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미술관이 완공되면 그 일대는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가 이어지는 '문화예술 벨트'로 묶일 수 있다. 요즘 들어 사진 애호가와 젊은이들에게 각광을 받는 삼청동과 해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로 꼽히는 인사동.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당도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연중 관람객수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양적 증대보다 질적 성장이다. 능동적인 관람객의 집중도 및 만족도는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십여 년 전 쯤, 극장가에서 히트를 쳤던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지난 1월 16일 &lsquo;2009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rsquo;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종로구 소격동 전 국군기무사령부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성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미술관은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lsquo;청와대 옆 미술관&rsquo;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술계 염원, 새로운 문화벨트 형성도 기대

사실 이 대형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결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기무사 터에 미술관을 짓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고(故) 조병화, 고 장세양, 김홍남, 이두식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공식적으로 청원을 낸 것도 1996년의 일이다. 최근에는 &lsquo;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rsquo;이 조직되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대규모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토록 미술인들이 간절하게 서울관을 바랬던 이유는 한국미술의 자존심이라고 할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이 아닌 교외 지역에 뚝 떨어진 채 방치되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부적으로 이미 마친 상태기 때문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경미술계 밖을 살펴봐도 일반인에게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은 동물원 옆에 있는 따분한 공간일 뿐이다. 실제로 필자는 대학 시절, 잠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체관람객을 대상으로 도슨트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상설전시장이었는데 아는 것을 총동원해서 유명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목이 쉬도록 설명했건만 정작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은 &lsquo;빨리 이 지겨운 시간이 끝나고 서울대공원으로 가고 싶어&rsquo;라고 말하고 있었다.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이해될 듯도 했다. 미술관의 기본적 기능으로 꼽히는 문화예술 교육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멀고 딱딱했던 것이다.

새 미술관이 완공되면 그 일대는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가 이어지는 &lsquo;문화예술 벨트&rsquo;로 묶일 수 있다. 기무사 터 주위에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아트선재센터, 몽인아트센터 등 굵직한 전시장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 기무사 터를 사이에 두고 삼청동과 인사동으로 반경을 확대 하면 상황은 더욱 낙관적으로 발전된다. 요즘 들어 사진 애호가와 젊은이들에게 각광을 받는 삼청동과 해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로 꼽히는 인사동.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당도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연중 관람객수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양적 증대보다 질적 성장이다. 억지로 봐야 하는 단체관람객보다 문화 향수를 원하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관람객의 집중도 및 만족도는 굳이 비교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타 건축가, 뉴스는 되겠지만 명성은?

이렇듯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 건립은 단지 미술관 하나를 새로 짓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각 분야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미 건축계에서는 미술관의 건축 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기무사 본관은 한국 최초의 건축가로 불리는 박길용(1898-1943)이 1929년 설계한, 근대문화재 375호로 등록돼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이다. 초기에는 경성제대 의과대학으로, 이후에는 보안사와 기무사로 사용된 이 건물을 두고 리모델링을 하느냐, 아니면 전면 철거하고 신축하느냐가 첫 번째 이슈다. 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지만, 건축계에서는 보존하자는 의견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만약 리모델링으로 결정되더라도 서울시립미술관처럼 건물 파사드(앞면)만 유지하고 뒤쪽은 모두 철거하는 방안, 건물 자체를 아예 뒤쪽으로 이전하는 방안(해체복원), 건물을 유지한 채 새 건물로 둘러싸는 방안 등으로 나뉜다.

이에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은 &ldquo;미술관의 세계화를 목표로 삼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건립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rdquo;라면서, 공모를 통해 건축 설계 디자인을 채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lsquo;글로벌 스탠더드&rsquo;에 부합할 만한 국제적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 건축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착공중인 아부다비의 구겐하임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지향하며, 프랑크 게리, 장 누벨, 노먼 포스터, 안도 타다오, 자하 하디드에게 각각 한 건물씩을 설계하도록 해 벌써부터 화제다. 이러한 비슷한 접근을 국내의 한 사립 미술관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 물론 개관 당시에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스타 건축가가 지은 미술관은 이미 세계 도처에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lsquo;뉴스&rsquo;는 될 수 있어도, 명성을 유지시켜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건물은 잘 지어야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것이 단지 스타 건축가를 초청하는 것으로 직결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새로운 미술관 건축에 대한 여러 가지 청사진을 그리는 자리에서 대표적인 선례로 빈번히 회자되는 곳으로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과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 퐁피두센터 등이 있다. 앙리 마티스의 &lsquo;종이 오려붙이기 그림&rsquo;에서 영감을 받아 해체주의 건축의 최고봉을 보여준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인 빌바오를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그런가하면 1971년 681점의 응모작 중에서 건물 내부의 배관을 외부로 노출시켜 장식 요소로 내세운 콘셉트로 당선된 퐁피두센터는 지금까지 가장 혁신적인 건축 설계로 손꼽히고 있다. 파리에 처음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퐁피두센터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놀라운 건축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그 다음 파리에 두 번째, 세 번째로 방문하게 되면 어느새 그 건축은 익숙해지게 마련이고, 오히려 우리는 내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 집중하게 된다.


