통해 도자기 빚는 법을 배웠지만 학생회장 활동은 그에게 사람과 조직을 빚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UP: 도예과는 차민승 대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차민승: 원래는 남들 보기에 멋지고 그럴싸한 일을 해 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자동차 디자인 같은 것 말이에요. 저 스스로도 자동차에 매료됐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저에게는 유난히 좁았던 대학 문만큼이나, 대학 입시는 한정적인 정보로 세상을 너무 좁게 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도예과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죠. 디자인학과에 왠지 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젊은 이미지도 아니잖아요. 그런 결핍과 열등감이 크래빌리를 포함한 제 활동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UP: 도예를 하면서 변화한 것이 있나요 차민승: 인천공항에 갔더니 정말 큰 ‘달항아리’가 놓여 있었지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보다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어요. 저도 도예를 하기 전에는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공예가 수천 년 된 문화유산이고 예술의 뿌리라는 점을 배우고 나서는 그런 전시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사물마저도 다르게 보이고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근본, 문화의 뿌리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 거죠.

도예과가 잘하고 있음을 보여 주자

사실 도예과는 위기다. 객관적인 지표들이 그러하다. 인문, 예술 계열 학과에 대한 정원 감축, 통폐합 등이 한창이었다. 차민승 대표는 도예과의 위기를 몸으로 느꼈다. 주위에서는 ‘우리는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위로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필요 없다고 치부해 버리면 큰일이다.

그래서 ‘우리 여기서 정말 잘하고 있다’,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크래빌리는 그러한 메시지 그 자체이자 그것을 전달할 목소리이다. 크래빌리(Crabily)는 ‘Craft becomes daily’의 준말로 “공예, 일상이 되다”를 표어로 삼고 있다. 그리고 창업한 지 1년 남짓, 찾아 주는 고객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는 긍정의 메시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는 긍정의 메시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는 긍정의 메시지

UP: 크래빌리는 어떤 곳인가요 차민승: 크래빌리는 다양한 공예품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 플랫폼입니다. 도예과를 넘어 문화예술의 문제를 우리 안에서 직접 풀어 보자는 의미이고, “너 뭐 먹고 살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하죠. 현실에서 공예과 졸업 후 전공을 살리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주로 공예 작가의 판매와 마케팅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간혹 국가기관에서 기념품 단체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참에 브로슈어를 들고 영업을 해야 될까 봐요.

UP: 언제 창업을 했고 지금까지 어떤 과정으로 성장해 왔나요 차민승: 1학년 때부터 친구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결국 참가는 못했지만 3년 전 홍대 프리마켓에 뭔가를 팔아 보자고 조직을 구성하고 이후 벽화 봉사 활동을 한 것이 시작이었죠. ‘헤엄헤엄’이라는 어항 용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면서 조직이 점점 커졌어요. 결국 그 멤버들이 모여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창업을 하고 나서는 국민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경영에 취약하니 졸업해서 창업한 선배들을 만나서 멘토링을 받거나, 경영학과 친구들에게 물으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UP: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어떤 제품들을 판매하나요 차민승: 핸드메이드 제품은 포괄 범위가 넓은데, 크래빌리는 ‘공예’에 초점을 두고 진행을 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들을 공예와 엮어서 진행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크래빌리 x 국민대 고양이 추어오>라는 길고양이 공생 프로젝트가 대표적인데,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퀼트로 고양이 캐릭터 제품을 만들어 팔고 판매 대금을 후원했어요. 또 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 후원회(ADRF), NH투자증권과 함께 네팔 아동 돕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NH투자증권에서 작가들의 작품 판매 수익만큼을 기부금으로 쌓아 주셔서 1,100만 원을 모았습니다.

크래빌리는 예술하는 사람들을 세상 곳곳에 침투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예술가들이 자생력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해야 하는 공예 분야는 기업이 탐을 낼 만큼 돈이 되는 시장이 아니다. 그래서 도예과의 위기를 느끼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을 팔면서 생활비를 벌고 작품 활동을 이어 가는 작가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작은 프로젝트를 함께하다 창업까지 이어진 친구들 작은 프로젝트를 함께하다 창업까지 이어진 친구들

관점을 바꾸니 내 세상이 보인다

차민승 대표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 친구들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열등감에 휘둘렸다. 그때 인생의 쓴맛을 거의 다 보았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며 단단하게 자신을 다잡았던 시기였다. 돌아보니 열등감이라는 것은 별게 아니다. 우등으로 바꿀 뜨거운 열등의 시기가 있었기에 치열하게 노력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었다. 관점을 바꾸면 내 인생이 달리 보인다.

UP: 대학을 한 번에 갔다면, 순탄하게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차민승: 만약 대학을 한 번에, 그것도 아주 잘나가는 과로 갔다면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아요. 결핍된 상황에서 가장 나다운 것을 찾기 위해 더욱 치열했습니다. 한번은 도예 작품을 만드느라 밤을 새우고 새벽에 자러 가는데, 캠퍼스를 걷다 문득 느꼈어요.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학과로 돌아갔죠(웃음).

UP: 앞으로 도자기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요 차민승: 공예품은 소득이 올라가면 찾을 수밖에 없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에요. 지금은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소득이 올라가면 재평가될 시장이죠. 요즘은 세라믹에 하이테크, 기술을 결합한 상품들이 나오고 있어요. ‘Maker Movement’죠. 공예의 가치는 무궁해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못 가진 것은 무엇인지, 장단점을 냉정하게 보고 준비를 해야겠죠. 크래빌리가 공예의 성장에 작은 역할이나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 명제가 언제나 참이 되려면 답을 찾을 때까지 하면 된다. 문제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행동을 하는 차민승 대표도, 발을 내딛었으므로 분명 답을 찾을 것이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지금 옆에 있는 친구가 나중에 인생에서 어떤 도움을 줄지 모릅니다. 처음에 ‘헤엄헤엄’을 제작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 창업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나를 믿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차민승 대표 프로필 - 국민대학교 도자공예과 재학
- 前 2015년 31대 조형대학 학생회장
- 現 크래빌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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