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0일, 새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인 ‘문화융성’ 구현에 대한 제도 기반으로  「문화기본법」제정안과 「예술인복지법」개정안, 「공연법」개정안, 「저작권법」 개정안,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와 같은 법 제·개정을 통해 국내 문화예술계에서는 다양한 전망과 논의가 이어져가는 가운데, 지난 2월 “문화예술관련법 제정의 홍수와 예술경영환경의 변화”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의 내용을 살펴보고,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 ‘문화기본법의 국제교류’에 대해 소개한다./➀[정책제도Q&A] 문화기본법이란?/➁[이슈] 문화예술기본법 제정을 통한 예술경영 환경의 변화/⓷[이슈] 지역문화진흥법-지역 문화재단의 역할과 위치와 가능성/⓸[이슈] 문화기본법의 국제교류 협력증진 조항 제정의 의의와 과제

『종의 기원』을 집필한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업적은 비단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물학을 넘어 인간 문명에 처음으로 ‘진화’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문화적, 사회적 혁명이기도 했다. 비록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같은 인종차별주의 학자들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다윈의 이론에 접근하는 오류를 범했지만, 문화가 진화를 통해서만 도태를 면할 수 있는 운명임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 이유는 사회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화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세계화 속에 인구와 자본, 기술, 지식이 국경을 거리낌 없이 넘나들고 있는 시점에, 인간의 삶이 다양해지는 만큼 그와 관계된 문화가 유동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진화는 고립된 개체 내부에서보다 이질적인 개체의 상호 교접을 통해 더욱 촉진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더욱 강해진다. 순수 혈통을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근친결혼을 행해오던 합스부르크(Habsburg Haus) 왕가의 자손들이 기형과 혈우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렸던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이 또한 문화에 적용될 수 있는 사례이다. 문화의 영향력이 향유하는 인구에 비례하는 것을 고려하면,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를 보다 넓은 세계가 공유하길 바라면서 동시에 다른 세상의 문화를 나도 같이 누리길 바란다면, 다른 문화와의 교류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문화 향유자의 권리에 집중하고 있는 문화기본법에 국제문화교류 관련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문화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문화외교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제반 활동

문화기본법 내 국제문화 관련 항목은 사실 단순한 설명으로 그치고 있다. 문화정책 수립 및 시행을 위한 기본 원칙을 다루고 있는 7조와 문화진흥을 위한 분야별 문화정책 추진조항인 9조에서 각각 “문화의 국제교류 협력을 증진할 것”(7조 6항), “국제문화교류 협력의 활성화”로 막연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화기본법 내 국제문화교류 조항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국제문화교류진흥법안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론적으로 ‘기본법’이 특정한 사항을 통일적으로 규율하고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효력이 있다면 ‘진흥법’은 그 사항을 위한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정책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국제문화교류진흥법안”(2013년 10월 28일)이 지난 말 국회전체회의 소관위에 회부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국제문화교류” 관련 법률 제정안이 국회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제문화교류진흥법”(안)을 제출한 바 있고,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와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각각 “국제문화교류진흥법” 제정(안)과 “문화외교활성화 및 증진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제출된 바 있다.

사진_정책토론회/국제문화교류 진흥정책의 방향과 과제’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개최한 ‘정책토론회-국제문화교류 진흥정책의 방향과 과제’ 안내문. “한류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쌍방향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자 마련되었다. (공공누리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저작물 이용)

비교적 묵은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국회에 여전히 표류 중인 이유는 문화교류를 총괄할 ‘컨트롤 타워’ 결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통상부 사이의 신경전 때문이었다. 2011년 당시 외교부가 제출한 위의 특별법 법안은 문화외교 관련 업무를 외교부가 총괄,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발로 주도된 것이 바로 국제문화교류진흥법이었다. 두 부처가 이처럼 국제문화교류 주도권에 날을 세우는 이유로는 우선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한류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문화교류”라는 단어가 가진 포괄적인 의미를 고려한다면, 그 중요성은 단지 자연스럽게―그리고 일방적으로―퍼져나가는 한류라는 밥상에 누구의 숟가락을 얹어놓을 것이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11년 발의된 한-EU 자유무역협정문에는 산업 및 농산물과 같은 물적 거래를 위한 협약 이외에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한 문화협력의정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의정서에는 상호 문화계 인사들의 체류에 대한 편의는 물론 세금 감면, 한국 영화 산업 부흥의 막강한 요인으로 유럽에서 주목하고 있는 스크린 쿼터 면제에 이르기 제도적 부분들이 대단히 세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자국의 문화 수출을 위해 최대한 좋은 조건을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시도라는 의미에서, 이 경우 문화외교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제반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문화외교”에 대한 한국인의 보편적 인식으로,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설문 조사 결과와도 상응한다. 이 설문 조사에서 대부분의 설문 참여자들은 “문화외교”의 목표에 대해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대외 인지도 향상”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문화외교와 국제문화교류는 불가분의 관계

