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창작 공간통합페스티벌 “창작의 내:일” 페이스북

최근 공·사립 기관을 막론하고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의 레지던스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지만, ‘예술가들에게 안정적 작업환경 제공’이라는 레지던스 본래 취지는 점점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Weekly@예술경영] 285호는 현 문제 상황 원인 중 하나인 ‘작가-레지던스 매개자 역할의 부재’ 현실을 진단하고, 국내 대표 시각예술 작가들의 레지던스 활용기와, 기업-레지던스 연계의 성공적 사례를 조명한다./[특집]레지던스와 아티스트 간 매개자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하우투]국내 레지던시 경험기 - 레지던스, 이렇게 활용하라①/국내 레지던시 경험기 - 레지던스, 이렇게 활용하라②/[이슈]지역레지던스와 기업의 협업 성공사례 - 사슴사냥 레지던시 프로젝트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창작 공간으로

얼마 전, 전국 12개 시도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한 전국 12개 시도문화재단 통합페스티벌 <창작의 내:일! Creative Tomorrow>이 있었다. 페스티벌은 창작 공간과 작업의 연관성을 과정 중심으로 보여주는 <작품의 시작>,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작가가 해당 지역의 지역성과 관계 맺는 결과로서의 <어느 예술가의 창·작·공·간>, 창작 공간의 역사와 현황을 보여준 <창작 공간의 어제와 오늘>과 전국 8개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창작 공간과 4개 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창작 공간의 부스 전시인 <오늘의 창작 공간>이 합쳐진 <창작 공간과 예술>이 있었다. 라운드테이블, 시민 참여 행사와 공연 등도 있었지만, 단언컨대 가장 이목을 사로잡은 건 국제 심포지엄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 환경의 조건>이었다.

이미 매진되어 참석하기 어려운 국제 심포지엄을 대신해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이제 ‘미술창작 스튜디오’, ‘아티스트 레지던시’라는 말 대신 ‘창작 공간’이란 단어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1998년 문화관광부의 <창작스튜디오 활성화 기본 계획>과 2004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미술창작스튜디오 활성화 방안연구>로 문화정책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시작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하고 지자체 문화재단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지역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레지던시 사업을 지원하는 부분이 확대되었다는 것은 알려진 내용이다. 이러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전개와 현황에서 작가에 대한 지원이 ‘전시’보다 ‘창작 공간’으로 이동된 것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자체 창작 공간을 운영하는 8개 지역재단은 경기문화재단(경기창작센터), 경남문화재단(경남예술창작센터), 광주문화재단(미디어아트 레지던시), 대전문화재단(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구문화재단(가창창작스튜디오), 인천문화재단(인천아트플랫폼), 부산문화재단(감만창의문화촌, 홍티아트센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 서울문화재단(관악어린이창작놀이너, 금천예술공장, 문래예술공장, 서교예술실험센터, 성북예술창작센터, 신당창작아케이드, 연희문화창작촌, 잠실창작스튜디오, 홍은예술창작센터)이 있다. 레지던시 사업을 운영하는 문화재단은 강원문화재단(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 전남문화예술재단(거주예술인창작활동지원사업), 제주문화예술재단(창작공간프로그램지원사업), 충북문화재단(레지던시지원사업)이다.

1) 국립현대미술관 (창동·고양), 서울시립미술관(난지·청계), 광주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와 청주시립도서관 소속 창작스튜디오는 지역문화재단 조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도문화재단 통합 페스티벌에서 국공립⋅시립미술관 조직 안에 들어간 창작 공간1)들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눈여겨 봐야할 지점은 창작 공간을 운영하는 지역 재단에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 사업이 줄어들고 지역문화재단이 직접 창작 공간을 운영하면서 지원하는 형태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 문화재단의 문화정책에서 창작 공간은 지역 유휴 시설 활용, 도시 재생, 문화 마케팅이라는 삼박자를 갖추면서도, 동시에 협력과 긴장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창작 공간 자체 운영의 확대는 상대적으로 민간의 레지던시 공간과 그 프로그램과 달리 탄탄한 국가 자본(공공기금), 제도적 기반, 강력한 하드웨어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나 소규모 가게가 갖는 관계의 경우와 비슷하다. 예술 활동의 창작 소통 및 유통 과정과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미술계에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의 내밀화의 단면으로 세심한 성찰과 대안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 큐레이터와 매니저의 경계에서

