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네 명의 재능 있는 전통예술가들이 사물놀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30년. 사물놀이는 전통예술의 부흥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2008년,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사물놀이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심포지엄 그리고 30년사 발간이라는 일련의 사업들을 주관하였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우리는 보통 한 세대라고 부른다. 20대의 젊은‘잽이’들의 열정으로 시작한 사물놀이가 그 한 세대를 마감하면서 이제는 제2, 제3의 사물놀이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전문공연과 생활문화에서의 성과

전통 연희 공연사물놀이 30년간의 공과(功過)를 일일이 나열하자면 본 지면으로는 턱도 없을 터이지만, 사물놀이가 전통예술 무대 양식화에 성공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해외 공연과 워크숍 활동으로 교민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자생적인 사물놀이 단체를 결성하여 왕성한 활동을 전개되고 있다. 사물놀이는 전통예술의 공연 양식화의 성공 사례로서 문화적 다양성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전문 공연예술로서의 이러한 성과 못지않게 값진 것은 유치원에서부터 지역 문화센터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활문화로서 사물놀이가 폭넓게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물놀이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면서 시대적 상황이 직조해낸 가장 한국적인 심성의 예술로서 한국인의 정서와 시대적 조류에 적중한 독보적이고도 진귀한 우리의 음악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멜로디가 결여된 타악으로서 사물놀이의 음악적 한계와 구태의연한 레퍼토리로 인해 급변하는 세계의 무대공연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2, 제3의 사물놀이 탄생이 절실하다. 전통리듬을 활용한 퍼포먼스 <난타>나 동양무술과 코미디가 결합한 <점프>가 해외진출과 상설공연을 통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전통예술의 범주에서 논할 공연은 아니다. 70년대 사물놀이를 창단할 때의 치열함으로 전통예술의 호흡을 유지하되, 거기에 의미와 언어성, 그리고 무대적 시각화를 부여한 새로운 전통공연예술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전통예술의 무대양식화, 전통연희에 주목하다

전통 연희 공연최근에 많은 전통예술단체들이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더불어 새로운 무대 양식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중에 전통연희(演戱)가 하나가 대안으로 자주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전통연희 콘텐츠들을 무대화한 의미 있는 작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2월 28일, 사단법인 전국연희단체총연합회가 정식으로 발족한 것을 지켜보았다. 전국에 산재한 많은 연희단체들이&lsquo;전통연희의 성공적인 재창조&rsquo;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니 여간 기대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연희가 제2의 사물놀이 신화를 이루어내려면 다음 몇 가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역량 있는 작가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전통연희 분야에서 작가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많은 전통연희 종목들은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며, 연기자들의 대사는 시대를 풍자하고 관객들에게 해학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전통적 대사 내용이 지금 시대에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기초로 새로운 형태의 대사 내용과 구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연주 실력이나 연희기예를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완성된 공연 형태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현실적이고 재미있으며 구조적 안정성이 반드시 획득되어야 한다.

전통연희를 이해하는 연출가
한국적 원형을 담은 정서와 공연 양식이 설득력 있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잘 발현되기 위해서는 연출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출가는 전통연희의 공연 양식과 전통음악어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연의 흐름과 배역의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기존의 역량 있는 연출가들을 전통연희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개방적 정서와 태도,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전통연희 교육 과정에 있어서 연출 분야 인재 양성 역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lsquo;경영&rsquo;적 마음가짐 도입
전통예술의 기획-제작-유통 구조가 전문화되기 위해서는&lsquo;경영&rsquo;적 마음가짐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전통예술은 지원과 보존의 대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예술 그 자체의 가치에 오랫동안 안주해 왔다. 이제 전통공연예술은 합리적인 기획․제작 시스템의 확립을 요구받고 있다.

장르 간 결합과 뉴미디어의 활용
전통예술은 여전히 다른 장르와의 창의적 협업에 대해 소극적이다. 자신만의 음악과 양식에만 갇혀 있다면 젊은 관객층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비교적 젊은 연주자들이 시도하는 창작음악과 전통연희 작품은 오히려 시장에서의 성공확률이 높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전통연희는 특화된 양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통예술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장르와도 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오히려 다른 공연 양식과의 우성혼종(優性混種)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전통연희가 문화산업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뉴미디어 매체의 적극적인 활용이 요구된다.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의 역할은 전통연희의 역동성을 부각시키고 관객과의 거리를 훨씬 미래지향적으로 좁혀주리라 생각한다.


주재연

필자소개
주재연은 1993년부터 김덕수 사물놀이에서 일을 시작하여 2001년까지 (사)사물놀이 한울림의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주로 전통공연예술의 해외마케팅과 국제교류에 힘써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남북 및 국제교류위원회 1-3기 소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주)난장컬처스의 대표이사이자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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