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전문가 바라보는 우리 예술현장의 현안은 무엇일까? <@예술경영>은 창간특집으로 공연, 시각 및 정책일반의 전문가들에게 예술계 현황을 진단하고 전망을 모색하는 설문을 실시했다. 예술현장의 현안, 제도 정책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예술경영분야 등을 묻는 설문에 31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답변을 보내왔다. 이번 특집은 총 4회에 걸처 설문 분석과 개별 현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문화시설 중에서 공연장의 전문적 운영문제가 문화계의 본격적인 화두가 된 것이 줄잡아 2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누가 처음 이 화두를 꺼내 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 시기는 아마도 서울에 예술의전당이 문을 열고, 전국에 문예회관들이 서로 뒤질세라 건립이 되는 90년도 전후부터로 기억된다. 비슷한 시기에 극장경영(Theater Management)을 하나의 대상으로 하는 예술경영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도 이런 화두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봐도 공연장의 전문적 운영에 관한 문제는 공연예술 단체의 활동이 급격히 늘어나고 공연장이 전국에 확산되는 시점에서 제기된 사례가 많다. 60년대의 미국이 그랬고, 80년대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문제제기의 핵심은 공연활동은 분주히 늘어나는데 공연장이 전근대적인 운영을 하고 있어서 예술이 국민들에게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리의 경우도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공연활동이 증가하고 전국에 공연장이 바쁘게 들어서는데도 예술의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돌이켜보면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술의전당은 누가 뭐래도 한국의 대표공연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고, 국립극장도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모습만은 아니다. 대학로를 보더라도 아르코예술극장 운영이 근래 들어 훨씬 세련되어졌고, 무엇보다 100개가 넘는 소극장에서도 매일 많은 공연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새로 건립된 서울의 몇 개 자치구와 지방의 공공 공연장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의 기획과 유통이 활발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도권의 몇몇 공연장에서는 서양의 극장 프로그램 운영방식인 시즌공연제도를 도입하여 성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형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1년치 프로그램을 일괄 공개하는 이러한 추세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들이 가져온 가장 긍정적인 결과는 많은 예술작품들이 극장을 거쳐서 수용자들에게 전달되는 유통 생태계의 건강성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었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동인으로는 운영인력의 전문성이 높아졌다는 것과 이들이 활동하는 공연장의 물리적 기반, 즉 시설의 개선과 예산의 지속적인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연장운영에 있어 완성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니 완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거칠게나마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 분명하고도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미션과 비전이 설정되어 있으며, 이를 조직원과 커뮤니티가 공유하고 있는가.
○ 운영조직이 전문적인가.
○ 한 시즌의 프로그램이나 혹은 일부라도 어떤 일정한 예술적 비전이나 컨셉을 가지고 고객에게 일괄 공개하는가.
○ 공연장의 예술적 비전이나 운영을 지지하는 관객 기반이 튼튼한가, 즉 유료관객 점유율이 높은가.
○ 장기적으로 관객 개발을 위한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 모두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공연장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좀 한다하는 공연장들도 창작보다는 초청 중심, 주먹구구식의 프로그래밍,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관객 개발 시스템의 부재 등에 기인한 취약한 관객 기반에 허덕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위와 같은 질문에 일부라도 답할 수 있는 공연장이 근래 들어 늘어난 것만으로 위안이 되기는 한다.


