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시즌2의 오프닝 파티가 있었다. 작년 시즌1의 남자 주연 배우였던 오만석, 조정석을 비롯한 주요 배우들이 대거 몰려와 축하를 해주었다. 작년 공연에 대한 추억 이야기는 물론 시즌2의 진화된 모습에 대한 격려 또한 아끼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오랜만에 술 한번 많이 먹은 날이었다.

올해 공연의 특징은 총각 선생님 역인 강동수 역에 이지훈, 성두섭 그리고 이창용 세 배우가 맡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lsquo;삼인삼색(三人三色)&rsquo;이 따로 없다. 젊은 세 명의 배우는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 마치 세 명의 강동수가 태어난 기분이 든다.

창작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공연 장면

성두섭과 이창용은 무대에서 단련된 특유의 저력으로 기대 이상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놀란 건 이지훈이다. 그는 가수 겸 연기자로 다양한 경력을 가진 배우다. 하지만 그를 본격적인 연기자라고 생각하는 데에 필자는 다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그의 모습은 다소 가벼워 그가 뮤지컬을 하기에 맞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지훈의 첫 연습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극중 강동수가 어린 여제자인 홍연과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건강한 청년이 반응할 수 있는 뜨거움과 잠시 당혹스러워하는 장면을 천진난만하면서도 낭만적이고 또한 사춘기적 흥분까지도 고려해가며 표현해야 하는 고도의 연기력이 요구되는 섬세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지훈은 리허설에서 한두 번 만에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작년, 연기 고수 오만석이란 배우조차 그 장면을 표현하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이지훈이 보여준 연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작년에 <내 마음의 풍금>의 &lsquo;홍연&rsquo; 배우를 뽑을 때, 장은아라는 중앙대학교 재학생이 오디션장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기분과 흡사했다. 나는 장은아를 보는 순간 홍연이가 등장하는 기운을 느꼈다. 옆에 앉아있던 시즌1의 연출 조광화에게 &ldquo;형, 홍연이 온다&rdquo;고 말할 정도로 확신을 가졌던 기억인 난다. 그 뒤 장은아는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해 작년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여자연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 중앙일보에서 주최하는 더뮤지컬어워즈의 신인여자연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필자의 안목 또한 나름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다.

강동수 역의 뮤지컬 배우 이지훈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지훈의 연습장면을 보고 또 한 번의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지훈의 연기를 보고 시즌2의 연출 이성원에게 &ldquo;성원아, 지훈이는 걱정 없다. 저 정도 연기력이면 뮤지컬계에서 탑클래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rdquo;라고 자신 있게 말한 기억이 난다.

이런 자신감은 필자로 하여금 <내 마음의 풍금> 시즌2의 주요 초대손님을 이지훈의 첫 공연에 맞춰 초대하도록 했다. 지훈이의 첫 공연은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 초반에 많이 긴장해서인지 첫 대사가 엉켜버리는 실수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ldquo;사범대에서 부임한 것&rdquo;을 &ldquo;서울 부임대&rdquo;로 대사를 했으니 본인 스스로도 얼마나 황망했을까 싶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극 초반 이후 자연스럽게 동수의 캐릭터를 끌어올려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는 것이다. 기대가 컸던 필자에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다음날 지훈이의 두 번째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진가를 십분 발휘하기 시작했다. &lsquo;그렇지 바로 저것이 지훈이지&rsquo; 할 정도로 완벽하게 강동수 선생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지훈이에게 뮤지컬 연기자로서 호랑이 같은 근력이 있다고 제대로 칭찬을 해주었다. 본인에게 자신감도 중요하고 또한 격려를 통해서 더욱 분발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너무 빠른 칭찬이 화를 불렀을까. 세 번째 공연에서 지훈이는 릴랙스된 느낌으로 좀 더 편안한 연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물론 일반 관객 눈에는 안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lsquo;무대 짬밥&rsquo;이 있는 우리 같은 전문가들의 눈에는 배우가 배역에서 이탈되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그날 오프닝파티 때 낮에 느꼈던 것을 자연스럽게 모니터도 할 겸 연기자의 방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되는지에 대한 일침을 주고 싶어 지훈이랑 술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o;지훈아, 나는 전력을 다해서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늑대가 좋다. 토끼도 못 잡는 호랑이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rdquo;고 말했다. 연기자의 재능과 역량이 최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며 연기할 때, 비로소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때 지훈이는 &ldquo;감사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rdquo;라고 말하더니 나를 껴안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 번 &ldquo;감사합니다.&rdquo;하며 볼에다 &lsquo;쪽~&rsquo; 뽀뽀를 하며 말이다! 이쯤 되면 두 남자의 수다에 대해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녀석의 재능에 연기자의 열정이 더해진다면 &lsquo;뮤지컬 배우 이지훈&rsquo;이 한국 뮤지컬계에 얼마나 오래갈 이름인지를 감히 예언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녀석에게서 기습 뽀뽀를 당했기(?)때문은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


김종헌

필자소개
김종헌은 뮤지컬 프로듀서로 (주)쇼틱커뮤니케이션즈의 대표, 그리고 목원대 성악 뮤지컬학부 전임교수를 맡고 있다. 연극연출과 배우를 거쳐 (주)PMC의 뉴욕지사장과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2006년 (주)쇼틱커뮤니케이션즈를 창립, 창작뮤지컬 <컨페션><첫사랑><소리도둑><내 마음의 풍금><달고나> 등을 제작했다. 현재 한국뮤지컬협회,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의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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