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보통 시민이 행복한 나라』. 대통령 직속 지방발전위원회 홍철 위원장이 2011년 초 반 7년간 재임하던 대구경북연구원 원장직을 마무리하면서 펴낸 책의 제목이다. 홍 위원장은 ‘지방 보통 시민’의 행복 없이는 결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하겠지만, 시민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같은 ‘문화’ 부문의 정책적인 변화가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간 대구는 대구 보통 시민이 문화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힘써왔다. 지난 10년간 사회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있었겠지만 대구 지역의 문화예술 환경 또한 크게 변했다. ‘속도전쟁’이라는 말이 과학기술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그대로 적용된 듯하다. 우선 문화관련 많은 시설들이 들어섰고 또 한창 건립 중에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고 문화예술지원금 제도가 정착되면서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도 늘어났다.

전문화된 문화 공간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해법 고민

대구에서는 1975년 개관한 대구시민회관, 1992년 개관한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오랜 세월 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옛 공회당 자리에 들어선 대구시민회관은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위치해 대형 문화행사가 주로 열렸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시립예술단 7개 단체가 상주하고 있고 1천석 이상의 공연장과 함께 타 도시 시립미술관에 버금가는 규모의 전시실이 구비되어 문화 활동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그러다가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관하면서 대구 문화예술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구 시내 소극장은 예전아트홀, 마루소극장을 비롯해 백화점 내 공연장을 포함해도 10개 미만이었다. 그러나 2004년 5월 전국연극제를 대구에서 개최한 이후부터 소극장이 연달아 개관하기 시작했다. 2004년 떼아뜨르 분도가 개관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열린극장 마카, 씨어터 우전이 잇달아 문을 열면서 소극장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2007년 2월에는 동성로에 300석 규모의 문화예술전용극장 CT가 개관했다. 2008년 2월 뉴컴퍼니 소극장이 반월당에 문을 열었고, 같은 해 한울림 소극장과 빈티지소극장, 엑터스토리 소극장 등이 잇따라 개관했다. 2011년 3월에는 중구 공평동이 아트플러스시어터가 문을 열었고 지난 달 초 아트플러스시어터 제2관을 개관했다. 씨어터 우전과 함께 한울림 소극장, 빈티지소극장, 엑터스토리 소극장 등은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인근에 자리 잡았고, 예전아트홀도 인근 지역으로 이전해 오면서 2009년 이 일대는 대명공연문화거리로 지정됐다.

근래에 개관한 소극장들은 모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들이 전속 극장 개념으로 준비했다는 점이 특색 있다. 소극장 개관은 물리적인 연습공간이자 공연장이라는 개념을 넘어 극단 혹은 배우들이 각각의 색깔 있는 연극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역 공연계에 활기를 불어넣은 일로 평가된다. 실제로 소극장이 늘어나면서 극단들의 창작 초연작 발표가 활성화되었고, 극장마다 레퍼토리 작품을 장기 공연하는 극단이 늘어났다. 대구의 소극장들은 ‘대구소공연장연합회’를 발족했고 2009년부터 매년 말 ‘소극장 있다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전시 공간 배 이상 늘어

최근 10년 사이 대구 지역에서는 전시공간의 숫자도 배 이상 늘어났다. 2000년대 초 30여 개에 이르던 전시장이 2012년 현재 80여 개에 다다르게 됐다. 2000년대까지 대구 미술계에서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렇지만 대구문화예술인들은 전문화된 시립미술관이 없던 것을 가장 안타까워했고, 10여 년 동안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11년 5월 드디어 대구미술관이 개관했다. 대구미술관은 개관 이후부터 쉴 새 없이 국내외 작가들의 흐름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기획전들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지만 개관 1주년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대구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 어떤 특징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미술 전문가들은 타 도시에 비해 비교적 늦게 출범한 시립미술관인 만큼 대구 지역의 역사성을 살리는 미술관, 혹은 국내외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작품을 소장하는 현대미술관 등 어떤 구체적인 특색을 갖춘 후, 그 방향에 맞춰 작품을 소장하거나 기획 전시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역 내외 미술 전문가들의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 대구미술관 전경

