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A씨는 루브르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한 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반 고흐 작 ‘별이 빛나는 밤’을 유유히 바라본다. 작품의 부분 부분, 붓 터치까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어서 고대도시를 거닐며 로마의 조각미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친 후, 세계 명작들로 컬렉션을 구성하고 친구들에게 공개한다. A씨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A씨는 바로 당신, 또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A씨의 하루는 간단하게 헤드셋(HMD)을 쓰거나, 스마트폰 버튼을 가볍게 클릭하는 것으로부터 그 여정이 시작될 수 있다.

‘미술관의 벽을 넘어선’ 접근

가상미술관(Virtual Museum)은 ‘가상’이라는 뜻의 ‘virtual’과 미술관의 ‘museum’이 결합해 탄생한 용어다. 통신망 상에 가상으로 구축된 미술관, 또는 멀티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을 의미한다. 기존의 미술관은 물리적인 시설과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소장품을 수집, 보관, 전시한다. 하지만 가상미술관은 인터넷 등의 정보 통신망을 이용해 관람자가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가상미술관은 기존 미술관이 보유한 소장품의 사진, 해설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독립적으로 디지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가상미술관은 웹의 등장과 진화에 따라 역할과 기능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1세대는 주로 온라인상에서의 디지털 아카이브와 홍보 기능에 한정돼 있었다. 2세대는 1세대가 가진 특징에 미술관과 방문객 간의 기초적인 소통, 상호작용이 추가됐다. 이러닝(e-Learning)과 비슷한 체계를 갖추게 된 셈이다. 하지만 최근 가상미술관은 또 한 차례의 변화에 돌입했다. 3세대 가상미술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세대 가상미술관의 특징은 한마디로 ‘미술관의 벽을 넘어선’ 접근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3세대 가상미술관은 우선 물리적 미술관과 비교해 볼 때 시간과 지역의 구애를 받지 않고 손쉽게, 편리하게,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물리적 미술관의 경우, 제공하는 정보나 자료의 선택 등이 전시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전시물 라벨이나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일방향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가상미술관에서는 방문객의 개인적 의도나 수준 등에 따라 개별적인 선택과 접촉이 가능해진다. 여기까지는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3세대의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이전 세대의 가상미술관에서 이뤄지지 않았던 ‘커뮤니티’ 형성, ‘상호작용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2세대의 가상미술관이 ‘미술관 내에서의 상호작용성’에 한정됐다면 3세대에서는 방문객 중심적 접근 및 상호작용성이 훨씬 폭넓게 전개, 활용될 수 있다.

구글은 ‘구글 아트 프로젝트(Google Art Project)’를 통해 전 세계의 걸작을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글은 ‘구글 아트 프로젝트(Google Art Project)’를 통해 전 세계의 걸작을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감각의 확장, 구글 아트 프로젝트

가상미술관의 대표적인 사례로 ‘구글 아트 프로젝트(Google Art Project)’를 꼽을 수 있다. 구글 아트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걸작들을 온라인에서 고해상도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전 세계 40개국 이상의 미술관에 소장된 4만 점 이상의 작품을 고해상도 이미지로 제공한다. 국가, 도시, 작가, 작품, 미술관, 컬렉션뿐만 아니라 인물, 재료, 역사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대로 카테고리별 검색이 가능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 미술관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360도로 회전하면서 감상하는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을 감상하는 단계에 이르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부분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슈퍼 카메라로 촬영된 104억 기가픽셀(Giga pixel)의 초고화질 이미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확대를 통해 재질, 붓 터치, 물감의 균열까지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해 준다. 놀라운 감각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다.

제3세대 가상미술관의 특징인 상호작용성은 구글 아트 프로젝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구글 플러스에서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공유하고 채팅방을 열어 특정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다양한 국적, 문화, 배경, 계층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경험과 취향, 정보를 공유하며 적극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또한, 원하는 작품을 선정, 본인의 취향에 맞는 개인 컬렉션을 구성하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하는 ‘마이 갤러리’ 기능도 갖추고 있다. 누구나 직접 큐레이션을 하고 작품에 대해 논할 수 있다. 이 가상의 공간에서는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고, 큐레이터로 활동할 수 있다.

미국 피츠버그의 달리미술관은 가상현실기기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드림스 오브 달리(Dreams of Dali)’를 제공한다. ⓒ달리 미술관 미국 피츠버그의 달리미술관은 가상현실기기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드림스 오브 달리(Dreams of Dali)’를
제공한다. ⓒ달리 미술관

가상미술관에 몇몇 기기와 기술이 더해지면 ‘몰입형 감상’이 가능해진다. 미국 피츠버그의 ‘달리미술관(Dali Museum)’은 최근 ‘새로운 경험세계를 제공함으로써 전시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는 평을 받았다. ‘디즈니와 달리 : 상상의 건축’이라는 멀티미디어 전시를 통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미국 엔터테인먼트의 혁신자 월트 디즈니(Walt Disney)와의 유례없는 협업프로젝트인 ‘데스티노’를 소개했다.

