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영향에 대해서도 다양한 예측과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이 예술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3D 프린터가 예술가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예술가는 새로운 기술에 무관심하고, 예술산업은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하는데 느리므로 4차 산업혁명은 예술분야에 매우 위협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각 시대의 산업혁명은 상이한 재료를 바탕으로 변화를 이끌어왔다. 1차 산업혁명은 석탄을 이용하여 기계화를 이루었고, 2차 산업혁명은 전기를 이용하여 대량생산을 이루었다. 3차 산업혁명은 정보를 이용하여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가상공간을 창조하였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세상을 열고 있다. 이 천지개벽의 변화에 있어서 예술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예술적 가치에 대한 존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예술가들은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의 산업혁명들과 같이 4차 산업혁명에서도 결국 상업적 가치를 위해 예술적 가치는 이용만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도 상업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기술적 기법이나 경영기법 등을 배우거나, 아니면 정부에 예술가를 보호하는 장치를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

이 주장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물론 4차 산업혁명 때문에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의 작품을 인공지능의 그림이 대체할 수도 있고, 전통적인 방식의 공연으로부터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공연으로 관객의 관심이 이동하여 해당 예술가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도태 현상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경쟁력이 없는 분야나 사람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위협 요인들을 과장하여 선동하고 정부로부터 뭐든 지원을 받아내려 하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행동이다. 그 대신 우리 앞에 놓여있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이용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경영 이론에 의하면 저만치 앞서가는 선도기업이 등장할 때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이미 앞서가고 있는 기업의 수많은 강점들을 신속히 모방하거나, 새로운 강점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새로운 형식의 경쟁력을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무력하게 있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치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첫 번째 방법, 즉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되는 특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이러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영원히 선도기업이 될 수는 없다. 두 번째 방법, 즉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여 선도기업이 되는 길을 걷는 것은 더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의 수준이 바로 이러하다. OECD 소속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이용가능성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고, 스위스 유니온뱅크(SUB)에서 발표한 ‘4차 산업혁명 적응준비 순위’에서는 139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우리가 뒤처져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부상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에 대한 개별적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블랑카 리(Blanca Li) 컴퍼니의 <로봇> 공연 ©Laurent Philippe, 블랑카 리 홈페이지 블랑카 리(Blanca Li) 컴퍼니의 <로봇 > 공연 ©Laurent Philippe, 블랑카 리 홈페이지 구글 인공지능 ‘딥드림’의 작품 구글 인공지능 ‘딥드림’의 작품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위기의식은 우리나라의 예술가와 예술산업에 있어서 기회를 가져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인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바로 창의성인데, 현재의 주입식 몰개성화 교육의 폐단에서 벗어나 개별적 잠재력을 중시하는 창의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의 핵심은 바로 문화예술적 개념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기획자가 공연 또는 전시를 기획할 때 주변에 널려있는 흔한 오브제를 이용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이 ‘브리콜라주(bricolage)’ 개념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개념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프라인에 널려 있는 정보를 정제해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및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서비스를 창출하는 과정에는 브리콜라주의 창의성이 필수적이다. 누가 그 교육을 가장 잘 담당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일상적으로 브리콜라주의 작업을 해 온 문화예술인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의식이 있고 기회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바로 ‘문화예술경영’ 분야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의 예술인과 예술산업에 있어서 큰 축복이다. 정부에 예술인 보호를 요구하는 대신, 문화예술교육이 창의성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이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문화예술인의 특권이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문화향유 확대를 통한 노인문화복지증진, 더 나아가 행복지수 향상과 자살률 감소 등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했던 선진국의 모습들을 창의성 교육과 4차 산업혁명의 열매를 통해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미술·음악시간을 한두 시간 늘리고 방과 후 과정에 예술강사를 더 많이 고용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 이미 북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혁신적 교육방식으로의 근본적인 교육과정 개편, 즉 무학년제나 교사의 주관적 평가자격 부여 등으로의 개편과 맥을 같이해야 한다. 3D 프린팅, 가상·증강현실 기술, 인공지능 기술 등은 이 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천재적인 기술자들에게 맡기자.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 신형덕
  • 필자소개

    신형덕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국제경영 전공)을 졸업했고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전략경영 박사를 취득했다. 2003년 조지메이슨대학교를 거쳐 2006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에 부임하였다. 2017년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으로 취임하였고 그 밖에 한국전략경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상임이사, 한국경영학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잘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를 출판하여 경영전략과 문화예술경영의 융합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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