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는 무대 위에서 네 명이 모여 하나가 될 때 완전체가 된다. “연애는 보류”라는 말처럼 북에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서로만 믿고 팀을 이뤄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타고는 국내 유수의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하며 실력을 입증했고, 전통음악을 토대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2016년에는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며 대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타고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연애도 보류한 지독한 완벽주의자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후드득후드득. 관객이 한 명도 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갑자기 비를 떨어뜨린다. 오늘 공연에는 몇 명이나 올까?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른다. 비가 온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한국의 타악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우리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단지를 들고 뛰었다.”

201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타고의 멤버들이 힘들면 떠올리는 기억이다. 그곳에서 약 30일간 25번의 공연을 했다. 하루 약 2,000개의 공연이 올라가고 세계 각국의 최고 기량을 갖춘 사람만 참가한다는 에든버러에서 타고는 최고의 공연에 주어지는 평점 별 5개를 받았다. 벌써 6년 전인데 그때의 경험이 타고의 멤버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타고의 연습실에는 공기청소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되고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참가를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타고 멤버 4명(김병주, 김시원, 이강일, 현호군)은 삶의 대부분을 같이하는 친구이자, 음악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이다. 이들은 세션이 아니라 뮤지션이고, 북 하면 떠오르는 최고의 팀을 만들고자 하는 같은 열망을 품고 있다.

UP: 타고는 어떤 가치를 위해 결성되었나요 타고는 전통 예술의 본래 가치와 다양한 창작 활동을 통해 세계에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을 목적에 두고 있습니다. 젊은 전통 예술가들이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단체입니다. 타고는 두드릴 ‘打(타)’, 밝을 ‘考(고)’로 ‘두드려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예요. 사물놀이의 창시자인 중앙대 국악과의 최종실 교수님이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UP: 타고의 멤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타고는 31살 동갑내기이자 중앙대 동문인 친구 4명이 주축이 되고 공연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서 후배들이 같이 서기도 합니다. 원래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결혼을 하면서 그만뒀어요. 솔직히 말하면 사생활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지금은 팀의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요. 다른 팀들의 멤버들은 연주 활동이나 강사 등을 겸임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오직 타고에만 소속되어 있어요. 연애도 보류라고 할 정도로, 좀 지독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UP: 전공이 타고를 결성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모두 같은 학과의 동문이라 쉽게 뜻을 모을 수 있었어요. 동질감이 있었죠. 학과에서 제대로 배웠으니 음악으로는 우리 실력이 우수하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크로스오버라고 하면 전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가 쉬운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실력을 밑바탕에 두고 있기에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초기에는 걱정이 많았다. 2009년 군대를 제대했을 때, 연주자로 이름을 알릴 수 있을까,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우리만의 색깔을 담은 음악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뜻을 같이하는 타고의 멤버들이 있었으므로.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굳건한 마음

성과는 대단했다. 2009년에는 포항 MBC 주최 제1회 창작국악제, 2010년에는 포스코 주최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창작 대학국악제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 또한 2015년 서울시 전문예술 단체로 지정되었으며, 서울시 신진 국악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9년의 창작국악제는 군대 제대 후 팀을 결성해 참여한 첫 대회였다. 타악 팀이 곡을 만들어서 출전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중절모를 쓰고 춤을 췄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김시원은 “타고 팀을 알리게 된 계기였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은 대회”라고 의미를 전했다.

얼마 전까지 무대에 설 때 화장을 본인들이 직접 했다. 지금도 밤을 새워 연습하기도 하고 소품이나 장비들을 직접 준비한다. 무대 위에서 4명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약속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의 맛과 멋이 조금씩 다르다.

UP: 각자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김병주: 상쇠입니다. 자존심이 세고 리더십이 있다고 해서 대표를 맡았습니다. 대표를 해 본 적이 없어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면서 배웠어요.
김시원: 타고의 곡들을 작곡하고 있어요. 무대에서 어떻게 연출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많이 냅니다.
이강일: 고수의 역할을 합니다. 네 명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받쳐 주고, 기본 판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에요.
현호군: 들어갈 때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나온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많은 만큼 넷 중에 재주가 가장 많아요.

