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다양화에 힘입어 동시대 예술가와 예술이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예술의 작업 과정과 결과를 온전히 비춰낼 수는 없지만, 예술의 유통과 소비를 촉진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시작된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인기는 무용계 관객 개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미디어가 예술을 본격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지금, 미디어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이슈] 현대미술 예술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선➀/[이슈] 현대미술 예술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선②/[이슈]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선

‘시댄스(SIDance)’, ‘모다페(MODAFE)’, ‘페스티벌 봄(Festival:Bom)’에서 만나는 마니아 관객들을 LG아트센터의 해외 공연작 상연에서도 늘 보게 된다. 아르코예술극장이나 LIG아트홀에는 잘 가진 않지만 LG아트센터의 브랜드 가치를 따르는 관객층까지, 딱 그 정도가 극장형태로 제작되는 한국 현대 무용시장의 규모다. 무용 전공자와 공연 예술 관련 종사자들 이외에 일부 마니아 관객들로 꾸려가는 형태를 두고 ‘시장’이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딱 10년 전 무용기자 출신의 제환정이 쓴 무용 입문서 『문외한씨, 춤 보러 가다』를 쓸 때의 현대 무용 시장 환경과 비교해 2014년의 한국 시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답보 상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됐지만 최고가 3만원으로 전석 매진되었다는 공연 관객은 이전의 맨 윗층에서 보던 관객층과 다르지 않다. 정부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페스티벌은 역시나 시장과 유리되어 있다. 네덜란드댄스시어터(Nederlands Dans Theater, NDT)를 곧잘 소개했던 예술의전당과 성남아트센터 라인업에서 해외 고급 현대 무용이 사라진 게 오래다. 그나마 파슨스댄스컴퍼니(Parsons Dance Company)만이 수입사를 여러 차례 옮기면서 내한 공연을 지속했지만 결국은 소셜커머스 판매로 유료분을 일부 소화했을 뿐이다. 제작에는 기초 지원이 필요한 장르지만 판매에서 시장의 힘을 받지 못하면 가야할 곳은 따로 없다.

▲엠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현대안무가 김보람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엠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현대안무가 김보람,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결국 살 길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손쉽게는 스타 마케팅을 들 수 있겠다. 발레가 뮤지컬팬과 클래식 관객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기술을 발휘하지만 현대무용 시장에선 작가주의 안무가는 넘쳤을지언정 이를 이끌 무용 스타가 딱히 없었다. 기량과는 별개로 2004년 이후 10년 간 현대무용씬에서 배출한 자생적 스타 무용수는 LDP무용단 이용우와 엠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김보람을 들 수 있다. 이들이 대중에 주목받은 것은 드라마와 미디어 노출이었다. 유의미한 티켓 스코어의 변동과는 별개로, 공연을 보러 오라고 호소하지 않는 이들의 소통 방식이 현대무용판에선 참신했다. 창작자의 의사소통 기술면에서, 드라마의 이미지를 공연에선 내놓지 않는 이용우나, 비주얼과 달리 균형과 절제가 돋보이는 김보람의 방식은 클래식 시장에서 통하는 흥행 준칙을 따랐다. 손열음이 쇼팽을 치고 김선욱이 슈만을 연주하는 선에서 언론을 통해 정보가 전해지면 음악예술의 필수 지식들을 챙기지 않은 팬들이라도 7만원을 주고 손쉽게 티켓을 사는 관객이 1천5백이다. 시장으로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국제적’이며 굳이 장르 자체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안무가와 무용수가 한국 시장에서 ‘국제적’ 지위를 갖추는 건 어렵지 않다. 해외 콩쿠르 입상이나 유럽 페스티벌 초청이면 족하다. 언론에서 적절히 조명한다면, 현대무용이라 한들 관객이 찾는 건 발레의 ‘서희’, ‘최유희’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다.

‘댄싱 9’의 현대무용 출신 참가자들은 대부분 현대무용을 알리려고 프로그램에 나갔다고 했다. 현대무용이 당당히 시장에서 상품으로 기능했으면 하는 바람과, 그들 자신이 상업 시장의 주인공이 되고픈 의지를 보였다. 실제로 강동아트센터에 올려진 EDx2 공연은 ‘댄싱 9’ 출연자 덕에 매진됐다.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출연자 갈라쇼도 9만9천원 티켓 값이 무색하게 대량 판매됐다. 이런 흐름엔 분명히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징후가 담겨 있긴 하다. 그런데 왜 9만 9천원을 주고 갈라쇼를 보는 그 수요층이 지난 3월 부퍼탈탄츠테아터(Wuppertal Tanztheater)의 ‘풀문(Full Moon)’ 내한공연에는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것인가? 실제로 현대무용 관객이 늘어났다면 재빨리 반응하는 것이 공연기획사인데, 2015년 라인업에 유수의 해외 현대 무용단체를 섭외하는 민간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신기한 볼거리와 자아실현의 간극