관람객들은 가상현실 헤드셋을 끼고 달리의 그림에 갇히는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관람객들은 움직이는 이미지, 청각적인 풍경, 정교한 개별 그림의 변형적인 분위기 등을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체험할 수 있다.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소위 ‘3D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전년 대비 관람객이 37% 증가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한 미술관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대 로마 도시를 가상현실(VR)을 통해 구경할 수 있게 한 애플리케이션 ‘고대 로마(Ancient Rome)’ 고대 로마 도시를 가상현실(VR)을 통해 구경할 수
있게 한 애플리케이션 ‘고대 로마(Ancient Rome)’
한 관객이 미국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Detroit Institute of Arts)에서 증강현실(AR)기술을 이용하여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한 관객이 미국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Detroit Institute of Arts)에서 증강현실(AR)기술을 이용하여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가상현실을 활용한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체험은 점점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인스티튜드 오브 아트(Detroit Institute of Arts)는 증강현실(AR) 기술이 결합된 방식으로, 핸드폰 및 앱을 통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실제 작품과 3차원의 이미지를 결합해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가상현실(VR)을 통해 고대 도시를 거닐며 구경할 수 있는 고대 로마(Ancient Rome)라는 앱도 있다.

국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레벨나인’이 2016년 선보인 가상미술관, ‘프레스코부터 가상현실까지(From Fresco To Virtual Reality)’는 미켈란젤로의 대표 작품을 중심으로 증강현실 기술과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차원의 예술 경험을 제공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작품 속 색상과 인물 포즈를 도상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다면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몰입형 체험을 구현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DDP 간송전’도 작품 외의 귀한 소장품들을 가상현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삼성 디지털 디스커버리 센터(Digital Discovery Centre)는 대영박물관과 협업해 다양한 기술 허브를 제공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의 가상현실 주말 프로그램(Virtual Reality Weekend)이 있다. 삼성 기어 VR 장치를 사용해 대영 박물관 컬렉션 중 청동기 시대의 작품을 3D로 경험할 수 있는 가족단위 교육 프로그램이다. 참여한 가족들은 태블릿과 몰입형 풀돔(immersive fulldome), 인터랙티브 스크린을 통해 가상의 청동기 시대를 탐험한다. 과거에 유물들이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제례, 주택 등을 3D 오브젝트의 몰입형 인터랙티브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가상미술관 분야에는 X-ray를 통한 이미지화, 3D 레이저 스캐닝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 인터랙티브 환경 개발이 이뤄져 왔다. 매체 환경 변화와 기술적 확장의 일환으로, 2013년에는 호주국립미술관 및 국립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에서 모바일 텔레프레전스(telepresence, 원격현실) 기술을 사용한 뮤지엄 투어 시스템을 시험한 바 있다. 관객들이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을 통해 원거리에서 미술관과 상호작용하고, 자신만의 뮤지엄 갤러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형태다. 이처럼 연구자들의 과학적 태도나 산업적인 필요에 따라 가상 미술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확장될 수 있다.

제3세대 가상미술관의 마케팅 해법

미술관의 경쟁자는 더 이상 미술관과 갤러리가 아니다. 공연, 영화, 스포츠, TV, 웹툰까지 다양하고 쟁쟁한 경쟁 상대들과 관람객 확보를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미술관은 관람객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하며 관람객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미술관에 비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미술관 관계마케팅은 개인의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며, 이용자 간의 교류를 활성화시켜 가상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미술관 및 국내외의 오픈된 데이터를 가상공간으로 끌어와서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오브제로 삼는 것이 제3세대 가상미술관이다.

가상미술관 이용자끼리 작품과 전시에 관련된 의견과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술관의 장기적인 회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미술관의 전시 홍보는 물론 방문 유도로도 이어진다. 가상미술관 이용자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미술관의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맞춤화된 프로그램을 제공받고 미술관 측 또는 이용자들과 피드백을 통해 구전효과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가상미술관은 아직 e-뮤지엄, U-뮤지엄, 디지털 뮤지엄 등 명칭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체계적인 접근법도 찾지 못했다. 또한, 가상미술관이 미술관의 미래인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가상현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지속되어 온 ‘실재(reality)’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작품의 실재를 대면하는 경험과 감동은 여전히 가상미술관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품은 실재하는 ‘오브젝트’이며, 기술의 발전이 확장시켜 줄 수 없는 감상 경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상미술관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는 감상과 교류를 제공하며, 신체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부터 해방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상의 세계에도 우리의 감성을 촉촉이 적셔줄 작품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7호(2017년 3월)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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