UP: 공연을 수입으로 하는 국악인으로 살면서 무엇이 힘들었나요 역시나 금전적인 부분이었죠. 저희는 돈이 먼저냐, 꿈이 먼저냐는 질문에 꿈을 선택했어요. 공연 기획을 해 보니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그래도 돈을 선택했다면 아마 꿈이 사라졌을 것 같아요. 꿈을 향해 같이 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면 아마 더 힘들었겠죠.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성공한다는 말이 저희 팀을 보고 하는 말 같아요.

타고의 멤버들은 수입이 생기면 다음 공연을 위해 우선 저축을 한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금액을 배분하고 나머지는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는 것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가는 비행깃값과 경비도 몇 년 전부터 모으고 있었다.

북하면 타고, 타고하면 북을 떠올리는 브랜드

타고는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세계시장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이다. 영국에서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는 하루 약 2,000개의 공연이 오르고 세계 각국의 최고급 기량을 갖춘 자들만 참가한다. 해외 투어를 갈 수 있도록 프로모터들을 만나고 자신들을 세일즈하는 기회를 갖는다. 한국에서는 5개 팀만이 초청받았는데 2011년 이후 두 번째로 참여하는 것이니 조금 익숙할 뿐, 부담감은 여전했다.

UP: 앞으로 타고를 어떤 국악 그룹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2016년 8월에도 목숨 걸고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습니다. 한 달 동안 총 25회의 공연을 펼쳤고 저희 팀의 이름인 ‘타고’를 메인타이틀로 도전했습니다. 몇 년간 실력이 성숙해진 만큼 현지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난타가 그랬듯이 저희도 이 ‘타고’라는 두 글자를 널리 알려 브랜드화하고 싶고, 추후에는 해외 투어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타고는 북을 아주 세련되고 잘 연주하는 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북’ 하면 타고, ‘타고’ 하면 북이 떠오를 수 있게끔 말입니다.

타고는 대중들이 쉽게 국악을 접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을 보기 힘든 소외된 지역에 찾아가서 다양하게 공연을 보여 드리고 있는데, 매번 똑같은 공연이 아닌 눈높이에 맞춰 어린이가 볼 때는 마술과 국악을 접목해 보여 주고 어르신들이 보실 때는 우리의 소리와 트로트를 접목해 보여 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서는 현대인들의 지친 일상 속에 웃음을 찾아 주기 위해 버스킹 공연을 펼친다. 그들은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도록, 국악이 외면받지 않도록, 먼저 다가서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용기 있으므로, 주저하지 않으므로 박수를 받을 만하다.

“예술 전공자의 삶은 매우 힘들고 고독합니다. 제 말이 모두 맞는 말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 내며 무대에서 관객들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게 바로 예술 전공자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자 삶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힘든 길을 친구들이 있어 함께 올 수 있었다. 타고가 울리는 북소리가 세계에 울려 펴지는 날도 머지않았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예술 현장은 정말 치열하죠. 예술 단체가 계속해서 늘어 가니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펼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저희도 그랬죠. 남의 떡이 커 보였고 ‘왜 난 이 자리지’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반대로 서른 살이 될 무렵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찬 생각을 매일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조금씩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했죠. 너무 안 된다고 자신을 자책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한발 물러나 쉬면서 바라보면 좀 더 넓은 시야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타고 프로필(4명 동일) -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타악연희과 졸업
- 타고(TAGO)의 멤버

타고 공연 및 수상 이력 - 2009년 포항MBC 전국 퓨전국악 경연대회 대상
- 2010년 제2회 대한민국 대학국악제 대상
- 2011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코리안드림 영고’
- 2014년 국립국악원 별별연희 초청 공연
- 2015년 서울시 신진국악상 우수상
- 2016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TAGO Korean Drum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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