▲ ‘댄싱 9’ 시즌 1 방송 캡쳐

▲ ‘댄싱 9’ 시즌 1 방송 캡쳐

극장 예술로서의 현대무용에 대한 특별한 욕구와 만족이 없는 ‘댄싱 9’ 시청층의 팬덤이 그 원인이다. ‘댄싱 9’의 갈라쇼가 극장이 아닌, 야외나 스트리트에서 열렸더라도 팬덤에 의한 흥행은 충분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현대무용 지원자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상은 궁극적으로 극장 시스템에 자신들이 참가해 생계와 자아실현을 함께 이루려는 것이다. ‘댄싱 9’에서 라운드가 거듭될 때마다 시청자가 소비한 것은 예술적 감흥 보다 신기한 볼거리에 가까웠다. 콜라보레이션 별로 상당한 기교적 발전이 이뤄지긴 했지만 테크닉이 현란해도 소재의 풍부함과 표현의 세련미는 떨어졌다. 스트릿 댄스와 현대무용의 만남은 이질적이었고, 대결 구도는 인위적이었다. ‘댄싱 9’에서 행해진 무브먼트가 궁극적으로 현대무용 상품의 소비 진작으로 연결될지에 대해, 참가자들은 고민했을지언정 상업 방송에 기대할 몫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클래식 시장에선 ‘클래식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세운 ‘디토 페스티벌(Ditto Festival)’에 젊은 여성 관객이 몰리고 있다. 그렇게 증가된 관객층이 클래식 인구의 자연 증가분에 얼마만큼의 여력을 제공하지만 대중화의 명제를 갖지 않고도 스스로 계발되는 관객층의 두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현대무용이 낯선 대중을 위해 문턱을 낮춘다고 ‘무용이 어렵다’는 명제를 부정하면서 이뤄낸 무용의 상업화는 어떤 효용이 있을까? 현대무용은 철학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의사 소통 방식의 생소함으로 어렵다는 인식을 ‘댄싱 9’의 포맷에서 고백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댄싱9’ 로 현대무용에 관심이 늘어나고, 현대무용 붐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 수준이 현재의 현대무용 시장이 관객을 그 정도로 밖에 분석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댄싱 9’를 보면서 안무가와 이종 장르의 댄서가 만나는 지점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가장 아쉬웠다. 작가적 역량을 갖춘 안무가가 들어설 공간에 각 장르의 검증이 덜 된 전문가들이 마스터 역할을 수행했다.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 스스로 마스터의 가르침을 흘려듣는 장면이 여럿이었다. 방송 수업을 거치지 않은 무용인의 장광설이 반복됐고 방송을 여러 번 탄 무용가도 평가의 언어 사용이 구체성을 잃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평가인의 권위는 실력상 절대적이어야 하지만 ‘댄싱 9’는 연예인들이 참가하는 ‘댄싱위드더스타(Dancing With The Stars)’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댄싱 9’ 시즌 1 방송 캡쳐

▲도미니크 에르뵈외와 조세 몽탈보의 라모:레 팔레댕(Rameau: Les Paladins)

CJ E&M에서 제작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음악적인 맛을 더하는 독창적인 무대 사용이 강점이었다. 복층 구조의 무대라든가 오케스트라의 사용으로 한국판 호세 몽탈보(José Montalvo)와 도미니크 에르비외(Dominique Hervieu) 듀오(프랑스 무용 듀오)의 탄생도 기존의 CJ E&M 제작 방식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를 해봤다. 라모(Jean Philippe Rameau)의 바로크를 윌리엄 크리스티(William Christie)와 레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이 연주하듯, 발레에서 힙합에 이르는 여러 장르가 뒤섞인 춤꾼들이 디지털화된 세계에서 감각의 향연을 펼치는 그림, 그 지점이 바로 일반 관객이 현대무용을 보러 극장으로 향하는 시작이라고 봤다. 정명훈과 파비오 비온디(Fabio Biondi)를 아는 클래식 팬이 바로크를 연주하는 서울시향을 보기 위해 김보람의 춤판으로 향하는 시장. ‘댄싱 9’이 공연 예술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신체 언어로 말하는 종합예술이 보다 수준 높아질 때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방송 안에서 녹여내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현대 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방송에서 봤던 발놀림부터 잘 즐기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겠다는 관객에 의존해서는 무용시장의 상업화는 요령부득이다.

