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공연의 배후에는 ‘예술경영인’들은 물론 ‘무대의 그림자’로 불리며 존재하는 공연·전시계 스태프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관객은 모르는 ‘무대 뒤 이야기’들을 조명 디자이너, 무대감독, 에듀케이터, 전시 공간 디자이너와 함께 들어봤다. / 특집 ① [좌담] 무대의 배후, 그들의 이야기, ② [현장+人] 김영신 블루스퀘어 공연장 운영팀장, ③ [현장+人] 박상애_백남준아트센터 아키비스트
일  시 l 2013년 6월 3일(월) 오후 7시 / 장  소 l 대학로 모베터블루 / 참석자 l 김영진_디자인 펌 대표, 민경수_해와달프로덕션 상임 조명디자이너, 여숙기_소마미술관 에듀케이터, 여  훈 _서울발레시어터 제작감독 / 사  회 l 이수현_[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에는 몇 명이나 관계되어 있을까? 단순히 배우, 스태프, 큐레이터, 기획자를 넘어 꼭 있어야만 하는, 그러나 아직 우리가 깊은 이야기를 청해보지 못한 이들이 모였다. 조명 디자이너, 무대감독, 에듀케이터, 전시 공간 디자인. 각자 다른 분야지만 정해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공 분야에서 문화예술 전반까지 핵심과 맥락을 짚는 이야기는 마치 강호의 고수, 그것이었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없어선 안 될 그들. 바로 ‘배후 세력’이다.

우리는 어떻게 배후 세력이 되었나?
- 고민하고 찾아라, 그리고 창의적으로 행동해라

사회 우선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조명 디자이너나 무대감독은 이제는 자리 잡은 위치지만, 에듀케이터나 전시 공간 설치 구성 등의 직업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다.

민경수 1985년부터 일을 했다. 요즘은 여건이 좋아졌지만, 내 경우는 인생역전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공업고등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했다.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다 보니 공무원이었다. 전기를 전공했다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조명실에 발령을 받았다. 본격적인 조명 일은 그때부터 시작했다. 입사 후 2년여 동안 조명을 하면서 이것이 체계화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변에 자문을 구해보고 어렵게 책을 구하며 도제 형식으로 공부했다. 당연히 디자인에 대한 개념도 미미했다. 조명감독, 기사라고 불리던 시절이다. 전기를 기본으로 조명기기, 컴퓨터 콘솔 등 기본을 갖추게 되니 미학적인 부분을 찾게 되더라. 그때부터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명을 알게 된 지 3년 반 되던 차에 조명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때마침 문예진흥원에 무대예술 아카데미 과정이 개설되었다. 그곳에 다니며 표현 및 미술 기법 등을 배우며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숙기 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라는 공기업에 근무했는데, 새로 건립되는 미술관에 2001년 발령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미술관교육은 홍보나 이벤트적 성격이 강했다. 미술관교육 전문가뿐 아니라 미술관교육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신 박물관, 미술관교육 관련 기관이 생길 때여서 총대를 메게 되었다. 미술관 교육에 대한 국내 사례가 없어 해외 자료를 찾고, 조사하고 몇몇 교수님께 자문도 받고 무엇이 기본이고 정석인지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체계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학원에서 박물관미술관경영을 전공했다. 올해가 10년이 되는 해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잘할 수 있는지… 그러나 어느새 에듀케이터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더라. 다른 곳에서 찾아오게 되는 하나의 케이스가 되었다. 최근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문화 콘텐츠와 교육 콘텐츠의 교류점이 될 수 있는 것이 박물관, 미술관 교육인 것 같다.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계속해서 소마미술관(SOMA)의 에듀케이터로 재직 중이다.

