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류의 확산으로 문화예술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분야의 기반 확충이나 효과적인 지원정책은 아직 미흡한 편인데 반해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번 연재는 공연예술분야에서의 한류가 어떤 의미인지, 현장 종사자들이 어떻게 체감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속적인 공연예술한류를 모색하기 위한 향후 과제들을 짚어봤다.
연재순서
① 공연예술한류란 무엇인가
②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산업화
③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경쟁력
④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문화적정체성
⑤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공공의 역할
⑥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문화정책적 과제

포스트 한류의 조건들

올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글로벌 열풍으로 K팝(K-Pop)의 초국적화가 가속화되면서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류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느낌이다. 한국의 드라마와 아이들 그룹들의 노래가 주로 중화권 국가나 동남아시아 국가에 인기를 얻으면서 시작된 한류는 발생 초기만 하더라도, 그 지속가능성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K팝을 위시해서 영화, 드라마, 게임, 공연 등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나름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보면, 한류는 일시적인 거품 단계를 지나, 내구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동아시아 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 남미에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본어로 된 공연 ‘점프’의 포스터

나는 이러한 최근 한류의 흐름을 포스트 한류로 정의하고 싶다. 그렇다면 포스트 한류는 기존의 한류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을까? 두 가지 관점이 중요하다. 첫째, 포스트 한류는 문화콘텐츠의 생산 범위와 소비의 영역이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해 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류와 그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류는 주로 영화와 드라마가 주도했다. 물론 &lsquo;H.O.T.&rsquo;와 &lsquo;신화&rsquo;와 같은 아이돌 그룹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한류 문화콘텐츠의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은 영화와 드라마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와 한류 문화콘텐츠는 전통적인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에서 강세를 보일 뿐 아니라, 게임, 공연, 패션, 음악, 관광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lsquo;리니지&rsquo; &lsquo;아이온&rsquo; &lsquo;마비노기&rsquo; 등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한국의 문화콘텐츠 수출의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또한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점프>와 아이돌 그룹 출신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이 확실한 관객층을 확보하면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한류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도 동아시아 국가 중심에서 북미와 유럽, 남미까지 확대되고 있는 점도 포스트 한류 현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특히 케이팝이 주도하는 한류의 글로벌화는 한국의 대중문화 역사에서 오래 동안 구조화된 문화적 미국화, 혹은 서양문화의 흉내내기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문화적 혼종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lsquo;강남스타일&rsquo;의 전지구적 유행은 한류문화의 탈아시아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포스트 한류 시대에는 문화담론에서 문화자본으로의 이행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류문화는 새로운 문화유행의 실체를 진단하는 담론이 주요 대상이었다. 한류는 과연 실체가 있는가, 한류는 지속가능한가, 한류의 지원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가 주된 논쟁거리였다. 한류의 문화담론 논쟁에는 한류가 문화민족주의를 대변하는 기표에 불과하다는 의견에서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지금 한류의 실체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한류의 문화적 실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연구자들은 요즘에 한류의 문화민족주의가 어떻게 문화산업의 재생산에 동원되고 있는지에 더 주목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 한류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담론이 아니라 문화자본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한류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자본의 위력이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K팝을 제작하는 국내의 주요 연예기획사들은 제작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금융자본이나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연예기획사들은 자본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고, 투자받은 자본으로 연예제작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

포스트 한류는 이제 한류라는 말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한류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하고 낯선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류라는 말이 의미하는, 한국이 만들어 낸 문화콘텐츠의 글로벌 흐름이라는 일반적이고 특수한 정의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한류 문화콘텐츠는 문화산업 시장에서 개별 문화콘텐츠로 빠르게 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류라는 언어보다는 개별 문화콘텐츠들의 글로벌 인지도와 경쟁력, 혹은 특별한 문화현상의 조건들이다. 영화, 드라마, 게임, 공연 등으로 분화된 현재 상황에서 한류는 너무 촌스러운 언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포스트 한류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글로벌 현상들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해보자.

공연예술한류의 세 가지 지형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한류는 영화, 드라마, 게임, 대중음악과 비교해 보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최근 뮤지컬 공연의 선전에 힘입어 공연예술이 서서히 한류콘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공연예술한류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게 쉽지 않지만, 대략 대중음악콘서트, 뮤지컬 분야 등에서 일고 있는 국제적인 인기, 혹은 관심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빅뱅의 콘서트(YG엔터테인먼트)

▲ 빅뱅의 콘서트(YG엔터테인먼트)

