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류의 확산으로 문화예술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분야의 기반 확충이나 효과적인 지원정책은 아직 미흡한 편인데 반해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번 연재는 공연예술분야에서의 한류가 어떤 의미인지, 현장 종사자들이 어떻게 체감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속적인 공연예술한류를 모색하기 위한 향후 과제들을 짚어봤다.
연재순서
① 공연예술한류란 무엇인가
②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산업화
③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경쟁력
④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문화적정체성
⑤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공공의 역할
⑥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문화정책적 과제

국제교류의 부담 그리고 함정

현장에서 국제교류를 직접 실행하는 활동가로서가 아닌, 국제교류의 현상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이를 제도적인 차원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국제문화교류 정책과 제도적 지원의 유효성이 현실정합성을 갖도록 하는 것은 늘 부담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고민은 교류, 특히 국제적인 교류의 통로가 더 이상 계층적 혹은 권력적 독점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종다양한 내적 동기와 성과를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틀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회의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 국제적인 인정을 통한 국내적 가치의 재발견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칫하면 문화예술의 교류의 본말을 전도시키는 역효과를 나을 수 있는 점에서도 국제문화교류정책의 수립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공연예술한류라는 용어도 타자의 인정에 의하여 나의 자존을 확인하는 측면이 없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인식은 국가주도적인 문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의 역사적 맥락에도 그 원인이 있고 그러한 경향에 편승하는 일부 문화예술계의 행동양식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1972년 6월 26일 발행된 매일경제의 문예진흥 5개년 계획 발표 기사

▲ 문예진흥 5개년계획 발표 기사
[매일경제] 1972년 6월 26일자

한국의 근대화는 발전국가의 모델을 정당하고도 효과적인 모범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편향된 방식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으며 이는 문화예술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활동에 제약이 있던 1960년대 및 1970년대의 국제교류활동은 유럽 민족국가시대의 문화외교활동만큼이나 계급적 및 권력적 특징이 농후했다. 문화교류의 통로가 제한적이고 문화예술계의 자생적인 교류동력의 형성이 미진한 단계에서는 정부가 교류내용을 선택하고 교류방식 및 소개방식까지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제사회에 한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활동에 있어서 국내 문화정책과의 연계성은 필연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 당시 중요시되었던 ‘민족문화중흥과 발전‘의 패러다임은 이러한 국제문화관계에서도 반영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에서는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전통을 드러낼 수 있는 문화예술 장르 중심의 교류활동에 대한 지원이 주를 이루었으며 상호 소통적 의미의 교류라기보다는 이국적 문화정체성의 현시를 통한 외부 관심의 증대라는 효과에 정책적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세계 어느 국가 혹은 문화권의 문화 중에 고유하지 않는 것이 있으며 독특한 미적 원리와 감각의 구현체가 아닌 것이 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고유한 문화적·예술적 가치가 국제적으로 알려짐에 있어서 이를 수용하는 대상과의 소통 과정을 통해 상호작용의 의미를 발견해 가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즉 교류를 통한 소통과 이해보다는 결국 스스로가 생각하는 절대적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홍보나 광고 이상의 행위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과제들

문화예술의 국제교류에 대한 국내정책의 방향성은 이후에도 공보, 홍보, 외교 개념과의 혼재 속에서 수립되었다. 국가적인 기관이나 단체에서의 국제활동이 국제문화교류의 본질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들 기관에서 국제교류화교류당하는 부서나 전문 인력이 편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국제교류활동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조직 국부로부터의 국제활동인이 필수적이며 이화교실현해 줄 수 있는 조직구조, 인력,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구조로써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외문화원이 설립되기 시작하고 외교공관에서의 홍보 및 문화외교활동이 본격화되는 등 외국에서의 한국문화예술에 대한 소개의 기반이 구축되기 시작하였으나 국내 조직들에서의 국제활동이에 입각한 국제교류의 비전과 목적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러한 기반시설이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렵다는 점은 자명하였다.

프랑스 세계문화의집에서 소개된 봉산탈춤 사진

▲ 프랑스 세계문화의집에서 소개된 봉산탈춤

더욱이 재외문화원의 운영시스템은 상호소통적인 교류의 포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문화예술을 다소 소극적으로 해외에 소개하는 공적인 관문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문화외교 및 홍보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던 정부의 지원활동은 문화예술에 대한 경제적 가치의 인식과 함께 ‘쌍방향적 교류’와 ‘해외진출’ 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리 운영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2012년까지 재외한국문화원의 수는 24개소로 증가하였으나 외형적인 인프라의 확장에 중점이 있었지 민간부문을 포함하는 전체 공연예술계의 국제교류의 확장을 촉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공연예술분야의 국제교류에 대한 지원은 정부차원의 인프라와의 연계보다는 개별 단체들의 국제페스티벌 및 해외시장 참여에 대한 지원, 국내외 레지던시 참가에 대한 지원, 국제교류역량 제고를 위한 지원, 국제협업(제작)에 대한 지원, 국제 분야 미래인력양성에 대한 지원 등 정부부문(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역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공연예술한류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차적으로는 국제예술계에서의 한국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의 제고와 이차적으로는 이를 통한 예술적 창조성의 제고라고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다양성을 위한 창작지원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예술분야가 국내적으로 풍부한 창작의 지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유명 감독이 외국의 유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lsquo;외국 영화제를 겨냥하여 작품을 제작하여 성과를 거두는 특수한 경우&rsquo; 라는 비틀린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 다른 예로 외국의 유명 감독이 &ldquo;한국영화의 특별함은 흡혈귀에 대한 작품화가 할리우드의 <트와일라잇>(twilight)과 <박쥐>의 차이만큼 다른 데에 있다&rdquo;고 한 적도 있다. 비록 한국영화산업의 발전 형태에 대한 최근의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고 다양성을 구성하는 이러한 작품들이 무명 신진 감독들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창작의 지형을 폭넓고 다양하게 유지하는 것이 국제적 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뒷받침한다. 결국 공연예술한류의 지속과 발전을 위하여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국내 공연예술에 대한 창작지원이 이러한 지형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지형의 확장
둘째, 공연예술의 생태계는 창작뿐만 아니라 소비부문과의 순환 속에서 완결성을 갖는다. 이것이 대중의 기호나 선호에 영합하는 작품의 양산을 촉진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과 교감 혹은 공감하지 못하는 공연은 현장성과 재현성의 지속이 중요한 공연예술의 특성으로 볼 때 문서상의 박제로밖에 남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비부문은 중요한 요소이다. 창작자가 관객과 만나는 과정에서 습득하는 자생적이고 자기발전적인 노하우들은 국제교류활동에도 충실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전경
베를린 세계문화의집 전경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베를린 세계문화의집

