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이었다. 당시 내가 맡던 조사연구팀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경력직들이 오게 됐다. 조사나 연구라는 것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은 있지만 내용적으로 예술생태계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난감했다.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예술 분야의 창작·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고, 공연단체와 공연기획사는 누구고, 공연장과 공연시설은 뭐가 다르고, 미술분야의 경매회사, 화랑의 구조나 관계 등등 아는 것 모르는 것 모두 동원하여 설명했다. 그리고 질문을 받았다. “팀장님은 공연산업에서 왜 공급자 이야기만 하나요? 소비자 관점의 조사연구는 안 하나요?” 순간 멈칫했다. 아마도 “공연이 무슨 산업이야? 공연은 예술이야 예술! 예술은 다른 산업과는 구조가 다르다고!”라 한 것 같다. 그때 그 팀원의 아리송한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5년, 나는 ‘제1회 예술산업 미래전략 포럼’을 총괄했고, 2016년을 며칠 남기지 않은 지금은 이렇게 예술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조사나 연구에 대해 쓰고 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나로서는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곤충도 산업이라고?

2015년 여름쯤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예술산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다시’라고 한 것은 2004년 당시 문화관광부의 새로운 예술정책을 담은 ‘예술의 힘’이라는 정책보고서에 이미 ‘예술산업’의 정책적 방향성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6년에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설립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산업’이란 네 글자에는 복잡한 사유들이 담겨있다. 개념 정리, 장르적 범위, 대중산업·콘텐츠산업 등 유사 산업과의 관계성, 상업화·대중화와의 경계, 성과중심주의로의 위험요소 등 매우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의 산업 관련 법률은 ‘건설산업기본법’, ‘건축서비스산업법’, ‘게임산업진흥법’, ‘고령친화사업진흥법’, ‘곤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매우 많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곤충산업이다. 낯설다. 곤충이 산업이 될 수 있다니 말이다. 2010년 제정된 이 법률에는 ‘곤충산업이란 곤충을 사육하거나 곤충의 산물 또는 부산물을 생산·가공·유통·판매하는 등 곤충과 관련된 재화 또는 용역을 제공하는 업(業)’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법률 ‘제2조(정의)’에는 대상만 다를 뿐 생산·가공·유통·판매구조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예술에 대입하면 창작·기획·제작·관리·유통·소비(공연, 전시 등) 등의 단계로 풀이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법률안 상정을 추진하고 있는 ‘이야기산업’의 정의와 개념도 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나는 ‘예술산업’을 현재 시장규모는 작지만 예술 분야의 공급-유통-소비의 구조가 존재하는 산업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라 본다. 또한, 예술산업 구조의 분업화·전문화를 통해 비용 효용성을 증대하여 궁극적으로 예술단체의 지속가능한 활동,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 예술의 소비시장 확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예술산업의 육성’으로 사용하고자 한다.1)

1) 2004년 ‘새예술정책’에 제시된 예술산업의 방향성과 장대철 카이스트 교수의 ‘제1회 예술산업 미래전략 포럼’의 ‘예술산업의 의미와 구조’에서 발제하신 개념과 내용을 혼합한 것이다.

예술산업의 방향성을 정리한 「새예술정책」 중 예술산업의 방향성을 정리한
「예술의 힘 -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 중
장대철 카이스트 교수의 <제1회 예술산업 미래전략 포럼> 발제자료 중 장대철 카이스트 교수의
<제1회 예술산업 미래전략 포럼> 발제자료 중

예술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것? 연속적 데이터

누가 예술산업 육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데이터”라 말하겠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나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처럼 현재진행형 DB수집 데이터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를 짚어주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조사와 연구로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회적 필요로가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하에서 말이다.

통계청 승인통계 중 예술 분야를 조사대상으로 구분해 보면 ‘사업체 조사’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공연예술실태조사를 비롯해 콘텐츠산업통계조사, 관광사업체기초통계조사 등이 있고, ‘인력조사’에는 문화예술인실태조사, ‘소비자조사’로는 국민여가활동조사, 문화향수실태조사가 있다. 승인통계의 장점은 좋든 싫든 매년(혹은 주기별) 조사를 통해 통계 데이터의 연속성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반면, 주로 전년도의 실적조사 방식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12월 말 결과공표 시점에서 보면 최소 2년 전 데이터를 보게 된다. 따끈따끈하게 출시하자마자 바로 과거가 되어 버리는 셈이니 늘 시의성에 대한 지적을 면치 못한다.

승인통계 외에 다른 통계·조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조사대상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조사범주는 국내조사로 국한되어 있다. 또한, 창작활동을 근간으로 주로 예술활동과 관련한 조사가 많고, 특히 정부의 정책적 필요성 중심의 조사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 조사·연구만으로는 전체적인 산업구조 파악과 단계별 불합리한 요소를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민간 영역의 성장을 위한 기반 조사

