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하여 현재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3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 인프라 및 네트워킹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인천이다.연재순서 광주(‘12년 9월) - 대구(’12년 11월) - 대전(‘13년 1월) - 부산(’13년 3월) - 제주(‘13년 5월) - 울산(’13년 5월) - 인천(‘13년 7월)

이슈①좌담_인천 원도심 문화재생과 네트워킹 ②현안과 제언
일  시 l 2013년 7월 16일(월) 오후 3시 장  소 l 인천문화재단 2층 대회의실 참석자 l 김종현_우각로 문화마을 운영위원 민운기_스페이스 빔 대표 유명상_신포살롱 대표 사  회 l 손동혁_인천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 본부장

역사적 공간에서의 문화재생-신포동, 배다리, 우각로마을

사회 최근 인천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주체들이 오래된 도심의 문화적 재생에 대한 논의와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이번 좌담은 인천의 대표적인 원(구)도심인 신포동, 배다리, 우각로 마을에서 활동해온 여러분들의 생생한 경험을 나누고, 나아가 장소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의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먼저 각자 활동하는 지역의 특성과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보자.

유명상 '신포살롱'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선배들 대부분이 신포동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텐데, 청년들에게도 신포동은 추억이 많은 곳이다. 1990년대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과 부평지하철역이 환승역이 되면서 동네가 많이 쇠락했다. 그래서 추억을 나눈 친구들과 동네에서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취지로 모였다. 처음에는 우리의 시선으로 신포동이 ‘무언가’, ‘어떤 것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동네에서 지내다 보니 그것이 잘못된 관점이었음을 깨달았고, 재미난 ‘꺼리’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참여시키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신포동을 중심으로 하여 재미난 꺼리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있다.

민운기 현재의 중구 개항장 일대가 외국 세력이 점령한 ‘중심’으로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면, 배다리는 ‘주변부’로서 순수한 조선 사람들과 서민들, 노동자들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또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식인들이 야학을 열고 학교를 세우기도 했으며, 인천에서 기독교 선교 및 이것의 일환으로 근대교육이 싹튼 곳도 이곳 배다리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고 각종 서민 관련 시설과 문화가 발달했던 곳이기도 하다. ‘배다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헌책방 거리인데,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되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배움에의 열망을 충족시켜준 곳이 바로 헌책방 거리다.

그동안 배다리는 도시가 확장되고 중심이 이동하면서 차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발길이 줄어들면서 예전과 같은 활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변화가 오히려 개발의 위협에서 비껴나 한 시대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담긴 소중한 자산으로 남게 되는 여건이 되었다. 그러나 개발 붐의 여파로 이곳 또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지구와 청라지구를 잇는 산업도로 공사로 인해 마을이 갈라지고 구도심 재정비촉진계획에 의해 전면 철거될 위기에 처해졌다. 도로 건설 무효화 및 배다리 마을의 문화적 재활성화를 꿈꾸는 시민문화예술단체와 활동가들이 2007년부터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주민들과 결합하여 결국 산업도로는 지하로 지나가게 되었고, 재정비촉진계획도 막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이러한 노력의 연장에서 배다리가 지닌 역사, 문화적 자산 및 생활 생태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상징적인 역사문화마을로 가꾸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벌이고 있다.

김종현 내가 활동하고 있는 우각로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한국전쟁 때 피난민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개발지구로 지정된 10년 동안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는 않고 투기와 자본의 총체적 부조리만 만연해져서 주민의 삶을 건물의 역사로 묶어놓은 동네다. 투기자본이 소유권을 가지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세입자들은 살든지 말든지 관심 없는 “묻지마” 식 대응으로 사람들이 떠났고, 빈 집이 늘어났으며, 범죄, 화재, 붕괴. 악취 등의 지역문제가 야기되었다. 우각로 문화마을의 시작은 그런 지역 문제가 행정에서 예술가들에게 전해지면서부터다. 또 다른 차원에서 제안한 내용이 통하면서 시작되었다. 빈 집과 터를 예술가의 공간으로 되살리자는 것. 행정 담당자가 빈 집 주인에게 연락해 ‘무상임대’ 동의를 얻어 예술가가 거주하거나 작업실로 이용하면서 우각로 문화마을이 형성되었다.