방송은 ‘현대무용의 상업화’에 어디까지 이바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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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라 당스(La Danse)’


방송은 ‘현대무용의 상업화’에 어디까지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인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관심과 별도로 이종 장르간의 예술 전문가가 만나는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의 효용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신문 기사의 프리뷰로 만나는 안성수와 정구호의 결합은 공연장에 가기 전까지 모호하다. 무용에는 안무가 필요하고, 좋은 움직임을 갖춘 댄서가 절실하며 그것을 빛낼 음악과 의상이 필수라는 교과서적인 명제를 공연의 흥행으로 일구기 위해선 현대무용의 콜라보레이션과 관련한 명품 다큐멘터리의 등장이 긴요하다. 이욱정 PD의 ‘음식인류’나 KBS 클래식 교양 프로그램을 보면 개별 문화 소재에 강한 집념을 갖춘 프로듀서의 이름이 보인다. 영화 ‘블랙스완’을 통해 영상의 미학 소재로서 무용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여지없이 드러났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 잉글리시내셔널발레(English National Ballet), 신작에 참가하는 안무가 러셀 멀리펀트(Russell Maliphant)와 오디션에 참가하는 무용수들, 안무가와 단장의 갈등, 캐스팅을 향한 주역 무용수 간의 경쟁. 발레 뿐 아니라 현대무용의 제작 현장 하나하나가 영화적이며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가득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레데릭 와이즈만(Frederick Wiseman) 제작의 발레 다큐 ‘라 당스(La Danse)’가 실수요 관객과 소통하는 영상의 대표적 사례다. 2009년 파리오페라발레단(Paris Opera Ballet)에서 일어난 연습의 일상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를 두고 김용걸은 “이 영화는 아름답지만 치열한 우리 모두 인생에 관한 조용한 성찰”이라고 칭했다. 도쿄 시부야의 복합 문화공간 분카무라가 자신들의 공연장과 극장을 이용해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르파르크(Le Parc, 공원)’를 공연하고, ‘라 당스’를 상영했다. 고급 공연 예술의 수요를 보조할 영상의 필요는 오디션보다 다큐멘터리가 관객의 충성도를 공고하게 할 것이다.

‘댄싱 9’는 영상에 비춰지는 춤의 형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했다. 재즈댄스를 극장이 포용하던 시절처럼 춤은 보여주기 위한 예술이니 당연히 대중을 지향해야한다는 명제가 2013년의 방송에서 읽혔다. 그런 가운데 음악을 조율하고 변형하는 재주를 가진 무용수들이 보였던 건 방송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관객을 몰입하도록 만드는 능력보다는 미션을 어렵게 소화시켜가는 역경 극복의 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을 내놓는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의외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매주 관성처럼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계성이 마치 레퍼토리 구축을 못하고 지원금에 의존해 신작만 소모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존의 현대무용 제작구조와 닮아 씁쓸한 맛을 남겼다. ‘아트스타코리아’에서 비치는 미술의 형태가 어떤 것이어야 할 지 해답도 일정부분 찾아볼 수 있었다. 미션 수행의 타이트함에 초점을 둘 경우, 작품의 완성도 저하는 물론, 작가의 신선도 역시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작풍이 반복되는 순간을 누구보다 먼저 카메라가 잡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댄싱 9’와 ‘아트스타코리아’에 던지는 과제는 ‘지금 이들의 작업이 과연 컨템포러리인가’이다. 한국에서 현대무용과 현대미술을 하는 것이 얼마나 동시대와 호흡하고 있는지, 그것을 얼마나 대중과 나눌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방송작의 예술적 효용성은 단적으로 프로그램이 배출한 수상자의 작품과 활동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댄싱 9’ 시리즈 1 우승자 하휘동의 춤은 공연 시장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그의 스트리트댄스는 트렌드인가 컨템포러리인가? ‘댄싱 9’ 시즌 2에 시즌1 우승자를 마스터로 놓는 설정은 방송 스스로 우승자 춤의 신선기간을 1년으로 규정한 건 아닌가. ‘아트스타코리아’ 우승자 면면이 더욱 궁금해진다.

필자사진_한정호 필자소개
한정호는 [월간 객석]에서 무용·클래식 기자를 역임하고 국립무용단 자문위원을 거쳤다.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홍보, 기획 업무를 담당했고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서 일했다. 현재 영국에서 [월간 객석], 중앙일보, 중앙SUNDAY 필자, 옴부즈맨으로 활동 중이다. LG글로벌 챌린저 문화 예술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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