김영진 철학을 전공하고, 학교 때는 밴드 활동을 했다. 철학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점에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활동적이며 창의적인 일을 찾게 되더라. 그래서 실내건축을 하게 되고, 10년 정도 인테리어 회사에 근무했다. 홍대 앞에서 일하던 중 쌈지 스페이스에서 외국 작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열었다. 그러나 일반 건축회사에 의뢰하기에는 예산을 맞출 수 없어 프리랜서를 찾더라. 그래서 참여하여 일을 시작했다. 같이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창업하게 되었다. 디자이너들은 전문 분야가 있다. 지금 운영하는 디자인 펌은 전시 쪽에 포커스가 맞춰 있다. 현대미술이나 전시 설치와 같은 디자인을 주로 하고 있다. 전시 공간 레이아웃도 있지만, 최근에는 작가들과 설치되는 조형물 설계를 같이하는 작업을 했다. 이 일은 일반 회사에서는 접근하기 힘들다. 예산, 경제적 움직임, 특히나 창의성과 작가와의 친분이 필요한 일이다.

현대미술이나 전시 설치와 같은 디자인을 주로 한다. 최근에는 작가들과 설치되는 조형물 설계를 같이하는 작업을 했다. 예산, 경제적 움직임, 특히나 창의성과 작가와의 친분이 필요한 일이다. _김영진

여훈 대학 시절 연극반과 학생회 활동을 하며, 공연 제작과 기획 등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 진출을 고민하면서 다움아카데미(3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기획, 예술경영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고, 문화예술을 접근하는 방식을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극, 무용, 페스티벌 등에 기획 파트 인력으로 참여했다. 그러다 다양한 공연, 페스티벌 등을 거치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하게 되었고, 당시 무대감독 선배들의 눈에 띄었다. 친분이 자연스럽게 2000년 밀레니엄 페스티벌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 후 당대 유명한젊은 스태프들이 모여서 만든 ‘스탭서울’이란 회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스탭서울에서 7년간 작업하고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 현재 서울발레시어터 제작감독으로 들어왔다. 다음아카데미에서는 예술경영 및 문화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혔고, 스탭서울에서는 스테이지 매니지먼트와 관련된 것을 현장에서 겪고 실험해볼 수 있었다. 현재는 서울발레시어터에서 제작감독을 맡고 있다.

‘지금 이 순간’ - 오늘이라는 현재

사회 모두 쉽지 않은 입문 시기를 거쳤다. 정립되지 않거나 아직 미개척 지점의 분야를 찾은 분들도 있다.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각 분야별로 갈 길이 먼 것 같다.

여훈 아직도 무대감독-스테이지 매니지먼트는 정확한 커리큘럼과 교육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국내에서 발간한 전문서적도 많지 않다. 그룹마다 도제식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테이지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다. 이것을 통합하고 재교육할 필요성을 느끼고 사단법인 무대감독협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더불어 스태프의 권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협회를 만든 것도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다. 더 나은 환경과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는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나라 공연 제작 스케줄은 너무 여유가 없다. 스태프를 배려하는 충분한 준비 기간과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을 같이 공유해야 한다.

민경수 문화예술복지법, 예술인복지재단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문화예술인에 대한 권익보호 등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스태프는 작품 수입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목하는 대상은 잘되어서 수입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전업으로 삼기 힘든 부분이 더 많다. 허울 좋은 프리랜서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일일노동자. 현재 스태프에 대해서는 산재 및 사회 전반적으로 되어 있는 인프라의 보장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복지법을 통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문화예술계가 소외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태프 교육 및 환경 마련 등 실질적인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연예술학부를 졸업하고 공연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자신의 재능을 다른 분야에서도 쓸 수 있다. 한정된 풀 안에서만 찾지 말고 더 많은 분야와 접목하여 미래를 확정해야 한다 _민경수

사회 에듀케이터나 전시 공간 디자인 등 아직도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는 두 분의 입장은 조금 다르실 것 같다.

여숙기 지금은 큐레이터, 도슨트 등이 많이 알려지고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에듀케이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정보를 모르고 멀리서만 멋있어보여서 오는 경우가 있다. 교육은 전시나 공연과 달라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작업이다. 오히려 눈에 더 띄지 않는다. 일례로 관심 있어 찾아오면 단순한 참관뿐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경험해보라고 이야기하고, 미술관에 자원봉사를 하러 오라고 하는데 결국은 아무도 자원봉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 물론 이미 초창기 멤버들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다 채우기도 해서 자리를 찾긴 힘든 부분도 있다. 교육은 일대일로 사람을 상대하고, 예술작품을 관객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해외의 경우는 미술관 내의 전시, 교육 파트의 규모가 비슷하다고 한다. 미술관이 서비스 공간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아직 서비스나 홍보로 인식되기도 한다. 여전히 인식이 낮은 상태다.

