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희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30대 후반인데 벌써 10년 차에 접어든다. 20대 후반에 창업해서 가끔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있었지만 한 회사로 10년을 버텼다. 이력은 자부심이자, 삶의 치열한 기록이다. 공연에 미쳐서 ‘대학로에 가면 항상 있는 아이’로 불리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부터, VJ로서 콘서트 영상을 만드는 제작자가 어른이 되기까지, 뜨겁고 도전적으로 살았다.

콘서트의 흐름을 바꾸는 영상에 눈뜨다

강남의 앰버린 사무실에 들어서자 네온사인 간판이 반긴다. ‘AMBERIN’이라고 적힌 주황색 불빛이다. 앰버(Amber)는 노랑을 품은 짙은 주황색으로 배진희 대표가 좋아하는 색이자, 네덜란드 전차군단에서 알 수 있듯이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색깔이다. 앰버(Amber)라는 단어 속에 배진희 대표가 추구하는 삶의 자세와 에너지가 담겨 있다.

배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공연에 미쳐 있었다. “대학로 가면 있는 아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여서 나중에는 공연 프로덕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항상 거기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단지 돌리기, 포스터 붙이기 등의 일을 도와주게 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공연기획사에 입사를 하게 됐다. 인맥의 네트워크가 쌓여서 어렵지 않게 첫 직장을 잡았다.

공연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좋았지만, “할수록 재미나다”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끌림이 부족했다. 공연 기획을 하던 중에 관심이 생긴 것은 영상이었다. 10년 전 만해도, 콘서트의 공연 영상은 가수들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에 뮤직비디오를 틀어 주며 시간을 메우는 대체용으로 인식됐다. 수준이 높지 않았고 기획사들도 굳이 돈을 쓰지 않았다.

“한번은 콘서트에서 빔 프로젝터로 영상을 상영했는데 정말 놀랐어요. 작은 장치 하나와 영상 하나로 콘서트의 질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관객들의 시선을 쫙 빨아들이니 콘서트의 몰입도가 달라졌어요. 그래! 좋은 공연을 위해서는 영상이 필요하다 싶었어요. 가수가 노래만 하는 콘서트가 아니라, 완결된 콘셉트의 스토리를 가진 콘서트에서 멋진 영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영상으로 콘서트에 온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대학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계원예술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공연 현장에서 시스템을 운용하는 배진희 대표 공연 현장에서 시스템을 운용하는 배진희 대표

UP: 사회생활을 하다가 굳이 학교에 입학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배진희: 영상에 대해서 더 배우고 싶어졌는데 딱히 배울 만한 곳이 학교 말고는 없었어요. 학교는 가장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학원은 돈을 낸 만큼 배운다는 ‘기브 앤 테이크’ 정신이 지배한다면, 학교는 그 이상의 가르침이 있죠.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김치앤칩스의 손현정 선생님은 아직도 제 인생 멘토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변을 주세요. 학과를 졸업한 선배들이 각 분야에 퍼져 있어 제가 갈 분야에 대해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좋죠. 지금도 학교로 돌아간 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UP: 첫 번째 전공인 조경, 두 번째 전공인 영상이 지금 일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배진희: 첫 번째 전공이 조경이라고 하면 다들 생소하다고 하세요. 세상에 건축 아닌 것이 없지만, 건축은 조경의 범주에 속해 있어요. 조경은 건축이 포함되는 도시설계를 배우는 거니까요.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건, 조경을 공부했기 때문에 설계 도면을 볼 수 있어서 공연 현장의 크기, 동선, 구조를 쉽게 파악하는 것이죠. 영상은 제가 배우고 싶어 입학을 했기 때문에 더 빠르게 흡수했고 직업으로 삼게 했어요.

비주얼 자키로 손꼽히는 사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프리랜서로 영상을 제작했다. 비주얼 자키(VJ. Visual Jockey)로서 가수의 음악에 영상 기획과 콘셉트, 연출이 녹아나게 한 후, 영상의 시나리오를 짜고, 가수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음악의 선율을 이미지로 만들어 냈다. 일러스트를 넣고, 배우를 섭외해서 연기를 하는 공연 영상은 지금은 익숙해도 당시에는 처음 하는 시도였다. “감각 있다”, “색다르게 잘 한다”라는 입소문이 나자 하나둘 업무를 요청하는 분들이 늘어났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회사를 창업하기로 했지만 사무실 얻기도 가난할 때라 낡은 아파트를 개조해서 한편에 사무실을 열었다. 배 대표가 비디오디렉터를 맡았다.