먼저, 언급할 수 있는 분야가 K팝 공연시장이다. K팝이 유튜브를 비롯해 오래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에 비해 콘서트 열풍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특히 K팝의 콘서트 시장은 주로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싸이가 &lsquo;강남스타일&rsquo;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유료 티켓팅을 동반한 공식적인 단독 콘서트를 아직 열지 않고 있다. 올 초에 시작해서 2013년 1월까지 진행되는 빅뱅의 첫 월드투어 &lsquo;얼라이브2012&rsquo;는 12개국 24개 도시에서 대략 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예정이지만, 대부분 한국의 유명 K팝 뮤지션들은 무리한 월드투어보다는 확실한 시장이 형성된 일본공연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전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대중음악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높은 엔화 가치와 차별화된 마니아 관객층, 그리고 투명한 시장운영과 지리적 가까움 때문에 K팝 뮤지션들이 최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곳이다. &lsquo;동방신기&rsquo;를 포함해 &lsquo;빅뱅&rsquo; &lsquo;슈퍼주니어&rsquo; &lsquo;소녀시대&rsquo; &lsquo;카라&rsquo; &lsquo;비스트&rsquo; &lsquo;씨앤블루&rsquo; &lsquo;FT아일랜드&rsquo;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이나 밴드들은 일본 시장에서의 높은 공연경쟁력을 활용한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K팝 그룹들의 수익은 대부분 싱글음반판매와 공연티켓판매에서 나온다. 중화권 국가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들의 인지도가 비록 일본보다 높다 해도, 콘서트를 통한 수익 창출에 있어서는 일본 공연시장만큼 경쟁력이 없다. 중국과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공연제작과 매니지먼트 시장이 투명하지 못해 간혹 공연 수익배분을 둘러싸고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K팝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K팝 뮤지션들의 투어 콘서트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시장도 일본 중심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로, 다시 유럽과 남미 국가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명랑씨어터 수박의 작품 빨래 공연모습

▲ <빨래>(명랑씨어터 수박)

두 번째는 뮤지컬 공연시장이다. 뮤지컬 시장을 한류의 한 사례로 볼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면, 다른 한류 문화콘텐츠 시장만큼은 아닌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국제무대에서 성공한 사례는 1995년 제작된 <명성황후>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최근에 한국 제작진이 만든 창작뮤지컬 <빨래> <광화문연가> <잭더리퍼> 정도가 일본 뮤지컬 시장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성공사례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주목할 것은 K팝의 인기로 인해 아이돌 그룹 출신의 멤버들이 출연한 국내 뮤지컬 공연콘텐츠의 객석 점유율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한류 관광객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JYJ의 멤버 시아준수가 주연한 <모짜르트>와 <엘리자벳>은 해외 한류 관광객의 적극적 티켓팅에 힘입어 전석 매진행렬을 보여주었다. 이밖에 <궁> <리걸리 브론드> <캐치미이프유캔> <내사랑 내곁에> 등의 뮤지컬에 아이돌 그룹들의 주요 멤버들이 캐스팅되었거나, 캐스팅 될 예정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출연이 공연의 완성도 면에서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음에도 국내 뮤지컬 시장의 한류 흥행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창작뮤지컬이건, 라이선스뮤지컬이건 아이돌 멤버들이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은 해외 공연시장 진출의 차원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와 <점프>와 함께, 국내로 들어 온 해외 관광객들에게는 장기 흥행 레퍼토리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또한 뮤지컬 <빨래> <잭더리퍼>와 같은 창작 뮤지컬이 일본 뮤지컬 시장에 판권이 팔려 장기 공연에 들어간 점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인디밴드 음악과 국악과 같은 비주류 공연 분야에서의 해외 진출 현황이다. 아직까지 비주류 음악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공연콘텐츠는 발견할 수 없지만, 국내 실력파 인디밴드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노력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lsquo;갤럭시익스프레스&rsquo; &lsquo;국카스텐&rsquo; &lsquo;노브레인&rsquo; &lsquo;스트라이커스&rsquo; 등 로큰롤, 펑크 밴드들은 비록 아이돌 그룹의 인기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의 인디 공연 시장에서 나름의 지명도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 최근 &lsquo;바람곶&rsquo; &lsquo;노름마치&rsquo; &lsquo;비빙&rsquo; &lsquo;공명&rsquo; &lsquo;바이날로그&rsquo; 등 크로스오버 월드뮤직을 지향하는 국악 앙상블 그룹들 역시 유럽의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한국의 월드뮤직 그룹들은 최근 하향세에 있는 세계 월드뮤직시장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노름마치’ 공연 ‘바람곶’ 라사문화센터 공연
▲ &lsquo;노름마치&rsquo; 공연 ▲ &lsquo;바람곶&rsquo; 라사문화센터 공연

공연예술, 글로벌 경쟁력은 가능한가?

사실 공연예술한류는 편의상 쓰는 말일 뿐, 더 정확한 명칭은 한국 공연예술의 글로벌 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공연시장은 뮤지컬 시장의 성장으로 지난 몇 년 사이에 자본의 규모가 대단히 커졌다. <난타> <점프> 등 롱런하는 기획 흥행 공연작품에다, 대규모 자본이 투여되는 뮤지컬 시장, 그리고 K팝의 열풍으로 가속도가 붙은 라이브 공연 시장까지 공연예술 시장도 다른 한류 문화콘텐츠 시장에 못지않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공연예술시장에서는 단지 거대 자본과 흥행 배우 및 뮤지션이 있다고 곧바로 국제적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공연예술시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연시장의 장기발전에 필요한 창작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작곡, 작사가, 무대연출, 무대기술, 공연기획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문인력의 수급과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가 마련되어야 한다.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인 제작사들이 창작자들과 전문기술인력을 배려하지 않는 한, 공연예술시장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창의적인 시나리오 작가, 감각이 뛰어난 공연기획 및 연출가, 전문능력을 겸비한 무대기술인력 등 공연예술의 기반을 다지는 인력들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만이 빤짝 흥행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공연 관련 풍부한 전문인력의 양성만이 라이선스에서 창작 중심의 원천 공연콘텐츠 제작으로 방향을 선회할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동연 필자소개
이동연은 중앙대 영문과에서 비평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한국음악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문화과학사, 2010), 『대안문화의 형성』(문화과학사, 2010) 등과 공저 『아이돌』(이매진,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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