에듀케이터는 미술관 기획전시와 작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의미를 찾아 대중에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항상 새롭게 기획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체계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_여숙기

김영진 나는 직업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갑/을 관계에 관한 것이지 않나? 미술 판에서 작가, 큐레이터 분들과의 창의적 작업이 흥미롭기 때문에 적은 예산, 사소하게 챙길 일들이 많지만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계약 단계에서 고민이 생긴다. 준비할 때는 생산적 마음을 갖게 되는데, 국공립미술관 등과 일하면서 계약 과정을 겪을 때는 자세를 낮춰서, 이전의 예산을 증명하게 된다. 뭔가 관료적인 느낌이 있다. 계약 파트에서는 그 예산 자체만 집중하지만 우리는 워낙 다양한 틈새(운송, 건설업체 사이)에서 창의적인 측면에서 일을 접근하려다 보니 힘들다. 또한 미술 판에서 규모가 작은 업체는 산재라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다. 유명 미술관에서 설치 작업 중 사고를 당해도 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분들을 알고 있다. 소송도 힘들다고 한다. 다치면 다음 일이 이어지지 않을까 봐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힘들다.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권익이나 복지, 기본적인 사항들의 보완이 절실한 것 같다. 후배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민경수 지금은 예전과 달리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현장과 학교 간의 간극이 있는 듯하다. 공연예술학부를 졸업하고 공연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자신의 재능을 다른 분야에서도 쓸 수 있다. 연출은 경영이나 일반 회사에서도 쓸 수 있고, 조명은 디스플레이 조명도 할 수 있지 않나? 공연예술에만 국한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시야를 넓기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전시, 공연에도 물론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한정된 풀 안에서만 찾지 말고 더 많은 분야와 접목하여 미래를 확정해야 한다.

여훈 중요한 것은 인문학적인 소양을 계속 쌓고, 원활하게 소통 방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 테크니컬 파트에 대해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다움아카데미의 배움 중 인상적인 것은 예술가에 대한 사랑이다. 예술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야 한다. 서울발레시어터 예술에서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일본 스태프들과 작업하며, 일본무대감독협회의 회장(다나카 노구유키)에게 “무대감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라. “모든 스태프들과 출연진이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무대감독이다”라고. 그전까지 나의 역할은 ‘큐’를 부르고, 스케줄을 짜고, 지시나 명령, 등을 정확하게 진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의 이야기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더 무서운 얘기였다. 환경을 만들려면 모든 것을 매니지먼트 해야 했다. 참 좋은 깨달음이었고,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더불어 후배들 중 무대 크루(crew) 친구들이 바라는 것이 제작, 기술, 무대감독이다. 그런데 1~3년만 지나면 다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견디는 친구들이 감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점점 짧아진다. 순환이 빨라 몇 년 하면 무대감독이 된다. 숙련의 시간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대감독은 인문학적인 소양을 계속 쌓고, 원활하게 소통 방식을 이끌어내야 한다. 테크니컬 파트에 대해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술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야 한다. _여훈

여숙기 구직자들은 미술관, 박물관에 일자리가 없다고 하고, 미술관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경력자가 없다. 대부분 1, 2년 하고 없어진다. 긴 안목으로 미래를 봤으면 좋겠다. 외국은 미술, 박물관의 역사도 깊고 전문 서적 및 연구 사례도 많다. 우리도 해외와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다큐멘테이션이 약하다. 체계적이고 자세한 기록을 통해 역사화, 학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일을 해내고 빠르게 처리하는 시스템 속에 있다 보니 그런 것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리뷰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실 문화예술계의 현장성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다큐멘테이션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좌담 사진 좌담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있는 이유

사회 환경, 복지, 인력 등이 전반적으로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도 먼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분야에 머물 수 있는 동력, 계기가 있을 것 같다.

