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예술경영》 298호는 ‘오케스트라 경영’ 특집이다. 지휘자 선정, 작품·관객 개발, 전용 공연장 건립과 마케팅 전략 수립 등 국내 오케스트라 단체 운영 효율성 제고를 위한 현안들을 해외 사례와 결부하여 살펴본다./특집:국내 오케스트라 단체의 운영 현황 및 효율성 증대방안

애타는 지휘자들

2013년 영국 리버풀 출신의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이 2018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를 그만두겠다고 발표하자, 영국 음악계는 그가 자국의 교향악단으로 돌아와 주길 바랐다. 모든 면에서 런던 심포니가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계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지난 1월, 래틀은 “런던에는 음향 좋은 콘서트홀이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좋은 콘서트홀이 없으니 가지 않겠다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자 영국 문화예술계는 이 문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새로운 콘서트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형성했지만 반론도 있었다.

《텔레그라프》의 평론가 아이반 휴이트(Ivan Hewett)는 바비컨센터(Barbican Center)로열 페스티벌홀(Royal Festival Hall)의 음향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며, 재원이 있다면 영국 남서부 같은 지역에 콘서트홀을 짓거나 열악한 환경의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고《가디언》의 샬롯 히긴스(Charlottte Higgins)도 음악 교육 등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의 재무장관인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까지 나서서 런던에 콘서트홀을 짓는 데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고, 국립극장 극장장 니컬러스 하이트너(Nicholas Hytner)를 대표로 타당성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국 사이먼 래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런던 심포니와의 음악감독 계약서에 서명했다.

웃고 있는 래틀과 달리 콘서트홀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지휘자도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는 최근 뮌헨 시가 콘서트홀 건립을 백지화하자 실망감을 토로했다. 뮌헨에는 음향이 건조한 대형 공연장인 가스타이크(Gasteig)와 후기 낭만주의 이후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릴 수 없는 헤라클레스홀밖에 없기에 마리스 얀손스는 오래전부터 콘서트홀의 건립을 주장해왔다. 심지어 그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중에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택한 것은 자신이 바이에른을 떠나면 새 콘서트홀을 짓는 일이 어려워질 테고 이는 뮌헨 시민을 배신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결론은 새 콘서트홀의 건립이 아닌 가스타이크의 리노베이션이고, 이 결론이 확정되면 마리스 얀손스가 바이에른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런던이나 뮌헨과 달리, 파리에선 최근에 두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스타 건축가 장 누벨의 설계로 필하모니 드 파리가 파리 변두리에 지어졌고(상세한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는 성남문화재단 ≪아트뷰≫ 3월 호에 실린 황정원의 글을 참고), 1천5백 석에 못 미치는 작은 규모이지만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거느린 라디오 프랑스에는 메종 드 라 라디오라는 홀이 들어섰다.

서울에서도 지난 10년간 콘서트홀은 뜨거운 감자였다. 2005년 서울시는 지휘자 정명훈을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으로 초빙하면서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을 짓기로 했다. 이는 한강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모두를 포함한 ‘랜드마크’ 건축물을 짓는 계획으로 구체화되었고 2006년 설계 공모를 통해 (필하모니 드 파리를 설계하기도 한) 장 누벨의 디자인을 선정했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바뀌자 이 계획은 보류되었다. 다시 국내 건축가가 설계한 ‘한강 예술섬’ 건립 계획을 밝힌 것은 2009년 봄. 약 1년여의 준비를 거쳐 착공을 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당시 시장이 무상급식 논란 속에서 물러났고 ‘한강 예술섬’ 계획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최근 서울시는 다시 콘서트홀을 지을 의사를 밝혔고 광화문 세종로공원을 부지로 잠정 낙점한 상태다. 한마디로 건립추진-보류-재추진-보류-재추진까지 온 셈이다. 또 자세한 내막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이와 유사한 과정을 부천시도 겪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교향악단에서 일하면서 전용 공연장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것이 그리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은 안다. 하지만, 앞서 여러 사례에서 보았듯 왜 그리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들이 콘서트홀의 필요성을 외치는지 설명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한강 예술섬’ 조감도(사진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왜 오케스트라는 콘서트홀을 원하는가