예술가가 예술적 기반을 가지고 동네 주민으로 정착, 정주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우각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_김종현

사회 각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잘 들었다. 같은 인천이고, 구도심인데다가 거리상으로도 멀지 않은데도 배다리, 신포동, 우각로가 각기 다른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각자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김종현 우각로 문화마을은 빈 집 문제를 고민하는 행정과 연습실, 작업실, 그리고 거주 공간을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2011년 말 본격적으로 만나 구성되었다. 처음의 계획은 일단 공가의 집주인이 사용을 허락하면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2011년 겨울 작업을 하여 2012년 2월에 첫 입주 예술인이 되었는데, 그 추운 겨울, 바깥에서 새는 지붕 고치고 곰팡이 걷어내고 터진 수도며 보일러 고쳐가며 공간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에 애초 모인 50여 명의 예술가 절반이 뜻을 접었다. 그러다 2012년 6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생활문화공동체사업’ 지원을 받아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마을의 역사를 채록하며 주민들과 만나 가을축제를 하며 일 년을 보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재개발조합과의 갈등이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무상임대를 조건으로 2년간 계약하고, 연장이 가능하며, 재개발이 시작되면 퇴거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재개발조합 측은 믿지 않았다. 수많은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그런 과정이 예술가 집단의 성격이 강했던 조직에 활동가가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남구의제21(인천 지역의 행정과 기업, 시민이 협력해 지역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편집자 주)이 그런 케이스다. 주민과 예술가의 통역 역할이라고 할까? 재개발조합에서는 재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치센터와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대놓고 나가라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개선되었다.

내부적으로는 예술가가 와서 커뮤니티 아트로 우각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결국 완전히 합의되지는 않았지만, 예술가가 예술적 기반을 가지고 동네 주민으로 정착, 정주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우각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현재는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사회적기업을 준비하여, 인천남구형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민운기 배다리 활동은 2007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만 6년이 넘어가고 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을 이 자리에서 모두 소개하는 것은 무리이다. 대략 큰 흐름만을 이야기한다면, 초기에는 행정과 민간이 적대적이었다. 행정에선 배다리를 지워버리려고 했고, 우리들은 살려내려고 했다. 싸움이 엄청나게 치열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다 해보자는 것이었다. 현장 시위, 기자회견, 릴레이 칼럼, 각종 토론회 외에 문화행사 등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위기를 어느 정도 넘기면서부터는 마을의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대안적인 삶의 가치와 형태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점심 밥상 나누기, 쓰레기 분리수거, 우리말 쓰기, 텃밭 가꾸기 등 일상의 차원에서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배다리_사이클 빌리지’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원의 재활용, 선순환 구조를 마을에 정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편 지난 연말부터 인천시가 배다리마을을 포함한 원도심 활성화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뭔가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자칫 그 속도에 휩쓸리다 보면 그동안의 노력이 엉뚱한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지금은우리의 속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명상 청년문화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의 청년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고, 인천에서 자라고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지역과의 연계성은 많이 떨어진다. 출입구, 플랫폼 등의 콘셉트로 베드타운(bed town)이 아닌 무언가를 시도하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에서 축제 등 다양한 기획에 참여하여 스스로 생산자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소와 사람의 연결

사회 세 분 모두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 정주하고 계신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마을 공동체를 활력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은 뭔가?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 경제적인 측면인데, 문화예술적 접근이 어떤 면에서 유효한지 궁금하다.

