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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없으면 있는 곳으로 가면 되지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Ⅱ]김수경_국악 밴드 나릿 대표지금은 소리꾼으로 설 자리가 있지만, 아무도 안 불러 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후배들도 언젠가는 해야 할 고민인데 아무도 답을 주지 않으니 ‘내가 해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국악인들의 설 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기업의 창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보수적인 대구에서, 보수적인 국악으로 버스킹을 한다는 당돌한 발상을 해냈다. 대구 근대골목에서 역사와 인물이 만나는 이야기를 퓨전 국악, 창작 국악으로 풀어내며 관광객들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고등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판소리 전수관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것을 아는 부모님의 권유로,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판소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제 8호인 이명희 선생으로부터 사사했다. 그렇게 우연하게 인생의 업(業)을 만났다. “가볍게 배워 보자”라는 우연한 결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국악, 판소리는 삶 전체가 되었다. 우연한 결심으로 만난 국악, 판소리가 지금은 삶 전체가 되었다.
그전까지 평온하고 잔잔하게 살아왔는데 대학을 입학할 즈음에 어머니의 사업이 실패했다. “학교 갈 차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 갔다”라는 영화 대사 같은 고백처럼, 그때는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대학 입학 등록금을 내고 안 가려고 했는데 이명희 선생님이 한 학기 등록금을 주셔서 억지 춘향 격으로 캠퍼스의 봄을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에 가지 못하고 대구에 남겨져 보니 커리큘럼은 갑갑했고 인생은 답답했다. 스무 살 대구는 그랬다.
UP: 대학 시절 국악을 하면서 얻은 건 무엇인가요 김수경: 형편이 어려워서 자퇴를 고려했어요. “학교를 안 다니려고 하는 애가 있다더라”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선배들이 챙겨줬어요. 선배들과 팀을 이뤄 무대에 서면서 용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계도 유지할 수 있었죠. 공연에 서다 보니 노련미도 생겼고 그 후 인생 공연자로서의 인생도 열 수 있었습니다.
UP: 대구에서 소리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가요 김수경: 사람들이 소리 하면 전라도의 남도소리를 떠올리세요. 남도민요와 경기민요가 다르듯이, 지역마다 소리의 결이 전혀 다릅니다. 대구에는 남도 소리꾼이 많이 없으니 그만큼 희소성이 있죠.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김수경 하면, 큰 공연에 서는 제법 잘나가는 국악인으로 소문이 났다. 졸업 후에도 순탄하게 국악인으로서의 인생을 이어 나갔다. 연주 단체를 만들어 예술 활동, 연주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인지도를 쌓았다. 그렇게 불러 주는 무대만 서도 크게 문제없이 흘러갈 것 같은 무난한 20대의 끝자락에 불현듯 고민이 찾아왔다.
‘지금은 누군가 찾아주기에 무대에 설 수 있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면?’ 나이를 먹어 가면서 무대에서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자신을 따르고 있는 후배들을 봤다. 4년 후 아래의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불러 주는 곳이 있어야 설 무대가 있다는 것은 수동적인 예술가의 삶에 그치게 했다. 후배들이 언젠가는 나처럼 처절하게 할 고민이라면 내가 먼저 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결의가 생겼다.
그러나 걱정을 한다고 바로 회사를 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먼저 해 보고 안정되면 후배들을 부르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만드는 초기 세팅 작업에 착수했다. 3년 정도 회사의 틀을 잡고 의미를 알려 초기 자본을 마련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했다.
2013년, 사회적 문제 해결에 관련한 아이디어 공모전인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청년국악인 먹고살기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참여하게 되었고, 2014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거쳐, 2015년에는 H-온드림 프로젝트에서 전국 2등으로 수상하며 1억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결국 국악 밴드 ‘나릿’을 결성했고 대표가 되었다.
