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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이냐, 예술가이냐 묻는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Ⅱ]정지유_KDB나눔재단 파트장무용가로 살아가다 부상을 입었고, 무용을 매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자가 되고자 했다. 정지유 파트장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KDB나눔재단의 파트장으로 입사해 4년 동안 기업에서 사회 공헌을 실천하고 있다. 기업과 예술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고, 그 속에서 예술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정지유 파트장에게 들어 봤다.
피아노를 치는 고명딸을 부모님은 무척 예뻐했다.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나갔다고 하는 값비싼 피아노를 딸을 위해 선뜻 사 주셨고, 딸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바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을 갔을 때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폈다 굽혔다 하는 굴신 동작을 하며 한참 춤을 췄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사람들이 보게….” 어머니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등을 찰싹 때렸다. “아… 이러면 안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고 춤에 대한 열망은 멋쩍게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부모님은 보수적이었다.
UP: 어떻게 무용을 전공하게 되었나요 정지유: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첫 번째 무용 시간에 발레 수업을 받았는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로 희열을 느꼈어요. 부모님께 무용으로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단칼에 어림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3일 정도 밥을 안 먹으며 반항했던 것 같아요. 밥을 안 먹고 버티니 부모님께서 무용 학원 탐방(?)을 하자고 하셨어요. 그렇게 처음 무용 학원을 방문했을 때 ‘아… 나는 그냥 춤을 춰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어요.
UP: 무용을 전공한 것이 지금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정지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춤이기에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스트레칭으로 근육 파열이 와서 온몸이 검정색 피멍으로 변해 걷지 못해도 기어서라도 무용 학원을 갔어요. 그래서였는지 춤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고 2때 세종대 콩쿠르에서 상을 타며, 늦게 배운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춤을 추면서 순간에 몰입하는 힘과 아직은 프로가 아니라고 자각하는 겸손을 배웠어요. ‘내가 왜 이것을 하지’, ‘어떻게 하면 잘할까’라는 고민을 끝없이 하고 답을 찾는데, 아름답고 완벽한 동작을 찾던 몸의 습관이 마음으로 전이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춤을 추다가 교통사고로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겪었다. 심각한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지만 몸의 균형이 깨져 춤꾼으로서의 삶은 포기하게 된다. 이후 가르치는 선생의 삶으로 들어섰다. 대학원 졸업 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으로 뭐가 달라질 수 있나”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매일매일 던졌다. 가르치기에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인식과 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법을 배우고 싶어서, 34살에 유학을 떠났다.
정지유 파트장은 뉴욕대학교에서 뉴욕 주의 국공립 학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인 K-12커리큘럼과 대학 교육과정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했고 지원했다. 2년 동안 뉴욕 시의 국공립 학교에서 일하며 뉴욕 시 교사 자격을 위한 과정을 수료했다. 이를 통해 예술을 통한 전인교육, 통합교육이란 무엇인지 의미와 맥락을 짚을 수 있었다.
UP: 뉴욕에서 공부하면서 어떤 점이 변화되었나요 정지유: 한국의 춤은 엘리트 무용수를 위한 교육과정이 강하게 뿌리내려 있어요.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창의력이나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없는 한계들이 있습니다. 학위 과정 중,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머스 커닝햄 무용단 등과 같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사회 공헌으로 다가가는 예술교육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서양예술사에서 읽었던 현존하는 예술가들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예술=놀이’라는 공식을 보여 주더군요. 아이들의 표현력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실제로 예술교육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되며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춤과 예술에 대한 좁은 생각들을 우르르 무너지게 되었죠.