그 외 구군문화회관 전시실은 공연장 위주의 건물에서 전시장의 명분을 유지하는 정도로 운영되었다. 그 가운데 2004년 봉산문화거리에 개관한 중구 봉산문화회관은 각각 특색 있는 전시실을 단장해 문화거리를 대표하는 전시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민간화랑으로는 동원화랑, 송아당화랑, 맥향화랑, 갤러리 신라 등 오랜 역사를 가진 화랑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봉산문화거리와 삼덕동, 대봉동 인근에 크고 작은 화랑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도심을 벗어나 외곽 지역에서도 갤러리가 속속 개관했다. 가창과 청도 인근 등 도심에서 한 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는 곳에 갤러리가 문을 연 점, 최근 문을 연 민간 갤러리들은 컬렉터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특색으로 꼽을 수 있다. 그 외 카페 공간과 갤러리를 겸한 곳도 속속 개관하고 있다. 이 같은 화랑의 변화는 이제 미술 작품을 접하는 것이 일상생활 속으로 가까이 다가온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구 외곽지역인 가창에는 폐교를 활용한 레지던시 공간인 가창 창작스튜디오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 11월 초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지하상가 공간에 신진작가들의 레지던시와 작품 전시공간이 조성되었다.

문화 소비도시에서 생산도시로

문화공간이 늘어난 만큼 공연, 전시 행사도 보다 풍성해지고 각 행사마다 규모도 커졌다. 우선 국제 규모 종합예술축제가 속속 생겨났다. 대구 공연예술계의 가장 큰 성과라면 공연에서 종합예술 장르라 할 수 있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테마로 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시작된 것은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 개관과 동시에 Pre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열면서부터다. 지방 도시로는 매년 배출하는 음악 전공자들이 가장 많은 도시가 대구다. 그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축제가 바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다. 대구시는 2004년부터는 매년 가을 본격적인 국제 규모의 오페라축제를 열어 왔고 2012년 10주년을 맞았다.

대구국제뮤지컬축제는 2007년 여름 첫 막을 올렸고 2012년 제6회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이제 대구는 뮤지컬 &lsquo;생산&rsquo;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 대구국제뮤지컬축제는 창작 뮤지컬의 트라이아웃 무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대구국제뮤지컬축제 조직위원회가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를 문화 상품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2012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청라언덕>	▲ 대구뮤지컬축제 창작 뮤지컬 <투란도트>

화려했던 &lsquo;과거&rsquo;를 근간으로 &lsquo;미래&rsquo;를 만들기 위한 현재의 노력들

한동안 대구는 &lsquo;역사적으로 대구는~&rsquo;이라는 회고를 자랑처럼 앞세우며 살았다. 과거 구상미술 중심 도시, 과거 현대미술 도시, 과거 작곡의 도시, 과거 사진의 수도 등등&hellip;&hellip;. 그렇지만 오랜 세월 그 명성을 잇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대구는 화려했던 대구 문화예술의 &lsquo;과거&rsquo;를 현재로 끌어오고, 또 그것들로 대구 문화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펼쳐왔다. 그로 인해 대구의 문화예술 환경은 내외형적으로 정말 풍성해졌다. 그 과정에 국내외 타 도시의 문화예술의 흐름이 유입되고 그로인해 토착 예술가들도 자극을 받아 창작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이제 대구는 다양하게 쏟아지는 문화예술 정책과 시설 그리고 축제 행사 가운데 정말 대구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 취사선택할 것인가이다. 그를 위해서는 대구의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아카이브 축적과 문화행사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도 함께 힘을 쏟아야할 때다. 현재 지역에서는 비평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구나 공식적인 매체가 없는 실정이다.

최근 대구는 과거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근대골목을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 매김 시키는 데 성공했다. 바로 이 근대골목과 인접한 대구 중구 북성로 수창동에 대구예술발전소가 건립되었고 2013년 3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대구예술발전소는 지난 2008년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 시범사업으로 확정된 이후 건립이 추진돼 온 곳이다. 이곳은 창작 공간(창작 레지던시, 프로젝트스튜디오, 워크샵 공간 등), 교육 공간(미디어테크, 키즈스페이스 등), 지원 공간(전시장, 공연장, 자료관) 등으로 조성된다.

개관을 앞두고 현재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국내외 예술가들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다. 대구의 예술인들은 예술발전소가 지금까지 대구가 기울여 온 다양한 노력들에 대한 결과물을 집결시켜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활용되도록 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이름 그대로 &lsquo;대구 예술&rsquo;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의 &lsquo;발전&rsquo;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lsquo;보통 시민이 문화로 행복한&rsquo; 대구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