UP: 사회적 기업을 지향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수경: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인들, 특히 전통 예술을 하는 전공자들이 졸업을 하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은 큰 사회적 문제잖아요. 국악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믿었고, 행동에 옮겼더니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UP: 기존의 국악 밴드와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요 김수경: 국악을 들으면 막상 좋아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점점 찾지 않는 것이 문제예요. 무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럼 우리가 사람들을 찾아가면 되지 뭐”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어요. 버스킹을 시도한 거죠. “국악으로 버스킹을 한다고?” 경상도 지역 분들은 뜨거운 마음과는 다르게 아주 무뚝뚝하고 살벌한 모습으로 공연을 관람하기 마련인데요. 공연을 진행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너나없이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합니다. 무대의 막이 내리게 될 때에는 그분들의 아쉬움 가득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국악 밴드 나릿은 3인조다. 소리꾼 김수경과 해금 연주자, 생황 연주자 후배가 모여 팀을 꾸렸다. 대학 시절은 잘 모르고 지냈는데, 공연을 하면서 오가다 만나 보니 같은 대학 후배들이었다. 김수경 대표는 동료가 되어 준 후배들이 고맙기만 하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후배들이 국악하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창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초심을 떠올리면 서툴러서 좌충우돌하다 생긴 고통의 상처들도 잠시 사그라든다.
나릿의 공연 무대는 대구다. 김수경 대표가 나고 자라서, 가장 잘 아는 곳이다. “사람들이 국악에는 관심이 없어도, 관광은 다들 좋아하잖아? 그럼 국악이랑 관광을 결합해 보자”
대구의 관광 명소인 대구거리역사에는 스토리와 차별성이 있다는 데 착안하고, 이상화 시인의 고택에서 시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퓨전 국악으로 만들어 국악으로 재해석하여 공연한다. 관광객에게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으로, 그곳에서 들으니 그 노래가 특별하게 각인된다. 대구광역시에서도 관광 상품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UP: 왜 대구 근대역사골목을 무대로 공연을 만들었나요 김수경: 대구 근대골목을 배경으로 그 시절 있었던 사건을 국악이라는 색깔을 입혀 스토리텔링하고, 그 이야기가 생겨난 그곳에서 공연한다는 게 콘셉트예요. 건물이나 골목길의 풍경을 보러 온 관광객들이 역사의 인물을 국악으로 만나게 되니, 그 반응이 기대 이상이에요.
UP: 나릿이 콘텐츠의 융·복합을 진행하며 주안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김수경: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장르에서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를 많이 생산해 내는 추세입니다. 저는 이러한 넘치는 예술시장 속에서 누구나 하는 창조적 활동은 이미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별화된 아직 누구도 하지 않은 우리의 것을 만들고 싶었지요. 그렇게 고민과 고민을 하던 중에 만들게 된 것이 ‘그곳에 가면 그곳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그곳, 그 노래’라는 프로젝트입니다.
UP: 전통 예술이기 때문에 부딪혀야 했던 한계나 혹은 강점이 있었나요 김수경: 아무래도 여전히 대중과 거리가 있긴 하지만 전통음악의 벽이 많이 허물어지긴 한 듯합니다. 즐겁게 그리고 전통음악이라는 장르를 더 특별하게 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 한계보다는 오히려 강점으로 느끼고 있는데요. 보는 만큼 안다고, 또 아는 만큼 즐긴다고, 전통음악을 보고 들을 기회가 없으니 어렵고 어색할 수밖에 없죠. 보여드리는 순간, 들려드리는 순간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전통음악을 매개로 콘텐츠를 만들고 공연하는 입장에서 한계나 두려움은 느끼지 않습니다.
김수경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사람이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일뿐더러, 창업을 하게 된 이유도 좋아하는 동료, 동생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다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우리의 콘텐츠를 통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가 담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 발판이 나릿이 될 수 있다면, 하고 항상 바란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술 전공자로서의 삶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시간일 테니까요.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감수하고 즐겁게 해내다 보면 내가 좋아하고 지향하는 예술가로서의 방향, 시각, 기준이 생길 거예요. 흔들리지 않고, 흔들려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갖고 오래 함께 가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김수경 대표 프로필
-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_판소리
- 現 경남국악관현악단 ‘휴’ 이사
- 現 국악 밴드 나릿 대표
-2010~2013 국악 그룹 열두달_소리 멤버
-2009~2014 경남국악관현악단 ‘휴’_수석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