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예술가 발굴과 후원 전시,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까지, 최근 기업은 단기적, 일방적 문화예술후원 활동에서 벗어나 기업 내부에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예술적 영감과 창의력을 공유하는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시 말해 기업은 예술의 창작 활동을 돕고 예술은 기업의 창의적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weekly@예술경영》은 이런 식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기업과 예술의 바람직한 공생관계를 살펴본다.

급변하는 세상,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예술가만의 몫이 아니다

서로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인식하고, 우리 삶 속 주목해야 할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각자가 익숙하게 사용해 왔던 소통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어떻게 대화가 되겠는가. 예술의 가치를 성과 중심의 현재 기업 언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한 예술의 가치와 협업의 효과를 정확하게 수치화시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이러한 이질적 조합이 가져오는 예상 밖 시너지를 리스크 예방 차원에서 움츠리기만 한다면 회사 로비와 복도, 사무실에 예술가가 어슬렁거릴 이유는 없다. 간부 회의에 시인이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딱딱한 기업 경영 환경은 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예술을 도구적·기능적으로 접근하던 기존의 아트마케팅과 예술 후원 구조와 구호를 넘어서 상호 주체성을 존중하며, 대등한 차원에서 진정한 의미의 ‘협업’을 모색하고자 진행했던 정책 사업이다.

예술가를 파견하다?!

2011년 「예술인 복지법」 제정 및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이후 예술인 복지 지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인들의 창작 여건 개선 및 창작 활동 증진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주요 사업은 예술활동증명, 창작준비금 지원, 예술인 파견지원, 교육이용권, 예술인 산재보험, 사회보험료 지원 등이다. 이 중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예술적 역량을 필요로 하는 기업, 기관, 지역과 예술인을 연결시켜주는 사업이다. 프로젝트 기간에 예술인은 일정 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며, 참여 기관과의 협업으로 예술 가치 확산과 예술인의 복지 향상을 동시에 달성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을 통해 예술 개입의 여지가 없었던 새로운 대상과 분야를 개척하고, 참여 기관이 가지고 있던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결, 참여 예술인의 역량 발전 및 예술가 상호 간의 네트워크 확장 등 예술 생태계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2014년에는 331명의 예술가가 176개 기관에 파견되었으며, 2015년에는 498명의 예술가가 190개 기관에 파견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에 300개 기업에 1,000여 명의 예술가를 파견해 조직 문화 개선, 상품 기획, 마케팅 등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16년에는 총 7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산업과 문화를 결합하고자 한다.



윤석정 시인 <시와 이야기 공방> 스킨 큐어 회의 현장

▲ 윤석정 시인 <시와 이야기 공방>
스킨 큐어 회의 현장

주희란, 윤희경 <인천탁주, 그 히스토리 프로젝트> 인천탁주

▲ 주희란, 윤희경
<인천탁주, 그 히스토리 프로젝트> 인천탁주

예술가들, 내부의 소통 매개자가 되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 ‘뽀로로’로 유명한 기업 ‘아이코닉스’에 파견된 김형관, 이민하 작가는 기업 규모 확장으로 인해 설립 초기 가족 같은 사내 분위기가 점차 희석되어 감을 인식하였다. 이에 작가들은 직원들의 개인 취향, 사적 고민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직원 간의 관계를 읽어냈다. 그들은 <깊고 무한에 가까운 소일거리> 프로젝트로 직원의 소소함을 모았고, 그 결과를 회사 로비에 전시했다. 서로 놀리고 웃는 와중에 친해질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소통이 적은 그룹을 묶어주는 등 예술가의 시선으로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유도했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노력에 따라 층이 다르고 부서가 다른 직원들 간 안부 인사와 대화의 횟수가 늘었고, 성과 중심의 기업 분위기 속에서도 직원 개개인의 취향들이 살포시 드러나면서 업무 외적인 소통이 가져오는 직원들 사이의 상호 인지도가 상승하는 식으로 다양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점점 더 넓어지게 되었다.

천연 화장품 제조사인 ‘Skin Cure’는 처음 홍보마케팅 차원에서 예술가들의 힘을 빌리려고 접근하였다. 하지만 간헐적이고, 일시적인 개입으로 도구화된 예술보다는 예술인과 의견을 조율해 사내 분위기 조성하기 위한 ‘시와 이야기 공방’을 운영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윤석정 시인은 아침마다 직원들과 시를 읽었다. 다 함께 감상하고 시 구절의 상상력을 음미하였으며, 작품을 직접 쓰고 공유하였다. 그다음 직원과 작가는 돌아가며 1:1 대화를 진행했다. 이렇게 6개월 동안 시를 읽는 시간이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 내 소통 방식은 재배치되고, 재배열되었다. 안정적 분위기 속에서 위계질서에 영향받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끄집어내는 훈련들을 하게 되면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넘어서는 소통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일에 대한 오너십(ownership)을 재발견하게 되어 직원들은 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 감각 등을 끄집어냈다. 차원이 다른 고민과 배려를 구성원들 내에서 모색한 것이다. ‘무(無) 쓸모의 쓸모’인 상상력과 여유는 천연 재료로서 직원들 내면에 스며들어 메이크업 베이스 역할을 했다.