소비의 지형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작품의 질적 수준도 중요하지만 대중성만이 창작과 소비의 연계 고리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취향의 개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즉 현재의 관객 혹은 잠재적 관객이 다양한 종류의 창작품에 대하여 감수성을 발휘하고 이를 음미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국제교류라는 것이 일방적인 진출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창작물이 타 문화권에서만 공연되는 것만이 아닌 타 문화권의 작품들이 국내 관객들에 의해서도 소화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교류내용의 맥락적 일관성과 응집도가 높을수록 국내 관객의 이해도나 호응도도 높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문화권의 공연예술작품을 단순한 &lsquo;이국성&rsquo;의 기준에서가 아닌 상호 대등한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 훈련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적 가치와 문제들에 대한 소통은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을 통하여 가능한 반면 역사적 맥락과 변용에 대한 이해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시점에서의 접촉을 통하여 이해될 수 있다. 즉 문화가 번역되는 과정에 대한 관객들의 맥락적 이해 수준을 제고함으로써 균형 잡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의 환경을 마련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프랑스 파리의 &lsquo;세계문화의집&rsquo;(La Maison des la Cultures du Monde)이나 독일 베를린의 &lsquo;세계문화의집&rsquo;(Haus der Kulturen der Welt)은 세계의 다양한 공연예술이 에스닉한 수준에서 현대적으로 변용된 수준까지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국제교류에 대한 소비관객의 수평적&middot;수직적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

-전문인력의 역량 강화
셋째,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국제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류의 내재적 동기이다. 그 동기가 작품의 수출에 있든, 창작의욕 고취를 위한 예술적 자극에 있든,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창작물의 제작에 있든 간에 내생적 동기는 교류의 전 과정을 견인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동기는 실현되지 못하는 의욕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국립 및 공공 문화예술기관에 국제교류를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수행하는 조직과 인력은 가장 기본적인 국제교류활동의 조건이다. 재외문화원의 인력 역시 국제교류전문가들로 충원되어 내외부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실시간 정보의 교류가 가능해진다면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민간부분 역시 적실성 높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예술단체들이 국제교류의 지형을 이해하고 안목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인데,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네트워크의 구축이야말로 시스템과 연계되었을 때 시너지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의 비지팅아츠(Visiting Arts)나 스위스의 헬베티아재단(Pro Helvetia) 등이 해당 문화예술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력을 채용하여 공적 차원의 문화예술교류를 수행하는 이유도 결국은 민간 부문에서의 전문역량을 시스템 내부로 흡수하지 못할 경우 좋은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 그림

▲ 조선통신사 그림
(그림 출처: 부산문화재단)

이 단순한 진리!

먼 과거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 국가의 문화적 역량이 가장 높은 시기에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활동 역시 활발하다는 진리는 역사적으로도 존재한다. 필자는 2011년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커넥션박스에 참가한 계기로 부산문화재단의 조선통신사사업을 통하여 통신사와 연행사 제도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볼 계기가 있었는데 역사적 사건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통신사 운영의 목적이 외교적인 것뿐만이 아닌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익히 알려졌는데 통신사의 제도의 단절이 외교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닌 일본이 서구의 문화를 조선에 앞서 받아들여 이를 내재화하여 문화적 자존감을 형성함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 정조 연간의 연행사 행렬에 김홍도를 비롯한 당대의 예술인들이 참여함으로써 조선후기의 문화예술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창조적 역량을 고양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역사가 주는 교훈의 핵심은 국제 지향성이나 수출 지향성에 앞서서 내적인 문화예술 역량의 충만함이 원천이 되어 그 원천이 차고 또 넘쳐흐름으로서 교류의 역량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런지 생각해본다. 어떻게 세계를 마주할 지 혹은 공략할 지에 앞서 내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홍기원 필자소개
홍기원은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정책ㆍ산업대학원에서 문화행정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국제문화교류, 다문화정책, 정책평가이다. 현재 유럽연합, ERICArts, IFACCA가 운영하는 WorldCP(Compendium on Cultural Policy)의 한국 프로파일 파트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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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경쟁력
④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문화적정체성
⑤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공공의 역할
⑦ [칼럼] 우리가 한류에 대해 착각할 수 있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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