사이먼 래틀이나 마리스 얀손스가 새로 콘서트홀을 지어야 한다고 한 것은 적절한 규모의 ‘음향 좋은’ 콘서트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비컨, 로열 페스티벌홀, 가스타이크 등은 건조한 음향으로 악명이 높다. 음향이 나쁘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음악이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주방에서 음식을 맛있게 요리해도 손님에게 내놓을 때엔 이미 식어버려서 맛이 없어진 것이다. 공연장의 음향은 지휘자, 단원, 악기와 더불어 그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소리 하나하나를 객석에 균형감 있게 전달해 주는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정밀해지려는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도 당시의 공연장 음향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으며(상기 황정원의 글 참고), 우리가 아는 유명 교향악단들의 사운드는 해당 공연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콘서트홀은 당연히 ‘전용’ 콘서트홀이기도 하다. ‘전용’이라고 함은 여타의 교향악단이나 음악가들이 전혀 무대에 서서는 안된다는 뜻보다는, 하나의 교향악단이 최우선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지닌다는 뜻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오케스트라와 콘서트홀이 하나의 조직인 경우와, 둘이 별도이되 상주단체로 활동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여기서는 전자의 경우를 상정하고 이야기하되, 후자의 경우도 포함시켜 이야기하도록 한다.

전용 콘서트홀이 있으면 가능한 것들

우선 전용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에게 충분한 공연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향은 예술의전당에서 약 25회 정도의 공연을 하고 있지만, 횟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 예술의전당을 대관하려는 단체들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관현악 정기공연으로는 교향악단이 정상급 활동을 펼칠 수 없다. 미국이나 독일의 메이저 교향악단들은 주 3회 심지어 4회의 반복 공연을 연간 30주 이상 펼친다. 다섯 개 일류 악단이 활동하는 런던은 좀 다르다. 런던의 교향악단들은 런던에서 반복공연을 하진 못하지만 상주 공연장인 사우스뱅크 센터의 로열 페스티벌 홀이나 바비컨 센터에서 35회에서 45회의 공연을 펼치고, 나머지 연주는 유럽, 미국 또는 영국의 지방도시 투어 등을 통해 연간 1백 회 안팎의 스케줄을 채운다. 위 두 공연장은 하나의 교향악단만을 위한 전용 공연장은 아니다. 사우스뱅크 센터에는 런던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외에 2개 악단이 상주하며, 바비컨은 상주 중인 런던 심포니, 비비씨 심포니 외에 여러 악단이 주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하튼 이에 근접한 횟수의 공연을 소화해내지 못하고서는 여러모로 좋은 교향악단이 될 수 없다. 전용 콘서트홀은 교향악단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둘째로, 전용 콘서트홀은 단지 정기연주회를 넘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을 만나는 기반이 된다. 수천억 원을 들일 수밖에 없는 공연장이 정기공연 연간 100회를 위해 지어져야 하느냐는 반론은 나올 수 있다. 회당 2천 명이라고 해도 연간 이용객 2십만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공연장은 단순히 밤 8시에 공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대표적인 것이 다양한 연령대와 사회계층을 포괄하는 교육프로그램이고, 공연으로는 마티네 콘서트와 같은 형태도 있을 수 있다. 시민들이 그곳에서 문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곳이 되어야 한다. 물론 프로그램은 상당 부분 오케스트라와 관련된 것일 테고, 이는 오케스트라에게도 시민과의 유대를 강화시켜 주는 기능을 할 것이다. 또한, 과거처럼 직접 방문하는 사람만이 관객인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 (연극 분야이긴 하지만) 영국의 NT라이브와 같은 스트리밍 생중계나 녹화중계 등은 점점 확산되고 있고, 이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즐길 기회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전용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의 마케팅을 활발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현재 국내 교향악단 어느 곳도 1년에 100회 가까운 정기공연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차츰 늘려갈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서울시향의 유료 관객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젠 스타급 연주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매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연주 횟수를 늘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관객이 늘어나는 것은 연주의 질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만, 이른바 관객 개발이나 마케팅이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콘서트홀이 지어진다는 것은 일개 교향악단보다는 훨씬 더 정교하고 광범위한 홍보와 마케팅을 구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각종 프로그램은 오케스트라의 인지도를 높이고 관객을 늘려나가는 역할을 한다. 콘서트홀의 고객은 교향악단의 고객보다 더 넓고 클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마케팅 툴이 구사되어야 한다. 후원과 협찬 역시 증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소 개인적인 의견을 보탠다. 이렇듯 오케스트라가 정상적으로 활동한다면, 우리나라 국공립교향악단이 사회면 뉴스를 장식할 때 빼놓지 않는 레퍼토리가 된 ‘오디션’을 둘러싼 갈등도 ‘어느 정도는’ 해소될 수 있다. 사실 해외에선 1년, 2년마다 기존 단원을 대상으로 실기평가를 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단원에 대한 실기평가는 오케스트라가 우수한 단원을 선발하고서도 그들의 역량을 유지시킬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존속해왔다. 1년에 몇 번 안되는 정기연주회, 전력을 다하기 힘든 몇 번의 무료 공연과 반주, 그리고 낮은 수준의 처우는, 자신의 기량과 동료와의 앙상블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오디션보다는 좋은 지휘자와 함께하는 충분한 양의 연습과 공연,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과 비평가들의 눈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모든 단원평가 제도가 없어져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 ‘베를린 필하모니’는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사진출처: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지)