김종현 배다리보다 우각로 주민들의 연령대가 더 높다. 그래서 동네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소통을 하는 데에도 주요 포커스가 어르신들이 되었다. 금요일 오후 2시 ‘어여와 어여’ 프로그램이 골목도서관에서 진행된다.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은 없다. 이번 주에 오신 어르신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해 다음 주에 뭘 하면 좋을까? 세 가지 메뉴를 주문한다. 그러면 그중에 하나를 진행이 가능한 “동네 예술가”에게 부탁해 진행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 은근히 통했다. 참여한 어르신들이 골목 할머니, 할버지들에게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뭔가 해서 갔는데, 재밌더라” 말했다고 한다. 전도를 하듯 당장 같이 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 아닌데, 그런 방식이 오히려 동네에 ‘우각로문화마을’에 대한 이미지 전달하는 데 효과가 좋다. 작년에는 비가 새는 집에 살던 분들이 이번 장마를 대비하며 스스로 돈을 내서 지붕을 고치기 시작했다. 업자를 불러 한 번에 세 집, 네 집이 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막힌 것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 맞는 말이다. 사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행복하게, 재밌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대나 장소 등 주어진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선택해서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문화예술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경제적 가치를 중요시한다거나 효율성만 따지는 방식으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변화다.

민운기 시선의 문제로 접근하고자 한다. 행정 쪽에서는 도시경쟁력을 강조하면서 마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고, 외부에서 배다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낙후되었다”, “슬럼화되었다”이다. 외부의 시선이 그러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도 그것이 내면화되어 지긋지긋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활동 주체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마을을 바라보고, 이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배다리는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일례로 배다리마을은 신도시처럼 한 사람의 설계자에 의해 계획적으로 다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들어가 거기에 맞추어 사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유 의지가 모여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곳이기에 자기 공간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주민들은 그러한 이점을 잘 모르고 편리만을 쫓아서 떠나려 한다. 마을이 지닌 이러한 가치와 매력을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통해 새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문화예술이 지닌 남다른 역할이지 않나 싶다.

문화예술 활동 주체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마을을 바라보고,이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_민운기

사회 가치를 판단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생활이 바뀌고, 마을이 바뀔 수 있다.

유명상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충분히 공감한다. 청년들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지금은 신도심이 시간이 흘러 구도심으로 변화하면 또다시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마련된 청년플러스 공간을 회원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처음에는 쓰레기봉투를 사는 데만도 두 달이 걸렸다. 2리터를 살 건지 1리터를 살 건지 합의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마을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텐데, 함께 살면서 협력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김종현 우각로문화마을 이 외의 공간에서 “나 거기 출신이야”, “나 거기 살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우각로문화마을이 뜨긴 뜬 모양이다. 더 이상 우범 지역, 못사는 동네, 냄새 나는 동네가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동네가 좋아져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기분 좋다. 얼마 전에는 골목에 버려진 ‘곤로’를 주워왔다. 지금 그 곤로를 복원하고 있다. “심지 갈아요” 하는 분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냥 똑같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아깝다. 동네 분들이 뭐 하려고 그러느냐고 한다. 살면서 ‘또 다른 가치’를 동네에 보여줘야 한다.

사회 도시나 마을은 건물의 모습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보여야 한다. 사람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그 변화의 과정들이 축적되었을 때 마을이 변화하고, 도시가 변화한다. 그런 측면에서만큼은 경제보다 문화예술이 효과를 더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오늘 모인 세 분도 인천이라는 공통적인 지역을 베이스에 놓고 각자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서로 바쁘다 보니 일단 만나기가 쉽지 않고… 어떻게 보면 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각각의 모습과 활동은 충실해보이는데 신포동과 배다리와 우각로가 동떨어져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가? 장소와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민운기 배다리가 위기 국면일 때에는 이곳에서부터 개항장까지 역사문화 벨트로 이으면 재생사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심스러워 하는 입장을 보인다. 관광 측면을 지나치게 앞세우다 보면 자칫 망가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게 좋을 듯하다. 각자가 자기 활동의 주된 공간 내지는 거점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그것이 자연스레 이어지며 사람들이 알아서 찾게 되는 그런 과정과 모습이 좋지 않을까.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유명상 행정가들이 주도하면 행정에 휘둘리는 상황이 초래될까 봐 우려된다. 활동하는 주체들이 생산자가 되어서 만들어내고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실제로 애관 극장 앞에 빈 상가를 갤러리로 변화시키고 있다. 조금씩 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충분히 공감한다. 청년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_유명상

김종현 가치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 수는 없나. 역사, 문화, 생태 그리고 자생력을 기르도록 문화예술형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일. 그랬을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마을들이 연결된다.