예술산업 육성을 위한 조사·연구의 첫 번째는 예술산업의 기반들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존 사업체 실적 및 운영현황 조사 외에 ‘예술산업 비용구조 조사 분석’, ‘예술분야 임금현황 조사’, ‘관객분석 및 소비자 이용행태 조사’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계별(창작-제작-유통) 비용 발생 구조와 표준단가 등이 조사·연구되어야 한다. 이것부터 어렵다. 사실 이는 진작부터 시도하고자 했으나 현장에서의 정보 공개 등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 무대의 작은 소품 하나 만드는데 제작업체나 의뢰하는 사람에 따라 비용 차가 매우 크다는 것은 산업적으로 구조화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현장 종사자의 직업군별 또는 경력별 임금수준에 대한 데이터도 있어야 한다. 단지 금액이 많다 적다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제작 시 예산계획이나 계약 시 참고할 수 있을 정도의 가이드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예술인실태조사’ 등을 통해 장르별 예술가들의 평균수입 등의 데이터가 나오고 있으나 이를 넘어 표준임금 등의 가이드가 제시되어야 한다. 표준임금은 그 산업의 최소 비용을 산출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다. 타 산업의 경우 산업별 협회, 노조 등을 통해 종사자의 평균임금을 매년 공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종사인력의 처우개선, 임금하한선 측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정부 역시 ‘학술연구용역 인건비기준단가(기획재정부 주관)’ 등을 매해 공표하고 있으며, 정부사업을 실행하는 데 있어 사업비 산정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 분야의 경우 과거 표준계약서 제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수령임금의 명시와 처우개선에 대한 노력을 진행하였으나 표준임금산정의 주체를 명시하지 못하였고, 정부의 원가계산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한국물가정보(KPI)’의 임금단가정보 역시 1급, 2급, 3급 무대전문예술인에 대한 노임단가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산업별 표준임금 산정을 매우 세밀하게 제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농사일별 표준임금을 책정하여 비용을 산출하고 있다. 여기에는 모내기 일당, 도예 일당, 경운기에 의한 논 경작, 트랙터에 의한 논 경작 등 노동의 난도별로 차등 일금을 책정하여 운영하는 실정이다.

일본의 농업 표준임금 (농사분야) 일본의 농업 표준임금 (농사분야)

시장영역이 발달한 미국과 영국의 경우 노동총동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배우조합 등에서 가입자의 최소 임금산정을 비롯하여 예술실연을 위한 단가 산정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 배우 조합과 극장협회는 매년 배우 및 공연산업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의 기본급에 대한 합의를 진행하며 소속 예술가들에게 결과를 공지하여 상호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

다음으로는 예술산업의 현재 동향 파악이다. ‘국내 업계 경기동향’과 ‘해외예술시장 동향’, ‘예술분야 일자리 구인·구직 동향’, ‘타켓별 취향 등 소비동향’, ‘예술분야 관람가격 조사’가 필요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2016년부터 분기별로 공연예술경기동향 조사와 소비동향조사를 시작했으며 2017년부터는 시각예술 분야에서의 소비동향조사 등을 추가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잠재수요를 파악하고, 산업전망 등의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기존의 축적된 데이터들과 통찰력을 가진 연구자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가장 어려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산업의 간접시장 및 부대효과 조사’, ‘타 산업군에 필요한 예술인력 일자리 조사’, ‘(잠재)소비자 수요조사(평판분석, 소셜네트워크 분석’, ‘예술산업 트렌드조사’와 더불어 ‘예술산업 인력의 수요·공급 전망’, ‘예술의 경제유발효과 분석’ 등의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과학 분야에서는 미래예측을 위해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준비 측정을 위한 방법론 연구, 과학기술예측조사를 위한 사전 기획, 과학기술예측조사결과의 활용도 제고 방안 등의 단계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각 산업분야별 특성에 따라 조사·연구의 방향과 방법론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본적인 생산, 유통, 성과활용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특별히 기존 연구의 활용과 성과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구분 예술산업 기반조사 현재 동향 파악 예술산업 잠재수요 파악 산업전망· 미래예측
사업체
  • · 예술단체 실적·운영현황 조사
  • · 예술산업 비용구조 분석 조사
  • · 예술시장조사
  • · 예술산업경기동향조사
  • · 해외예술시장동향조사
  • · 예술산업의 간접시장 및 부대효과 조사
  • · 예술산업 트렌드 분석 및 전망
인력
  • · 예술계 종사자 임금(소득)조사
  • · 예술분야 일자리 이동경로 조사
  • · 예술분야일자리 동향조사(구인,구직)
  • · 타 산업군에 필요한 예술인력 일자리 조사
  • · 예술산업 인력수요·공급 전망
소비자
  • · 관객분석 및 소비자 이용행태 조사
  • · 관람가격동향조사
  • · (잠재)소비자 수요조사 (평판분석, 소셜네트워크 분석)
  • · 예술의 경제유발효과 분석

당장은 아니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앞서 제시한 내용들은 필요성이 이미 제기된 것도 있고, 일부분은 일회적으로 조사·연구되기도 하였다. 또한, 아직까지 예술산업의 개념과 방향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기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부나 민간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예술산업의 구조를 파악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관계자들은 충분한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

서두에 언급했던 그 팀원들이 지금 다시 질문한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맞아. 예술 그리고 공연예술은 창작자인 공급자와 관객인 소비자가 있고 그사이 유통의 구조가 있는 산업이지. 단지 이제까지는 공급자 중심으로 소비시장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야. 이제부터 예술산업 단계별, 대상별로 구분하여 조사·연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예술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해보자”라고 말이다.

  • 김혜진
  • 필자소개

    김혜진은 예술경영지원센터 조사연구팀장을 거쳐 현재 전략기획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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