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 주에 주말을 끼고 2박 3일 일정으로 축제워크숍이 열렸다. 축제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한 이 워크숍은 이번이 네 번째로 금년은 특별히 예술축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는 매번 논의에는 참여했지만 연사로 직접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였다. 지난여름에 유럽의 축제 몇 개를 하릴 없이 돌아다닌 것을 안 담당자가 그 얘기를 해달라는 것이 첫 번째요, 점심을 먹고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 토론을 이끌어달라는 것이 두 번째다. 라운드테이블에는 오전에 같이 강연했던 최석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과 정진세 극단 문 작가가 패널로 동행했다.

축제 워크숍을 앞두고 두 주쯤 전 토요일 낮에 나를 포함한 패널 세 명과 담당자가 대학로에 모였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어떤 얘기를 어떤 식으로 다루면 좋겠는지 의논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축제가 숙명적으로 가지는 다양한 대중들과 그 소통을 주제로 하자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패널들이 미리 질문을 만들어보자고 약조했다. 주장이나 답이 아닌 ‘질문’이다! 라운드테이블의 큰 제목은, 줄이면, “축제와 소통”이다. 우리는 공연예술축제의 소통 대상으로 크게 4개의 그룹을 설정했다. 그 4개의 핵심 그룹은 관객, 예술가, 정부 그리고 내부고객 등이다. 이외에도 축제가 소통해야할 대상으로 언론이나 기업, 일반 시민, 평단 등 더 있을 것이다. 시간 등 여건을 감안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4개의 그룹으로 한정했다. 질문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지만 정진세 작가는 자유로운 영혼답게 색다른 스타일의 설문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축제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을 경우, ‘좋아하는’ 예술가나 작품을 편성할 것인지, ‘잘하는’ 예술가나 작품을 편성할 것인지 묻는 식이다. (참고로 이 설문에 대한 답은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의 독특한 질문들은 뭉치에서 빼서 따로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 23개의 질문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 우리 패널들이 내놓은 원고의 전부였다.

‘수월성’과 ‘축제성’이 핵심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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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테이블은 이번 워크숍의 마지막 세션이었다. 주최 측은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질문 리스트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관심 있는 질문에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의 관심은 예닐곱 개의 질문에 몰렸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스티커를 받은 것은 내부고객과 관련된 것이었다. 의외였다. 정부나 관객이 아닌 내부를 첫 번째 소통대상으로 꼽은 것이다. 축제는 인력 탄력성이 매우 큰 조직이다. 평소에 두어 명의 사무국 스태프(그것도 상설 사무국이 있는 경우다)로 운영하다가 축제 때는 그 수가 수십 명, 수백 명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난다. 맡은 분야도 다양하고 분야별로 요구하는 전문성도 천차만별이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축제는 그 실행을 아웃소싱으로 넘기는 경우도 많고 자원봉사자들의 역할도 크다. 이런 복잡다단한 구조와 상황에서 축제의 미션과 방향성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하는 것이 질문의 요지다. 답이나 토론도 그렇지만 축제 스태프가 축제의 성공의 출발점으로 축제 내부의 소통을 첫 번째로 꼽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음으로 스티커를 많이 받은 것은 정부와의 관계다. 짐작하던 바다. 특히 지방정부가 큰 지분을 가진 경우 정부와 축제 운영진은 다른 목표와 동기로 결합한다. 기대하는 바도 다르고 성과를 내는 방식도 다르다. 예산권과 행정감독권, 인사권 등에서 비롯되는 힘의 불균형은 불통 또는 일방통행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이런 까다로운 대상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질문의 요지다. 답은? 한마디로 절망에 가깝다. 정답이라고 할 만한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관료를 이해하고 행정 프로세스를 익힌다 해도 관료가 축제와 축제 조직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의 구도는 더욱 고착될 것이다. 둘이 가까워도 꼭 좋은 게 아니다. 딜레마다.

외견상 축제의 접점의 양축인 예술가와 관객은 어떤가? 대부분의 우리 공연예술축제에서 예술가들은 ‘초청’된다. 그런 상태에서 축제의 미션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지 혹은 바람직한 것인지 물었다. 축제의 또 다른 주인공인 관객은 요즘 축제의 핵심 화두다. 정확히는 ‘시민참여’가 대세다. 문제는 그 시민이 어떻게, 어떤 수준으로 공연예술축제에 참여해야 ‘시민참여’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역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정도가 그나마 가능한 수준이라는데 공감대를 나눴다. 공연예술축제를 구성하는 ‘예술’과 ‘축제’는 핵심 속성이 좀 다르다. 통상적으로 예술은 ‘수월성’이, 축제는 ‘축제성’이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둘 중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토론은 2시간 반 정도 계속됐다. 진지했지만 뜨겁지는 않았다. 질문에는 공감하지만 마땅한 답이 없기 때문일까? 소통의 필요는 인정하지만 현실적인 묘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까? 각각 조금씩(또는 많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축제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잘 소통하는 것이 축제의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각론에 들어가 보면 여기저기 암초와 늪 투성이다. 현실적 여건이 하나같이 만만찮다. 역설적으로 기대수준을 낮추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기다리는 것도 선택지의 일부로 남는다. 아, 그래도 현인이 나서 명답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정도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내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로 축제와 관련해서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2007-2009)와 하이서울페스티벌(2010-2011) 예술감독 등으로 일한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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