예술로 거듭나는 기업 이미지 창출

1974년에 설립된 ‘인천탁주’에 파견된 주희란, 유희경 작가는 임직원을 인터뷰해 40년의 기업역사를 7개월간 정리한 『인천탁주, 그 히스토리_Raw Rice Wine’s history』라는 책자를 제작했다. 2016년 새로운 막걸리병의 라벨링 작업 <인천탁주, 디자인 입다>를 통해 채집한 막걸리 익어가는 소리를 디자인하여 포함시켰다.(QR코드로 제작) 또한 기업 내 유휴공간에 ‘인천탁주 역사관’을 조성하여 시각적 아카이빙을 선보였던 작가들은 기업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룩처럼 반죽하고 예술적 영감이라는 숙성을 통해 회사의 제품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제대로 숙성시켜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문래동 소상공인협의회에 파견된 예술인 최두수, 이완, 송호철 작가는 지름 2cm의 국제 공인 규격에 맞춘 팽이를 제작하기 위해 소공인 2세 경영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구심력으로 중심을 잡고, 소상공인들의 기술은 원심력으로 작동되어 작은 성과물로 빚어졌다. 작가들은 팽이 시합에 나가는 오래 돌리기용과 팽이 싸움용 팽이를 디자인하였다. 문래동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은 이 지역에서 6년간 제대로 된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지름 2cm의 ‘팽이’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현재도 작은 팽이의 회전은 멈추지 않고 돌고 있다. 그 작은 팽이에 물감을 찍어 돌리며 만들어 내는 드로잉 방법은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팽이의 우주여행>으로 확장되어 진행되고 있고, 정밀가공 기술력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팽이는 상품화되어 시장진입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 중이다.



김다영, 최은진, 윤사비, 
조영주, 남정우, 박승순 
<기업의 예술적 히스토리> 
㈜세정그룹

▲ 김다영, 최은진, 윤사비,
조영주, 남정우, 박승순
<기업의 예술적 히스토리> ㈜세정그룹

최두수, 이완, 송호철 
<문래소공인특화지원 전시> 
팽이 디자인 제작물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

▲ 최두수, 이완, 송호철
<문래소공인특화지원 전시>
팽이 디자인 제작물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

예술가의 무한한 도전을 위해

아모레퍼시픽, GS홈쇼핑 등의 대기업과 세정그룹과 같은 중견기업 그리고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에까지 예술인들의 상상력이 스미는 과정을 통해 예술에 대한 가치와 인식을 바꾸어 내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처음부터 예술가들의 기업 내 진입이 쉬웠고, 가능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3년밖에 되지 않는 사업의 인지도에서 비롯된 어려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 사업을 보는 예술가들의 인식과 접근 방식이었다. 내부적으로는 기존 문화예술지원 정책 속에서 길든 예술가의 유형이 예술가 스스로에게 새로움과 상상력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동력을 검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예술 가치와 예술가의 활동 의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부족도 이유였겠지만, 기업의 언어 안에서 예술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라는 닫힌 태도도 문제였다. 이 사업에서 의도한 협업은 기업담당자뿐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도 일종의 ‘행함으로써 배우는(action learning)’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수잔 레이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Mapping the Terrian: New Genre Public Art)에서 ‘공동체 기반 예술 활동’을 언급하였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이러한 공공예술의 경향을 대한민국 맥락에 맞춰 적용시키려는 시도였다. 공동의 이슈를 감지하고, 긴장감을 유지한 채 맺어진 관계망 속에서 11개 예술 장르의 예술인 시선은 거대한 예술프로젝트처럼 작동하였다. 그 상상만으로도 ‘무한도전’ 프로그램이 연상되지 않는가. 그간 예술단체, 기관, 또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예술인과 기업, 기관 간에 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예술인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예술인 파견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때문에 이 사업은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이슈를 예술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구성원들의 공감을 통해 비로소 힘을 갖게 되는, 그래서 의미를 지니는 예술 활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적인 예술인 복지 개념이자,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인들의 상상력이야말로 기업 문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변화를 가능케 하는 거울이며, 혁신을 이끌고, 나아가 미래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경제 영토를 넓혀가는 핵심 동력이다. 이 사업을 단순 복지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산업의 문화화’ 가능성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명심하자. 어두운 시대일수록 불가능한 것을 도전하고, 상상하려는 예술가의 태도가 있었기에 이러한 도전이 가능했음을 말이다. 그 상상력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

사진제공.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기언필자소개
이기언은 소싯적 문학을 전공했으나 연극, 오페라에 관심이 많아 연출, 기획, 배우까지, ‘Community Space Litmus’의 큐레이터,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나눔센터 주임, 안산국제거리극축제 크리에이터 등을 거치며 예술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전방위 예술 장르 지원이 가능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담당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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