한정된 재화를 어디에 쓸 것인가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천억이 소요되는 막대한 건축 비용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끝난 후 방치되는 시설처럼, 채울 내용물이 없는 하드웨어는 골칫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교향악단이 얼마나 가능성을 지닌 단체인지, 기타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효과는 어떠할지는 물론이고, 재정 계획을 포함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건립에 소요되는 비용과는 별도로 현재 하나의 교향악단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큰 금액의 연간 예산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시설유지비 외에도 교향악단의 연주 증가에 따른 비용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드웨어가 있다는 것은 수입원이 제법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대시설을 통한 수익사업 운영은 물론이고, 늘어난 콘텐츠와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협찬과 후원의 활성화는 필수적이다.

예술경영인들의 역할

반복하지만, 공연장을 짓는다면 추가적인 재원이 소요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문제는 그만큼의 유무형의 효과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영국 버밍엄 심포니는 사이먼 래틀이 재직하던 시기(1980~1998)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1990년 심포니홀의 개관은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심포니홀은 버밍엄 심포니와는 별도의 기관이긴 하나, 버밍엄 심포니의 실력이 날로 올라가고 관객의 사랑을 받던 시점에 좋은 콘서트홀이 건립되었기에 이는 버밍엄 심포니와 버밍엄 시민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니컬러스 케니언, <사이먼 래틀>, 8장 참고.) 현재도 버밍엄 심포니와 심포니홀은 영국 일류의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 런던 심포니는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바비컨으로 옮겨 가면서 거의 파산할 뻔했다. 전 대표였던 어니스트 플라이슈먼이 예상했던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야심 찬 프로그램은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했고 공연장은 접근성도 나빴으며 음향도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시기 영국은 경제 침체에 포클랜드 전쟁까지 하고 있었다. 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런던 심포니는 안정을 되찾고 오늘날의 명성에 근접할 수 있었는데 그 핵심엔 첼로 단원 출신 행정감독 클라이브 길린슨이 있었다. (리처드 모리슨, Orchestra – The LSO: A Century of Triumph and Turbulence, 9장 참조.) 공공 지원, 민간 지원은 물론이고, 예술가들의 노력에 예술경영자들의 분발까지 더해질 때 콘서트홀과 오케스트라는 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양창섭 필자소개
양창섭은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일했다. 런던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예술행정 및 문화정책으로 석사를 받았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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