큐레이팅 뒷받침할 인력 갖춰야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또한 단지 접근성이 좋다고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미술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과 더불어 미술계에서는 미술관의 새로운 비전과 발전 방향에 대한 모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배 관장은 한 인터뷰에서 &ldquo;지난 1월 (구)기무사 건물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조성이 가시화됨으로써 서울관과 과천 본관, 덕수궁미술관의 기능 및 역할 분담에 대해 미술전문가들의 의견수렴과 국내외 유수 연구기관의 연구용역을 통해 방향을 설정해 나갈 것&rdquo;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미래 설계> 세미나 현장 이러한 의지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3월 27일, 프레스센터에서 &lsquo;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미래 설계&rsquo;라는 주제 아래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예술행정연구소 한종훈 소장은「서울관 건립 계기, 국립미술관의 역할과 기능 분담」, 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는「미술관 전문인력 확충 및 운영시스템 개선방안」, 이보아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는「미술관과 공공 마케팅」에 대해 각각 발제했다. 이어서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서진석 대안공간루프 디렉터, 김성희 홍익대 교수, 양지연 동덕여대 교수, 박창희 숭실대 교수,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질의를 맡아 토론을 벌였다.
특히 이 자리에서 유진상 교수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풀의 적극적인 운용을 강조하면서 큐레이터(전시기획 및 소장품 연구), 에듀케이터(교육), 컨서베이터(보존&middot;수복), 레지스트라(소장품 관리), 전시 디자이너 등의 전문 인력 확대를 제안했다. 물론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위와 같은 직제가 기본적으로 마련되어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및 대형 사립미술관, 나아가 해외 국립미술관의 인적 구성 환경과 비교해본다면 최소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현재 학예실장 직이 공석이다. 한종훈 소장의 발제 내용에도 언급됐다시피 &ldquo;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실장은 이보다 더 열악하여 큐레이팅의 핵심인 수석 큐레이터의 임기가 2년 계약직이다. 한 전시에 대략 2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전임자가 마련해둔 기획안을 따라가다가 임기를 마치게 되는 셈&rdquo;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인도현대미술》전,《보테르》전,《배병우의 고궁사진》전,《권진규》전, 축제형태로 꾸미는《무도회》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관 건립 문제와 신임 관장 임명 등 굵직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개관 40주년을 기념할 만한 대규모 전시나 행사로는 다소 미흡한 느낌이 있다. 개념과 텍스트성이 강한 현대미술 작품을 대중의 눈높이 맞게 전시를 꾸리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국제 미술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인정도 받아야 한다. 새 미술관이 이러한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내려면 지금부터 인원을 보강하여 직제를 탄탄하게 구성하고, 이들이 다양한 &lsquo;테스트&rsquo; 전시를 미리 만들어봐야 한다.

한편 미술관 착공에 들어가기 전, 현재 비어 있는 기무사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려는 다양한 안이 나오고 있다. 하반기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자체 기획전,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lsquo;아시아프(ASYAAF) 2009-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rsquo;, 사무소(SAMUSO, 대표 김선정)에서 기획하는 &lsquo;플랫폼 2009&rsquo;가 이 공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소장정책 활성화로 미술관 위상 제고해야

미술관의 기능 중 전시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소장 활동이다. 미술관의 소장 정책은 미술시장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선도한다. 미술관에서 소장품을 결정할 때 소장작품수집심의위원회를 거치는 절차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과거에는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소장되는 것이 &lsquo;가문의 영광&rsquo;이 되어 돈을 받지 않고도 기증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어느 갤러리 대표는 &ldquo;미술관에 작품을 파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rdquo;라고 토로했다. 그 이유는 소장품들의 작품 성향과 퀄리티가 각양각색이다 보니,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것이 작가에게 더 이상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술관에 작품을 팔 경우 개인 컬렉터에게보다 싸게 파는 것이 일종의 룰이 되어 버려서 어떤 측면에서도 득이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심도 있는 소장품 연구가 선행되고, 그에 따른 정책을 수립한 후 컬렉션을 수집한다면 이제라도 실추된 미술관의 위상을 다시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은 작가와 작품에게 있어서 &lsquo;집&rsquo;이나 다름없다. 또한 미술을 아끼는 대중을 품는 &lsquo;사랑방&rsquo;이기도 하다. 오는 2012년, 서울에 들어설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은 동물원도 청와대도 아닌 우리의 &lsquo;옆&rsquo;에 가까이 있는 친근한 문화예술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호경윤

필자소개
호경윤은 동덕여대 큐레이터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전문지 월간『아트인컬처』의 수석기자로 재직 중이다. 네이버(naver.com), [주간동아],『루엘』등에 고정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전시《출판_기념회》(2008, 갤러리팩토리)를 기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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