민운기 어떤 목적이나 입장에 따라 달라지지만, 저의 경우 지난해 말 배다리마을 안내책자를 만들면서 ‘무엇을 선정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 ‘그 선택과 배제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공간과 장소를 파악하고 소개하며, 역사, 문화적 가치와 특성을 잘 살려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김종현 네트워킹 이야기이다, 관계. 싸워도 관계, 친해도 관계다. 요즘은 싸우면 관계를 안 하는데, 싸워도 매일 보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같은 동네 안에서 활동하는 우각로에는 세 마디로 정리되는 명확한 부류가 있다. “다 나가, 다 덤벼, 나 안 해.” 싸울 때 하는 말이다. 주민의 입장, 활동가의 입장, 마을만들기에 대한 관점이 없는 예술가.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며 피 터지게 이야기하며 싸우는 관계가 있다. 그것이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나쁜가? 동네든, 가족이든 마찬가지다. 부부인데 싸울 수 있다. 밖에선 안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에서 부정적인 말이라도 그런 것을 해결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운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각자의 활동 단위에서도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게 어렵다. 서로의 관심사에 따라서 관계가 맺어지는데, 생각이 다르면 마을 안에서 만나기도 힘들다.

아픔과 실패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사회 요즘 부쩍 인천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이나 ‘문화마을, 공동체 만들기’ 등의 표현이 많이 들리고 있다. 얼마 전 인천문화재단에서도 ‘문화, 도시를 살리다’라는 주제로 2회에 걸쳐 문화를 통한 원도심 활성화 방안과 인천 원도심의 문화적 재생론을 논의했는데, 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고, 호응도 높았다. 그만큼 여러 가지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가장 생생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소회로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다.

김종현 나는 스스로 정체성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연극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연극 안에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안 오니까. 연극은 관객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하는 연극은 관객이 안 오니 연극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극단을 봤는데 거기도 사람이 없다. 내가 잘못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연극의 장르적 특성에 딱딱하거나 대중적이지 못한 면이 있지만, 관객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행복할 수 없어서 공동체를 찾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온전치 못한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니 문화예술을 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만나보자. 당장 관객이 아닐지라도 미래의 관객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에 활동을 하고 있다. 후회는 없다.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을 안에서 이루며 사는 것이다. 나는 관계 형성으로 행복해진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래서 시작했다. 아픔과 실패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은 네트워크가 되지 않을까?

민운기 나도 마찬가지로 미술에서 출발해서 기존 미술의 문제점을 넘어서기 위한 나름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어떤 활동을 하든지 예술가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성과를 내는 일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해당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나로부터 새로운 삶의 형태와 관계를 시작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유명상 내가 활동하게 된 이유 역시 “인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가자”가 아니라, 인천에서 오랫동안 살아가는 친구와 경쟁이 아닌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같이 무엇인가를 해보자는 것이 출발이었다. 마을, 공동체, 협력 등은 어쨌든 같은 선상에 있다. 문제는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경쟁적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해져서 ‘협력’이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같이 살기 위해 다른 점을 인정하고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것, 양보하는 것 등이 어렵다. 한 번에 극복할 수 없겠지만, 만들어가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사회 각자 장르도, 배경도, 활동하는 지역도 다르지만 한 가지로 문제의식이 모이는 느낌이다. 다 같이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노력과 활동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바빠진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 토론을 진행하면서 각 지역의 사업과 활동가를 연결하거나 공유하는 프로그램 또는 모임이 지금 시점에서만큼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후 또 다른 기회에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고 같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참석자 소개 내용김종현 / 우각로 문화마을 운영위원민운기 / 스페이스 빔 대표유명상 / 신포살롱 대표
손동혁 필자소개
손동혁은 주로 문화예술 기획과 정책 영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인천민예총 사무처장,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소장을 거쳐 현재는 인천문화재단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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