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인턴제'에서 중요한 대목은 '보수 없음'이라기보다 지금의 '학예연구' 행태가 권력의 형태로 되물림되고 있다는 지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부당한 인턴제'는 학예사의 업무과중과 그를 뒷받침할 미술 전문 코디네이터의 부재 그리고 장기적이고 계획적으로 전문인을 양성하지 못하는 실정과 맞물려 이해되어야 한다.

부산 시립 미술관 외관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다 2004년에 타계한 故 이동석 선생의 에세이소설 『학예연구사 구보 씨의 하루』가 회자된 지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미술관 학예연구사의 하루는 좀처럼 나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전시 홍보용 초청장 발송 작업을 하고, 개막행사 시행을 위한 서류를 꾸미는 그 순간에도 현수막과 육교현판 디자인 교정을 보면서 리플렛, 포스터, 명제표 등등이 시간 내에 제작되도록 인쇄업체들에게 독촉전화를 한다. 전시(展示) 직전의 상황들을 마치 전시(戰時)처럼 치러내고 있는 미술관의 ‘나홀로 전천후’ 학예연구사는, 그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듯, 예전부터 잡예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학예연구사를 학예사로 줄여 부르는 관행, ‘학예’가 아닌 ‘연구’를 쏙 빼버리는 관행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일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기’도 전에 일을 처리해야 돌아오는 다음 행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예 언저리의 일을 맡은 사람(?)’이라는 내용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한 언어적 진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연구다운 ‘연구’를 하지 못하는 학예연구사는 학예사로, 그것마저도 지켜낼 수 없는 학예사는 잡예사로 부르며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연구’ 없는, 학예사 혹은 잡예사

참조 이미지 - 디스플레이 작업중인 미술관
이러한 반성의 반향은 요즈음 오히려 의외의 곳에서 확인되는데, 지금 한창 아고라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미술계의 부당한 인턴제 폐지’ 서명운동이 그것이다. 여기서의 ‘미술계’는 국공립미술관을 예외로 두고 있지 않으며, ‘인턴제를 운영하는 미술계’로 좁혀 이해해도 그 ‘부당함’을 비켜갈 수가 없다. 준학예사 자격증 제도(등록 미술관에서의 실무 경력 요구)와 미술계의 취업난이 맞물려 작동되는 미술관의 외부적 요인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넘겨보지만, 이 제도를 적극 도입, 운용하고 있는 미술관 내부의 형편에서도 의외로 책임전가가 쉽지 않다.

이 서명운동은 미술계의 인턴제 자체를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실질적인 직업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미술관의 인턴 프로그램 도입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실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인턴 프로그램은 교육형 프로그램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그런’ 학예사의 과중한 업무를 분담하는 코디네이터형 큐레이터 수준의 업무가 부가되거나, 현업 학예사가 꺼리는 일들로 채워지기도 한다. 거기에다 그에 따른 보수가 대부분 없으며, 고작 교통비와 점심값 정도의 일비가 지급되고 있는 형편이다.

어떤 일이든 교육적인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문제는 교육의 질적 수준인 것이다. 미술관 내 학예연구사의 하루가 그 본연의 업무, 즉 작품과 작가 연구에서 나아가 미술 전반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전시 기획과 소장품 수집 방향 수립이라는 학술적 성과를 내기 위해 고뇌하는 하루가 되지 못하고, 단순히 전시를 진행하고 수집업무를 행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에 묻혀 전전긍긍하는 하루를 보내는 이상, 인턴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결국 ‘부당한 인턴제’에서 중요한 대목은 ‘보수 없음’이라기보다 지금의 ‘학예연구’ 행태가 권력의 형태로 되물림 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당한 인턴제’는 학예사의 업무 과중과 그를 뒷받침할 미술 전문 코디네이터의 부재, 그리고 충원가능성이 희박한 전문직 보직과 어쩌다 충원되는 보직마저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결과적으로 장기적이고 계획적으로 전문인을 양성하지 못하는 실정과 맞물려 있다.


설혹 인적자원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부산시립미술관의 예를 들자면, 정부 예산 편성 지침에 따라 인턴에게 일비 1만원을 지급한다. 올해에는 6명의 인턴을 선발해 1명이 1000시간 이상을 채울 경우 수료를 인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전국에서 몰려온다. 프로그램의 내용이 질적으로 우수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인턴제 자체가 권력적인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원자 대부분은 직업 경험의 동기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전문 미술인으로 활동할 수 있길 기대한다.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내에서 그러한 ‘인적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인턴프로그램 본래의 ‘목적과 기대효과’가 달성된다 하더라도 이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거의 전무한 실정에서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그리고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우리(인턴프로그램 담당자와 인턴으로 선발된 자)가 바라는 학예연구사의 새로운 업무분장을 고민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이상을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는 것이다. 똑같은 환경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강선주

필자소개
강선주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학 전공 석사과정 중에 있다. 2004년부터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평범한 것의 변용>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