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은 ‘문화’를 앞세우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문화와 예술 활동이 크게 신장하였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가 (공연예술)축제의 개발과 발전이다. 지자체의 의지에 힘입어 새로운 축제들이 만들어졌으며, 기존 축제들은 예술감독제를 도입하면서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간 것이다. 일부 축제는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 지역민들은 고달픈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축제를 반겼다. 무엇을 먹고 입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서서히 이동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중앙정부는 축제를 관광산업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오로지 관광경제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몇몇 축제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였고 매년 우수관광축제를 선발하고 있다. 그러나 축제는 관광상품이 아니다! 축제의 목적은 공연예술을 발전시키고 지역민의 문화향수기회를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간혹 민속축제가 관광상품이 되는 경우는 있다. 이 경우 축제는 마치 놀이공원처럼 변색되어, 주인이 사라지고 손님만 떠들썩한 축제로 변질되고 만다. 그리고 주민들은 축제기간 동안 방을 세놓고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관광산업 육성으로 시작된 축제 지원

2008년 과천한마당축제 초청작 <도시의 여정>축제가 공연예술 발전이라는 국가적 사업에 기여한다면 당연히 중앙정부는 이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문화관광체육부의 관광산업국이 아니라 예술국이어야 하며, 관점 역시 관광이 아니라 공연예술이 되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공연예술축제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마치 국가 기간산업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지자체더러 각 구간의 비용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이렇게 해서 축제의 비용 대부분을 떠안은 지자체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관광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오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지자체도 축제를 만들 때 사실 중앙정부와 별 다를 바 없는 엉뚱한 계산을 했었다. 공연예술의 경제적 생산성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우며 또 기약할 수 없는 먼 훗날에나 빛을 발하는 법인데 말이다.

중앙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많은 축제들이 지자체의 변덕에 위기를 맞고 있다. 춘천마임축제는 주행사장이었던 낭만적인 고슴도치섬이 관광단지로 개발되는 바람에 새로운 행사장을 물색해야 했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 많은 시민들이 축제를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사업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춘천시가 스스로 나서서 고슴도치섬을 보존해야 하지 않았을까?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축제의 명칭 등 근본적인 성격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거리극이라는 공연예술의 사회적, 예술적 성과와 시민들의 사랑에는 눈을 감은 채 단순히 지역의 특색을 살린 다문화축제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양평세계야외공연예술제는 올해 경기도로부터의 지원이 끊겨 축제를 몇 달 앞두고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기금의 이자로 재원을 마련하는 과천한마당축제는 경제위기와 함께 이자율이 떨어지는 바람에 예산이 반 토막 날 위기에 처해 있어, 일부에서 2년에 한 번씩 개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음악극이라는 장르를 중심으로 하는 것에 비해 예산이 생색내기에 불과한 정도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몇 년 전 중앙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해 예산이 반 토막 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예산의 일부를 관광기금으로부터 받는 바람에 축제를 운영하면서 (외국)관광객의 수효에 눈치를 보는 형편이다.


공연예술 발전 없이 축제 발전은 없다

2007년 과천한마당축제의 한국-네덜란드 공동제작<구도>
축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하여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앙정부는 공연예술 발전이라는 국가적 사업을 수행하고 또 지자체의 변덕으로부터 축제를 보호할 수 있다. 아울러 지원액수도 현실적이어야 한다. 이름만 거창하게 달아놓고 실속은 초라한 축제는 마치 부실공사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지자체 역시 축제를 지원하면서 소집단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축제는 지역주민의 문화생활을 위한 사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연예술의 발전 없이 어떻게 축제가 발전한단 말인가.


임수택

필자소개
임수택은 연극연출가이자 2003년부터 과천한마당축제의 예술감독, 올 2월 발족한 한국거리예술센터의 공동대표, 그리고 한국외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극장장과 2004년 창설된 한국공연예술축제협의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과 쾰른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역서로『드라마의 기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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