UP: 비주얼 자키라는 직업의 어떤 점이 기존의 영상제작자와 다른가요 배진희: VJ라는 직업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아티스트와 공연 연출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각화해서 관객들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영상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지, 스토리는 무엇인지, 관객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과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주가 콘셉트라고 하면, 우주선이 지구로 떨어지는 영상물을 만들어서 가수가 그 속에서 나오게 하는 거예요. “여기가 어디야” 하고 고민하는 이미지와 노래 가사가 맞아떨어지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영상 하나가 극적인 효과를 주고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게 합니다.

UP: 프로덕션에서 영상을 만드는 것과 비주얼 자키로 활동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배진희: 프로덕션에서 2년 정도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비주얼 자키를 병행했어요. 회사 소속은 아니라 프리랜서였어요. CF, 뮤직비디오를 기획하고 실제 만들고, 포스트 프로덕션을 하면서 영상 제작의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그때 진로에 대한 고민이 살짝 있었어요. 프로덕션에 남을 것인가, 비주얼 자키가 될 것인가. 프로덕션에서 주로 만들던 뮤직비디오는 이미 포화 시장이기도 했고,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할 수 있는 비주얼 자키 작업은 현장에서의 긴박하고 정신없지만, 재미있고 계속 해 보고 싶은 일이라서 업(業)으로 선택하게 됐어요.

배진희 대표는 공연영상계의 비주얼 자키 시대를 열었고,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도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영상의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실력 있는 후배들이 대거 등장했다. 기존의 방법만 고수하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자본도 거절할 수 있는 배짱

“영상을 잘 만드는 시대에서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보는 시대로 변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인풋(Input)을 해야 해요. 저는 부족한 점이 있다 싶으면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녀요.” 배 대표는 미디어아트를 배우기 위해 다시 대학원에 갔고, 그 자극은 앰버린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게 만들었다.

현대자동차 신사옥 벽면에 쏜 미디어 파사드 현대자동차 신사옥 벽면에 쏜 미디어 파사드 음악 CD가 한 벽면을 차지한 앰버린 사무실 음악 CD가 한 벽면을 차지한 앰버린 사무실

UP: 앰버린에서 새로운 영상 매체로 시도한 일은 어떤 것이 있나요 배진희: 현대자동차 신사옥(한전 부지) 벽면을 활용한 3D 미디어 파사드를 진행했어요. 건물 외벽을 모두 채우는 대형 프로젝트였어요. 가수들의 음반을 영상물로 제작해 해외에서도 가수 없이 순회공연을 할 수 있도록 홀로그램 사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앰버린 초기에는 공연 영상을 주로 제작했지만, 지금은 테크놀로지를 더한 미디어 파사드, 홀로그램 콘텐츠, 미디어 퍼포먼스 제작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UP: 영상 제작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배진희: 영상은 발주처와 제작처가 있으니 갑을이 존재하는 시장이죠. 부인할 수는 없어요. 타인의 생각이 50% 이상 들어가면 그건 수주예요. 이럴 때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요. 부족하다 싶으면 배우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야 해요.

우연히 재생한 영상에 시선이 빼앗긴 순간, 공연 전 객석 등이 꺼지고 모두가 숨죽이는 순간,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모호한 순간을 ‘앰버라이즈하다’라고 표현한다. 10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배진희 대표의 10년 후 꿈은 뭘까. “영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전 세계를 돌아다녀 보고 싶어요.” 지금처럼 꿋꿋하게, 용감하게, 영상계를 이끌길 바라본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뭘 전공했든 미래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될 거예요. 건축, 조경의 베이스가 있어서 공연계에서 일하기가 편했던 것처럼요. 지금은 길이 보이지 않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했던 일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현재 하는 일에 더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진희 대표 프로필 -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아트 전공
- (주)앰버린 대표

영상제작
-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 루시드폴 4집 발매기념 앵콜 콘서트
- 이문세의 붉은노을 콘서트
- 현대자동차 신사옥 미디어 파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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