UP: 춤을 통해 통합교육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정지유: 무용교육은 춤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역사를 배울 때 교실에서 주입식으로 수업만 하지 않아요. 그리고 무용교육이라고 춤만 추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아이들은 역사의 한 장면을 춤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토론으로 각자의 생각을 교환하고 어떻게 몸으로 표현할지 방법을 찾습니다. 소품도 직접 만들고 함께 춤을 추면서 공연을 만들어 보는 거예요. 그 속에서 몰입과 참여가 일어나죠. 역사, 춤, 토론, 인문학, 디자인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굉장히 깊이 있게 가르칩니다. 통합교육이란 이런 게 아닐까, 현장에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지유 파트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KDB나눔재단에 입사했다. 춤을 전공한 예술가가 기업 중에서도 보수적이라는 은행에 입사해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오타 하나, 줄의 간격까지도 살피는 꼼꼼한 기업 문화에 적응하는 데 몇 년이 걸렸고, 돌아보니 견뎌 낸 자신이 대견하다. 이곳에서 예술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예술 교육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사재를 털어 가며 힘들게 타인을 위해 일하시는 훌륭한 분들도 많아요. 저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예술인, 소외 계층 청소년, 대학 연구 단체, NGO 단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합니다. 그러면서 후원처인 산업은행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으니,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죠.”
UP: 예술 인재를 어떻게 지원하고 육성하고 있나요 정지유: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6년간의 진로 프로그램인 장학 사업뿐만 아니라 예술 인재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예술 인재들이 홍대 미대, 연대 음대 등에 진학하고 국립극장에 입단하게 되었어요.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장학생은 입단 8개월 만에 주역을 맡게 되었다며 연락이 왔더라고요. 이것이 바로 사람을 키워 내는 보람 아닌가 싶어요. 제가 기획한 사업에서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받았던 프로그램 안에서 다른 아이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 주고 작은 공연과 미술 전시회들을 열어 줍니다. 이것이 진정 예술의 힘이 아닌가 깨닫습니다.
UP: KDB나눔재단에서 진행했던, 애정이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정지유: ‘별별작업실’이라는 초등학생 통합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있어요. 작년 지역아동센터에 방문하였을 때,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서 볼만한 광경이 벌어졌어요.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수업 시간 내내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을 했고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데만 7~8주가 걸렸어요. 이 아이들이 마지막 공연쯤에는 선생님을 기다렸다 인사하고 식사하는 착한 아이들로 변해 있었어요. 숨겨졌던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어요.
UP: 기업과 예술인의 가교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지유: 기업인들은, 특히 은행가들은 돈을 다루는 일을 하니 정확하고 꼼꼼하죠. 반면에 예술가는 자유롭고 감성적입니다. 둘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마음의 결이 달라요. 하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놀라울 정도로 동일하지요. 그것은 바로 이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거지요. 두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중간에서 해석하고 매개체 역할을 한다면 사회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아요. 르네상스가 생길 수 있었던 건, 메디치 가문이 문화를 후원했기 때문이니까요.
정장을 입지 않는 주말, 정지유 파트장은 춤꾼으로 돌아온다. 중요무형문화재인 도살풀이의 전수자로 15분짜리 작품을 20여 년간 추고 있다. 그러나 매번 출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무대에 서서 춤을 추는 몸짓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가 보이고 현재의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이 보인다. 평온한 마음가짐에서는 욕심 없는 몸짓이 나오고, 세상일에 분주한 일상에 파묻혀 있는 날에는 욕심 가득한 혼탁한 춤이 나온다. 그래서 춤이 무섭고 출 때마다 새롭다.
정지유 파트장에게 누군가 “당신은 교육자냐, 예술가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단편적인 질문이다. 그저 어느 경계에도 치우치지 않고 맡은 역할에 몰입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진지하고 정중하게 사람과 시간을 대하는 것, 춤이 가르쳐 준 인생의 지혜이며 가르침이다.
점을 보지 말고 인생의 큰 도화지를 보세요. 예술 전공자의 눈으로 볼 때 직업의 종류는 단순히 몇 가지로 정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을 접목시킨 직업의 종류는 수천 가지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예술 전공자는 점입니다. 하지만 예술을 접목시킨 직업의 종류는 큰 도화지의 넓은 여백입니다. 즉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해 줍니다. 2014년 한국직업사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직업은 1만 2,000여 개에 못 미친다고 해요. 일본은 두 배, 미국은 세 배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직업이 존재함을 알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해 보세요.
정지유 파트장 프로필
- 세종대학교 무용학과
- 뉴욕대학교 석사
-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박사 수료
- 現 KDB금융대학교 겸임교수
- 現 KDB나눔재단 파트장
공연
-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김숙자 도살풀이 전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