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불린다. 더 나아가 도시의 경쟁력은 문화 수준에서 나온다. 품격 있는 문화도시의 전제조건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명품 문화 수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전도 ‘문화도시 대전’을 지향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비롯해 문화 공간 마련에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물론 예술인들은 사실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문화의 불모지’라고 불리우던 대전 문화예술의 현실을 짚어보고, 향후 ‘문화도시 대전’을 진단해 봤다.

‘문화도시 대전’

대전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커지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게 사실이다. 특히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전반적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된 탓에 지역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과 체험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전은 지역과 차별을 둘 수 있는 많은 발전 가능성(과학, 선비·양반 문화)이 있는 도시이기에 희망의 끈을 놓기가 쉽지 않다.

대전은 지리적 여건상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2시간 안에 올 수 있는 거리다. 또한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첨단 과학 인프라, 선비문화, 교육 환경 등의 장점과 문화예술의 융·복합을 통한 대전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앞서 현재 대전 문화인프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 정확한 인적․물적 문화자원 현황조사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공영역의 자료들은 그나마 확인이 가능하지만 민간 영역은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기초적인 문화 인프라 현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는 대략 600여 단체(2011~2013년 문예진흥기금 신청단체)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대전지역의 문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전문화재단이다. 지역 문화예술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재단은 지난 2009년 설립돼 문화예술을 지원하여 시민들과 함께 향유하고 개발․발전시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또한 각종 공연과 전시회 등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충족되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굵직굵직한 문화시설들이 들어선다. 국악전용공연장을 비롯해 대전문화예술센터 등 대규모 문화시설들이 건립돼 삶속에 문화가 숨 쉬는 대전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가 숨 쉬는 원도심

‘대전 문화예술 1번지’라 불리는 대전의 원도심 중구 대흥동. 근대 문화유산과 수십 년의 세월이 그대로 멎은 듯한 거리, 젊음의 생기가 어우러진 이곳에 문화예술의 향연이 더해지고 있다. 과거부터 화랑과 표구사 등이 즐비했던 원도심에 최근 소극장 등이 속속 들어서고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시민들의 소통공간이자 문화향유자들의 공간으로 한때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를 비롯해 게스트 하우스, 레지던시 공간 등 문화공간들이 하나둘씩 등장했으며, 공연 및 시낭송과 같은 소규모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곳 예술인들과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 졌다.

대전시도 지난해에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하는 ‘원도심 활성화 프로젝트 시민 공모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의 첫 시작부터 문제점이 잇따라 발생했고, 취지와 맞지 않는 사업이 무더기로 선정되면서 ‘허공에 돈 뿌리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전문화재단이 진행한 대중문화예술 특화거리 조성사업 또한 콘텐츠 부실 등 어려움을 겪으며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렇듯 다양한 사업들이 원도심을 주축으로 진행됐지만, 성과주의에 앞선 부실한 사업 계획으로 시민들은 물론 예술인들에게 외면 받았다. 지난해 대중문화예술특화거리 조성사업 모니터링에서도 다양한 문제점들이 나왔다. 특히 ‘익사이팅(Exciting) 대전 2012 원도심 활성화 지원사업’은 동일 공간에서 실시돼 혼동된다는 점과 주관단체의 협력체계 홍보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도기라 치부해버리기에는 그에 따른 결과물이 미비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술계 한 인사는 “원도심 활성화라는 취지아래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됐지만, 오히려 아쉬움만 남긴 꼴”이라며 “무차별적인 지원이 아닌 대전의 문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대전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문화활동가 뜨거운 열정 속 ‘희망’

“하지만 대전 문화예술계에 희망은 있다.”
지역 예술발전의 새로운 바람이 되길 기원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하는 문화운동가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전의 어려운 문화예술 여건 속에서도 젊은 문화활동가들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는 문화활동가들이 대전 예술행사 기획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탈 대전현상’이었던 대전에 젊은 문화활동가, 기획자가 하나둘씩 모여 희망의 불빛을 비추고 있다.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문화기획사 ‘조선그루브’, ‘오감’ 등 문화기획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또한,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닷찌플리마켓’, ‘대흥동립만세’, ‘회덕굴다리축제’, ‘중촌평화축제’ 등 지역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축제 및 이벤트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미약한 예술·과학 융·복합 예술

타지역의 굵직굵직한 문화예술 행사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처럼 대전 또한 지난해 새롭게 ‘프로젝트 대전 2012: Energy(에네르기)전’을 기획․진행했다. 과학·문화도시 대전이 ‘예술·과학 융합 창조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미술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출발 단계부터 체계적인 준비 없이 행사를 시작했고 결국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단기간의 전시기획으로 기존에 계획했던 전시기간이 지연돼 결국 컬렉터, 관람객들에게 모두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구색맞추기용 행사라는 지적과 함께 2년 후 치러질 ‘프로젝트 대전’ 행사는 조금 더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행사와 연계해 진행된 ‘아티언스 페스티벌’ 또한 아쉬움을 남겼다. 다양한 전시, 공연 프로그램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지만 전시 작품이 일부 훼손되고 관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이들의 체계적인 준비 기획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관심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대전은 연구단지라는 인프라를 갖고 있는 만큼 과학·예술의 융복합 향후 발전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예술인들과 과학자들의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술인들이 과학을 생각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예술을 생각하지 않는 시점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시립미술관 ‘프로젝트 대전 2012’ 전시	▲ 대전문화재단이 진행한 융복합 프로젝트 ‘아티언스 페스티벌’

민-관이 함께 만드는 ‘문화도시 대전’ 필요

문화도시 대전은 관(정부)과 민(민간)에서 각각 노력을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민·관이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는 뜻이다. 이 중심에 서있는 것이 바로 대전문화재단이다. 출범당시 문화예술 활성화에 큰 원동력으로서 대전문화예술의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출범 4년차를 맞은 재단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정책 부진과 사업 진행 과정에서 마찰 등으로 지적이 적지 않았다.

사실, 문화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따라 한 지역의 문화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낼 수 있을 만큼 문화재단의 영향력은 크다. 하지만 설립 이후 재단은 독립성 확보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무려 한해 60여개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나, 그 사업 대부분은 대전시의 위탁사업으로 아직 재단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나 지역 특화사업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대전시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 독립성과 전문성을 키워나가기 위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지역의 문화시설을 관리하거나 공연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것에 치중하는 재단이 아닌 중장기적인 호흡을 통해 문화정책 지원과 지역문화역량을 양성하는 ‘거점센터’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문화계 한 인사는 “대전을 대표할 수 있는 지역 정체성에 맞는 독특한 예술기획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게 재단의 역할”이라며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해 대전만의 정체성을 문화예술로 표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민·관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대전만의 정체성을 문화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정책 디자이너’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