참조 이미지 - 각종 극장 사진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공연장들에 있다. 서울시의 각 자치구만 보더라도 불과 4~5개를 제외하고는 앞서와 같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곳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점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새로 공연장이 설립된 몇몇 큰 도시를 빼고는 대부분의 지역이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의 16개 광역 시도만 보더라도 서너 곳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곳이 없다. 기초자치단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해마다 전국문예회관연합회에서 주관하는 문예회관경진대회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운영사례를 발표하고자 하는 문예회관은 전국 100여개 가입회관 중 30%가 되지 않는다. 비회원 기관까지 포함하여 현재 운영 중인 160여개 문예회관에 비하면 20%도 안 된다. 나머지 대다수의 문예회관들의 운영이 어떠한지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런 공연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비전문가들이(그것도 수시로 교체되는) 변변한 예산도 없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질적 양적으로 영세한 예술이나 일반행사에 대관이나 해주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넓게 보면 우리나라 공연예술 유통의 중심이 되어야 할 공연장들이 대부분 만성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어 예술의 피가 골고루 통하지 않고 극히 일부지역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간헐적이지만 20년 동안 제기되어 왔다. 문제는 끝까지 파고들어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태도가 부족했을 뿐이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공연장이다. 특히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춰지고 특정한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예회관이라 불리는 공공 공연장들은 이런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상상을 해보자. 이런 공연장과 창작자들이 의기투합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무대호환성을 갖는 작품의 창작이 초기부터 이루어지고, 이를 토대로 지역의 관객 기반을 활용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가치의 확대재생산도 가능해 질 것이다.


이렇게 패키지로 생산된 프로그램은 전국으로의 유통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창작자들의 입장에서는 제작비용에 대한 부담도 덜고 마케팅이나 유통에 대한 걱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역량 있는 예술단체라면 여러 개의 공연장을 이런 기반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골치 아픈 무대 장치물을 보관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공연장의 입장에서는 초청위주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비판도 줄이게 될 것이며, 스스로 예술적 자원을 축적하는 이득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자원을 십분 활용하여 효과적인 관객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게 된다.


말하자면 공연장의 지역적 기반과 마케팅 시스템, 예술단체의 창의성이 이상적으로 결합되면 다양한 예술적 가치를 생산해 내고 이를 장기적으로 활용하는 상생 관계를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공연장 운영이 전문화되지 않으면 이런 상상도 공상에 불과하다. 전문적인 운영체제, 전문가들의 수용,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 편성 등 아주 기본적인 것을 갖추어야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예술가도 관객도 공연장에 몰리게 될 것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을 때는 공연장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이럴 때 민간단체나 기관들은 움츠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지금부터 10년 전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전국 공연시장의 규모가 40-50%나 곤두박질 쳤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90년도 전후 미국경제가 심하게 침체 되면서 공연계도 어렵다고 아우성을 쳤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예술기관의 몸집을 줄이고 마케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록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TCG의 통계는 이 기간 동안 전국 비영리 극단(극장)의 티켓 판매수입 비율이 평균 5% 정도만 하락하였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만큼 공연장의 운영기반이 탄탄하면 웬만한 충격에도 그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 입장에서도 문화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공연장의 만성적 동맥경화를 풀고 예술의 생태계가 모두 건강해지도록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지점에 정책의 정교한 개입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침 새 정부는 &lsquo;간접지원, 선택과집중, 사후지원, 생활속의 예술&rsquo;이라는 지원방식 혹은 방향의 변화를 들고 나왔다. 이런 저런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강하게 추진되고 있는 만큼 좋은 성과를 올리기를 바라는 한편, 공연장을 또 하나의 &lsquo;간접지원&rsquo;의 대상으로 &lsquo;선택과 집중&rsquo;을 한다면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공연장을 통한 &lsquo;생활속의 예술&rsquo; 구현도 그만큼 쉬워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꼭 돈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진제공_전국문예회관연합회]



이용관필자 소개
이용관은 중앙일보/호암아트홀 문화사업부장, 부천문화재단 전문위원, 안양문화예술회관 관장을 역임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1) 미국에서의 이런 문제제기는 보다 철학적인 바탕에서 이루어졌다. 이른바 &lsquo;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rsquo;가 그것으로, 이시기의 문화민주주의란 &lsquo;보다 많은 장소에서 보다 많은 예술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해야 한다&rsquo;는 것이었고, 이는 예술기관을 보다 전문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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