사진_2013 서울아트마켓 기간 중 ‘한-프 커넥션사업(Korea-France Connection)’ 일환으로 진행된 프랑스 공연예술 전문가의 한국 방문 리서치 현장

▲2013 서울아트마켓 기간 중 ‘한-프 커넥션사업(Korea-France Connection)’ 일환으로 진행된 프랑스 공연예술 전문가의 한국 방문 리서치 현장

문제는 이러한 “문화외교”의 개념이 “문화교류”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교류”란 일방이 아닌 쌍방통행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때 문화는 서로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주입시키고자하는 무형의 무기가 아니라 동등한 눈높이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교차 경험하고 이해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 좋고 나쁜 예는 가깝게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해외 이주 노동자나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한국문화만 주입하려고 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다(多)문화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 외교’ 또는 ‘국제문화교류’라는 개념은 실무적으로 그리고 언론을 통해 그토록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으며, 같은 뜻으로 혼용됨으로써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두 용어는 경계가 모호하며 종국에는 상호 영향을 끼치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또한 인류 평등의 입장에 입각한 문화의 가치중립적 정의가 대책 없이 이상적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 산업의 힘을 간과한 순진한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외교’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민간단체 주도의 비영리 문화교류는 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본래의 목적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그로 인한 국가 브랜드 향상과 국익 증진은 별개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동등한 입장에 입각한 정신적 가치의 상호 교환”이라는 문화교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벌이는 교류 활동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왔는지는 지난 2월 아프리카 예술가 노동 착취 논란을 불러온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사건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컨트롤 타워가 아닌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필요

사진_시각 심화 사무소’

▲2013 서울아트마켓 ';라운드테이블';

“문화교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더불어 시급한 사안은 지휘봉을 누구 손에 쥐어줄 것인가보다는 그 지휘봉으로 무엇을 지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한류는 물론 그와 더불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고 있는 지자체 및 민간 차원의 다양한 국제 문화교류 산업은 사실 따로 ‘진흥’시킬 필요가 없을 만큼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문화 교류 상황을 정부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컨트롤 타워나 법규가 아니라 이미 산발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국제문화교류’라는 판을 효율적으로 연결해주고 상황을 조정해주는 “소통”의 전문가이다. 즉 기존 판을 조사해서 겹치는 것은 합치고, 없는 것은 더하는 과정을 통해 불필요한 중복으로 인한 예산 및 인력 누수를 막아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있는 민간 문화 네트워크의 확산을 저해하는 각종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 규율들을 찾아내어 수정하고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국제문화교류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특히 국제문화교류란 서로 다른 국가의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법규 위에 놓는 다리이니 만큼 교류 대상의 성격과 상황에 맞추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실용적인 규정이 무엇보다 절실하게 요청된다.

법규를 제정하고, 지휘봉을 들었다고 소위 “관”이 “문화교류”의 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일 것이다. 문화교류를 포함한 문화 활동의 주체는 그 문화를 생산하는 예술가나 그에 상응하는 대상이며, 문화교류는 그들에 의해 생산된 문화의 가치에 따라 성과가 결정된다. 이러한 문화 활동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법규를 포함한 문화교류를 위한 모든 정책은 당연히 예술가의 활동에 편의를 제공해야 하며, 이것을 조정해주는 것이 바로 “관”의 역할이다. “교류”가 “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 주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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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승림은 음악칼럼니스트로, 현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문화정책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에서 음악담당 기자로 활동한 이후 성남문화재단을 거쳐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여러 매체와 공연전문지에 공연과 음악 관련 인터뷰 및 칼럼을 다수 기고했다. 역서로는 『페기 구겐하임』(한길사), 『음악과 권력』(컬쳐북스), 『평행과 역설』(마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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