여훈 일을 시작한 지 1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국내외 공연을 접하며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생겼다. 언어, 문화, 인종 등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아동극을 제작해 전 세계 어린이와 만나고 싶다. 어린이들이 내가 제작한 공연을 보며 상상력을 키우고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많은 연출, 디자이너, 기술진과 만나며 다양한 소통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꿈을 키워나가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이라 생각한다. 자본도 중요하지만, 긍정적,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많은 분들과의 예술적 협업이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여숙기 에듀케이터는 미술관 기획전시와 작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의미를 찾아 대중에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항상 새롭게 기획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체계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동시에 참신한 아이디어와 조금 다른 의미의 차이를 찾아 머리를 쥐어짜는 이 작업이 즐거운 흥분을 제공해준다. 변화와 도전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생각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또한 2~4년의 장기적인 비전으로 기획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모의 무한 신뢰와 변화하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에듀케이터로서 빼놓을 없는 기쁨이자 원동력이다.

김영진 인력시장에서 여행객이란 직업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어느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던 사진작품이 생각난다. 전문적으로 당신들의 삶을 관찰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직업적 특수성을 갖고 있는 작가들과 작업한다는 점이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그리고 나의 직업적 경험들이 그들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 보람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예술은 ‘나 좋아서 하는 것’이란 인식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노력이 빛을 발휘하기 힘들었고, 흔히 말하는 시스템과 환경이 갖춰지는 것은 정말 요원한 일인 것만 같았다. 새삼스럽지만 이들이 있기에 오늘이라 부르는 현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느낀 시간이었다. 오늘을 바탕으로 이들이, 아니 이들을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배후’들이 만들어낼 우리의 문화예술 지형은 어떤 길일까?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은 강호의 고수들이 있다. 우린 늘,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배후 세력’의 성장을 위해서.


사진촬영_조석환

참석자 소개 내용김영진 / 김영진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 디자인’과 ‘디자인 바우엔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이후 ‘디자인 펌’을 창업하여 갤러리팩토리의《House in Your Head》와 국립현대미술관의《MOVE》,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한옥공모전》, 아르코미술관의《신중국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의《올해의 작가상 2013》 등에서 전시 디자인과 시공을 맡았다. 현재 디자인 펌 대표로 재직 중이다.민경수 / 민경수는 문예진흥원 문화학교 무대미술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일본 문화성 초청 일본 조명디자인 연수를 받았다.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 조명디자이너로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제7회 뮤지컬대상 무대기술상과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 조명상,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 무대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뮤지컬계뿐만 아니라 오페라·무용·가극·콘서트 등에서 조명감독으로 일했다. 현재 해와달 프로덕션 조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여숙기 / 여숙기는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기획실에서 2001년 미술관팀으로 발령받은 후, 2004년 이래로 소마미술관에서 에듀케이터로 일하고 있다. 현재 소마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기관에서 교육프로그램 강사·자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 훈 / 여훈은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다움 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기획과정을 수료한 후, ‘과천세계공연예술제‘를 시작으로 ‘서울세계무용축제’와 ‘춘천국제마임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2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서울아트마켓’ 등 국악·발레·뮤지컬·페스티벌 등에서 무대감독으로 활동했다. 현재 서울발레시어터 제작감독과 (사)한국무대감독협회 사무국장, 한국체육대학교 무용학과 강사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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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큐레이터 ②갤러리스트/아트딜러 ③에듀케이터 ④프로듀서/프로그래머 ⑤홍보마케터
⑥예술행정가 ⑦총론

[하우투] 무대감독과 소통하기(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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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필자소개
[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 이수현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이다 엔터테인먼트에서 공연 제작 및 홍보,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였다. 2005년 독립기획자 그룹 <여유,작>을 설립, 젊은 연극 창작자와의 작업을 중심으로 연극 공연제작 및 극단 에이전트 활동을 펼쳐왔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두산아트센터 공연 프로듀서로 일했고, 2010년부터 (재)국립극단 프로듀서로 재직하고 있다. 작품 프로듀싱과 프로덕션 제작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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