“전시나 프로그램을 주체적으로 기획하기보단 작가의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작가와 해당 기관 사이의 중재와 조율을 하며 진행하는 역할이 크죠.”“저는 큐레이터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서 매니저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어디는 큐레이터라고 하고, 어디는 학예사라고 하고, 어디는 매니저라고 하고 저희끼리도 헷갈려요”“사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네트워킹이나 연계 프로그램이 너무 다양해서 늘 허덕대요.”“비영리 공간에서 이것저것 하면 뭐해요. 공공기간 레지던시에서 더 크게 폼 나게 해버리면 게임 끝나는 거예요.”“비영리 공간에서 레지던시나 지원 사업을 해도 작가들이 공공기간 레지던시나 다른 곳과 대놓고 비교해서 상처받은 적도 있어요.”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창작 공간의 역사와 현황을 보여준 <창작 공간의 어제와 오늘>에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이슈”의 4가지는 창작 공간의 정체성 및 역할 수립, 법제적 위상 확립, 창작 공간 운영의 개선, 창작 공간 플랫폼 및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창작 공간 운영의 전문성 및 안정적 운영을 강화였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전문가라 말하기보단, <미술창작스튜디오 활성화 방안연구(2004)> 자료 조사를 시작으로 쌈지레지던시 큐레이터(2007), 인천문화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획(2010), 경기창작센터 연구 레지던시(2011)와 몇몇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매칭 비평가나 사업 평가 그리고 이런저런 참여를 해온 필자가 매번 느끼는 것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관련된 이슈에서 해당 공간의 기획 매개자에 대한 이슈는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출발이 작가 지원과 지자체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전개해왔다는 것이 주요하겠지만, 예술의 순환 구조가 창작, 기획 매개, 향유라고 볼 때 정책과 지원의 관심은 늘 ‘창작’과 ‘향유’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조금씩 시작된 기획 매개자를 위한 역량강화 지원이 <미술 분야 기획인력 양성방안 연구>(2011)를 시점으로 정책적으로 다양하고 창조적 소통 방식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데 ‘기획 매개자’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하기만 하다.

실질적인 논의와 고민의 시작을 제안한다

원고를 쓰기 위해 여러 아티스트 레지던시 담당자들에게 받은 명함을 보니 직함이 제각각이다. 한 가지 의미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맥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기관 소속이든 민간 영역이든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기획 매개자들이 스스로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애매모호함은 비슷하다. 미술계가 유난히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선호하고 관리나 운영의 뜻이 담긴 ‘매니저’라는 말을 소홀히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지자체 산하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많아질수록 지자체와 작가 사이를 조율해야 하는 역할에 집중되는 기획 매개자가 많아질 수 있고, 민간 영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위축은 기획 매개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축소할 수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동시대 미술에서 주요한 기반으로 등장하면서, 강조되는 역량 중 하나가 강박적 네트워킹 확장과 지역 관계적 프로젝트의 양상인데 다수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면서 무엇 하나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프로젝트과 프로그램의 스펙터클 속에서 기획 매개자의 역할은 어떻게 관리하고 홍보하는지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반면, 민간 영역의 기획 매개자의 경우, 하드웨어와 지원 사항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새롭거나 다른 예술의 상상과 실천을 기획하고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러한 사례들이 공공기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빠르게 흡수 확대하는 현상에 마주하게 된다.

짧은 글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기획 매개자에 관한 문제 제기와 대안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자본과 제도가 주도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확장 속에서, 창작과 향유의 교량 역할을 해야 할 기획 매개자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이 필요하다. 세심한 상상과 실천이, 매번 강조되고 반복되는 거시적 이슈보다 더 중요하고 구체적이기에,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와 고민의 시작을 제안하고자 한다. 어찌되었든,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주요한 제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과 제도에 대한 의미 있는 재전유와 재배치를 위해, '기획 매개자들이 기획자와 매니저의 경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짓는가'는 또 다른 미술의 가능성과 희망을 기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프로필사진_채은영 필자소개
채은영은 인하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서양미술사학과 중퇴 후,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 졸업 및 국민대학교 미술이론 박사과정 수료 후 미술과 공동체 관련 논문을 준비 중이다. 갤러리 보다, 대안공간 풀 큐레이터를 거쳐,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했고, 현재 우민아트센터 학예실장, 슬로러쉬 및 예술과공동체연구소 디렉터로 연구와 비평 그리고 기획을 하고 있다. 이동석 전시기획상(2013), 프로젝트비아(2013) 및 다수의 공공기금에 선정됐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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